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34)
휴고가 참가한 무림맹 회합에 마인들이 습격해 온 건 물론, 그들 중에 마교의 우두머리인 천마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 천마가 번천회주의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긴밀한 관계였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
‘그 일들이 모두 갑작스럽게 터지긴 했어도··· 가만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쁜 전개라곤 할 수 없지.’
그에게는 이 땅에서 카르마를 수급한다는 것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지 않았던가?
바로 번천회주의 발길이 닿은 이곳에서 놈이 남겨둔 안배를 죄다 무너뜨린다는 것 말이다.
그런데 때마침 그 핵심 중의 핵심 인물을 이렇게 떡하니 맞닥뜨려 버렸으니—.
‘절대로 그냥 보내줄 수는 없다. 처음 세웠던 플랜이 전부 틀어진다고 해도.’
원래 상황이 변하면 계획도 바뀌는 법이었다.
애초에 한스는 이렇게 급진적으로 나설 예정이 없었으나, 모처럼 찾아온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모습이었다.
쿠르르릉—!
마치 심연과도 같은 어둠에 휩싸인 공간 속.
그 미지의 결계 속에 갇힌 천마가 짙은 마기를 흩뿌리며 거칠게 날뛰었다.
사방 곳곳에서 솟구쳐 그에게 달려드는 각성자 언데드, 어비스 레버넌트들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면서.
“허! 뭐냐, 이 강시들은? 천강시도 이 정도는 아니거늘, 도대체!”
특별히 엄선하여 선별한 재료로 제작된 그 개체들은 전투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구의 각성자를 이용해 만들어진 덕분에 일반적인 언데드와는 달리 차원에 구애받지 않고 운용할 수 있었다.
거기다 한스의 지난 행적에서 알 수 있듯, 그 구성원은 지구에서 마주한 번천회 일당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천살마제! 어째서 여기에···? 분명 지구로 돌아갔을 터인데···!”
그중에는 천마에게도 익숙한 얼굴이 하나 끼어 있었다.
사실 그 이목구비가 온통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던지라 얼굴만 보고서 한눈에 알아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사용하는 무공부터 시작해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익숙했기에 그가 그 정체를 눈치채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천살마제가 강환계로 넘어왔던 초기, 그를 마교로 끌어들이고 이런저런 교육과 지원을 하며 후원했던 게 다름 아닌 천마 본인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그들의 관계는 사제지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아쉬움 속에 지구로 떠나보낸 제자가 난데없이 강시가 되어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으니···.
“···네놈들, 단순한 요괴가 아니었구나. 설마 다른 세상의 힘을 가진 채로 지구에서 넘어온 건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마지막까지 설마설마하던 천마는 끝내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갈았다.
이건 정말 보통 사안이 아니었다.
소림사를 습격했을 때 마주한 지구인 따위는 별것도 아니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나운 천마의 눈길이 저 멀리 떨어져 흥미로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중년 사내, 한스에게로 향했다.
처음엔 확신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저자 또한 미친 야만인 요괴처럼 결코 인간이 아니라고.
아니, 애초에 그냥 생명체조차 아니었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군. 하긴 평범한 생명체가 이렇게 짙은 죽음의 힘을 저리 쉽게 다룰 수 있을 리 없지.’
단순한 마기가 아닌 죽음이란 개념의 근원에 좀 더 가까운 힘.
천마신공을 통해 고순도의 마기를 축적해 온 그조차 저 정도 순도의 기운은 난생처음 볼 정도였다.
적임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경외심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차원의 벽을 넘어온 거지? 저놈들은 소림사에서 본 그 애송이처럼 단순히 가능성을 가진 수준이 아니다. 이미 다른 세계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완성된 자들이야. 그런 불순물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이 세상에 침입하다니···!’
이쯤 되면 지금 있는 저 둘이 그 전부라고 단언할 수도 없었다.
셋이나 넷, 어쩌면 열 이상이 되는 숫자가 이미 이 세상 어딘가에서 암약하고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리고 그건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하필 이럴 때! 이제 막 대계를 시작하고 용의 아이들을 끌어모으던 참인데!’
금오도의 방해를 물리치고 계획을 시작하자마자 튀어나온 변수.
일부러 노린 듯 운명처럼 흘러가는 그 상황에 그는 하늘을 저주하며 이를 갈았다.
먼저 세계를 배신한 건 그였으니 적반하장이나 다름없는 태도였지만, 지금의 그에게 그렇게 객관적으로 사리를 판단할 여유는 없었다.
“크하하핫! 그럼 본격적으로 놀아보자고, 친구!”
이제는 인간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던진 괴물 한 마리가 그에게로 맹렬하게 쇄도하고 있었으니까.
4미터에 이르는 덩치와 전신을 감싼 검붉은 비늘, 하나하나가 신병이기와 같은 손발톱과 이빨이란 무기로 무장한 괴생명체가 적록의 오드 아이를 빛내며 짓쳐 들어 대기를 찢어발겼다.
“허! 기회가 생겼다 싶으니 아주 기가 살았구나, 이 건방진 괴물 놈이. 오냐,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상대해 주지. 이참에 그 사지를 잘라내고 내장을 몽땅 뽑아주마.”
천마의 몸에서 노을빛 신성력이 섞인 마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본디 마기처럼 부정한 힘은 신성력과 한데 어울릴 수 없어야 정상이었으나, 어쩐 일인지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기운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지며 기세를 더욱 드높이기 시작했다.
소림사에서 할리와 신승을 상대로 사용했을 때보다 명백히 더욱 강해진 기운.
그는 이후에 찾아올 후유증 따위는 더 이상 신경 쓰지도 않았다.
지금 상황은 쓸 수 있는 힘을 아낄 때가 아니었으니.
“만마를 지배하는 군주라고 했던가? 그거참 오만하기 그지없는 수식어로구나.”
고조되는 기운의 폭풍 속에서 천마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이 와중에도 가슴속에 은근히 스며드는 불길함을 억지로 쳐내듯이.
“이 몸은 천마신교의 14대 교주, 천마이니라. 자타공인 현 무림의 천하제일인이자 이 세상의 정점에 오롯이 선 자. 헌데 스스로 하늘에 올라 마(魔)가 된 내가 고작 이계의 잡종에게 무릎 꿇을 것 같으냐!”
평소와는 달리 무겁게 내뱉는 그 말에는 강박에 가까운 자기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억지로라도 자신에게 그리 되뇌는 것처럼.
콰아앙—!
직후, 천마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검강과 부딪친 할리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지금의 그는 완전체 상태로서 어지간한 공격은 죄다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었지만, 신성력과 마기가 한데 뒤섞여 형성된 저 기운은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물며 이전과 달리 지금은 상대도 뒤를 생각하지 않고 있지 않던가?
“스스로 하늘에 올라 마가 되었다라···.”
그때, 언데드들은 물론 할리와 맞서 싸우는 천마의 모습까지 「심연의 눈」을 통해 가만히 관찰하던 한스가 천천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입가에 뜻 모를 가는 미소 한 줄기가 맺혔다.
“크크큭— 그래, 그걸 확인해 보는 것도 즐거울지 모르겠구나. 과연 오만했던 게 누구였을까.”
어쩐지 미묘한 위화감이 깃든 웃음이었다.
거기에 더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발버둥 치는 미물을 깔아보는 듯한 눈빛까지.
“뭐,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지만 말이다. 크흐하핫!”
고오오오—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결계 내부에 가득 퍼진 흑마력이 요란하게 흔들리며 공명음을 퍼뜨렸다.
한밤의 무덤가에서 들려오는 귀곡성처럼, 누군가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장송곡처럼.
우웅— 화르륵— 쩌저적!
한스에게서 시작된 거대한 마법진이 공간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하고, 연옥에서 끄집어낸 듯한 업화와 절대영도에 가까운 한기가 허공에서 응집되었다.
그런 신비로운 현상들이 이 공간 내부를 가득 채우듯 순식간에 증식했다.
뇌전이 사납게 튐과 동시에 중력이 꿈틀거리고, 손을 닮은 검은 그림자들이 바닥에서 일렁거리며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하나하나가 전부 이 강환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신비의 향연.
물론 그 표적이 되어 위력을 몸소 체감하게 된 이에겐 그리 아름다운 광경만은 아니었다.
“···이거 참 개 같군.”
그리고 당연한 일이었지만.
강환계 제일인 천마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대륙 하나를 멸망 직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불사왕과 남부 부족 연맹의 전설인 투왕의 부조리한 협공 앞에선 그도 불리한 싸움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우테리카에서는 용사 파티의 일원과 세계의 절대 악으로서 서로 적대하는 관계였지만, 이 강환계에서는 서로의 일을 돕는 완벽한 밀월 관계였다.
***
“쿨럭!”
검게 변색된 피가 흐른다.
입에서 폭포수처럼 줄줄 쏟아진 그 피는 이내 아래쪽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천마는 이제 하나만 남은 손을 입에서 떼고 다시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공격에 완전히 파괴되어 널브러진 수많은 강시의 잔해들.
주변에 가득한 박살 난 강시 파편들이 심연과도 같은 주변 공간 속으로 스르륵 흡수되어 사라졌다.
아마 저들 중 일부는 다시 복원되어 재차 그를 상대하기 위해 또다시 튀어나오겠지.
‘···끝났군.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것들은 그런 잡졸들이 아니었다.
“크흐~ 역시 피가 끓어오르는구만! 이게 얼마만의 격전이냐! 으하하핫!”
이미 몇 차례나 서로 치명타를 주고받은 탓에 이쪽 못지않게 엉망진창인 몰골로 시원하게 광소를 터트리는 야만 광전사 할리.
“아주 흥미롭군. 신성력과 마기의 상관관계라. 거기다···.”
그완 대조적으로 주변에 수많은 언데드들은 물론 화려한 마법들까지 잔뜩 깔아두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흑마법사 한스.
겉보기로는 빈틈투성이로 보이지만 천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은 한없이 태평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자신이 뭔가를 하려 시도하는 순간 일말의 여지도 없이 즉각 공격을 재개하리라는 것을.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푸흐흐, 어쩐지 불길하더라니.’
천마의 시선이 한스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등장했을 때 자신의 본능이 왜 그리도 유별나게 반응했었는지.
그보다 먼저 상대했던 할리도 그러했지만, 저 사내는 그보다 더한 최악의 상성을 지닌 상대였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다니. 그야말로 천적이군.’
마기를 사용하는 마공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살상력에 있었다.
특히 생명체에게 유독 치명적인 피해를 안기는 점은 여타 무림인들에 공포 어린 경계를 사기에 충분했는데··· 정작 한스에겐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애초에 그는 이미 흑마력과 죽음의 기운이 몸 안에 그득한 언데드였으니까.
거기다 또 다른 문제는 무리해서 사용한 신성력도 상대에겐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천마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었으나, 그건 한스가 얼마 전 번천회주와의 싸움에서 그의 격과 업이 섞인 신성을 강탈해 흡수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놈에게서 파생된 힘에 내성을 가지게 된 것.
물론 이 정도 내성이 번천회주 본인이 직접 사용하는 힘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서 힘을 전달받은 이가 발하는 간접적인 영향력 정도는 이제 한스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거 꼴이 우습게 됐군.’
천마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무리하게 신성력을 운용하는 것도 슬슬 한계였다.
그와 함께 자신의 죽음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이 잠깐의 여유가 끝나는 순간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 터.
그런 생각이 드니 괜히 감상적이 되며 감회가 새로워졌다.
‘정말 오랜 세월이었지.’
자신이 이 강환계로 넘어온 지 어언 70여 년.
그간 그는 번천회의 지원을 토대로 기어코 천마의 자리에 올라 신교의 교주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젠 이 세상 유일무이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우뚝 설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본격적인 실행을 앞두고 이런 식으로 모든 게 어긋나버릴 줄이야.’
문득 이십여 년 전, 갑작스레 그를 찾아왔던 번천회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쌍의 날개를 등에 단 채 전신에 휘광을 두르고 그의 앞에 강림했던 신인(神人).
이 세상을 이렇게 망가뜨린 원흉이자 그를 여기까지 클 수 있게 지원해 주었던 후원자.
최초의 계약에 따라 번천회주의 계획에 순순히 따르면서도 그는 그 사실에 딱히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결국 계획대로만 된다면 자신이 이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는 건 명약관화했고, 그땐 설마 그 경외 어린 완벽한 초인의 계획이 이렇게까지 엇나갈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설마 회주와 비슷한 놈들이 또 있을 줄이야.’
천마는 자신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똑바로 고개를 들었다.
인간의 요소는 찾아볼 수도 없이 온통 괴물의 신체 부위를 발현한 거대한 덩치의 괴생명체와, 새카맣고 끈적끈적한 기운에 둘러싸인 채 언데드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년 사내.
아무리 봐도 신성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던 번천회주와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외양이었다.
“흐음, 이제 포기한 건가? 예상보단 빠르군. 역시 그 신성력은 회복보단 강화 쪽에 치중되었다 봐도 되겠지. 좋은 데이터를 얻었어.”
“후— 어지간히 단단히 준비했군. 처음부터 탈출을 중시했다면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크크큭, 글쎄? 이쪽도 놓칠 생각은 없으니 말이지. 준비해 둔 게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만 말해 두지.”
“···쯧, 된통 잘못 걸렸군.”
천마는 자신의 전신을 바닥에서 솟구친 수많은 손과 새카만 사슬이 휘감는 것을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막상 일이 이렇게 되니 마지막으로 고향이 다시 한번 보고 싶어졌다.
자신에게 상처만 주었던 지구 따윈 이미 한참 전에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막상 끝이 다가오니 생각나는 게 고향이라니.
콰악—
가죽 장갑이 껴진 손이 그의 머리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그리고—.
“···용의 아이와 금오도. 일단 그쪽과 접촉해 봐야겠군.”
번천회주의 수족으로서 강환계의 지배를 꿈꾸던 야심가가 심연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