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31)
촤르르륵—!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새카만 쇠사슬이 날아든다.
처음엔 한 줄기로 시작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나씩 늘어난 그 검은 궤적은 어느새 셋이 되어 있었다.
“흐읍!”
그러나 휴고의 대응은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신경과민」으로 극대화된 감각을 바탕으로 「괴력」을 비롯한 육체 강화 스킬의 힘을 빌려 직감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카카칵!
몸을 비틀어 첫 번째 사슬을 피하고, 두 번째 사슬은 유(柔)의 묘리를 실어 흘려냈다.
그 와중에 뱀처럼 날아든 세 번째 사슬이 영활하게 움직이며 그의 몸을 구속하려 들었으나—.
‘어딜!’
그는 오히려 그 궤적에 슬쩍 자신의 급소를 들이밀고는, 쇄도해 오던 공격이 멈칫한 틈을 타 공격 경로에서 벗어났다.
“큭, 이놈! 잔챙이가 영악하기 그지없구나!”
그에 공격을 가한 흑인 사내, 마교의 흑승마군이 분통을 터트렸다.
실력으로만 따지자면 이미 한참 전에 붙잡았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위험한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상대가 스스로의 목숨을 인질로 삼고 있으니 섣불리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교주께서 친히 생포하라 명하셨는데 실수로라도 상대를 죽여 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아무리 상대가 그 점을 역이용한다 하더라도 일대일이었다면 그런 잔재주가 통하지도 않았겠지만, 여기에는 그들 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쉬익! 카카캉!
틈을 노린 생포 시도 실패 이후, 황급히 되돌아온 검은 사슬이 둥글게 뭉치며 불시에 날아드는 검날을 간신히 막아섰다.
“허어, 본 도가 우습게 보였나 보구나.”
“유운검···.”
흑승마군으로서도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상대인 무당파의 장로 운현진인.
결국 그는 빠르게 일을 완수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단 눈앞의 적수를 상대하는 걸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후, 이거 정신없군.”
그 덕분에 숨 고를 여유가 생긴 휴고가 가볍게 땀을 훔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말대로, 정신없이 흘러가는 주변 상황은 이미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콰아앙—!
“죽여라!”
“이 저주받을 놈들이!”
연신 터져 나오는 폭음과 비명, 기합, 저주가 담긴 소리.
누가 이곳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건하기 그지없던 소림사 내부라고 생각할까?
여기에 모인 모든 이들이 나름대로 각자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받던 인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흐르는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정파 무림 전체에 있어서 크나큰 손실이라 할 수 있었다.
아마 마교 측에서도 그것을 노리고 하필 지금 습격을 가한 것일 터.
‘···그래, 이건 분명 비극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있는 법.
현 사태는 분명한 위기였으나 어찌 보면 기회이기도 했다.
세상엔 이런 재난 같은 상황 속에서 오히려 그 재능이 만개하는 이도 있는 법이었으니.
그리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자신이었다.
“하아—.”
깊은 심호흡을 내쉰 휴고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부작용 때문에 함부로 쓸 수 없었던 「한계돌파」까지 발동한 그의 감각이 예리하게 정련되고,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들을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것도 내가 여기까지 온 목적 중 하나였지.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목숨이 오가는 전장 속에서 무인들은 자신이 갈고닦아 온 절기를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 상황은 뭔가를 숨기며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까.
“젠장, 젠장! 내가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사천당문의 어그로꾼 당하기의 손끝에서 날아간 암기가 기묘한 궤적을 그린 것과 동시에, 거기에 담긴 치밀하지 않은 무리(武理)가 그대로 휴고의 뇌리에 새겨졌다.
그건 무공으로서의 완성도가 높은 당가의 비전이었지만, 정작 사용자의 수준이 일천한 덕분에 그 무의를 훔쳐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소란아! 이쪽으로 와라!”
“오라버니!”
그런 의미에서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황과 그 누이인 남궁소란의 검도 좋은 먹잇감이었다.
남궁세가는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이름 높은 검가.
강(强)과 중(重)을 중시하는 그 비전 검법이 실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그에 영향을 받은 휴고의 손끝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과연, 거대 세가들이 명가라 불리는 이유가 있군.’
그의 양분이 된 건 비단 세가의 무공들만이 아니었다.
화산파 매화검수의 화려한 검초와 극쾌를 추구하는 점창파 무인의 일섬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섞였으며, 불가의 무공과 도가의 무공이 이리저리 어우러졌다.
그리고 그와 부딪치는 마교의 사특하면서도 파괴적인 무공들까지.
대륙 각지에서 모여든 재능 있는 이들의 생과 사가 뒤섞이고 염(念)과 업(業)이 어우러지는 투쟁의 현장 한가운데.
휴고는 그 중심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고, 그에 따라 그의 무(武)에 대한 사고가 끝도 없이 확장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육체는 이미 더할 나위 없이 단련된 상태였으며, 정신은 그보다 훨씬 드높은 곳에 닿아있었다.
또 해리스가 제공한 무수한 영약과 그것을 극대화 해줄 「천기지체」가 있었으니 내공도 모자라지 않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무공이라는 신비에 대한 깨달음뿐.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그것이 충족되자.
《개체가 조건을 달성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특수스킬「만류귀종」을 획득합니다.》
그의 빠른 성장은 더욱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기의 유동에 주변에서 처절하게 싸우던 이들조차 당황을 금치 못할 정도로.
“이 상황에서 깨달음이라고?”
“허, 저 나이에 초절정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쳐라! 저자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
“이놈들이 어딜!”
그로 인해 주변에 약간의 소란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소요 사태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휴고가 마음 놓고 성장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인.
든든한 뒷배가 때마침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
가장 먼저 이상을 알아챈 것은 이곳에서 가장 요란하게 싸우던 두 사람이었다.
다소 일방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며 위용을 과시하던 천마와 엉망이 된 행색으로 끝까지 그를 붙들고 늘어지던 신승.
“끈질기구나, 신승 무진.”
“허허허, 끈기야말로 빈승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 음?”
“···이건?”
언쟁을 벌이던 그들의 말이 멈추고 그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돌아갔다.
이 난장판과 그리 멀지 않은 곳, 이곳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인근의 한 전각 위로.
그곳에, ‘그것’이 있었다.
“···뭐냐, 저건?”
“···허어.”
두 현경의 고수가 순간적으로 말문을 잊었을 정도로 그 존재는 이질적이었다.
겉모습은 틀림없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저것을 정녕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전장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뿜어내던 두 사람의 움직임은 기감에 예민한 다른 무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하나둘 싸움을 멈추고 상황을 살피다 그 눈길을 따라 전각의 지붕 위를 바라보게 된 것도 당연한 수순.
“뭐야, 저놈은?”
“···사자탈?”
그렇게 시선을 돌린 이들은 곧 그것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치 사냥 직전의 맹수처럼 지붕 위에 쪼그려 앉은 채, 괴수의 탈을 쓰고 전각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체불명의 괴인을.
“뭐냐, 네놈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천마가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미 기를 통해 세상 만물을 관조하는 경지에 오른 그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은 그가 지금까지 평생을 봐 왔던 존재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생명체라는 것을.
아니, 굳이 비슷한 상대를 꼽자면 생각 나는 이가 한 명 있기는 했지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비약이 과하다. 차라리 금오도라면 모를까.’
그때, 그 괴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근육이 벌거벗은 상체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야말로 ‘힘’과 ‘폭력’이라는 단어를 인간의 형상으로 응집시킨 것만 같은 초월적인 육체.
“허어, 그야말로 외공의 극치로구나.”
“저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몸인가?”
그 무인의 이상향이나 다름없는 궁극의 신체에 몇몇 무인들이 상황에 맞지 않는 감탄을 토해냈다.
그 기저에 깔린 것이 부러움이건 질시건··· 마치 전설 속의 환골탈태라도 한 것 같은, 평범한 수련만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함이 그곳에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모두의 주목 속에서 몸을 일으킨 존재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아아— 좋아, 좋아. 아주 좋은 분위기로군!”
좌중의 시선이 이쪽에 집중된 상황에 그 괴인, 할리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하도록 하지! 나는 광마라고 한다! 아, 얼마 전까지 이 별호를 쓰던 놈과는 원만한 대화를 통해 합의를 봤으니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곤 이쪽을 주목하는 이들을 상대로 태연하게 자기 PR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진짜 광마이며, 구(舊) 광마는 수하이자 친우로서 함께하게 됐다는 등.
마치 처음부터 지금 이 홍보를 위해 관심을 끈 것 같은 모양새였다.
“아,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하지만 그런 그의 장난스러운 모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대충 자기소개를 마친 그가 자신을 노려보는 천마와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하며 입꼬리를 사납게 치켜올렸다.
“사냥이다.”
지금까지 보였던 경박한 모습이 도저히 연상되지 않는, 세상을 불사를 듯한 광기가 가득 담긴 흉악한 미소.
그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으며 좌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여기에 아주 훌륭한 사냥감이 있다고 들었거든.”
그것은.
어째서 스스로를 광마(狂魔)라 칭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미소였다.
“자아— 그럼 내 소개도 다 마쳤으니.”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언행에 일대의 분위기가 어찌 변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자신의 사냥 대상만을 바라볼 뿐.
“이제··· 한판 놀아보자고! 카하하핫!”
콰아앙!
그렇게 일방적으로 본인을 알리는 작업을 마친 광마가 다음 목표인 사냥감,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한 번의 발 구름만으로 방금까지 서 있던 전각의 지붕을 통째로 날려버리면서.
***
광마 할리의 참전으로 전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요인은 절체절명의 위험 요소였던 천마와의 싸움이 균형을 유지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미 무리한 전투로 한계에 가까운 상태였던 무진 대사를 대신해 전면에 나선 할리는 그 강적을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촤아악—!
아니, 사실 그 싸움의 양상만 보자면 그조차 천마에 비해 손색이 있는 게 사실이었으나···.
“하, 어이가 없구나. 이 괴물 놈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상대를 피해 인식을 넘나드는 검격으로 재차 치명상을 남긴 천마가 이를 갈았다.
좌측 어깨에서부터 우측 허리까지 이어져 내장까지 닿을 정도로 깊게 새겨진 자상.
거기에 사용된 것이 마기로 이루어진 강기라는 걸 생각하면 대상에겐 이미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일격이었다.
“어우, 아프잖아! 임마!”
그런데 그런 공격을 허용한 직후에 보인 반응이 고작 저런 거라니.
천마는 가늘게 뜬 눈으로 철철 흐르던 피가 서서히 그치며 상처가 아무는 광경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틀림없군.’
그리고 그 관찰 결과,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고서 다시 허탈한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 공격에 적응하고 있다.’
그 재생 속도가 초격 때에 비해 현저히 빨라져 있었으니까.
애초에 강기로 난 상처가 저렇게 빨리 회복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하물며 모든 존재에게 적대적인 마기로 구성된 강기의 살상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한 공격에 정통으로 맞았으면 설령 진짜 신선이더라도 앓아누워야 했을 텐데, 저 괴물은 그 모든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상처를 재생하고 있었다.
정말 전설 속의 불사신공이라도 익힌 것처럼.
‘아니,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교주에게만 허락된 천마서고에서 그 불사신공의 원본을 실제로 접한 적이 있는 천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야기 속의 불사신공은 과장된 부분도 많거니와, 저 현상은 그쪽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
찌지직!
그 순간, 방심한 그의 앞섶을 할리의 날카로운 손끝이 거칠게 찢고 지나갔다.
조금만 더 깊었으면 살갗까지 닿았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깊이로.
“크으, 아깝구만! 거 형씨도 감이 어지간히 좋아?”
그 천연덕스러운 말에 천마의 표정이 더욱 차갑게 굳었다.
그는 할리가 「광기의 씨앗」에서 공급되는 막대한 광기를 끝없이 연소시켜 생체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어떻게 손쓸 방법도 없게 되리란 것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군.”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물러날 수도 없는 일.
결국 그는 그간 숨겨왔던 힘 한 가지를 꺼내 들기로 마음먹었다.
우우웅—
천마신교의 교주에게만 허락된 고금제일의 절세무학, 천마신공(天魔神功).
그의 검신에서 새카만 마기로 이루어진 강기가 활활 타오르며 거대한 검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어지간하면 이건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그리고···.
‘···저건?!’
그 안에서 할리도 이전에 겪어본 적이 있는 힘이 슬며시 섞여 나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스미듯 일렁이는 노을빛 광채.
‘신성력···!’
그것은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곤 예상치 못했던.
그의 대적자의 잔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