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52)
천마신교의 전 군사 천기마선 야율환은 고민에 빠졌다.
의식을 위해서는 용맥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곳은 이미 제법 힘 좀 쓴다 하는 세력들이 죄다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작전을 위해 외부로 나온 별동대 대부분의 지휘권을 확보한 지금, 원하기만 한다면 강제로 빼앗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용맥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의식의 효과는 배가된다. 하지만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일수록 전력도 더욱 강해지겠지.’
그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약한 곳을 노려 피해를 줄이는 대신 효력 저하를 감수하느냐, 욕심을 부려 전력을 쏟아붓고 의식의 극대화를 노리느냐.
용맥만 차지한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도 아니고 운용할 수 있는 자원과 시간 또한 한정된 이상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문제였다.
‘···아니지, 굳이 새로운 용맥을 찾을 필요가 있는가?’
그때 문득, 그의 머리에 한 장소가 스쳐 지나갔다.
따로 차지하고 있는 세력이 없어 전력을 소모할 필요도 없고, 그 규모만큼은 세계 제일이라 할 수 있는 곳 하나가 방치되어 있지 않던가?
“용심.”
이제는 완전히 폐허가 된 황궁 터가 자리한 북경.
마침 지금 그가 있는 곳과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지라 시간도 아낄 수 있었다.
‘거기다 지금은 완전히 저주받은 땅이 되어버린 탓에 외부에 노출될 염려도 덜 수 있겠지.’
현재는 중심의 핵이 강제로 뜯겨 나가며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으나, 한때 그곳은 대륙에서 가장 기운이 강성하던 성지였다.
지금이야 밑 빠진 독처럼 세상의 기운을 고갈시키는 중심지가 된 탓에 개미 한 마리 살지 못할 정도로 황폐해졌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난 외계의 신과 교신해 거래할 생각도 없다. 굳이 멀쩡한 용맥을 고집할 필요도 없지.’
그가 원하는 건 용의 아이들에게 깃든 용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하는 것.
일단 제단의 자격만 갖추고 있다면 지금은 효과가 반전된 용심에서 의식을 치르더라도 큰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을지도. 용심을 갈취당하며 기능을 잃은 세상의 중심에서 신이 안배한 용의 아이들을 취한다라···.’
주술적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인과가 또 어디 있으랴!
애초에 용의 아이들은 용심의 복원을 위해 탄생한 이들인 만큼, 그곳에서 의식을 벌인다면 효과는 더욱 배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건 기회였다.
그동안은 천마라는 존재의 그림자에 숨은 채 힘을 기르는 안전한 방법을 꾀하고 있었으나, 그 방법은 필요한 업을 쌓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해 단번에 격을 이룰 수만 있다면···.
“허허허, 이거 말년에 운이 따라주는구나. 천마가 죽었을 땐 그간의 노력들이 모두 허사가 되는 건가 싶었는데.”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야율환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짙은 주름과 함께 초승달처럼 접힌 눈가.
그 한가운데에 있는 검은 눈동자의 중심에, 파충류처럼 세로로 갈라진 샛노란 동공이 섬뜩한 빛을 발했다.
***
천마신교 개화궁 개인 연구실.
“천기마선. 용의 아이들만을 따로 한 자리에 모으고 있는 건가.”
새카맣게 물든 시신 한 구의 머리에서 손을 뗀 한스가 머리를 기울이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옆에는 이미 수십에 달하는 주검들이 검게 물든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이곳 신강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할리와 충돌했던 천마신교 소속의 무사들로, 집을 나갔던 이들이 「아바타 클라우드」를 거쳐 마침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비록 그게 그들이 바라던 형태는 아니었겠지만.
“쯧, 주제넘은 욕심을 품었군. 순순히 투항했으면 서로 편하고 좋았을 텐데.”
그가 품었을 생각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그와 같이 마도(魔道)의 술법을 익힌 이에게 용의 아이는 전설의 영약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천마에게 밀려 양보만 했을 텐데, 이렇게 혼자서 모두 독식할 기회가 왔으니 눈이 돌아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그래도 이상하긴 하군. 의식을 무사히 끝낸다고 해도 천마를 죽인 이 몸을 어쩌지 못하는 이상 무의미하다는 건 잘 알 텐데. 설마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건가?’
천기마선 야율환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다시 떠올려 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 특이사항은 없었다.
군사답게 굉장히 똑똑하고 술법적인 면에서도 마교 전체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성취가 높아, 요괴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을 때에도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 했었지.
“흐음, 용의 아이들을 취하고 나면 날 몰아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그냥 교주를 죽인 나를 따를 수 없다는 충성심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한동안 고민하던 한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지금 할 일이 잔뜩 쌓인 상황인데 귀찮은 문제까지 겹치니 문득 짜증이 솟구쳤던 것이다.
‘놈이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제갈혜미와 주강인을 포함한 용의 아이들을 되찾아 와야 한다. 운송을 맡은 놈들만 행선지를 알고 있었는지 저놈들은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하긴, 그 위치를 알았더라도 이미 장소를 바꿨겠군.’
정보를 수집할 창구가 제한된 강환계에선 굉장히 골치 아픈 문제였다.
아무리 그가 대단하다고 한들 아바타 몇을 이용하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올리비아와 유령체들이 있었으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다못해 이곳 세력들이 가진 정보망이라도 적극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면···. 음? 아니, 잠깐.’
그렇게 상념을 이어가던 한스가 순간 멈칫했다.
다른 세력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문득 자기 혼자 이렇게 골머리를 싸맬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걸 왜 나 혼자 고민하고 있었지? 용의 아이들과 용심에 관한 문제는 이곳 강환계의 일이잖아? 그럼 이쪽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지!’
물론 금오도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암중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그들만으론 한참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일단 다른 세력들도 몽땅 끌어들이자. 동참하는 수가 늘면 늘수록 일이 더 편해질 테니.’
지금까지 그들이 단독으로 고군분투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마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준비한 간계로 황가가 통째로 공중분해 되었으니 아무도 쉽게 믿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일 터.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그 경계의 대상인 마교는 자신이 이미 집어삼킨 상태이지 않은가?
물론 밖으로 나간 놈들까지 전부 정리한 건 아니라지만, 그들이 본산의 도움 없이 부릴 수 있는 수작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처럼 숨어 다닌다면 그럴 여유도 없을 테고.
“크크큭— 그래, 그럼 곧바로 시작해 볼까.”
아우테리카에 비하면 그가 강환계에 개입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보망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얻은 기반은 막 다져가는 단계였으며, 이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들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우선 금오도부터.’
그러나, 그에겐 그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 힘이 있었다.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
금오도가 처음부터 그 계획에 수긍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호루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뱉은 정보를 교차 검증한 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들은 결국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사태가 워낙 위중하니 그들도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휴고가 머물고 있는 융중산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빈도는 모산파에서 온 청관이라 합니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평소처럼 낡은 도복을 입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도사 청관.
그 갑작스러운 방문에 제갈세가 측에선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를 안으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엔 세가가 워낙 혼란스러웠기에 그냥 돌려보내려 했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도저히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제갈 소저와 그녀를 납치해 간 마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이니 잠깐만 시간을 내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술법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두 세력이긴 하지만, 거대 세가의 반열에 들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제갈세가와는 달리 모산파는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문파였다.
다른 거대 세력에 비해 조금 손색이 있을 뿐 무공 관련 부문도 그리 크게 부족하지 않은 제갈세가.
오로지 술법 쪽에만 매진하며 영역 활동보단 주술적 도움이 필요한 곳의 의뢰를 받아 인력을 파견하며 성장한 모산파.
당연히 겉으로 드러난 세력 차이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술법이라는 분야로 한정했을 때의 세간의 인식은 모산파가 살짝 더 위에 있었기에 제갈세가 측도 내심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모산파의 대표로 찾아온 청관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 혜미가··· 용의 아이라 불리는 이들이 용심을 재건하기 위한 제물로 태어났다는 말씀이시오?”
세가의 핵심 인물 몇몇이 자리한 가운데.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호원이 침중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입은 연 그는 물론이고 동석한 다른 이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오랜 세월 함께한 가족이 날 때부터 세상을 위해 희생될 것이라 정해져 있었다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자존심 문제도 있었다.
아무리 특기 분야가 다르다 해도, 자신들이 알아내지 못했던 걸 동종 업계의 경쟁자라 생각했던 이들이 먼저 알려줬는데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하지만 어릴 때부터 감성보다 이성이 중시되는 삶을 살아온 그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의논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아온 정보와 관련 자료들을 분석하고 머리를 맞댄 끝에 나온 결론은, 청관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
무엇보다 제갈혜미와 같은 증상을 겪던 소림사의 황손 또한 같은 날 마교의 습격으로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마교는 그렇게 납치한 이들을 개인의 힘을 키우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최근 천마의 경지가 급격하게 높아진 것 또한 이미 몇몇 용의 아이들을 제물로 바쳤기 때문인 것으로···.”
청관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제갈세가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건 단순히 그들의 가족인 제갈혜미의 안위만이 걸린 문제가 아니었다.
천마의 위용에 대해선 익히 전해 들었다.
마를 억제하는 불도(佛道)의 술법으로 도배되어 있는 소림사 한복판에서 신승의 한쪽 팔을 자르고, 뒤늦게 합류한 새로운 현경의 고수와 2대1의 싸움을 이어가면서도 시종일관 우세한 모습을 보였다지.
그런데 그런 그가 거기서 더 강해지기 위해 추가로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른다는 건.
심지어 거기에 필요한 희생양이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들이라는 것은—.
“···후우, 이건 우리끼리 해결할 문제가 아니군.”
용심 재건에 대한 것은 이후에 생각할 문제였다.
설령 나중에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마교의 행보만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고 봐야 했으니까.
“저도 그것 때문에 찾아온 겁니다. 제갈세가의 도움이 있다면 이 사실을 다른 주요 세력들에게 전파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까요.”
이 세상의 주류 신비는 무공이긴 하나 다른 세력들도 술법의 유용함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저 그것을 익히고 숙달하는 데 제약이 너무 많아 쉽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 인맥과 인프라를 모두 겸비한 제갈세가는 대륙 각지에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좋소.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아 바쁜 상황인데 아주 죽어나겠군.”
“대륙 각지에 퍼져 있는 저희 모산파의 도사들도 의식의 진행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중계를 맡아 준다면 거리에 따른 힘의 소모를 최대한 줄일 수 있겠지요.”
“훌륭하구려. 그럼 잘 부탁하오.”
장거리 통신을 이용한 정보 전달은 굉장히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지라 자주 사용되진 않지만, 여기서 모산파까지 손을 거들어 준다면 생각했던 것보단 수월하게 일을 끝마칠 수 있을 터.
그렇게 술법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두 조직의 협력을 바탕으로 대륙 각지의 영역을 지배하던 세력들에 하나둘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마교의 음모와 그들의 수괴인 천마의 위험성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의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
‘좋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군.’
천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아직 마교도들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만큼, 세인들의 위기감을 자극하고 그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데에 그만한 핑곗거리가 또 없었다.
천마가 소림사에서 보인 위용에 대해선 이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전 대륙의 이목이 집중되면 지금처럼 조용히 숨어 지낼 수만은 없을 거다. 결국 어디서든 종적이 드러나게 되겠지.’
물론 이렇게 대대적으로 정보를 퍼트린 이상, 그 소문을 들은 이들 중엔 엉뚱한 생각을 품는 자도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용의 아이들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기 위해 암계를 꾸미기 시작한 놈들이 적지 않을 터.
그건 결국 또 다른 비극을 불러오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으나···.
‘상관없다.’
한스는 그런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와서 용의 아이들 따위 어찌 되든 좋다고 외면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말 그대로, 이젠 정말 상관없어졌을 뿐.
방금 그에 대한 해답이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자— 일어나거라.”
낮게 깔린 한스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꿈틀—
그 소리에 맞춰 침대에 누운 인영이 몸을 움찔거렸다.
처음엔 간헐적으로 반응하다가 서서히 경련이라도 하듯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몸뚱이.
그러다 일순,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스스스—
다음 순간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그 존재가 한스 앞에 무릎 꿇고 공손히 조아리고 있었다.
흰자위 없이 새까맣게 빛나는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죽음의 주인께 영광을.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수많은 업을 집어삼킨 끝에 결국 자신마저 업에 삼켜진 천마.
그의 시신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언데드이자 번천회주라는 숙명의 대적을 노리고 벼려낸 비수.
가칭 ‘카르마 강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