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60)
서울 교외에 자리한 정원 딸린 3층 주택.
그 면적부터 규모까지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고급 저택이긴 했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런 주거지는 그리 선호 받는 편이 아니었다.
일단 번화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서울 시내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디언 등의 도움을 받기 불리하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아무리 최근 들어 한국의 치안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범죄율이 제로라는 뜻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을 노리는 대규모 테러 같은 것에 노출될 위험이 적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원래 뉴스에 보도되는 규모의 사건보다는 자잘한 경범죄들이 더 일상에 가까운 법.
특히 외부로 노출되는 일이 극히 드문 도둑들에게 그런 주거지는 말 그대로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저곳이로군.’
그래서 저런 입지의 주거지를 이용하는 경우는 대개 둘 중 하나였다.
집주인이 스스로 안전과 재산을 지킬 자신이 있는 수준의 각성자거나, 아니면 그런 이들을 고용할 수 있는 자본과 권력이 있거나.
뭐,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저 운이 좋기만을 기대하며 싼값에 들어와 버티는 경우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위험성만 제외하면 일단 가성비적인 면에서는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과연 저곳은 어느 쪽일까?’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넓은 정원과 그 한가운데에 고즈넉하게 서 있는 3층 주택.
최근 뒷세계에서 암암리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자칭 ‘대도’가 망원경을 통해 목표로 삼은 장소를 관찰하며 입술을 핥았다.
사실 은밀함이 최고의 미덕인 도둑이 명성을 가졌다는 시점부터 자격 미달이라 할 수 있었지만, 신세대 도둑인 그는 그것이 고리타분한 편견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괴도의 이야기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지 않던가?
‘결국 내 진짜 정체만 들키지 않는다면 되는 거 아냐?’
그리고 그는 그쪽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세계 진입 초기.
그가 가진 고유스킬을 눈여겨본 스승에게 거둬져 모든 능력을 전수받은 이후, 지구로 귀환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들키지 않으며 그야말로 청출어람 그 자체인 행보를 보여 왔으니.
‘그때의 스릴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아니, 그것보다 더한···!’
그런 그에게 온갖 세계의 신비가 교차하는 이 지구는 피 끓는 승부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물론 정말 최고 난이도를 원한다면 귀환자 협회나 청와대 같은 곳으로 가면 되겠지만, 솔직히 바로 그런 곳에 도전하는 건 조금 쫄리는 게 사실이었다.
‘순차적으로 가자, 순차적으로. 일단 다른 세계의 방식에 충분히 익숙해지고 나서···.’
그렇게 지금까지 턴 고급 저택만 물경 두 자릿수.
그가 귀환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부지런히 움직인 셈이었다.
‘하회탈이고 팬텀이고 알 게 뭐야?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줄도 모를 텐데 어떻게 잡을 건데? 이능관리국과 협회, 암흑가의 혈맹도 내 존재를 최근에서야 눈치채기 시작한 판에.’
자신은 그간 실력이 없어 잡힌 피라미들과는 다르다.
설령 그 명성이 자자한 괴물들이 대놓고 자길 추적해 온다고 해도 충분히 도주할 자신이 있었다.
‘그럼 이번 사냥터는 어떠려나. 어디 실력 좀 볼까?’
그런 자신감 속에 그는 자신의 성명절기인 스킬, 「귀신 걸음」을 사용해 조용히 저택으로 접근했다.
이미 다른 스킬들도 한꺼번에 발동하며 겉모습은 물론 존재감까지 완벽하게 지워진 채로.
지금 이 상태라면 어지간한 각성자는 아마 코앞에서 탭댄스를 추며 지나가더라도 그의 기척을 감지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대도는 순조롭게 저택의 담벼락에 접근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어쩐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뭐지?’
등골을 자르르 울리며 본능을 자극하는 위기감.
아직 미숙하던 시절, 채 기술이 숙달되기도 전에 스승의 조언도 무시하며 고유스킬만 믿고 나섰다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그때 뒤따라온 스승이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터.
‘쯧.’
그와 동시에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의 자신은 그때 그 철부지였던 때와는 다르다.
비록 그가 제대로 물이 오르기도 전에 스승이 은퇴하며 직접적인 비교는 할 수 없었지만, 이후의 행보만 따져 봐도 기술은 물론 경험까지 이미 그를 능가한 지 오래지 않던가?
‘그래, 언제까지 쉬운 곳만 털며 으스댈 수는 없지.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됐어.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를 넘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거다.’
물론 이 위기감을 무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감지 능력과 마도구까지 총동원해 담벼락 너머의 상황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과연, 어마어마한 보안 결계로군. 그것도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어. 이게 위화감의 원인인가?’
이 정도 수준의 보안이면 지금까지 중에서도 최상급.
어쩌면 정부 청사와 비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교외 지역에 자리한 일개 주택의 방비가 이 정도라···.’
그에 그의 내면에 호기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이만한 방어 설비를 구축할 수 있을 정도면 정말 어지간히 거물이 개입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것도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이렇게까지 대비를 해뒀겠지.
‘비자금 은닉? 아니면 애인이라도 숨겨둔 건가? 아니, 어쩌면 더 흉악한 범죄 현장을 감추려는 것일 수도 있겠군. 마약? 인신매매? 장기밀매?’
그의 머릿속에 온갖 위험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어쩐지 여기에 얽히면 상당히 피곤해지리라는 직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게 좋을 테지만···.’
잠깐 감았다가 뜬 그의 눈에 묘한 결의가 어렸다.
이건 갈림길이었다.
그저 널리고 널린 좀도둑으로 남느냐,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던 세기의 괴도가 되느냐.
그리고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물론 저 안에 있는 설비들이 위험하긴 하나 이미 밝혀진 신비에는 한계가 있는 법.
조금 힘들기야 하겠지만 지금 정도의 수준으로는 그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가자!’
그는 자신의 고유스킬 「웜홀」을 발동했다.
모든 방어를 무시하고 공간에 통로를 뚫을 수 있는 능력.
비록 그 유효거리가 그리 길진 않으나, 침투는 물론 도주에도 최적화된 그의 생명줄이었다.
‘안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그 비밀을 낱낱이 털어주마!’
그렇게 대도는 자신만만하게 한 걸음 내디뎌 저택 내부로 진입했고.
“······?”
그대로 정원에 설치된 진법에 갇혀버렸다.
‘어?’
대수림이 이러할까.
울창한 수풀과 족히 십여 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눈을 어지럽혔다.
“···뭐야 이건, 어떻게?”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육성이 터져 나왔다.
분명 보안을 속이고 정원을 피해 저택 내부로 진입을 시도했다.
거리 계산은 완벽했으며 그 과정에서 별다른 이상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원인은 하나뿐.
‘미친! 내 「웜홀」마저 무시하는 수준의 공간 왜곡? 아니, 그건 밖에서도 감지하지 못했는데···!’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리는 가운데, 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사전에 파악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걸.
그리고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자만에 빠져 함정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걸.
파지직!
재차 「웜홀」을 사용해 봤지만 허공에 새하얀 스파크만 튀길 뿐, 몇 번이고 시도해 봐도 통로는 생성되지 않았다.
‘큭, 이건··· 신성력? 이게 함정의 겉을 감싸고 있었던 건가!’
최후의 수단이 막혀버렸으니 어떻게든 이 안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하지만 바람을 타고 도약해 나무 꼭대기에 올라섰음에도 눈에 보이는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수해(樹海)뿐이었다.
어마어마한 수준의 대결계.
이만한 결계를 구축하려면 최소한 대마법사, 그것도 초월지경에 오른 이 정도는 되어야 했다.
아니, 신성력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어쩌면 둘 이상의 초월자가 손을 잡았을지도···.
‘고작 주택 정원에 이 정도 수준의 결계라고? 여기가 대체 뭐 하는 곳이기에! 어디 국가 전복을 꿈꾸는 비밀 조직의 본거지라도 되는 건가?’
따지고 보면 비슷했다.
세계 정복을 노리는 집단과 대항하는 세력의 거처이기는 했으니.
물론 소속되어 있는 정식 인원은 오직 한 명뿐이지만.
대도는 자신의 명성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빠르게 움직이며 결계의 활로를 찾았다.
아무리 공들인 함정이라 해도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법.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더라도 한없이 완벽에 가까운 것은 있다는 것만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하아— 하아—.”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에 빨려 나가는 것처럼 체력과 기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일주일 밤낮을 새도 멀쩡한 몸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하, 하하하! 미친··· 어이가 없네.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한국에 이딴 마경을 만들어 놓은 거냐···!”
평화롭게 자리를 지키던 식물이 갑자기 살아 움직이며 공격해 온다.
불시에 발동한 마법 함정에 단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고.
쉬지 않고 추적해 오는 피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짙은 피비린내와 함께 숨통을 조여 왔으며.
간신히 숨을 돌리려고 해도 공간에 가득한 저주와 악몽 때문에 수면은커녕 휴식조차 온전히 취할 수 없었다.
탈출구를 찾기는커녕 당장 버티는 것만도 버겁다.
아니, 솔직히 이제 한계였다.
하루 가까이 버틴 것도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X발, 개 같은···. 내가 이런 곳에서···.”
털썩—
서서히 흐려지는 정신 속.
그는 짙은 후회 속에서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들어온 곳은 적당히 어려운 수준의 레벨업용 던전이 아니라.
초고레벨 고인물들이 작정하고 디자인한 사상 최악의 마굴이라는 것을.
***
“음, 끝났나?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이번에 들어온 녀석은 제법 실력이 있는데?”
나는 서서히 희미해지는 침입자의 반응에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결계 내부에 탈진해 빈사 상태가 된 한 사내가 피로 이루어진 혈귀, 블러드 스폰(Blood Spawn)들에게 포박당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흐음··· 저 녀석은 어떻게 할까? 제법 쓸 만해 보이는데.’
저 정도면 단순한 좀도둑 수준은 한참 넘어섰다.
무력 쪽은 잘 모르겠지만 잠입 능력에 한정했을 때, 철저한 준비와 대상의 방심에 더해 약간의 행운까지 따라준다면 잠시나마 초월자까지 속여 넘길 수 있을지도?
‘평소처럼 그냥 죽이기엔 아깝단 말이지.’
이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으나 그때마다 내 선택은 똑같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심문 과정을 거친 후, 그 행적에 대해 아는 배후 조직과 관련자들까지 깨끗이 정리하는 것.
범죄 예정지까지 공유하는 이들 중 무고한 이는 없었기에 그 과정에서 망설임은 조금도 없었다.
‘정말 무고하다면 기억에 손을 보는 정도로 넘어갔겠지만.’
그러던 와중 사내가 소지하고 있던 마도구 몇 개가 문득 시야에 들어왔다.
안전성 검사를 위해 아공간 주머니 속에서 줄줄이 꺼내어지는 물품들 속에 섞인 그것은 확실히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판 것들이군.”
정확히 말하자면 휴버트 상회를 통해 구입하고 혈맹을 통해 팔아치웠던 마도구 중 일부였다.
물론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안정적인 마도구 수급은 폭발적인 수요에 힘입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덕분에 그 수혜를 입은 휴버트 상회와 혈맹 양측 모두 지금의 위치까지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으니까.
혈맹이 음지의 세력임에도 한국의 밤을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온건한 노선에 더해진 마도구 거래의 콩고물 덕분이었다.
그렇게 미리 기름칠하지 않았으면 아무리 협조적으로 나왔더라도 온갖 제재를 맞고 세력이 위축되는 일은 피하기 힘들었을 터.
‘···그래, 혈맹에 보내면 되겠군. 흡혈귀로 만들어 종속시키고 이것저것 금제까지 걸어두면 되겠지.’
지구에서의 흡혈귀화(化)는 비효율적일 정도로 막대한 힘의 소모가 따르지만, 저 정도 인재라면 그 정도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사실 그런 것 정도야 정신 오염 없이 마음껏 혈액을 수급할 수 있는 하인즈 2세에게는 별것도 아닌 제약이기도 했으니.
“좋아, 그럼 그 문제는 됐고.”
감히 자신의 땅을 침범한 침입자에 대한 처분을 결정지은 직후.
나는 다른 곳들의 시야를 다시 한번 둘러보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좋아,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네.’
강환계의 상황은 딱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모두가 지금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복잡한 수를 쓸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이건 강환계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문제니까 말이지.’
끝까지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얼마 전 일어난 일을 계기로 그런 반응도 완전히 뒤집어졌다.
북경의 하늘을 뒤덮었던 짙은 마기가 섞인 먹구름.
그것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하북성 전체에서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했고, 더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낄 수 있을 만큼 패도적이었다.
그 사실이 정보원들을 통해서, 인맥을 통해서, 그리고 북경을 예의 주시하던 금오도의 술사들이 남긴 영상으로까지 퍼지면서 모두의 위기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이후 순식간에 합치된 의견을 조율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강한 소수 정예를 한데 끌어모아 북경의 마교도들을 친다.’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은 소림사에서도 외팔의 신승이 직접 출전한 상황.
전 무림이 이 사태에 대해 알고 있는 지금, 끝까지 나서지 않고 버틴다면 정(正), 사(邪), 군(軍)을 막론하고 그 명분과 체면에서 큰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것들보단 실리를 챙기려고 마지막까지 소극적으로 나오는 놈들도 있겠지만.’
그놈들은 모든 일이 수습되고 나면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무림 연합의 손에 의해서든, 아니면 내 손에 의해서든.
“남은 건 시간인가.”
차근차근 진척되어 가는 계획.
그동안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턱— 후두둑—
분주한 손짓에 따라 무언가가 하나둘 테이블 위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물건들.
‘어디 한번 제대로 해 보자고.’
「탐식의 권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준비한.
아우테리카와 강환계는 물론 지구에서 구한 그 외 다양한 세계의 영약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