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61)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은 나무 상자를 열어 그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딱 반지 상자만 한 크기의 갑이 열리는 순간 방 안에 가득 퍼지는 청아하면서도 알싸한 향기.
맡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 예사롭지 않은 향은 종이에 감싸인 채 내부에 보관된 둥그런 물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그 유명한 소림사의 소환단(小還丹)이란 말이지?’
킁킁—
나는 저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리며 그 향기를 음미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전신의 노폐물이 씻겨나가며 활력이 샘솟는 듯한 상쾌함이 솟구쳤다.
그렇게 그것을 충분히 만끽한 나는 얌전히 갑의 뚜껑을 닫으며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이 소환단은 소림사의 방장과 대면했던 할리가 감사의 표시라며 선물 받은 물건이었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그가 시기적절하게 개입하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위험할 뻔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일.
물론 과거였다면 소환단이 아니라 대환단(大還丹)을 받기에도 충분한 일이었으나, 영약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지난 이십여 년간 꾸준히 감소한 자연산 영약의 약효 때문에 연단술(鍊丹術) 전반이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현재는 대환단을 비롯한 최상위권 영단의 제조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지금 소환단을 만들기 위해선 과거 대환단 수준의 재료와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고, 그런 만큼 작금 소림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영약은 소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 소림사에서도 이걸 내주면서 상당히 무리했겠지.’
그것 외에도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각종 혜택과 대우를 추가로 약속했으니, 사실상 소림사에서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내비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천마를 상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할리의 호의를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일 터.
‘물론 그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 성에 차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소환단이 든 갑을 내려놓고 그 옆에 놓인, 고풍스러운 문양이 양각된 갑을 집어 들고 그 뚜껑을 열었다.
화아아—
그 순간.
주변 풍경이 변화했다.
다소 차갑게까지 느껴졌던 현대 인테리어에서 햇볕이 내리쬐는 화창한 봄날의 나무 그늘 아래로.
아니, 추수를 앞둔 논밭인가? 어쩌면 폭포수가 흐르는 여름의 계곡일지도 모르겠다.
‘와, 이거 대단한데?’
하지만 곧 「명경지수」가 발동하며 냉정을 찾은 나는 그것이 찰나의 착시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혀를 내둘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우주를 대면한 만화 속 등장인물의 과장된 연출처럼, 고작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뇌가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그 안에 깃든 에너지가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과연, 이게 바로 진짜 대환단···.’
명실상부 무림 최고이자 이젠 소림사에서도 전설의 영단이나 다름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
그들이 사용하지 않고 몰래 꿍쳐둔 것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생산이 불가능한 이상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 영약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매물 자체가 없어서 돈과 권력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런 보물을 대체 어떻게 손에 넣었느냐 하면—.
‘샀지 뭐.’
그래, 그냥 샀다.
단지 그것뿐.
나에겐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건을 제공해 주는 카르마 상점의 『물품 구매』가 있지 않던가?
이미 주인이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물건이 아닌 이상, 카르마로 세상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내게 영약을 구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동안은 기의 성질을 따지지 않는 「천기지체」를 가진 휴고에겐 연단술을 통한 정제도 딱히 의미가 없기에 해리스가 채취한 영약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본체가 직접 쓸건 좀 더 신경 써서 챙겨야지.’
온갖 특성을 덕지덕지 달고 있는 데다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든 방도를 찾을 수 있는 분신들과는 달랐다.
본체는 그저 조금 튼튼하고 다양한 능력을 지닌 데다, 돈 많고 잘생기고 성격과 몸이 좋은 그런 특별한 청년일 뿐이지 않던가?
사소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마저 철저하게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역시 아우테리카와 강환계를 제외한 세계의 영약은 좋은 걸 구하기가 힘드네.’
테이블 위에는 앞서 본 것 외에도 다양한 영약들이 늘어서 있었다.
무당파의 태청단(太淸丹)과 화산파의 자하신단(紫霞神丹)을 비롯한 강환계 최고의 영단들.
드래곤 하트를 비롯한 마정석을 다양한 재료와 함께 연금술로 가공한 아우테리카산 비약들.
그리고 여러 가지 경로로 수집한 그 외의 세상에서 온 영약까지.
자신이 이렇게까지 영약을 끌어모은 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신비를 다루는 데에 있어 그 기반이 되는 에너지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 하지만 여러 아바타를 다루는 내 입장에서 그 균형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리 좋지 않아.’
이미 초월에 올라 한계를 탈피한 하이 엘프 해리스나 광마 할리와는 경우가 달랐다.
그들은 무공을 익히면서도 그것을 각자의 방법으로 개량해 습득할 역량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백지상태인 본체가 어느 쪽으로 경로를 확정한다면 이후 만들어지는 분신들의 진로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나?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또 어떤 분신을 만들 수 있게 될지 모르는데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이것.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모으고, 그것을 어떤 신비로도 활용할 수 있는 순수한 에너지로 전환한다.’
남들이 그의 생각을 안다면 허황된 꿈을 꾼다며 비웃을 것이다.
그건 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세계마다 적용되는 법칙이 다른 만큼 당연히 거기에 속한 에너지의 성질도 모두 차이가 있었다.
근간이 동일한 같은 세계에서도 기사의 오러로 마법사의 마력을 대체할 수 없고, 무인의 내공으로 술법사의 도술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아예 세계 자체가 다른 경우라면 오죽하랴?
‘하지만 난 알고 있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의 상위에 있는, 어떤 세상에서도 통용되는 힘을.’
알고 있다 뿐일까?
이미 몇 번이나 접한 건 물론이고 그 구조와 원리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신성.’
지금도 계속해서 빌려 쓰고 있으며, 대적과 맞서기 위해 철저하게 분석했고, 끝내 스스로 내면에 품을 수 있게 된 무궁무진한 가능성.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내면을 관조했다.
“후우—.”
이미 신성의 씨앗을 품은 아바타가 한둘이 아니었다.
불사왕 한스, 흡혈왕 하인즈 2세, 투왕 할리.
그들뿐만 아니라 주신의 힘을 대리하며 그 위광을 등에 진 하인리히와 세계수의 은총을 입은 해리스에게도 조금씩 그 가능성이 깃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이런 상황이다.
그런데 그 아바타들의 주인인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을 리 없지 않은가?
‘아무리 별개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아바타들 또한 나 자신. 경지에서 비롯되는 격이야 기반을 이룬 육체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지만···.’
자신의 영혼은 이미 그에 걸맞게 성장한 지 오래였다.
물론 열이나 되는 아바타, 그중에서도 과반을 차지하는 초월체들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 그 격의 대부분을 분할해 할당하느라 평소엔 그리 티가 나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눈을 뜨고 테이블의 영약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미 대부분의 아바타는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휴면 상태에 들어간 지 오래.
정말 오랜만에 진짜 자기 육체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된 나는, 조금 이질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팔을 움직여 영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일단 이것부터 할까.’
가장 처음에 봤던 소림사의 소환단.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것을 입안에 털어 넣으며 「탐식의 권능」을 사용했다.
***
“하아아—.”
내쉬는 숨 속에 섞여 입김처럼 허공을 일렁이다 사라지는 새하얀 기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실내 공간 전체가 전신에서 새어 나온 아지랑이로 가득 차 있었으니.
천천히 눈을 뜬 나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몸을 슬쩍 살펴보았다.
처음에 땀과 함께 배출되었던 노폐물도 그 과정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서 이젠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영약을 그 정도로 들이부었는데 아직도 노폐물이 남아있는 게 더 이상하지.’
테이블 위에 잔뜩 쌓여있던 수많은 영약들.
이제 거기에 남아있는 것은 내용물을 사용하고 남은 빈 포장지뿐이었다.
「탐식의 권능」 덕분에 소요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그 많은 것들을 전부 사용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 귀한 것들을 잔뜩 사용한 결과는 바로—.
‘부족해.’
절반의 성공이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실패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처음엔 강환계와 아우테리카의 기운을 비슷하게 맞춰 2강으로 만들고, 그 외의 기운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 보다 안정적인 구조인 3파전이 되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설마 그렇게 다른 것들을 모두 모아도 턱도 없을 줄이야.’
두 세계에서 구한 물건들에 비해 다른 세계에서 구한 영약들의 질이 너무 떨어진 게 문제였다.
카르마를 이용해 구한 최상급 영약의 저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는지, 수만 많은 것들로는 양이 비슷하더라도 그 질적인 면에서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신성화를 위해선 질에서 타협을 볼 순 없어. 그게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었는데···.’
결국 안정성이 부족해 제대로 된 신성으로의 전환을 이루진 못했으나, 그래도 절반은 성공인 만큼 지금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우우웅—
손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마나를 기반으로 가공된 오러.
이내 그것은 전혀 다른 기운, 기가 정제되어 다듬어진 내공으로 변화했다.
이어서 마력으로, 도력으로, 자연력으로 변화무쌍 성질을 뒤바꾸는 에너지.
사실 그것 자체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다양한 기운을 사용하는 것 정도야 「개체 투영」의 부가 효과 덕분에 이전에도 할 수 있었던 거니까.
중요한 것은, 이제 체내에 잠재된 기운을 끌어다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양이 그전과 차원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성과긴 하지. 이전엔 이렇게 끌어올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었으니.’
물론 여전히 보유 특성 등의 차이가 있는 만큼 「개체 투영」을 온전히 사용한 수준까지 이르진 못한다.
그러나 에너지의 제약이 사라진 지금의 무력이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 또한 사실.
‘이 정도면 초월까진 어림도 없더라도 극의 수준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물론 이번 시도를 통해 그 가능성을 확실히 엿볼 수 있었던 만큼, 여기서 만족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걸 완성할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 어느 때보다 두근거리며 활발하게 뛰어오르는 심장.
그 안에 깃든 ‘무언가’를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어떤 개성도, 성질도 정해지지 않은 부정형(不定形)의 가능성.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능한 힘.
그게 바로 자신이 개화시킬 신성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다른 세계의 영약들부터 구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도 양뿐만 아니라 질도 매우 중요했다.
대환단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소환단 수준은 되어야 도움이 될 텐데···.
‘문제는 그런 건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거지.’
지구에서 영약의 효율이 바닥이라는 건 그리 비밀이랄 것도 없는 사실.
이계로 전송된 각성자들도 미리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그걸 알고 있을 거다.
그런 만큼 설령 그 귀한 것을 구하더라도 지구로 오기 전에 먹어 치울 생각부터 하겠지.
‘한스가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는 건?’
나쁘지 않다.
물론 최대한 다양한 세상의 기운을 품으며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선 한두 개 정도가 아니라 제법 여러 차원을 순회할 필요가 있겠지만, 한스도 제법 성장한 데다 『차원 장벽 완화』가 강화된 만큼 그 과정도 전보다 더 수월할 터.
‘하지만 그것도 무작정 시도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매개체가 될 초월급 강자를 생포하는 것도 그렇고···.’
거기서 기억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신성력 계통 초월자는 물론 영약이란 것이 아예 없는 차원 출신도 제외다.
무엇보다 한 번 다른 차원을 개척하려면 이쪽도 동기화를 위해 상당한 연구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 그건 차차 진행하자. 일단 다른 방법부터 먼저 시도해 보면서.’
천만다행히도 자신에겐 그것 외에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수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좀 더 효율적이고 광범위하며, 이후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확장성까지 갖춘.
내 시선이 한쪽 구석에 놓인 물건들, 그중에서도 얼마 전에 회수한 마도구들로 향했다.
저것이야말로 가치에 따라선 영약 같은 것보다 훨씬 귀한 취급을 받는, 이 세상에선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하디귀한 명품이 아닌가?
‘마침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잘 됐군.’
희귀한 물건을 구하는 데엔 돈뿐만이 아니라 그 판매자를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이른바 인프라의 부족.
거기다 판매자를 찾더라도 그들이 돈에 넘어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있을 정도면 이미 돈이야 충분히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을 테니.
‘그럼 그들이 혹할 만한 물건을 제시하면 되지.’
그런 영약을 챙겨올 정도면 그 향상심이야 말할 것도 없을 터.
그렇다면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자.
영약을 통한 희박한 도박이 아니라, 보다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는 수단으로.
영약과는 달리 마도구는 지구에서 사용하는 데 특별한 제한이 없었다.
그런 걸 대가로 지불한다고 공표한다면?
그것도 일반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그들의 원래 세상에서도 접하기 힘들었을 수준의—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마도구를 보상으로 내걸어 유혹한다면?
‘이거 잘만 이용하면 지구에서 번천회의 대항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아예 상대가 바라는 대로 주문 제작까지 해준다면···.’
게임 끝이다.
그에 필요한 미끼를 만드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신에겐 드워프 장인과 드래곤 인챈터는 물론 마왕급 흑마법사와 성자, 신혈의 뱀파이어, 하이 엘프 정령사까지 있었으니까.
‘음지에서 진행되던 기성품 마도구 공급을 양지로 끌어올리고 규모를 키우자. 그렇게 세계적으로 이름을 퍼트린 후에 특제품을 미끼로 내걸어 각성자들을 유도하는 거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득이 있어야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이익이 꾸준히 이어지는 한은 쉽게 배신하지도 않을 터.
‘귀찮은 건 진소란과 혈맹에게 맡겨 두면 되겠지. 그동안 마도구 공급도 차질 없이 잘해 왔으니까. 그래, 유럽 쪽은 테르미도르와 고모라, 그리고 드라쿨에게 맡기면 될 테고···.’
이른바 이세계 마도구 전문 기업.
‘하워드 인더스트리’의 출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