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53)
초장거리 통신을 통해 대륙 전역으로 소식을 퍼뜨리는 작업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힘든 상황을 겪고 있음에도 제갈세가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도 있었으나, ‘모산파 도사’의 탈을 쓴 수많은 금오도의 요괴들이 각지로 흩어져 의식을 보조한 게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허— 설마 모산파가 이 정도였다니. 그간 우리가 최고라는 오만에 눈이 가려져 있었어.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구나.”
그에 경쟁자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게 된 제갈세가의 가주가 탄식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자신들을 채찍질하며 노력하게 될 테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 소식을 전한다고 다가 아니긴 하지.’
한 지역을 넘어가는 데만도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강환계의 교통 사정을 생각하면 이 일은 분명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건 고작 첫 단추를 꾀었을 뿐.
난관은 아직 수도 없이 많이 남아있었다.
소식을 전해 듣고도 허황된 사실이라며 믿지 않는 이들도 있고, 혹시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이일을 역으로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그 주체가 이름 높은 제갈세가인 데다 내용이 정(正), 사(邪), 군(軍)을 가리지 않은 만인의 주적인 마교에 대한 것이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대부분이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리라.
‘어쨌든 모든 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는 게 베스트이긴 하지만 설령 당장 믿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이미 목적은 달성했으니.’
지금은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다시 자신들의 영역을 순찰해 보고,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었을 때 그냥 넘기지 않고 한 번 더 유심히 살펴보는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다.
그 모든 게 숨어서 움직이는 놈들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서서히 숨통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될 터.
‘거기다 마교의 악명은 생각보다 대단하니까. 자신들에게 손해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라면 굳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필요도 없겠지.’
그리고 상황이 그 예상대로 흘러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결과—.
“산서성 고평 인근의 숲속에서 수상한 정황이 보고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다수의 인물이 숨어든 것 같다는 주민들의 신고로 그 지역을 관리하던 영검문이 수색에 나섰으나, 이렇다 할 흔적을 찾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고 하는데···.”
“강서성의 철괴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의 흔적을 발견했답니다. 어떤 집단이 야영한 흔적을 보고 추적에 나섰다가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도주하는 바람에 놓쳤다고···.”
“귀주의 귀양 개방 분타에서 야음을 틈타 움직인 병력을 봤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하라며···.”
대륙 각지에서 전해진 온갖 정보들이 제갈세가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넓은 공간을 바쁘게 오가며 온갖 자료를 정신없이 정리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미 훌륭한 중앙 컨트롤 타워 그 자체였다.
‘어우, 보기만 해도 머리가 핑핑 도네.’
슬쩍 옆으로 다가와 상황을 살피던 휴고가 혀를 내둘렀다.
여과 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의 진위를 가리고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내 분류하는 지난한 작업.
아무리 그의 스테이터스가 폭증하며 정신력과 지적 능력이 향상됐다 해도 저런 서류의 물결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평소 그의 다른 아바타들이 처리하는 업무는 대부분 유능한 부하 직원들의 손을 거쳐 깔끔하게 정리된 것뿐이었으니까.
“강서성에서 온 소식은 신빙성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동안 철저하게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던 놈들이 야영 흔적을 남겼다는 것도 그렇고, 또 그게 그저 그런 중소 사파인 철괴방이 추적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게···.”
“귀주 쪽 진위 파악이 끝났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인근 일대를 지배하는 군벌인 경친왕군이 군사를 움직인 정황이 있습니다. 아마 그쪽의 비밀 작전을 착각한 것으로···.”
그러나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 이들답게 제갈세가는 그렇게 들어온 정보들을 빠르게 분석해 옥석을 가렸다.
악의를 품고 일부러 훼방 놓으려는 듯한 거짓을 구분하고, 사소한 오해로 비롯된 헛소문을 거르며, 거리와 시기상 현실성이 없는 첩보를 미뤄두고, 조직의 이득을 위해 일방적으로 가공된 내용을 제외했다.
“산서성 쪽은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위치상으로도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데다, 뒷받침되는 증언 또한···.”
“아! 하북의 진주언가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지점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군요. 산서에서 하북으로 향하는 경로를 계산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 여러 과정을 거친 끝에 남은 정보가 천금과도 같은 가치를 가진 귀중한 데이터가 된 것도 당연한 일.
세가 내에서도 지모가 출중하기로 이름난 학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안건부터 하나둘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그렇게 몇 가지 이동 경로가 추려지고 그 추정 목적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으니.
그 보고서의 가장 윗줄에 적힌 지명을 본 휴고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북경이라.’
용심이 자리하던 옛 황궁의 터가 있는 곳.
상당히 의미 깊은 장소가 아닌가?
그 아래에 나열된 다른 지명들도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훌륭한데? 고작 며칠도 되지 않은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줄이야.’
그들이 어째서 그리 오랜 세월 드높은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약간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이거 탐나네.’
입맛을 다신 휴고가 눈을 반짝였다.
그야말로 어디에 써먹든 훌륭히 제 한몫 해낼 수 있는 인재들이지 않나!
능력 있는 아랫사람을 두었을 때 윗사람이 얼마나 편해질 수 있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유능한 부하들의 면면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지구의 진소란, 밴시 퀸 올리비아, 진혈의 뱀파이어 뮬로, 휴버트 상회의 디아나 등···.
그리고 그들의 옆에 제갈세가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기 시작했다.
“하 소협? 괜찮으시오?”
“···아! 죄송합니다. 잠깐 생각을 정리하느라···.”
그렇게 딴생각을 이어가던 휴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지금 그가 있는 장소는 세가의 중역들이 모여 분석 결과에 대해 회의하는 자리.
일단 잡생각은 치워두고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허어, 생각이 많아질 만도 하지 않습니까? 하필 북경이라니.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설마 그놈들이 거길 다시 찾아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때, 마찬가지로 보고서를 읽고 있던 모산파의 도사 청관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일개 식객에 불과한 휴고가 민감한 사안이 오가는 이런 자리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그 덕분이었다.
모산파의 대표인 그가 소림사에서의 맹활약에 대해 들었다는 핑계를 대며 함께해 달라 청하면서 합당한 명분이 생겼던 것이다.
‘뭐, 정작 청관은 이번에 임무를 받으면서 나에 대해 처음 들었겠지만.’
원래 인맥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또 굳이 그 점이 아니더라도 자격 자체는 충분하다 할 수 있었다.
그는 명실상부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
화경에 오른 이가 없는 제갈세가의 최고수와 동급이라 할 수 있는 강자였으니까.
‘물론 경지 내에서도 수준이 갈리고 경험치 차도 있으니 전투력까지 대등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초절정쯤 되면 한 지역을 대표하는 고수로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지.’
사실 처음부터 워낙 큰물에서 놀면서 대단한 이들과만 어울려서 그렇지, 고만고만한 군소 문파에서는 초절정은커녕 절정에 이른 이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거기다 그는 약관을 넘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 고수이지 않나.
그 창창한 미래를 생각하면 이런 대우 정도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아직 북경이라고 확실히 정해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곳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일세. 솔직히 의식의 장소로는 부정적이라고 본다만···. 으음, 그건 어떤 의식을 치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군.”
“그렇지요. 마교엔 역천을 행하는 술법이 많으니 말입니다.”
그 와중에도 참석자들의 회의는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공통된 의견이 있었으니.
바로 어떻게든 놈들이 의식을 완성하기 전에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 일이 많군요. 후보지로 정찰대를 보내 확실한 장소도 찾아야 하고, 놈들과 싸우고 인질을 구하려면 다른 이들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전장이 북경이라면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최정예들로만 구성되어야겠지요. 거기다 천마를 상대하려면 현경의 고수가 적어도 셋은 있어야 할 텐데···.”
“첫 번째 단계부터 문제군. 놈들이 정찰을 나간 이들을 살려 보낼 리가 없으니. 거기다 마교엔 천마만 있는 것도 아니지. 귀검마제를 비롯한 고수들과 강시까지 생각하면···.”
대화를 주고받던 이들이 일제히 말문을 닫았다.
그런 그들의 표정은 마주하게 된 암담한 현실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그때.
“제가 북경으로 가겠습니다.”
젊은 청년의 당당한 목소리가 회의장 안에 울려 퍼졌다.
여러 의견이 오가는 동안 조용히 상황을 살피던 이— 휴고였다.
“이 일은 시간이 생명입니다. 최대한 빨리 정찰을 마치고 위치가 확정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 어떤 상황에서도 이 한 몸 빼낼 자신이 있으니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가장 확률이 높고 위험한 장소로 자진해서 들어가겠다는 그 말에 한동안 주변의 만류가 이어졌다.
단순히 전투에 참여하는 것과 적이 어떤 대비를 해 놨을지도 모를 소굴에 혼자 잠입하는 것은 상황이 달랐다.
하물며 그 장소는 기를 운용하기 극악하기로 악명 높은 마경이 아닌가?
하지만 그 만류도 단호하게 나오는 휴고의 의지에 오래가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다.
사실 마음이 급하기론 세가의 여식이 제물로 잡혀있는 그들이 더하지 않겠나.
그런 상황에서 휴고 정도 되는 고수가 저렇게 자발적으로 먼저 나서주고 있었으니, 그저 미안하면서도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전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인질들의 상황도 살펴보고 오도록 하지요. 그동안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세가의 총력을 기울일 터이니 이쪽은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야말로 부디 몸 조심히 돌아오도록 하게. 자네는 향후 무림의 대들보가 될 미래이니.”
더는 지체할 시간도 없다는 듯, 태상가주 제갈군악의 걱정 어린 덕담을 끝으로 휴고는 그 길로 곧바로 짐을 싸서 세가를 나섰다.
파파팟—
비장한 분위기를 풍기며 경공을 펼쳐 융중산을 내딛는 발걸음.
하지만 그런 진중함은 산을 벗어난 순간부터 점차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몇 시진이 지난 후엔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가벼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참에 밖에서 무공이나 가다듬어야겠다. 역시 기술을 숙련시키는 덴 실전을 겪는 게 최고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태평한 생각과 함께 나직한 콧노래가 이어졌다.
당연하지만, 진짜로 자신이 그 마경에 먼저 방문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디 보자. 계속 지금 속도로 이동하면··· 대충 일주일 정도 걸리려나? 멀기는 더럽게 머네. 뭐, 그 정도면 도착할 때쯤엔 정리까지 완벽하게 끝나 있겠지.’
그도 그럴 것이— 그 목표물의 위치가 밝혀지길 오매불망 기다리던 이는 따로 있었으니까.
누구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확실하며, 누구보다 깨끗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인선.
도망간 세입자들을 지옥 끝까지 쫓아가 잡아 올 새로운 집주인이.
***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창밖의 푸른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제갈혜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화창하기 그지없었다.
‘설마 내가 이곳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북경의 황궁 터.
이곳은 유명한 마경이었다.
체내의 기를 빨아들여 무인이고 술법사고 온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평범한 사람은 얼마간 머무는 것만으로 서서히 말라가다가 죽어버리는 죽음의 땅.
마교도들이 어째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건지는 이미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인신공양···. 내가 제물이라고···.’
뛰어난 오성을 지닌 그녀는 한동안 마교도들의 포로로 지내면서 그들이 어째서 자신을 납치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 건지 등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애초에 그들도 딱히 숨기려는 마음이 없기도 했고.
‘하긴, 도망갈 수도 없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황궁 터 인근의 일인 객실 안.
주변의 적대적 환경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을 뿐 그 외에는 행동을 제약하는 어떤 수단도 없었지만, 그녀는 물론 함께 잡혀 온 그 누구도 도망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아마 한 발짝 내딛는 순간에 곧바로 제압당하겠지. 그 후엔 처우가 더욱 나빠질 테고.’
눈에 보이는 마교도들도 충분히 많았으나, 그녀가 인지하지 못한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자신의 주변에도 득실득실하지 않을까?
“하아.”
그녀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 몇 번째인지 세는 것조차 포기할 정도로 일상이나 다름없어진 습관이었다.
“···아, 맞다. 운동해야 하는데.”
그때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누군가와 했던 약속이 스치고 지나갔다.
함께한 시간은 가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았지만, 어째선지 이렇게 혼자 있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는 어떤 이와의 약속.
-“전 여기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을 테니까, 하 공자가 대신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세요. 약속이에요?”
그것 때문에 마교도들에게 잡히고 나서도 한동안은 꾸준히 운동하며 마음을 다잡았으나, 그 시간이 길어지며 이젠 그 의지도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어제까진 습관적으로 어찌어찌 끝마칠 수 있었는데···.
‘···상관없나. 어차피 이젠 이야기를 듣지도 못할 텐데.’
미적미적 일어나던 그녀가 다시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동안은 끝까지 희망을 품고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였다.
바야흐로 진짜 끝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였으니.
‘아,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정도는 더 보고 싶었는···.’
그렇게 멍하니 상념을 이어가던 순간.
“어?”
그녀의 입에서 문득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신을 놓고 있던 사이에 일어난 어떤 변화를 뒤늦게 인식하고서.
‘뭐야, 저게?’
그녀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쿠르르릉—
방금까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던 하늘.
그것이 어느새 새카만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를 암시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