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45)
거듭 말하는 바였지만, 구성원들 개개인이 가진 교리도 신앙도 모두 제각각인 판테온은 그리 끈끈한 조직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감이라고는 그저 모두가 신을 모시는 성직자라는 공통점이 전부였으니까.
예컨대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동업자들끼리 서로 존중하며 문제가 생기더라도 어지간하면 얼굴 붉히지 말고 좋게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체에 가까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종교가 그런 온건한 유화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유일 신앙을 기조로 다른 우상에 대한 숭배는 모두 이단으로 배척하는 교단.
인신 공양 등 비인간적인 의식을 선호해 현대 사회에서 융화가 불가능한 교단.
모시는 신격의 성향 자체가 악신에 치우쳐져 있어 세상의 종말을 꾀하는 교단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성직자임에도 판테온에 속하지 않고 따로 활동하는 이들의 수는 그리 적지 않았다.
물론 단순히 그 정도로 그쳤다면 그저 그들을 예의 주시하는 선에서 끝날 수 있었겠으나···.
문제는 본인이 그런 ‘악신의 추종자’라는 것을 숨기고 판테온에 숨어든 첩자의 수도 상당하다는 점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런 의도를 품고 몰래 잠입한 이들의 목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래, 예를 들어—.
번천회의 북아메리카 지부장인 서기관처럼.
“음, 그러니까 하인리히 형제님의 말씀은···.”
제이슨 사제가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지금 판테온에 그 번천회라는 조직의 끄나풀인 악신의 추종자가 암약하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것도 상당히 고위층에서 말입니다.”
그는 언제 상대를 추궁하며 몰아붙였었냐는 듯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그에게선 하인리히의 주장에 회의적이었던 조금 전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차원을 멸망의 길로 이끈 세계의 악 그 자체.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을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요. ···아마 그 손길이 닿은 곳이 판테온만은 아닐 겁니다.”
확신이 깃든 하인리히의 목소리가 좌중에 울려 퍼지고, 자리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만큼 지금 그의 발언에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설득력이 있었다.
이게 모두···.
“엣헴.”
어울리지 않게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오만하게 좌중을 깔아보는 저 금발 꼬마 덕분이었다.
겉보기론 고작 예닐곱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단순히 겉모습만 보고 상대를 판단할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는군. 하지만 이 엄청난 마력은···.’
‘드래곤이라···. 내가 다녀온 세상에서도 전설에 불과했는데 이렇게 지구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거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어마어마한 에너지. 이만한 힘을 쌓을 정도면 확실히 어린 용은 아닐 텐데. 저 외양은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그저 개인적인 취향?’
다른 차원의 존재가 지구로 넘어왔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
그 전무후무한 순간을 직접 목도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당사자가 눈앞에 떡하니 존재하는 이상, 그런 기적을 선보인 이가 내뱉은 말의 무게는 그만큼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하인리히는 성자라고까지 불릴 정도의 신성력 사용자이지 않던가?
‘즉, 내가 하는 말은 단순히 개인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거지. 신의 위광을 등에 업고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하인리히는 옆에 있는 이들과 두런두런 의견을 나누는 이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처음 계획했던 대로 저들에게 화두를 제대로 각인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대로 정공법으로 간다. 역시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번천회 놈들이 아직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이때가 기회였다.
이미 전면으로 나선 하인리히에 대한 대처가 소극적인 것 또한 아직 그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한 것이 원인일 터.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놈들도 계속 가만히 있진 않겠지. 하지만 이걸로 발목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거다.’
누가 뭐래도 번천회는 오랜 세월 이 땅에 자리를 잡아 온 범세계적··· 아니, 범차원적인 초거대 조직이었다.
그가 아무리 이곳저곳에 손을 써 다양한 세력을 흡수했다고 한들 음지에서의 싸움만으론 승산이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그도 우선적으로 번천회의 존재를 양지로 끄집어 올리는 걸 목표로 삼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렇게 표면으로 올라온 놈들의 어그로를 끌며 탱킹하는 게 하인리히의 역할이고.’
성기사라는 그의 포지션과도 딱 맞는 임무이지 않나!
물론 그렇다고 정정당당하게 양지에만 힘쓰며 놈들과 신경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겐 암중에서 움직일 수 있는 아바타들이 이미 잔뜩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번천회주. 지금 지구에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세계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이미 상당한 신격을 이룬 놈은 이 지구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마 지구에 있더라도 어딘가 격리된 곳에 틀어박힌 채로 부하들을 통해 가끔 외부 정보를 접하고 있겠지.
‘···네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전부 부숴 주마. 더 이상 다른 세상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주먹을 움켜쥔 하인리히의 눈에서 번쩍이는 밝은 정광.
그의 옆에 선 호루스도 굳건한 결의를 담아 작은 머리통을 끄덕였다.
그렇게 뜻밖의 소란이 있은 이후, 여러 참관인들과 이계의 성자 하인리히의 회담은 더는 지체되는 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당연하지만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드래곤 소동에 대한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당사자인 호루스는 인간 형태로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다가 다시 강환계로 돌아간 뒤였지만, 이미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어버린 그에 대한 논란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던 것이다.
-와;; 나 실제 드래곤 태어나서 처음 봄ㅋㅋㅋ
└누군들 안 그럴까. 제법 강하다는 귀환자 중에서도 못 봤다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ㅇㅇ 나 귀환잔데 나도 못 봄. 내가 약한 건 둘째 치고 애초에 우리 세상엔 없었거든.
└난 보긴 했는데… 내 기억이랑은 너무 달라서 뭐라 말을 못 하겠다. 그때 본 건 겨우 5미터 정도 되는 익룡 같은 거여서.
└그건 드래곤이 아니라 와이번 아니냐?
└ㅁㄹ일단 시스템 자동 번역으로 거기 사람들이 드래곤이라 했었음.
일반인이건 각성자건 가리지 않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화제가 되었다.
사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무려 수십 미터에 달하는 덩치의 드래곤이 실제로 나타나 서울 상공을 유영하다 사라진 사건이었다.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봐야 하리라.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드래곤이 원래 저렇게 여의주처럼 생긴 거 물고 다님? 아님 쟤가 특이한 거임?
└아, 나도 이거 궁금했는데.
└근데 저거 진짜 여의주 맞나? 그냥 생긴 것만 비슷한 거 아냐?
-정보) 비슷해 보이는 종족이라도 세계마다 가진 특성이 미묘하게 달라서 뭐라 확답할 수 없다. 그냥 저 드래곤 출신 차원이 원래 그런가 보다 하는 수밖에.
-근데 웃기긴 하네ㅋㅋㅋ 여의주 물고 다니는 드래곤은 또 뭐냐? 이 무슨 끔찍한 혼종ㅋㅋ
그 와중 호루스가 물고 있던 여의주가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그런 관심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미 아우테리카의 드래곤들은 멸종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 오랜 세월 잠적한 상태였고, 그런 그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아는 이는 지구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지금 문제는 사건의 성질이 성질인 만큼, 한국에서의 소란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일이 그렇게 되길 바라긴 했지만···.
-Oh! 세상에, 뭐야 저게? 드래곤? 진짜 드래곤이야?
-어느 나라에서 찍힌 거야? 중국? 설마 또 조작한 거 아냐? 그쪽 소식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한국이라 하는군. 그 다크 히어로 코리안 스마일 페이스와 팬텀의 근거지 말이야. 그리고 저건 플랫폼에서 실시간 녹화된 영상이야.
-내 살아생전 진짜 드래곤을 영상으로라도 볼 수 있을 줄이야! 신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신 게 틀림없군. 이제 저 드래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으련만.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경탄.
물론 그런 반응에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그로를 끌어도 너무 끌었는지, 호루스가 등장한 배경보다는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건 조금 골치 아프긴 했다.
하긴, 거대한 골드 드래곤의 몸뚱이는 그 자체로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나 다름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물론 그렇다고 봐 줄 생각은 없지만.’
이곳 한국은 온전히 자신의 영역이었다.
욕심에 가득 찬 이방인들이 마음대로 설치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
그에 이 땅의 치안 유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감행해야 했다.
콰악—
“커헉!”
거센 손아귀가 목줄을 옥죄었다.
허공에 번쩍 들린 서양인 남성이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허우적거리며 연신 발버둥을 쳤으나, 그의 목을 움켜쥔 손은 마치 공업용 바이스라도 되는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쯧, 하도 건방을 떨기에 뭔가 한 수라도 있는 놈인 줄 알았더니.”
버둥거리던 사내가 마침내 핏기 없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축 늘어진 후.
싸늘한 목소리가 골목길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손에 들린 이의 주검을 이미 몇 구의 시신이 쌓여있는 구석으로 휙 던지며 대수롭잖게 몸을 돌렸다.
-“나다, 진소란.”
-“네, 로드!”
-“이곳으로 뒷정리할 녀석들을 보내도록. 위치를 알려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최근 몰래 밀입국하는 각성자들이 늘어 걱정이 많았는데, 마침 로드께서 와 주셔서 다행이에요. 아무래도 다른 나라 출신들은 저흴 조금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작은 나라 안에 틀어박힌 우물 안 개구리라고.”
-“우스운 일이지. 자기들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지.”
-“뭐, 괜한 수작을 부리려던 놈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다른 녀석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겠죠. 그러면 일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요?”
-“글쎄.”
두 세계를 오가며 휘하를 관리하느라 바쁜 신혈의 뱀파이어, 하인즈 2세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놈들은 그렇게 이성적인 사고로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었으니.
분명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쪽을 귀찮게 할 놈들이 잔뜩 있을 것이다.
-“그럼 나는 계속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지. 뭔가 이상이 생기면 보고하도록.”
-“네, 로드! 그럼 전 헤테로시스와 혈맹을 다시 점검해 봐야겠네요. 쓸데없는 혈기 때문에 우리 측에서 먼저 마찰을 빚지 않도록요.”
-“그래, 잘 부탁하지.”
그렇게 진소란과의 통신이 끝난 직후.
앞으로 단 한 발짝 걸었을 때, 그의 위치는 어느새 뒷골목에서 근방의 고층 빌딩의 옥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근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옥상에서 하인즈가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난리 통에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그런 일상적인 풍경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열기가 심상치 않군. 이거, 아무래도 자연적인 현상은 아닌 것 같은데.”
하인즈가 나직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사위를 훑는 그의 핏빛 눈동자로 이 땅에 가득한 인과의 실타래가 어지러이 꿈틀거리며 뒤엉키는 것이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드래곤의 출현과 외부 강자들의 유입.
그건 분명 순리대로 이어진 흐름의 일부였으나···.
그 너머에 다른 무언가의 개입이 있었다.
너무나도 옅은지라 아직 그조차 정확히 확신할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흔적이었지만.
‘번천회인가.’
이제 와선 너무나도 뻔한 사실에 그 실체를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놈들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의 이 사태는 주변 흐름에 편승해 자연스럽게 한국에 손을 쓸 수 있는 기회일 테니.
‘···흐음, 그것도 대충 예상했지만.’
예컨대 지금 상황은 세상 모두의 시선이 이쪽, 대한민국으로 향했다는 소리였다.
전 세계의 모든 조직들··· 그래, 그 번천회마저도.
‘그럼 시작해 볼까.’
그리고 그 허를 찌르듯.
막 지구 반대편에서 미국 땅을 밟는 한 존재가 있었다.
***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란시스코.
“···으음, 이곳인가···.”
무슨 비밀 집회의 참가자라도 되는 것처럼, 누가 봐도 수상한 로브 차림에 후드를 푹 눌러쓴 괴인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시선에 커다란 신전 모양으로 축조된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세계 종교 연합 판테온의 총본부.
목표를 마주한 괴인의 눈에 담긴 별빛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