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41)
“6백만이라···.”
나는 천천히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이 정도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이전에 한 번 미루었던 선택을 마저 진행하기에 충분했으니까.
『차원 장벽 완화 (6,000,000)』
그건 각 차원 간의 괴리를 줄이고 각성자에게 걸린 제약을 완화해주는 옵션이었다.
이전엔 카르마가 조금 부족한 상태에서 ‘무작위 뽑기’라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넘어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포인트도 딱 맞아떨어지는군.’
이쯤 되면 필연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제 와선 딱히 걸리는 것도 없었으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고유스킬을 추가로 강화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이고. 그 외에 당장 필요한 게 있는 것도 아니니···.’
가볍게 숨을 내쉰 나는 이전에도 한 번 느낀 적이 있는 기이한 충동에 휩싸인 채, 곧바로 두 번째로 하는 『차원 장벽 완화』를 선택했다.
그 직후, 보기만 해도 마음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던 6백만 포인트가 한순간에 증발하고—.
“으음.”
이내 몸을 둘러싼 무언가가 변화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반응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
하지만 그 느낌은 첫 구매 때와 같이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게 끝인가?’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뭔가가 변화한 건 알겠는데, 확실히 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 익히 예상하긴 했으나, 막상 실제로 이리되니 미묘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참, 그래도 이쪽은 무려 6백만을 한 번에 지른 고객님인데.’
작은 불만이 일긴 했으나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쩌겠는가.
아쉬운 쪽이 참고 넘어가는 수밖에.
‘그래도··· 일단 기존 기능이 더욱 강화된 건 확실한 것 같군.’
우우웅—
나는 손 위에서 일렁이는 백금빛 광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힘을 사용했음에도 전에 비해 그 출력이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극히 일부의 기운만 발산한 게 이 정도인데 힘의 규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체감도 더욱 커질 터.
‘그래, 어쩌면 이게 용의 아이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자신이 파악한 『차원 장벽 완화』는 일종의 해킹툴이나 이스터 에그와 다름없는 능력이었다.
모든 각성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의 일부를 우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주는 것.
애초에 시스템의 일부인 카르마 상점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 옵션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아무나 얻지 못하게 숨겨져 있었겠지만.’
특전 「카르마 상점 Ver.2 업데이트」를 얻는 조건은 ‘사용하지 않은 카르마’가 천만이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만한 포인트를 모은다는 것 자체도 보통 일이 아닐진대,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한들 그걸 사용하지도 않고 고이 모아두기만 할 이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심지어 순수하게 그 옵션의 가격마저 5백만, 6백만에 달할 정도였으니···.
‘절대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 ···뭐, 어차피 이제 와서 그런 걸 생각해 봐야 의미 없나.’
중요한 건 그게 앞으로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였다.
아무래도 강환계에서 허락된 능력만으로는 그쪽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
그렇게 이리저리 변화를 확인하던 나는 이내 지그시 눈을 감으며 두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산제물이라고···.”
그들에 대해 생각하자 다시 속이 답답해졌다.
나 자신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왠지 모를 짜증이 치밀어 올라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배알이 꼴려서 안 되겠군. 이제 강환계는 나의 새로운 텃밭이다. 그런데 그런 걸 그냥 두고 볼 순 없지.’
그와 함께 재차 다짐했다.
용신의 안배고 뭐고 내 알 바 아니니, 싹 다 마음대로 뒤집어엎어 버리겠다고.
사실 내가 진심으로 나선다면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다.
신성력 쪽으론 한 손에 꼽히는 성자 하인리히, 흑마법을 비롯한 부정한 신비의 정점에 서 있는 불사왕 한스, 온 세상의 축복을 한 몸에 받고 탄생한 드래곤 호루스.
그 외에도 대자연의 대행자나 다름없는 하이 엘프 해리스와 신혈의 뱀파이어 하인즈 2세, 이젠 요괴들의 인자마저 갖추게 된 할리 등— 쟁쟁한 영웅들이 모두 나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인재들을 아우르는 자신이 그냥 손 놓고 앉아 포기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강환계 쪽에 집중해야겠어. 마침 이번에 마교를 집어삼키며 아우테리카에서와 비슷한 구도가 만들어졌지. 이참에 안방극장의 리허설을 강환계에서 먼저 치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러면서 두 번째 『차원 장벽 완화』로 바뀐 점도 확인해 봐야 했다.
무려 6백만이란 포인트가 들어간 만큼 단순히 이전 효과가 강해진 걸로 끝나진 않을 터.
일단 내가 가진 것부터 확실하게 파악하는 게 우선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데 정말 예상 밖으로.
그 『차원 장벽 완화』의 추가 효과 중 하나는 생각보다 이른 타이밍에,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보다 10배는 빠른 시간 속에서 오늘도 열심히 망치를 두들기던 난쟁이 장인.
드워프 하워드의 손끝에서.
***
개인 공방 지박령인 하워드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깡—! 까앙—!
망치를 두들기고, 밥을 먹고, 다시 망치를 두들기고, 식사와 함께 반주를 곁들이며 휴식을 취했다가, 가끔 세공이나 비금속 가공 분야에 손을 대기도 하고, 다시 취침 시간이 되기 전까지 줄곧 망치를 두들긴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관적이기 짝이 없는 단조로운 일상.
하지만 정작 하워드는 단 한 번도 그것이 지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지!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 다 만들 수 있는데 지겨울 틈이 어디 있어?’
그것은 비단 그가 드워프의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영향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자기 스스로는 그 사실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취미로도 이것만큼 좋은 게 또 없으니.’
사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는 딱히 드물지도 않은 메이저한 취미 생활이지 않던가?
그런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처럼, 공방 한편에는 그간 하워드가 만들어 낸 취미의 결과물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매끈한 원형에 중앙에 별이 새겨진 방패부터 시작해, 실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무구들과 저작권을 걱정해야 할 디자인의 장신구들까지.
그곳엔 영화와 게임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물건들이 그야말로 완벽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보기엔 저래도 마법 금속을 포함해 온갖 희귀 금속들을 때려 부어서 실제 성능도 그리 나쁘지 않고 말이야.’
사실 저것들도 단순히 취미 때문에 만든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최우선 화두는 직접 설계한 만능 전투용 전신 슈트, 통칭 ‘티탄’을 완성하는 것.
하지만 그 작업은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았다.
앞서 완성했던 팔을 비롯한 사지 부분은 어떻게든 가능했는데, 그 모든 것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몸통 부분과 제어부인 머리 파츠가 영 그의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체감한 그가 기본기를 갈고닦아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 어느새 여기까지 와 버린 셈이었다.
땅—! 땅—!
그리고 그가 이번에 만들고 있는 것은 척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크기의 양손 대검이었다.
검신의 길이는 물론 검면의 넓이까지 어지간한 성인 여성을 넘어설 정도로 거대한 무기.
극도로 단단하고 무거운 성질을 위해 일부러 강환계에서 공수한 운철(隕鐵)까지 재료로 들어간 귀물이었다.
까앙—!
그런데 어느 순간.
‘응?’
내려친 망치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발력이 그의 손끝에 전해져왔다.
그에 송충이 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멈칫한 것도 잠시,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망치를 들어 올리곤 재차 금속을 두들겼다.
본능에 따라 자신에게 각인된 스킬, 「기술 혁명」을 사용하면서.
따앙—! 따앙—!
언제 멈칫거렸냐는 듯 주기적인 금속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 하워드 공방.
그러나 그의 심정은 결코 평안하지 못했다.
‘···뭐지, 이거? 설마?’
손끝에서 기묘한 반발력이 느껴진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다뤄온, 어떤 신비도 없이 그저 금속 자체의 특성만 남았던 운철과는 전혀 달랐다.
‘금속 안에 깃든 신비가 살아나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는 익히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쉽게 납득할 수는 없었다.
‘아니, 납득이고 자시고 실제로 일어났으니 부정할 순 없지. 그렇다면 이게 진짜···.’
「기술 혁명」은 타 차원의 물품을 구성하는 체계에 개입해 그 일부를 수정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간 그것은 마도구의 극히 일부분에만 가능했을 뿐이지, 지금처럼 물건의 근간 그 자체를 건드리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복잡해진 머릿속과는 달리 오랜 단련으로 익숙해진 그의 몸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금속을 화로에 넣어 가열하고 망치를 두들기길 반복한다.
화르륵—!
「불과 금속의 조율자」를 통해 최대 온도로 올라간 화로가 푸른 불꽃을 토해냈다.
그 어마어마한 온도에 특수 제작된 마법 화로의 일부가 조금씩 녹아내릴 정도였지만, 그는 그런 사소한 것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대륙에서 가장 큰 상단 중 하나의 주인이 된 휴버트에게 저런 화로의 가격은 그저 푼돈에 불과했으니.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사소한 게 아니었다.
‘확인해야 한다. 이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차원 간의 법칙에 따라, 한 세계의 마도구는 다른 세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것을 구성하는 근간부터가 판이했으니까.
또한 그건 완성된 마도구만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신비가 깃든 재료에도 포함되는 사항이었다. 기(氣)를 근간으로 하는 강환계의 물건이 마나(Mana)를 기본으로 하는 아우테리카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만약, 완성품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면···.’
하워드는 초고열의 열기에 물을 뒤집어 쓴 듯 땀범벅이 되면서도 결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혁명.
세상의 상식을 비트는 물건이 탄생하기 직전, 그 순간을 마주한 드워프로서의 욕구가 그의 몸을 강제로 움직였다.
까앙! 치이익—
단조, 담금질, 연마.
모든 공정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허··· 으허허헛!”
「괴력」으로 인해 팔의 근육이 잔뜩 부풀어 오른 하워드가 자신의 몸통보다 훨씬 큰 대검을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엄청나게 크고, 두껍고, 무거운 양날 대검.
어릴 때 봤던 고전 만화에서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그의 손끝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 아우테리카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신비를 품은 채.
“설마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그는 한동안 멍하니 대검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 기적이 『차원 장벽 완화』 하나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재료를 벼린 게 섭리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각성자였다는 것, 그 각성자가 물품의 성질에 개입하는 「기술 혁명」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재료들을 하나로 융화시킬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긴 조화였으니.
‘···차원의 한계를 넘어선 마도구.’
하워드가 가늘게 뜬 눈으로 자신의 역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무기는 아우테리카에서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바로 강환계로 가져가더라도 이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제 성능을 발휘하겠지.
그 세상엔 없는 이계의 신비를 품은 채로 말이다.
그 순간.
화르르륵—
맹렬히 타오르던 화로의 불길이 한차례 거칠게 흔들렸다.
직후, 밖으로 튀어나온 한 가닥의 불줄기.
그것은 그대로 그의 주위를 몇 차례 휘감고는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스킬「야금술」과 「정밀 세공」이 합쳐져 특수스킬「황금의 손」으로 진화합니다.》
“···화로의 축복.”
하워드가 받은 세 번째 축복이었다.
역시 불과 금속의 신께서도 이 결과물에는 상당히 놀라신 것일 터.
하워드는 대검을 든 채로 남다른 감회에 젖어 들었다.
첫 번째 축복이 드워프 사회에서 ‘장인’이라 불리는 최소 조건이라면, 그가 이번에 받은 세 번째 축복은 소위 ‘명장’이라 불리는 자격의 증명이었다.
그의 스승인 자오닉도 명장의 칭호를 가진 장인이었으니, 제작에 뛰어든 지 불과 몇 년밖에 안 된 하워드가 벌써 스승과 비슷한 위치에 도달한 셈이었다.
‘물론 실질적인 실력 자체는 아직도 상당히 차이 나겠지만.’
지금 자신의 성장 속도를 보면 진짜 명장급 실력을 갖추게 될 날도 그리 머지않았을 것이다.
심호흡으로 흥분을 가라앉힌 하워드가 손에 들린 대검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러던 도중, 그의 눈길이 한편에 전시된 다른 물건들로 향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더없이 만족스러운 작품들이었는데···.
“쯧.”
지금 보니 하나같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손이 전에 만들었던 물건 중 하나, 번개의 힘을 내포한 짧은 손잡이의 망치를 집어 들었다.
만든 당시에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겉멋만 든 불량품으로 보일 뿐이었다.
“다시 만들자.”
하워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눈길이 향한 것은 그 망치 하나만이 아니었다.
취미로 만든 모든 물건, 그리고···.
그의 시선이 마네킹 거치대에 걸려 있는 금속 슈트로 향했다.
완성된 사지 파츠는 물론 미완성된 채로 남아있는 몸통과 머리 부분까지.
‘저기다 현무의 등갑을 덧대고 에너지원으로 여의주를 사용하면···.’
그간 막혀있던 영감이 맹렬하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느낌이 왔다.
저것을 완성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역시, 강환계에서의 첫 수확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