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51)
사사삭—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운 숲속.
그 한가운데를 대열을 갖춘 한 무리의 인영들이 조용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정지.”
그러던 어느 순간,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던 인물이 나직한 말과 함께 한쪽 손을 들어 올리자.
일사불란하게 걸음을 옮기던 후미의 인원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제히 행동을 멈췄다.
“······.”
평화로움과 음산함이 공존하는 한밤중의 숲속.
빼곡하게 자라난 나무 틈새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수풀과 나뭇잎이 부산스레 흔들렸다.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잔잔하게 흐르는 그 소음 속에서—.
“···전투 준비.”
그 목소리가 숲의 평온함에 마침표를 찍었다.
채채챙— 차앙!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든 이들로 인해 곧 공간 전체에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지시에 의문을 품는 이는 없었다.
명령을 내린 지휘관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자였고, 그들에게 상명하복이란 세뇌에 가깝게 새겨진 일상의 일부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어라? 이거 참, 벌써 들켰나?”
그렇게 무리 모두가 전투 준비를 끝마침과 동시에, 예리한 기세로 가득한 주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태평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흘러들었다.
“역시 생각대로는 안 되는구만? 몰래 움직이는 건 영 나랑 맞지 않는단 말이지! 카하하핫!”
어둠 속, 울창한 나무 사이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방인.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경계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그 거구의 야만 전사는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어찌 반응하든 상관없다는 듯,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여유로운 태도로.
“···특급. 천강시의 모든 금제를 해제하라.”
그러나 그와 마주한 이들은 그 모습을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아니, 얕보기는커녕 그에게 고정된 시선조차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바스락— 바삭—
어떤 긴장도 불안도 없이 태연하게 바닥을 지르밟으며 다가오는 거구의 사내.
그 전신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잠깐이라도 눈을 돌렸다간 순식간에 달려들어 목줄기를 물어뜯을 것 같은 흉포한 기세에 본능이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수가 좀 적다?”
그렇게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냥을 앞둔 맹수처럼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던 거한— 할리가 고개를 모로 꺾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이한 안광이 어린 그의 오드 아이가 천천히 주변을 훑었다.
무리의 숫자는 어림잡아 오십.
하나같이 최소 절정 이상의 고수들인 데다 몇몇 이들이 등에 메고 있던 관에서 기어 나오는 강시들까지 포함하면 전력 자체는 막강하다 할만했지만···.
그가 사전에 예상했던 숫자와는 제법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찾던 애도 안 보이고. 쓰읍, 언제 다른 데로 빼돌린 거지?”
정작 그들 중엔 그가 찾던 대상인 제갈혜미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 강시가 담겨있던 관짝 중 어딘가에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멀리서 감지했을 때는 그래도 긴가민가했지만, 이 정도 거리까지 와서 그의 감각을 속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여러 정보를 종합했을 때도 그렇고, 여기까지 추적해 오면서도 딱히 놈들이 여럿으로 나뉜 흔적은 없었는데.’
그러던 그는 이내 자신이 일을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놈들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은 저들이 다수였기에 어쩔 수 없이 생긴 흔적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암행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극소수의 고수들이 그녀를 데리고 중간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면···.
“켁! 이거 귀찮게 됐구만. 그냥 이번에 끝내버렸으면 편했을 텐데.”
질색한 표정을 지은 할리가 뒷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아무리 마교의 전력이 대단하다 한들, 언제 어디서 어떤 위기가 다가올지 모를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전력을 분산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모험이었다.
거기다 그들이 습격한 제갈세가는 진법을 이용한 거점 수비에 특화되어 변변찮은 고수도 없는 실정이지 않았던가?
할리가 추격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리도 없으니, 이미 상당한 거리를 벌린 상황에 굳이 거기서 또 인원을 나누진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뭐,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여전히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혼자 떠들던 할리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목표를 놓쳐버리긴 했으나 그래도 영 헛걸음이라고 볼 순 없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그 단서가 될 이들이 이리 잔뜩 널려있었으니까.
“그래도 말이야. 나도 사람인데 조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단 말이지?”
가벼운 말투와는 달리 몸이 저릿해지는 압도적인 기세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놈들이 순순히 불든 끝까지 지조를 지키든 상관없었다.
깔끔하게 족쳐서 그 머리통 속을 뒤져보면 뭐라도 나올 테니.
“그러니까, 조금 거칠어도 이해해 달라고? 카하하핫!”
뿌드득— 뿌득!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며 뼈가 뒤틀리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근육질의 덩치.
그 현상은 누가 봐도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요괴다! 천강시 투입! 혈살귀마대는 천요금쇄진을···!”
대(對) 요괴전에도 일가견이 있는 지휘관이 황급히 명령을 내리다 순간 멈칫했다.
매사 평정을 유지하도록 세뇌에 가까운 훈련을 받은 그의 동공이 흔들리며 시선이 점차 위로 올라갔다.
안 그래도 컸던 8척(尺) 장신이 쑥쑥 자라고 자라, 마침내 20척(6m)을 훌쩍 넘길 정도로 솟구친 상대의 얼굴을 따라서.
“크핫! 그럼 어디 실력 좀 보자고?”
단순히 덩치만 커진 게 아닌, 인간의 형상을 완전히 벗어난 거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벌하게 미소 지었다.
얼마 전과는 달리 강환계 출신 요괴들의 인자까지 곳곳에 발현한 포식자의 모습으로.
***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고···.”
천마신교의 외부 작전 총책임자인 군사 천기마선 야율환.
아니, 하늘이 바뀐 지금은 전(前) 군사라고 불려야 할 그는 최근 들어서 짧지 않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허허허, 이거 참 어이가 없구나. 설마 그 교주가··· 머지않아 신화경에 도달해야했을 천마가 그리 유명을 달리할 줄이야.”
등 몇 개로 간신히 어둠 일부를 몰아낸 동굴에 자리한 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계산은 완벽했을 터였다.
무림맹 회합에 참여하는 이들의 구성과 전력은 이미 완벽하게 파악한 뒤였고, 확실한 일 처리를 위해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전력을 투입했었는데···.
“광마, 광마란 말이지···? 변수가 될 가능성을 제한하기 위해 미리 손을 써 뒀거늘, 설마 그 두 놈이 나란히 손잡고 소림사에 난입할 줄이야.”
그 광마··· 아니, 이젠 신광마라 불리게 된 괴인의 존재야말로 소림사에서 있었던 실패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놈이 끼어들지만 않았더라면 신승과 검성을 비롯해 그 자리의 모두를 깔끔하게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한 시신들은 교를 위한 강시로 재탄생했을 것이고, 교주 또한 회군하면서 따로 행동하는 일이 없었겠지.
‘스스로를 마의 왕이라 칭하는 자. 등장만으로 천기를 어둠으로 뒤덮고, 듣도 보도 못한 고위 술법을 사용하며, 무공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흑강시의 군세를 거느린 죽음의 군주···.’
거기다 그 직후 등장한 마왕이란 존재는 계획의 근간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소림사에서 있었던 실패 정도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비록 예상이 빗나가면서 작전을 조금 수정하긴 해야 했겠지만, 어차피 주목표는 용의 아이를 확보하는 것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작 그 교주가 당한 이상 이제 작전은 의미가 없다. 허허허··· 설마 첫 삽을 뜨자마자 장례를 치르게 되다니. 그것이 제 무덤이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천마의 죽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마왕이 천마신교를 장악하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증거로 제시했던 게 바로 그의 시신이었으니까.
본산에 있던 고위 간부 중에 그 진위를 판별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번엔 그것이 악재로 돌아온 셈이지.’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하던 지도자의 처참한 최후.
그에 따른 공포감은 휘하의 간부들이 전향을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덕분에 빠르게 교를 장악하기 시작한 마왕의 본격적인 숙청 작업도 생각 이상으로 이르게 시작되었으니.
그쪽에 협력하는 척하며 군사에게 은밀하게 정보를 전해주던 통천각주의 연락이 끊긴 것도 딱 그때쯤이었다.
‘아깝군. 좀 더 정보가 더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역추적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회선을 끊으면서 다른 쪽에 접촉하기도 쉽지 않고.’
가볍게 혀를 친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구석으로 시선을 돌려 특수 제작된 진법 안에 자리한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용의 아이라···.’
그들은 이 작전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목표물로, 이번에 추가로 확보한 수는 총 일곱 명이었다.
그야말로 오랜 세월에 걸친 첩보 활동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성과.
원래라면 회수하는 족족 그들이 보유한 최대의 용맥인 본산으로 보내 의식을 준비했겠으나, 이미 그곳을 점거당해 버린 이상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기껏 고생해 가며 확보한 이 최고급 제물들을 마왕이란 놈에게 고스란히 가져다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상하군. 저 둘, 다른 용의 아이들과는 달라.”
그렇게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천마신교는 무공뿐만 술법 쪽으로도 손꼽히는 세력이었고, 군사 야율환은 그간 교주의 번제 의식을 직접 집도했을 정도로 이쪽 분야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몰라볼 리가 없지 않나?
골골거리는 다른 용의 아이들과는 달리 생기가 넘치는 두 남녀의 몸에 미약하게 남아있는 저 이질적인 힘의 흔적을.
‘분명 제갈세가의 여식과 황가의 핏줄이었지.’
드러나지 않은 뭔가를 꿰뚫어 보듯 그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저건 아무리 봐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외계의 기운이었다.
의식이 끝난 직후 교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걸 이미 몇 차례나 보지 않았던가.
‘물론 그 성질 자체는 상당히 차이가 있긴 하다만. 앞으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는 있겠구나.’
천천히 주변을 훑으며 열악한 동굴의 환경을 한차례 눈에 담은 그가 다시 진법 안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교주가 유명을 달리한 이상 지금까지 해 온 의식은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들 일곱을 몽땅 자신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일단 제단부터 마련해야겠군. 본산만큼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규모가 큰 용맥이 좋을 텐데. 근방에 쓸 만한 곳이···.”
어둠을 밝히는 등이 일렁거리며 거기에 비친 그의 그림자가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인간이 아닌, 이형의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
짐승 머리와 털이 북슬북슬한 상체, 길게 뻗어진 날카로운 손톱.
늑대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야수형 요괴 강시가 달려들었다.
[크아아—!]이미 생을 상실하며 고통 따윈 알지 못하는 그 육체는 자신의 한계를 넘나드는 속도로 달려들어, 그대로 강인한 턱을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로 입안에 들어온 무언가를 강하게 물어뜯었다.
까가각! 까득!
하지만 그 입안에선 살이 찢기는 소리는커녕, 단단한 무언가가 갈리는 소음만이 들려올 뿐이었으니.
“크하핫! 이거 효과 좋구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역시 뭐든지 직접 써봐야 한다니까?”
쉬이익— 콰앙!
[크케켁!]할리는 자신의 팔뚝을 물고 늘어지는 요괴 강시를 채찍처럼 휘둘러 땅바닥에 내려치며 광소를 터트렸다.
그의 양 팔뚝은 평소 즐겨 애용하던 검붉은 용의 비늘이 아닌, 거북이 등껍질 같은 형상의 새카만 갑각으로 뒤덮여 있었다.
‘단순 방어력이라면 이쪽이 훨씬 더 우위다. 유연성과 탄력이 없다시피 해서 전신에 두르기에는 부적합하지만, 몇몇 부위에 둘러서 무기이자 방패로 써먹기엔 충분해.’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현무의 등갑이었다.
얼마 전 천마신교를 탈탈 턴 한스를 통해 얻은 내단 중 하나인 현무의 인자.
사실 얻은 지는 조금 됐었지만, 서기관과의 싸움에선 아직 익숙하지 않았기에 굳이 사용하지 않았다.
그 정도 수준의 상대에게 제대로 테스트도 거치지 않은 무기를 함부로 꺼내 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상황은 이 새로운 무기를 활용할 최적의 실전 테스트 기회였다.
“또 재생을···! 큭, 이 괴물이!”
“강기 수준의 공격이 아니면 상처도 낼 수 없는데, 그것조차 이리 빠르게 회복한다고?”
“저 검은 갑각은 피해라! 반탄력에 이쪽이 더 큰 피해를 본다!”
6미터를 훌쩍 넘는 압도적인 체격 차에서 나오는 폭력.
그것은 강시건 인간이건—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커헉!”
“끅!”
그에 버티지 못한 마교도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하며 할리에 맞서 대항하는 이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거기다 이번 기회에 그가 써먹고자 하는 건 비단 육체 변이뿐만이 아니었으니.
“···유효 타격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성장하고 있다고? 여기서 더?”
그의 주력이자 존재 이유 그 자체인 육체의 힘만이 아닌, 새로 얻은 기술마저 점점 숙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휴고보다 할리가 먼저 천마신공의 덕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 이름 높은 신공절학은 다르군.’
얼마 전, 천마의 시신을 연구하며 얻은 천마신공의 요결이 광제심결을 운용하는 데에 적잖이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마 양쪽 모두 거칠고 강한 기운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그것이 실전을 겪으며 재차 정련되자, 곧 기다려왔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개체가 반복된 훈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광제심결(改)」을 획득합니다.》
초월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육체 능력과 그걸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의 조화.
그 시너지 앞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던 이가 무너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