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50)
사실 이전부터도 천마의 시신은 꾸준히 살펴보고 있었다.
한스가 아무리 바쁘다곤 해도 명색이 천마씩이나 되는 최상급 소재를 그냥 두고만 볼 리가 없지 않은가?
‘이만한 경지에 이른 고수의 시신은 쉽게 볼 수 없으니까. 그것이 아무리 같은 현경의 고수라고 해도 말이지.’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끝이라는 화경(化境), 그리고 그 한계마저 초월해 반쯤 신선이나 다름없어진다는 현경(玄境)의 경지.
천마는 그 현경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어쩌면 반신 격인 신화경(神化境)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었던 극강의 고수였다.
비록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한스를 만나 도중에 덧없이 스러지고 말았지만.
‘아마 번천회주의 노림수도 그쪽이었겠지. 천마가 정말 신화경까지 올랐다면 그를 종속시킨 놈의 격 또한 그만큼 폭발적으로 상승할 테니까.’
천마는 그냥 스스로의 힘만으로 힘을 쌓은 게 아니었다.
이곳 강환계의 주신이 안배한 ‘용의 아이’를 제물로 바쳐, 번천회주에게 번제(燔祭)의 의식까지 벌여가며 힘을 하사받지 않았나!
그런 의식은 단순히 일회성으로 힘이 오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 주체가 되는 이의 혼에, 쌓아 올린 격에, 살아온 업에 고스란히 남아 영원히 기록되는 화인이었으니.
아마 번천회주도 의식을 공양받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격의 상승을 이뤘을 것이다.
“거기다 이건···. 허! 놈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그래도 설마 이런 것까지 가능했을 줄이야.”
손수 마련한 온갖 기자재들이 가득한 개인 연구실에서 한스가 나직이 경탄을 토해냈다.
무저갱처럼 새카만 기운이 일렁이는 그의 「심연의 눈」이 실험대 위에 올라간 천마를 꿰뚫어 볼 듯이 응시했다.
‘단순히 신성력만을 하사받은 게 아니었어. 이건··· 고유스킬? 이미 오래전 각성자로서의 권리를 잃고 정착자가 된 천마의 고유스킬을 다시 살려냈다고?’
「금기된 진리」를 얻고 서기관이라는 대조군까지 손에 넣으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사망한 탓에 지금은 흐릿한 흔적만이 남아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마의 영맥(靈脈)에 내공과 신성력만이 아닌— 세상의 이치 위에 존재하는 어떤 힘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어쩐지··· 주신이 직접 안배한 용의 아이를 몇이나 가로채 희생양으로 삼은 것치곤 조금 애매하긴 했지. 신성력 쪽은 그 과정에서 주어진 부산물일 뿐이었던 건가.’
번천회주가 새로운 고유스킬을 내려주거나 각성자의 권한을 다시 부활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제물을 대가로 비활성화 되어있던 고유스킬을 일정 시간 동안 잠시 일깨운 것뿐.
하지만 그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그 불가해 자체인 시스템에 개입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거기다 그 고유스킬은··· 과연, 놈이 눈이 뒤집혀서 용의 아이를 노린 것도 이유가 있었군.’
천마가 강환계에서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던 근간.
무공에 대한 천재적인 오성을 제공해 줌은 물론, 살인 기예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해주는 적성이며, 어떤 가혹한 수련도 순식간에 적응하는 체질인 동시에 막대한 성장 보정까지 부여하는 스킬.
「천살성」
심성에 악영향을 주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으나, 그런 것 따위야 그에겐 큰 문제도 아니었을 터였다.
아마 성장의 한계를 마주하고 벽을 느끼고 있던 천마에겐 그 무엇보다 달콤한 유혹이었으리라.
“···비활성화 되어있던 고유스킬을 살리는 방법이라···.”
한스의 안광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사실 이 문제는 그에게도 숙제나 다름없었다.
그의 휘하엔 죽음과 동시에 고유스킬을 잃어버린 각성자 출신 언데드 병사들이 무수히 많지 않던가?
그들 모두가 생전 가지고 있던 능력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놈이 해냈는데 이 몸이라고 못할 건 없지.”
그 오만한 자존심에 불이 붙은 한스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상대가 제물을 사용했던 그저 일시적일 뿐이었건, 지금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자신이 하지 못한 걸 놈이 해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으니.
그날부터 한스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연구 샘플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모세혈관 한 가닥은 물론 세포 하나까지 허투루 보지 않는 강박적인 조사.
나중에 재활용하기 위해선 최대한 시신이 손상되지 않는 방법으로만 수단을 제한해야 했지만, 이쪽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라 할 수 있는 그에게 그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군. 이게 천마신공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소득도 얻을 수 있었다.
천마의 몸에 남은 신비의 흔적들을 낱낱이 뜯어본 끝에, 혈도와 영맥에 새겨진 자취를 역산해 그가 생전에 익히고 있던 무공을 복원해 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거 휴고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겠어.’
자타공인 강환계 최고의 절세 신공 중 하나인 천마신공.
여유롭게 잡아도 S+급 이상일 게 분명한 그것은 「무명공(無名功)」과 「만류귀종」을 가진 휴고가 자신이 추구하는 무(武)를 완성하기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프흐흣— 천마비고를 털어도 찾을 수 없어 어디다 숨겼나 싶었거늘. 이걸 이렇게 얻게 될 줄이야.”
천마비고는 오직 교주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천마신교의 보물창고였다.
교를 장악한 한스가 그곳을 깨끗하게 털어버린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
그 후 비급들은 「분석」과 「암호 해석」을 가진 휴버트에게 보내져 한 차례 감정을 마쳤는데, 문제는 정작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천마신공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천마의 기억에도 그쪽은 누락되어 있어서 어쩔까 싶었는데 말이야. 이거 수고를 덜었네.’
거기다 그의 연구 성과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마에 이어 그 대조군인 서기관의 시신까지 분석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번천회주로 연결되는 신성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놈이 아우테리카에 왔을 때 강탈한 신성 파편이 없었다면 힘들었겠어. 운이 좋았군.’
신과 사도, 그들 사이의 끈끈한 연결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매체에 비친 스타를 바라보며 환호하는 팬들이 일반 신도라면, 사도는 그 가장 가까이에서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매니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었으니.
‘아니, 그거보단 좀 더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상하관계라고 보는 게 맞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사실은, 사도 정도 되는 이의 변절은 그 신앙이 되는 이에게도 제법 치명적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미 죽어버린 이가 무슨 배신이냐 할 수 있겠지만—.
“크하하핫! 이 몸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지!”
강제적인 타락을 이용한 신앙의 반전.
그로 인해 기존 신성에 극상성을 가진 ‘신살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
생전 사자(死者)가 지닌 의사 따위, 죽음을 다스리는 그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군림, 강압, 유린, 지배.
그것이야말로 불사왕이자 마왕인 한스가 가장 잘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는 두 구의 시신에 남은 신성의 상흔을 세심하게 조절하며 그들을 언데드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금기된 진리」를 통해 알게 된 온갖 비전도 포함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신성을 통해 미약한 신성의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합니다. 개체가 보유한 업(業)이 임계점을 넘으며 아카샤에 존재가 각인됩니다.》
신성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어떤 계기가 되었는지, 뭔가 의미심장한 문구가 그의 앞에 떠올랐고.
‘···가만, 천마는 이미 몇이나 되는 용의 아이를 집어삼키고 그 업을 강탈한 존재잖아? 그럼 그걸 거꾸로 이용하면···.’
덤으로, 이 강환계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실마리까지 찾을 수 있었다.
용의 아이들의 희생이 전제되었던 기존 방법을 우회할 최적의 방법을.
***
잠깐 지구에서의 급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한데 불려 오긴 했지만, 아바타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도 할 일이 많은 몸이었다.
아우테리카의 성자로서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하인리히와 한창 강환계의 주술 체계를 흡수하느라 여념이 없는 드래곤 호루스, 두 세계에 분포된 조직들을 관리하며 동분서주하는 하인즈 2세 등···.
그나마 여유가 있는 편이었기에 서기관을 사냥하는 일에 가장 먼저 투입되었던 해리스도 엘븐 킹덤의 중역으로서 신경 쓸 게 많은 상황이었으니, 다른 개체들이 얼마나 바쁜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유독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바타가 하나 있었으니···.
파파팟—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야밤의 숲속을 비호처럼 가로지르는 거구의 야만 전사.
할리가 바로 그 당사자였다.
“쓰읍, 거참. 이쯤이면 슬슬 가까워진 것 같은데.”
폭풍처럼 질주하다가 덩치에 맞지 않는 사뿐한 걸음으로 멈춰 선 그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어서 그의 코와 귀가 연신 씰룩거리며 주변의 정보를 재차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후읍!”
깊은 심호흡과 함께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풍경이 그의 머릿속에 구축되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소리와 진동, 냄새, 자기장 등의 초지각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세계.
그 영역은 일대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했다.
“옳지, 이쪽이구나!”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쫓던 아주 미세한 흔적을 발견한 할리의 커다란 육체가 다시 바람처럼 허공을 갈랐다.
시간도 제법 오래 지난 데다 그 흔적을 지운 이들 또한 보통 수준이 아니었기에 뒤를 쫓는 게 쉽진 않았으나, 감각 계통에 특화된 마수들의 신체 정보를 고스란히 가져온 할리의 추적 능력은 이 세상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렸어. 사전 정보가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겠는데. 역시 해리스도 같이 데려와서 수색에 좀 더 힘을 줄 걸 그랬나?’
잠깐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금방 털어버렸다.
강환계의 환경이 자연에 민감한 해리스에게 그리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건 이미 충분히 경험한 사실.
정말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제갈세가도 대단하군. 본거지가 습격당해 어수선한 상황인데도 이렇게 정보 세력을 운용할 여력이 남아있다니. 과연 명문세가라는 건가.’
굳이 해리스까지 나서지 않더라도 지금은 그를 도와줄 이들이 많이 있는 상태였으니.
마교 별동대의 습격으로 난장판이 되었던 융중산의 제갈세가.
그들은 본거지에 설치된 최후의 진법까지 발동해 가며 기어코 적도들의 습격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피해가 있긴 했지만, 놈들이 현경에 필적하는 수준의 강시까지 앞세웠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정도로 끝난 게 대단할 정도로 선방한 것이었다.
그것도 다 얼마 전에 있었던 신비고수 해리수의 깽판 이후, 대대적으로 진법을 손보며 개편 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쯧,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들의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세가 전체가 한창 혼란스럽던 와중, 은밀하게 침투한 극소수의 정예부대에 의해 결국 제갈혜미가 납치되었다는 게 밝혀졌으니까.
철옹성이라 자부하던 제갈세가의 본거지에 가해진 습격과 함께 무려 현 가주의 금지옥엽이 납치당한 사건이었다.
세간의 시선을 생각해서라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상황.
그들은 혼란을 수습하는 와중에도 외부 비선을 총동원해 습격자들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순간, 소림사에서 급히 출발한 휴고가 포함된 일행들이 융중산에 도착했다.
그들이 본가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전해 들은 것도 그때였고, 당연히 휴고가 들은 정보엔 적들의 추정 이동 경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 정보와 마교 쪽에서 얻은 정보를 교차검증하면 대략적인 윤곽이 나오지. 나는 거기서부터 추적하면 된다.’
아무리 소수정예로 이루어졌다 해도 제갈세가를 습격한 마교 별동대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제갈세가씩이나 되는 세력을 습격하는 작전이었으니 그 정도야 당연한 일.
그리고 인원이 많아질수록 아무리 전문가가 흔적을 지운다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으니—.
“···찾았다.”
이렇게 그 덜미가 잡히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크큿, 카하하핫! 아아, 여기서 조금만 더 질질 끌었으면 속 터져 죽을 뻔했는데!”
그의 감각으로도 간신히 느껴질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는 한 무리의 기척.
그에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린 할리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포식을 앞둔 맹수처럼 두 눈에서 차가운 안광이 번뜩이고 톱니 같은 이빨에서 흘러내린 침이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자— 그럼, 가보자고.”
사냥의 밤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