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49)
강환계의 변방, 신강성 천산산맥.
“이 땅에 강림하신 위대한 마(魔)의 왕을 배알하나이다.”
““마의 왕을 배알하나이다!””
거대하고 웅장한 대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대전의 한편, 높은 계단 위에 비치된 화려한 태사의에 앉은 존재에게.
“흐음.”
그렇게 모두의 경배를 받게 된 새로운 지존, 마왕 한스가 한쪽 팔걸이에 기댄 팔로 턱을 괸 채 오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중년 사내의 얼굴에 조소가 어리며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는 눈동자에서 귀화가 타올랐다.
수백 명이 여유롭게 파티를 벌일 수 있을 정도로 넓으며, 층고를 가늠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높디높은 실내.
그런 장소에 한데 모인 수많은 인파가 일제히 엎드리며 절을 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거기다 다른 곳도 아니고 공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자리에 앉은 채, 은연중에 공포가 배어 나오는 그들의 감정을 한 몸에 받는 기분이란···.
‘정말 끝내주는군.’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스는 마이너스 감정의 집결체이자 태생부터 부정의 상징 그 자체인 존재였으니까.
기이한 빛이 어린 그의 시선이 엎드린 이들을 가볍게 훑고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이 대전, ‘신마전’에 들어올 수 있는 이의 자격은 철저하게 제한되어 있음에도 총소집에 모인 이들의 수는 거의 백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나마도 얼마 전까지 진행되었던 거대한 숙청의 폭풍에 그 수가 크게 줄어 이 정도인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족히 수백은 넘었으리라.
‘가지치기는 할 만큼 했다. 고집이 센 놈들이 제법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이만한 조직을 집어삼키는 데 그 정도야 난관도 아니지. 역시 본보기를 보이길 잘했어.’
말할 것도 없이 천마신교 정도 되는 세력을 최대한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기존 지휘부의 자발적인 협조가 필수였다.
그러나 아무리 한스가 무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해도, 갑자기 툭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존재를 쉽게 지도자로 받아들이긴 힘든 게 당연했으니.
자연스레 그 뒤에 이어진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회유와 협박, 그리고 본보기와 처형이었다.
자신의 수족이 될 만한 이들을 골라내고 영 갱생이 불가능하다 싶은 놈들을 쳐내는 숙청의 연속.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무엇이든 하명해 주소서, 지존이시여!”
정말로 그는.
기어코 천마신교라는 거대 세력을 굴복시켜 홀라당 잡아먹어 버린 것이다.
바닥에 부복한 이들을 느긋하게 둘러보던 한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천기마선의 위치는? 파악했나?”
본단 밖으로 나간 이들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이자 별동대들을 총괄하는 외부 작전 총책임자, 천마신교의 군사 천기마선 야율환.
그의 소재를 묻는 말에 답한 것은 마교의 정보 조직인 통천각의 부각주였다.
“···송구하옵니다. 아무래도 전 군사 야율환이 본산에서 일어난 변화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 그와의 연결이 모두 차단된 건 물론, 다른 곳에 파견되었던 별동대들과의 연락도 하나둘 끊기고 있어 그 위치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하는 현 마교 정보부의 최고참 책임자.
그 부정적인 대답에 한스가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혹시 그가 다른 생각을 품고 헛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큭, 숨이···. 전대 천마 교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시선과 함께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에 부각주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정말 저 새로운 지존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겉으로만 굴복하는 척하며 뒤로는 다른 생각을 품었던 상사, 지금은 공석이 되어버린 통천각주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죽음 따윈 두렵지 않다. 하지만··· 하지만 그건 아니지 않나!’
무의미한 저항의 끝에 있는 것은 단순한 죽음만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것은 내세의 안식 따윈 조금도 기대할 수 없는 영원한 고통과 절망뿐.
저 무자비한 폭군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절대 그들을 놓아주지 않을 터.
그 앞에서 죽음은 결코 탈출구가 될 수 없었다.
“흐음, 좋다. 이번에 큰일이 있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해 줘야겠지.”
“아! 성은이 망극하옵···.”
“하지만 이번뿐이다. 최대한 빨리 혼란을 수습하고 각지와 연결된 비선을 정비해 정보 수집을 재개하라. 다음에도 이런 실망스러운 대답을 가져온다면— 너의 쓸모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겠지.”
“···존명!”
마지막에 이어진 살벌한 문장에 몸을 움찔한 부각주가 우렁차게 외치며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지금은 신세 한탄 따위나 할 때가 아니었다.
살아서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죽어서 자원으로 사용될 판이었으니.
이제 와서 통천각이 군사 직속 기관이라 그 장악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해 봐야 저 폭군이 이해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살고 싶으면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
“······.”
그렇게 둘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동안에도 대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백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숨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
“그럼, 다음은···.”
그렇게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한스의 호명과 업무 상태 파악, 그에 이은 지시 하달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분위기가 상당히 많이 경직되긴 했으나 이건 전부 의도했던 대로였다.
애초에 이렇게 간부진 총소집령을 내린 이유도 재차 기강을 다지며 괜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경고하려는 뜻이 담긴 것이었으니.
‘자— 그럼 마지막으로.’
그리고 마침내, 한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남은 이들 쪽으로 향했다.
그가 내심 가장 기대하고 있던 이들이 모인 방향.
강시와 저주를 비롯한 각종 사이한 술법을 연구하는 연구진들이 소속된 부서.
개화궁의 간부들이 있는 곳으로.
***
천마신교의 연구 시설을 통칭하는 개화궁(開化宮).
그곳은 무공을 제외한 모든 신비를 학습, 분석 및 개량하는 업무를 맡은 조직이었다.
이 세계의 주류 신비는 어디까지나 무공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계통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보다 직관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무공과는 달리,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행해지는 술법은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 더욱 치명적인 피해로 다가올 수 있었으니까.
그중에서도 천마신교는 도술(道術)이나 선술(仙術) 쪽이 아닌 인륜을 벗어난 사악한 외도의 술법을 주로 다루기로 유명한 단체였다.
양지쪽의 양대 산맥이 제갈세가와 모산파라면 음지엔 천마신교와 혈교가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
‘거기다 지금은 그 혈교마저 이쪽에 흡수당한 상태라고 했지. 물밑에서 이어진 전쟁 끝에 혈교의 교주 혈마가 천마에게 패하고 살해당했다고···.’
황궁 혈사 이후의 잠적기 동안 마교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금오도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그렇게까지 일을 벌이고 있었다니, 만약 그가 발 빠르게 개입해 천마를 처리하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정말 강환계 전체가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가 버렸으리라.
“어서 오십시오, 지존이시여! 대륙 최고의 지식의 요람, 개화궁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지금, 한스를 마중 나와 격렬하게 환영하는 저 노인이 바로 전 혈교의 최고 장로이자 현 개화궁주인 자였다.
혈마가 유명을 달리한 이후 앞장서 휘하의 세력을 이끌고 마교에 투신한 혈교의 이인자이자, 과거 우두머리였던 수장의 시신을 손수 강시로 만들어 천마에게 진상한 사이코패스이기도 했고.
참고로 그 강시는 현재 외부 작전에 동원된 상태라 지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지존께서 저희 개화궁에 관심을 가져 주시다니, 정말 기쁘기 한량없는 일입니다! 사실 전 교주는 저희를 무슨 강시를 뽑아내는 작업실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또한 그 성향 덕분에 한스가 천마신교를 점거했을 때 가장 먼저 백기를 들고 전면 투항해 적극적인 협조를 천명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세력을 집어삼키는 작업이 다소 편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역시 같은 술법사이셔서 그런지 저희를 이해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아아— 아직도 그날이 눈에 선하군요. 지존께서 불러오신 먹구름에 의해 하늘조차 감히 지상을 굽어보지 못하던 순간, 마치 저승의 염라가 현세에 강림한 듯이···.”
물론 거기엔 단순히 기회주의자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무공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하늘에 닿은 ‘술법’만으로 마교의 본단을 뒤집어엎은 그에 대한 경외 또한 단단히 한몫했겠지.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술법에 평생을 바친 현시대 최고의 술법사 중 하나였으니까.
“이곳은 저주를 연구하는 곳입니다. 사실 저주라는 게 정면 승부에선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경지에 오른 이의 항마력을 뚫기도 힘들다는 인식 때문에 천대받는 면이 많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지요. 지존께서도 아시겠지만 일단 한 번 저주에 걸리면 설령 현경의 고수라도 쉽게 벗어날 수···.”
다만, 그런 개화궁주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굉장히 말이 많다는 것이었다.
물론 한스를 편히 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해서 말이 많아진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선만 넘지 않는다면 상관없겠지. 무엇보다 이 마이너한 술법계에서 이 정도로 실력 있는 양반은 다시 구하기 힘들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곳은 다시 봐도 대단하군.’
그렇게 옆에서 떠드는 소리를 반쯤 흘리며 연구실 내부를 둘러보던 한스가 내심 감탄을 흘렸다.
이미 강시들을 정리하며 한 차례 와본 곳이긴 했지만, 이렇게 연구 과정들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 곳을 차분하게 둘러보니 느껴지는 감상이 색달랐던 것이다.
“호오? 이것은···?”
“아, 역시 안목이 있으시군요! 이곳은 저희 교가 자랑하는 요괴 강시 중에서도 최상품을 생산하고 개량하는 곳입니다. 지금 작업 중인 개체는 용과도 비견된다는 영수, 기린이지요. 사실 마(魔)에 속한 여태 요괴들과 달리 영수는 그 공정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저희는 오염된 여의주를 이용해···.”
체고만 3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네발짐승.
비록 오색으로 빛나야 했을 털은 윤기를 잃고 한 톨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육신에서 풍기는 고등한 존재의 격은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과연, 저런 식인가.’
그리고 그 제조 공정을 마주한 순간, 한스는 저 마교와 혈교의 비전이 결합된 강시술의 비의(秘意) 일부를 선명하게 엿볼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옆에서 열심히 떠들어대는 개화궁주의 설명도 있었을뿐더러—.
「부정한 현자」와 「금단의 지식」, 그리고 「마도의 길」 등의 다양한 스킬들이 코앞에서 이뤄지는 신비를 실시간으로 해체해 낱낱이 분석해 주었던 것이다.
그로 인한 지식의 격류는 시종일관 이렇다 할 감정의 변화를 내비치지 않던 그에게도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주 훌륭하구나.”
“역시 알아보실 줄 알았습니다! 하긴, 그 완성도만 따지자면 지존께서 부리셨던 흑강시 쪽이 더하다 할 수 있겠지요. 소체가 지닌 생전의 무위를 완전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야말로 강시술의 지향점 아니겠습니까?”
옆에서 열심히 추임새를 넣는 목소리를 배경 삼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간 틈틈이 학습한 강시술과 어우러진 새로운 개념들이 기존의 지식과 뒤섞이며 자신만의 신비로 재조립되어 정립되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계기였다.
그간 한스는 수많은 세계의 지식을 접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저변을 넓혀왔다.
그 지식의 기여에 가장 많이 일조한 것은 아마 번천회를 통해 강제로 얻어냈던 것이겠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간 쌓이고 쌓여온 것들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섰다.
《개체의 깨달음이 한계를 넘어 성장합니다. 특수스킬「금단의 지식」이 「금기된 진리」로 진화합니다.》
그것은 아우테리카의 흑마법에 뿌리를 두었던 한스가.
보다 넓은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금지된 지식의 서고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
‘한동안은 이쪽에 집중해야겠군.’
스킬의 진화를 이룬 한스는 당분간 이곳 개화궁에 머물기로 했다.
각종 흑마법을 비롯한 부정한 술법의 보고였던 「금단의 지식」.
그것이 성장한 「금기된 진리」는 그간 그가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거기엔 이곳 강환계의 강시술과 거기서 파생된 다양한 계통, 그리고 그 개량법까지 수많은 정보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마침 지금이 이 지식을 수습하기엔 최적의 환경이기도 하고.’
물론 거대 세력을 통째로 집어삼킨 직후인 만큼 마냥 연구 쪽에만 매진할 순 없었다.
이미 천산 전체를 영역으로 삼고 곳곳에 결계와 마도구들을 비치해 두긴 했으나, 아직은 주기적으로 내부를 시찰하며 한스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박아 넣을 필요가 있었으니.
‘뭐, 그쯤은 감수해야겠지.’
어차피 자신 정도 되는 수준에서 이런 병행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 그가 마주하고 있는 일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개화궁에 마련된 한스 전용 연구실.
그 중심에 놓인 침대에는 두 구의 시신이 나란히 눕혀져 있었다.
지금 그가 있는 이곳, 천마신교의 전 주인이었던 천마와···.
“크크크큭— 아아, 확실히. 대조군이 있으니 이제야 좀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구나.”
지구에서부터 보내진 새로운 샘플, 서기관이었다.
‘이 정도면 진짜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겠어.’
그들은 생전 번천회주라는 신을 모시는 사도였지만, 이렇게 한스의 손아귀에 떨어진 이상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그들은 자신이 모시던 신을 노리는 비수, ‘신살자’로 벼려지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