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46)
수많은 교단이 한데 뭉친 집단인 판테온.
그런 만큼 그곳엔 비슷한 성향과 교리를 가진 이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파벌이 있었다.
만약 단순한 평회원이라면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신앙생활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원래 어떤 조직이든 윗선으로 올라갈수록 정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는 법이었으니.
그 위치가 판테온이라는 거대 조직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운영위원회의 일좌인 데다 특정 파벌을 대표하는 자리라면,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더욱 바빠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지금 이곳, 기사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앉은 채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는 이처럼.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그 하인리히라는 놈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잿빛 머리카락의 여성, 아델라인 슈나이더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미간을 주물렀다.
판테온의 수뇌부인 12위원회의 한 명임과 동시에 번천회 북아메리카 지부장 서기관이기도 한 그녀는 최근 벌어진 일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골드 드래곤을 불러들인 거지? 설마 본인만이 아니라 완전히 별개의 존재까지 지구로 데려올 수 있을 줄이야. 정말 신의 개입이라도 있지 않고선 그만한 격의 생명체를 소환한다는 건 어림도 없을 터인데.’
그건 얼마 전 한 흑마법사가 본 드래곤을 소환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대사건이었다.
그때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서 굉장히 떠들썩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완전한 지성을 갖춘 살아있는 이계의 주민이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건 정말 역사적이기까지 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그런 기적을 일으킨 주체, 아우테리카의 성자 하인리히 세인트 랜드가드가 내세운 주장에도 더한 무게감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바쁘게 파벌을 관리하고 다니는 이유도 그로 인해 운영위원회까지 그 안건이 올라왔기 때문이지 않던가!
‘쯧, 그 광신도들 때문에 편하게 되는 일이 없군. 지구인이면서도 외신의 꼬임에 넘어가 이 땅을 더럽히는 역적 놈들이···. 이번엔 외계에서 온 이방인의 헛소리에 귀를 팔랑이는 꼴이라니.’
아델라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오랜 세월 판테온에서 활동하며 그 능력과 신앙을 증명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긴 했으나, 그녀는 단 한 번도 다른 성직자들을 자신의 동료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신의 뜻에 따라 때를 기다리며 억지로 참고 있었을 뿐.
‘어쨌든 골치 아프게 됐어. 번천회의 이름이 대놓고 여기저기서 언급되는 것도 그렇고. 이곳의 광신도들이 제멋대로 설치기 시작하면 피곤해질 터인데···.’
사실 좋게 말해서 성직자지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치고 정신병자가 아닌 이들이 없었다.
물론 특수한 경우인 그녀 자신도 포함해서.
‘세상에는 흑마력 사용자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만 퍼져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정신 오염 정도는 신성력도 만만치 않지.’
신성력의 부작용은 광신(狂信).
그저 흑마력에 비하면 겉으로 크게 티가 나지 않을 뿐, 성직자들 대부분이 곱게 미쳤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애초에 격이 아득하게 차이 나는 신적인 존재에게 힘을 내려받아 사용하는 이상, 그 사용자가 신앙의 대상에게 영향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믿음이 깊을수록 더욱 강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고위 성직자가 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과 일맥상통했으니.
“후우.”
그녀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좌석 시트에 몸을 기대며 한 손을 들어 눈가를 덮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니 괜히 두통이 밀려드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아직은 논의 단계에 불과하니. 거기다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12위원회의 일좌인 날 쉽게 특정하진 못하겠지.’
그렇게 시간을 끄는 동시에 미리 파악해 뒀던 진짜 ‘악신의 추종자’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면 그만이었다.
그동안은 조금 몸을 사리긴 해야겠으나, 아직 섣불리 나설 때가 아닌 만큼 지금은 그리하는 게 최선일 터.
‘귀찮게 하기는. 하인리히··· 이 일은 반드시 갚아주도록··· 음?’
그러던 어느 순간.
그 복잡한 생각을 도중에 끊어내듯—.
끼이익—!
그녀가 탄 차가 갑자기 급정지하며 멈춰 섰다.
관성에 따라 거칠게 앞으로 쏠리는 상체.
그에 안 그래도 불편한 심정이었던 아델라인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갑자기 무슨 일이죠?”
“죄, 죄송합니다. 사제님. 갑자기 앞에 끼어든 이가 있어서 그만···.”
차분한 추궁에 되돌아온 운전기사의 대답에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과연, 앞 유리 쪽을 바라보니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쓴 괴한이 차가 지나가야 할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러나 원인을 파악하고서도 그녀의 굳은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대체 언제 이렇게 가까이 온 거지?’
아무리 성직자로 활동하고 있다지만 그녀 또한 명색이 초인이라 불릴 정도의 강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 상대가 접근하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니···.
빵빵!
“거기, 도로 한복판에서 뭐 하는 짓입니까? 어서 비키세요!”
그렇게 그녀가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운전기사가 경적을 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상쩍기 그지없는 상대의 행색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긴 했으나, 지금 그의 뒤에는 판테온의 수뇌부 중 한 명이 타고 있는 만큼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괜히 우물쭈물하다가 그녀에게 밉보여 버리면 밥줄이 끊겨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아하하, 정말 죄송합니다···. 실례지만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오면 어쩌자는 거요?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연신 사과하는 상대의 태도에 기사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마음이 편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도 그렇고, 어쩐지 나른하게까지 느껴지는 말투에서 상대의 무해함이 물씬 풍기고 있었기에.
“그래서 말인데, 혹시 지금 안에 타고 계신 분이 서기관님 맞으신가요?”
그러나 이어지는 상대의 물음에 서서히 풀어지던 운전기사의 긴장감이 다시 조여들었다.
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 물어보는 정체불명의 괴한.
딱 봐도 좋은 의도를 가진 자는 아니지 않은가?
“서기관? 안에 누가 계신지는 말해줄 수 없소만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 그보다 내 경고하는데, 여기 타고 계신 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으신 분이니 지금이라도 물러가시는 게 좋을 거요.”
하지만 정작 질문에 대한 답을 받은 사내는 그런 기사의 반응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차량 뒷좌석에서 풍겨 나오던 기세가 폭발할 듯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릴 뿐.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네요.”
“이보시오! 댁이 뭘 잘 모르나 본데. 애초에 종교 연합인 판테온에는 서기관이란 직책이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
그 동문서답에 언성을 높이던 기사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운전석에 앉은 채로 갑자기 상체를 휘청거리던 그는 이내 정신을 잃고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해 버렸다.
빠아아앙—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그 소리를 배경으로 천천히 뒷자리의 문을 열고 내린 아델라인이 가늘게 뜬 눈으로 정체불명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찾아온, 체형을 가늠할 수 없는 펑퍼짐한 복장에 머리 전체를 감싸는 헬멧을 쓰고 있는 사내.
‘어느새 결계까지 발동했구나. 미리 준비해 놨다가 트리거만 작동시킨 건가? 처음부터 단단히 작정하고 기다렸어.’
거기다 상대에게선 마치 자연의 일부를 그대로 뭉쳐놓은 듯 미묘하게 비인간적인 분위기마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그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그녀로서도 굉장히 생소한 것이었으니.
그에 그녀는 실력 행사를 하기 전, 최대한 상대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뒷감당할 자신은 있나요? 감히 판테온의 12위원회의 일좌인 저를 습격하다니. 곱게 죽긴 힘들 텐데?”
“아하하··· 뒷일을 생각하고 일을 저지르는 타입은 아닌지라. 사실 지금도 괜히 왔다 싶긴 합니다. 일부러 공기 정화 마도구까지 준비했는데도 여전히 숨을 쉬기 힘드네요. 정말, 이런 곳에서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쓸데없는 말은 됐어요. 그래서, 당신의 목적이 뭐죠?”
거세게 일어나 서로 날을 세우는 양측의 기세와는 달리 그들 사이에선 차분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겉보기로는 충분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것 같은 모양새였는데···.
“목적이라···. 여기까지 와서 제가 바라는 게 뭐 따로 있겠습니까?”
그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공기 정화 기능이 있는 헬멧형 마도구를 착용한 괴한의 주위에서 하나둘 형체를 드러내는 반투명한 형상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들이었다.
“제가 바라는 건, 처음부터 오직 하나뿐입니다.”
“···정령?”
아델라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건 그저 고만고만한 하급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조차 절대 얕볼 수 없는 수준의 초고위 정령들이··· 기다렸다는 듯 떼를 지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 목적은 번천회의 파멸. 즉—.”
그녀에게 선명한 적의를 표출하면서.
서기관이 미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전혀 예상치 못한 상대가.
“당신의 죽음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선공을 가해왔다.
콰아앙—!
거센 폭음과 파괴를 동반한 형태로.
***
‘훌륭하군.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반응이 좋아.’
오랜만에 지구로 넘어온 하이 엘프 해리스가 헬멧에 감싸인 머리를 천천히 끄덕였다.
원래라면 정령들의 힘도 엄청나게 깎여나갔어야 할 텐데, 두 번에 걸친 『차원 장벽 완화』 덕분인지 생각보다 그 힘의 저하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콰르르릉—!
번개의 정령 와트의 몸에서 초고압의 전류가 쏟아져 내리고, 불의 정령 칼리의 용암 같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바람의 정령 파스칼에게선 날카로운 바람이, 소리의 정령 데시벨에게선 무거운 파동이.
새로 계약한 후 그간 꾸준히 성장한 대지의 정령 헥타르, 빛의 정령 루멘, 물의 정령 리터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힘을 발산했다.
“큭! 정령이라니. 이전 정말 예상 밖이군요. 거기다 이렇게 많은 숫자를 동시에 다루다니···? 대체 어떤 고유스킬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게 가능한 거죠?”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전신에서 노을빛 광채를 흩뿌리는 서기관을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치 신의 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전신에 신성력으로 짜인 갑주를 걸치고 양손엔 커다란 방패와 해머를 든 여전사.
그녀는 정순한 신성력을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방어력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정령들의 공세를 버티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는 듯이.
‘저건? ···과연, 역시 그랬나.’
그리고 이미 두 차례나 『차원 장벽 완화』를 사용한 적이 있는 해리스는 그런 그녀의 신성력에서 어떤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신성력 사용자라면 누구나 감수할 수밖에 없는 그것.
차원 간의 위상차에 따른 효율 저하가 그녀에게선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서기관의 신성력은 번천회주에게서 받는 것일 터. 그 힘의 근간이 같은 지구에 있으니 차원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밖에.’
아마 그게 그녀가 판테온의 수뇌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동력이리라.
애초에 다른 이들과는 조건 자체가 달랐으니, 전력을 다하지 않은 상태로도 정상에 오르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지.
‘뭐, 그렇게 따지면 하인리히도 비슷한 입장이긴 하지만.’
해리스는 헬멧 안에서 별 모양의 동공을 빛내며 작게 호흡을 골랐다.
확실히 이 공기 정화 마도구가 있으니 맨몸으로 숨 쉴 때보단 훨씬 낫긴 한데, 자연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그의 호흡은 단순히 폐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보니 여전히 고역인 건 마찬가지였다.
‘정령을 사용하다 보니 더 힘들어지는 것 같네. 역시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어.’
꾸욱.
무려 일곱이나 되는 고위 정령들의 무차별 폭격으로 사방이 난장판이 된 가운데.
그는 자신의 손에 쥐인 세계수 가지로 만들어진 활, 테미스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차피 주변엔 「무유팔괘비공(改)」을 이용한 진법을 둘러뒀기에 괜한 피해는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 힘을 이용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자리에 있던 운전기사와 그가 몰던 차도 이미 안전한 곳으로 옮겨둔 상태였으니.
「무유팔괘비공(改)」으로 자연의 기운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그에게, 자연의 기를 인위적으로 배치해 술자가 원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진법이란 신비는 최적의 궁합이나 다름없었다.
또 거기에 필요한 지식은 제갈세가와 금오도로부터 충분히 제공받지 않았던가!
끼이이익—
세계수의 가지로 만들어진 화살 한 대가 시위에 걸리고.
금방이라도 쏘아질 것 같은 장력을 거스르며 그 안에 급속도로 힘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고오오—
순수한 자연력을 비롯해 그것이 가공된 기운과 정령들의 다양한 원소 에너지까지 모두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한계까지 집약된 그 파괴적인 에너지가 해방된 순간.
———!
공간을 가르듯, 빛의 선 한 줄기가 허공을 꿰뚫었고.
콰아아앙—!
한 차례의 폭음이 지나간 후.
해리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그 목표였던 서기관의 앞을 막아선 익숙한 인영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