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55)
마교도들 사이에서 동요가 번지기 시작했다.
“···교주님?”
“혹시 가짜인 건··· 아니, 이 기운은 틀림없이 교주님의 천마신공인데···.”
“정말 살아 계셨던 건가? 그럼 군사께서 거짓말을 하셨다고?”
그들이 천마신교 본산과의 연락을 끊고 이렇게 군사를 따라 움직이게 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나?
교주인 천마를 살해하고 그 자리를 빼앗은 적에게 더 이상 놀아나지 않기 위해, 그들을 이끌던 주군의 복수를 하고 교를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 대의명분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과 마주하자, 갑작스러운 전쟁 속에서도 애써 침착을 유지하던 이들까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까진 그 영향이 전장 일부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곧 무리 전체로 확산되어 버릴 터.
“아니, 교주가 아니다.”
그 상황에서 나직이 흘러나온 노인의 말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샛노란 파충류의 눈으로 가만히 천마를 바라보던 군사 야율환.
그가 확신을 담아 입을 열었다.
“···강시인가? 허 참, 대단하군. 자아를 가진 건 물론 생전의 기운을 흉내 내며 산 자인 척하는 강시라니. 허허헛.”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린 그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자신도 잠깐 당황하긴 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이상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 마왕이라는 자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기로 가리고 있을 뿐, 산 자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죽음의 기운이 그 내면에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을.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보고 강시라니. 아무래도 군사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군.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이해는 한다만.”
“호오, 그러니까 자기가 천마 본인이시다?”
“보면 모르겠나? 쯧, 노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어.”
“흐음— 역시 기억은 온전하지 못한 것 같군. 보아하니 어디서 긁어모은 정보들로 교주의 흉내라도 내고 싶었던 모양인데, 말단 무사면 모를까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우리한텐 소용이 없을 걸세.”
“······.”
그 말대로.
조금 전까지 혼란스러워하던 마교도들도 어느새 가늘게 뜬 눈으로 가만히 천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매섭게 안광을 번뜩이며.
‘···이런,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인가.’
그렇게 일변한 주위의 반응에 한스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천마 본인을 비롯해 다양한 마교도들에게서 추출한 기억을 주입해 줬기에 딴엔 나름 잘 흉내 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그 정도로는 측근이라고 할 만한 이들을 속이기엔 턱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죽었던 이를 원래의 상태 그대로 되살리는 건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애초에 언데드란 인간일 적의 망념이 밀집하고 변질된 존재.
신성을 깨우치며 그 육체는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었지만, 현경의 극에 달한 데다 번천회주의 사도이기까지 했던 영혼과 자아까지 구현하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쯧, 조금 편하게 가나 했더니.”
마침내 결론이 내려졌는지 서서히 적의가 치솟기 시작한 마교도들을 내려다본 한스가 혀를 찼다.
저들을 최대한 멀쩡한 상태로 거두고 싶었건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 과한 욕심이었던 듯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본격적인 실력 행사뿐.
스르릉—
그런 한스의 의지가 전해짐과 동시에.
앞으로 나섰던 배우, 천마 강시가 허리춤에 패용하고 있던 애검을 뽑아 들었다.
“어쩔 수 없군. 심마에 들어 미혹에 빠진 수하들을 계도하는 것도 교주로서의 의무겠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열연을 계속해서 이어가면서.
‘뭐,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저들에게 인정받는 게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한스가 천마신교를 지배하게 된 과정만 봐도 그렇지 않나.
그곳에 있던 이들이 그가 천마였기에 따른 것이었던가?
아니,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얄팍한 명분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무력.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이룰 수 있는 압도적인 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인정하게 만들면 그만.
자신이 저 강시를 보고 천마라 한다면 그 순간부터 저건 누가 뭐라 해도 천마가 되는 것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다소간의 전력 손실은 감수해야겠지만, 이쪽엔 충분히 그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고오오오—
천마의 몸에서 새카만 기운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천마신교 교주를 상징하는 독문 무공인 천마신공에서 비롯된 기세였으나, 생전 그가 사용하던 내공과는 그 성질이 조금 달랐다.
이전보다 더욱 어둡고 음산한, 죽음의 기운이 물씬 담긴 파괴적인 힘이었으니.
거기다 그의 무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부작용이 있는 대신 무공을 비롯해 전투에 관한 모든 행위를 보조하는 「천살성」.
모종의 방법으로 활성화된 그 고유스킬이 자아가 변질되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역량의 저하를 막고, 오히려 육체에 깃든 모든 가능성을 극한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 불꽃과도 같은 강기를 전신에 피워 올린 천마가 살벌하게 미소 지으며 검을 까닥였다.
“외적을 상대하라고 기른 맹수들이 주인을 몰라보고 물려고 드니 매를 드는 수밖에.”
콰아아—
거센 폭풍과 함께 칼날 같은 기세가 사방을 난도질하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단순히 기운을 일으킨 것만으로 일어난 현상.
그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애꾸눈의 노인, 귀검마제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군사, 저게 뭔지 알겠나?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군. 아무리 교주가 입신을 눈앞에 둔 상태였다고 해도 결국 강시일 터인데···. 이건 마치 교주가 살아 돌아온 것 같지 않은가?”
“허어, 전혀 감이 오지 않는구려. 대체 어떤 이계의 비술을 사용했기에 저런 게 가능한 건지. 역량 저하 없이 생전의 힘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자(死者)의 군대라. 허! ···저 힘이 내게 있었다면···.”
“군사?”
중간에 끊긴 말에 귀검마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지만 야율환의 입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저 묘한 눈으로 천마와 한스를 번갈아 가며 바라볼 뿐.
“잡담은 거기까지. 앞으로 남은 대화는—.”
그런 그들의 문답을 끊듯 천마의 나직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 직후,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검은 강기로 감싸인 검이 천천히 하늘로 향하고.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다음에 하도록.”
마치 하늘을 찌를 듯 십여 미터 높이로 치솟은 강기가 그대로 수직으로 내리쳐졌다.
콰아아앙—!
지진이라도 난 듯 요란하게 흔들리며 굉음과 함께 갈라지는 대지.
그것은, 양측이 전력이 맞부딪치는 본격적인 전쟁의 신호탄이었다.
***
쿠구구궁—
일보(一步).
일대의 대기가 짓눌리며 대항하던 이들이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스아악—!
일검(一劍).
앞을 막아선 자들이 공간과 함께 갈라지며 비릿한 선혈이 비산했다.
콰아앙!
일수(一手).
간신히 응수한 애꾸눈의 노인이 신음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갔다.
그 뒤를 잇듯 혈마 강시를 비롯한 다수의 천강시들이 달려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간신히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전부.
오히려 그들이 이탈하면서 생긴 전력의 공백에 다른 곳의 전장이 속수무책으로 밀리길 반복했으니.
그 모든 게 천마의 탈을 뒤집어쓴 강시가 새로이 참전하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이건 글렀군.’
그 광경에 천기마선 야율환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천마는 자타공인 천하제일이었던 극강의 고수.
그런 이가 전혀 역량의 저하 없이··· 아니, 어쩌면 살상력만큼은 더욱 강해진 채로 등장했으니, 어찌 보면 지금 이 상황 또한 미리 예견되어 있었다 볼 수 있으리라.
“크크큭— 아직도 여유가 있나 보군? 이 몸을 앞두고 딴생각을 다 하고 말이야.”
물론 지금은 그렇게 남일 보듯 할 때가 아니었다.
당장 인간의 형상을 갖춘 죽음이 그의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 상태였으니.
“허허허, 여유는 아닐세. 그저 어찌하면 지금 상황을 타개하고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뿐이지. 하지만··· 영 답이 보이지 않는군.”
“이 몸은 관대하다. 그리고 자기 주제를 잘 파악하는 인재를 아주 좋아하지. 지금이라도 납작 엎드린다면 봐 주지 못할 것도 없다만?”
“오! 그것참 솔깃한 제안이긴 한데···.”
난장판이 된 주변 전장에서 한 발짝 떨어진 듯, 묘하게 평온한 상황 속에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
하지만 겉보기만큼 그들의 상황은 그리 평화롭지 못했다.
파지직— 파직—!
사방을 잠식해 들어오는 죽음의 기운에 맞서듯 공간의 경계선에서 연신 스파크가 튀었다.
그러나 그 경계가 눈에 띄게 밀리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음에 잠식되어 버릴 게 뻔했다.
“그래도 그건 어려울 것 같군. 아무래도 내 태생이 태생인지라 남이 내 위에 있는 걸 참지 못할 것 같거든.”
그때, 허허롭게 웃던 야율환의 노란 눈동자가 기묘하게 번들거렸다.
그것은 결코 결과에 승복한 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호오? 그런 것 치곤 꽤 오랜 세월 천마를 섬기며 살아온 모양이다만?”
“아아— 그거 말인가? 뭐, 그쯤이야 못할 것도 없지.”
노인의 몸속에 있던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몸을 구속하던 제약을 벗어던지듯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막대한 에너지.
“그 ‘외계의 신격’의 비호를 받는 그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존재를 가릴 수 있는 존재였거든. 그의 곁에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업을 쌓을 수 있기도 했고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말을 잇는 그의 모습에선 이전의 신선 같던 풍모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다 이미 상정했던 수준을 한참 넘어서 비대하게 팽창하고 있는 기운까지.
“여차할 때 최고의 먹이가 될 비상식량인데, 보다 양질의 먹이를 위해선 그만한 노력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히죽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탐욕과 식욕이 한데 섞여 뒤틀린 광기가 일렁였다.
그에 한스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이 강환계의 최종 보스인 천마는 이미 진즉에 처리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간 보스인 줄 알았던 놈이 알고 보니 히든 보스였다고?’
한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용심을 뽑아간 번천회주와 정착자 출신의 사도로서 이 세상을 집어삼키려던 천마.
그들의 의도는 명백했다.
이 세상을 식민지 삼아 신격을 더욱 끌어올릴 심산이었겠지.
‘···그런데 설마 훨씬 오래전부터 그들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던 놈이 있었을 줄이야.’
수십 년간 천마신교의 군사로서 교의 모든 활동을 총괄하며 천마의 바로 옆에서 그의 성장을 보조하던 정체불명의 요괴— 천기마선 야율환.
대체 얼마나 스케일이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이 살아가던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천마가 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도우면서 말이다.
“물론 그쪽이 먼저 선수를 치는 바람에 내 오랜 계획이 틀어져 버렸지만 말이지.”
“프흐흣— 그거 참 미안하게 됐군.”
“그것도 모자라 여기까지 쫓아와서 이렇게 내 일을 방해하고 있는데···. 내가 그쪽을 따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흐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굴복할 생각이 없으니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
“허허허,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태연하게 답하는 야율환의 모습이 서서히 뒤틀리며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입만은 끝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수단을 가릴 순 없게 되었으니.”
이윽고 인간의 형상을 완전히 잃고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한 육체.
그것은 순식간에 십여 미터를 넘어 더욱 위까지 치솟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그에 살짝 뒤로 물러난 한스가 가늘게 뜬 눈으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공격은 안 먹히는군.’
상대가 변신할 때마다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 평소의 습관대로 냅다 죽음의 마력을 때려 박아봤는데, 이번엔 뭔가 기묘한 이치가 작용하는 것처럼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 세계의 주신이 용신이라더니 그쪽과 관련된 어떤 세계의 법칙이라도 설정되어 있는 모양.
[굳이 이런 상황에서까지 정체를 숨기려 아등바등할 필요는 없을 터.]그러나 그것도 극히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변신을 마친 존재가 위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늘로 뒤덮인 기다란 몸체와 부리부리한 눈, 날카로운 이빨과 위로 치솟은 뿔까지.
그것은 한스가 익히 짐작했던 대로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면···.
“···히드라였나? 아니, 육두룡(六頭龍)이라고 해야겠군.”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그 머리통의 개수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그냥 머리가 여섯 개인 것도 아니었다.
적(赤), 청(靑), 백(白), 흑(黑), 황(黃)—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녹색의 머리까지.
심지어 그 여섯 머리가 모두 제각기 여의주까지 물고 있었다.
‘분명 용은 여의주를 하나씩밖에 가지지 못한다고 했는데···.’
호루스를 통해 접했던 정보의 괴리감에 한스가 눈살을 찌푸릴 무렵.
갑작스럽게 전장 한복판에 등장한 거대한 괴룡(怪龍)의 등장에 치열하게 벌어지던 싸움이 일시에 멈춰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아니, 오히려 잘 됐다. 이참에 네놈을 먹어 치우고 그 이계의 비술까지 빼앗아 주마! 내게 그 힘이 더해진다면 더는 몸을 사릴 필요도 없어질 테니!]콰르르릉—!
육두룡의 포효에 휘몰아치는 폭풍과 함께 거세게 흔들리는 대기.
강환계의 진정한 히든 보스가 등장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