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3)
서울의 그림자 (3)
한스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언데드들을 거둬들였다.
마인들의 수만큼 늘어난 언데드들이 바닥에 드리워진 심연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러고 보니 차원 공용으로 쓸 수 있는 아공간 마법도 연구해야 하는데.’
지금 쓰는 아공간은 해당 차원 이면의 음차원을 이용한 것인지라, 내용물을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차원을 넘기 위해서는 직접 들거나, 용량도 작고 희귀한 아공간 마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세뇌 마법도 있으면 편하니 연구해 봐야 되고. 「금단의 지식」에도 세뇌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건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니까.’
대상자의 자의식을 파괴하고 꼭두각시로 만드는 흑마법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보다 언데드로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니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하지만 자아를 남긴 채로 인식만을 조정해 부하로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복잡했다.
부서지기 쉬운 정신을 섬세하게 다뤄야 하므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모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재료가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아우테리카에만 있는 물건은 어떻게든 구할 수 있어. 문제는 다른 것들이지.’
「금단의 지식」에 괜히 ‘금단’이라는 명칭이 붙은 게 아니었다.
그 공정에 필요한 재료들이 하나같이 끔찍했으니까.
내가 조금 편하자고 어린 아이의 피나 태아의 신체 일부 같은 걸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차라리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 연구하고 말지. 할 건 많은데 시간이 없구나.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아우테리카에 가는 것이 효율적인데, 그러려면 교단의 추적을 피할 방법 먼저 찾아야 하고. 골치 아프군.’
나는 이어서 생존자들이 갇혀 있는 창고로 향했다.
언데드들이 지키고 있는 두꺼운 철문 너머로 십여 명의 생기가 감지되었다.
바깥의 소란을 들었는지 구석에 한데 뭉쳐 떨고 있는 듯한 기색.
문을 부수고 열기 전에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얘들보단 내가 더 낫겠지? 확인할 것도 있고.’
하나같이 흉악한 외형의 움직이는 시체들보다는, 좀 무섭더라도 전신을 가린 한스가 낫지 않을까?
나는 후드를 눌러 써서 안광을 가리고 공포 효과를 최대한 억제했다.
콰직—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서자 공포에 질린 채 구석에 뭉쳐 있는 이들이 보였다.
겁먹은 이들을 앞에 두고 괜히 시간을 끄는 것도 못 할 일.
바로 마인들에게서 빼앗은 스마트폰을 꺼내 경찰에 전화를 걸고 생존자들에게 던졌다.
“어··· 어?”
마력의 제어를 받은 스마트폰은 부드럽게 허공을 미끄러져 당황한 생존자 한 명의 손안에 쏙 들어갔다.
-네, ···경찰서 ···입니다. 무엇을···
곧 그의 손에서 작게 들리는 경찰의 목소리.
당황한 그는 잠시 버벅거리다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경찰과 대화를 나눴다.
거기까지 지켜본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갔다.
‘스파이 같은 것도 없는 것 같고. 이제 괜찮겠지.’
인질들 사이에 패거리를 섞어두는 것은 범죄자들의 유구한 전통이 아니던가.
한스는 공포와 절망 등 부정적인 감정에 예민했다.
그들을 직접 대면해서 감정 변화를 확인한 결과, 딱히 의심 가는 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곳 자체가 은밀한 곳인데다, 지키는 이들이 전부 마인이다 보니 일반인들에게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진 않은 거겠지.
‘이걸로 마인 사냥꾼 하회탈의 업적이 하나 더 늘었겠지?’
처음에는 최대한 은밀하게 활약할 생각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자신을 추적할 방법도 없는데 목격자들을 일일이 통제하는 것도 번거로웠으니까.
또 그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면 범죄율을 억제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솔직히 인터넷에 하회탈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게 재밌기도 했고.
그래서 정체만 숨기고 목격자들에 의해 소문이 퍼지는 것을 방조했다.
그 결과, 지금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알음알음 하회탈을 쓴 한스에 대한 정보가 퍼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번천회는 뭐 하는 놈들이지? 여기저기 한 다리 걸치지 않은 데가 없군. 그러면서도 정작 실체는 없고.’
마인 놈들의 기억을 읽어 얻은 정보.
이번에 토벌한 놈들은 번천회와 협력 관계에 있었으나, 간접적으로 지원받는 식으로 연결되어 있어 추적하기가 힘들었다.
이전에 털었던 조직에서 얻은 정보도 지금과 비슷했는데···.
‘그래도 지금처럼 계속해서 범죄 조직을 소탕해 나가다 보면 언젠간 꼬리가 잡히겠지.’
최근 치안이 어지러워진 이유가 놈들 때문이라면, 곧 어떻게든 마주치게 될 것이다.
한스는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떴다.
격전이 있던 장소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피로 그려진 하회탈 그림만이 남겨져 있었다.
***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보장하는 고급 식당의 개인 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최근 하회탈을 쓴 미친놈 하나가 영웅 놀이를 하며 돌아다닌다고 하던데.”
개성 없이 흐릿한 인상의 남자가 앞에 앉은 사람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흑마력을 사용한다더군.”
안경을 쓴 중년인이 술을 받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서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어지는 대화.
“흑마력 사용자치고 제정신인 놈을 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놈 정도면 곱게 미친 거라고 봐야지. 최소한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름의 신념도 있는 것 같으니.”
“하, 흑마력 사용자의 신념이라. 그거 무섭군. 광신도 테러리스트보다 극단적일 테니.”
대자연의 기운을 변질시킨 흑마력은 패도적이고 성장도 빠르며, 상대하는 이에게도 치명적인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오염된 기운인 만큼 사용할수록 사용자의 정신에도 악영향을 준다.
약할 때는 집착, 강박증부터 시작해서 강해질수록 서서히 도덕적 관념이 옅어져 마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놈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 어떻게든 해야 할 텐데, 아직도 단서를 잡지 못했나?”
처음 서울의 한강 남서쪽에서 시작된 하회탈의 구역이 이제는 몇 개의 구를 아우르게 되었다.
거기다 간혹 전혀 뜬금없는 장소에서 튀어나오기도 하는 등, 그 행동 양식을 예측할 수 없었다.
“···놈을 잡기가 쉽지 않아. 공간이동을 밥 먹듯 사용하고, 힘을 쓰기 전에는 기척을 감지하기도 어렵다고 하더군.”
“허, 공간이동이라. 거기다 그 은폐 능력까지. 생각보다 더 거물인 것 같군. 최근에 지구로 돌아온 자인가?”
흐릿한 인상의 남자는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넘기고는 맞은편에 앉은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 무기질적인 시선에 중년인은 연신 안경을 고쳐 쓰며 눈길을 피했다.
“어쨌든 놈이 날뛰면서 이쪽 일에 사사건건 엮이는 게 여간 방해가 되는 게 아니야.”
“···좀 더 신경 쓰도록 하지.”
“그래 주면 고맙고. 이쪽도 나름대로 손을 쓸 테니까.”
비릿하게 웃은 남자가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일이 바빠서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 계산은 내가 해둘 테니 천천히 나오라고.”
그는 손을 한번 휘젓고는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후우···.”
불편한 동석이 끝나고 혼자 남은 중년인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연신 술잔을 기울이며 자작했다.
비싼 가게라 그런지 술맛이 빌어먹게도 좋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띠리리링—
갑자기 울려 퍼진 벨 소리가 적막을 깨뜨리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발신인을 확인했다.
화면에 비치는 부하직원의 이름. 이 늦은 새벽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마지못해 전화를 받자 그의 스마트폰에서 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장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서울 외곽에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제법 규모가 커서요.
부하가 빠르게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생존자들의 신고로 발견된 커다란 규모의 인육 공장, 그리고 하회탈.
전화를 끊은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술이나 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까.
***
새벽 3시.
금괴 거래를 마치고 나온 하인즈는 밤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공장을 습격한 한스가 이제 막 전투를 끝마치고 뒷정리를 하는 도중이었다.
집에서 먼 이곳에서 한스와 접선해 로또 용지에 다른 수작이 없는지 검사할 생각으로,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예정이었다.
‘또 놈들이 미행을 붙인다거나 하면 역으로 털어버릴 생각이기도 하고.’
은근히 벼르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다.
헤어질 때 보니 가면 남자가 자신을 의심하는 기색이어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경고의 효과가 좋았던 것일까, 놈들이 조심성이 많은 것일까?
‘뭐, 적당히 선을 지킬 줄 아는 놈들이면 거래상대로 나쁠 것 없지. 일단 거래를 텄으니 그걸로 됐어. 주제도 모르고 허튼 짓을 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정리하면 되겠지.’
이곳 또한 한스의 주시 영역 안이었으니까.
당분간은 좀 더 신경 써서 관리하면 될 터였다.
그런 이유로 밤거리를 배회 중이었는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거래하러 가기 전에 비해 확연히 사람이 줄었다.
그나마도 나름 번화가인지라 이 정도나 되는 거겠지.
이곳도 한차례 한스가 헤집고 지나간 터라, 음지의 인간들도 몸을 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지간하면 큰 문제 만들지 말고 넘어가자는 분위기.
이 평화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폭력으로 만든 평화든 뭐든 뭔 상관이야. 이에는 이, 폭력에는 폭력이지. 효과 하나는 확실하군.’
한쪽에서는 시비 걸린 취객 둘이 서로 주먹다짐을 하고 있었지만, 저 정도야 늘 있는 일 아닌가.
굳이 개입할 필요도 없는 사소한 문제였다.
‘오, 훅! 어퍼컷! 상대도 만만치 않은데? 막상막하군.’
술기운 때문에 고통도 느끼지 않는 그들은 저돌적으로 공격만 반복하며 박진감을 더해 주었다.
둘 다 만취했는지 비틀거리며 뻗는 주먹에, 맞는 것보다 빗나가는 것들이 더 많았지만.
흥미롭게 취객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거기 너, 잠깐 나랑 저쪽에서 얘기 좀 하자.”
하인즈의 뒤에서 말을 거는 목소리.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치솟으며 신경이 곤두섰다.
앞에서 싸우는 취객들의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말을 건 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는 불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자, 그는 골목길 쪽으로 고개를 까딱이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여전히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어떻게 하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지라 잠깐 머뭇거리긴 했지만, 애초에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몸을 사렸다고. 정 안되면 튀면 되지 뭐. 도망이야말로 내 주특기니까.’
곧바로 그를 따라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었다.
“뭐, 그래도 눈치는 있네.”
도망치지 않고 따라온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용건이 있으니 부른 거겠지.
“그렇게 경계하지 말라고. 딱히 해칠 의도는 없으니까.”
피식 웃은 그는 벽에서 등을 떼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는 인상을 찌푸리는 나를 무시하곤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이자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음, 역시 모르겠군. 처음 맡는 냄새야.”
남자는 다시 떨어져서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너 어디 출신이냐?”
“무슨 소립니까? 갑자기 초면에 냄새를 맡고, 어디 출신이냐니?”
나는 불쾌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지만, 이쪽은 아직 상황 파악도 되지 않았는데 멋대로 휘둘리는 것 같았으니까.
“뭐야? 지구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녀석인가?”
그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 흡혈귀잖아. 맞지?”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묘한 미소.
“사실 나도 그렇거든. 너와는 출신지가 다르겠지만.”
하인즈가 다른 차원의 흡혈귀와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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