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67)
살벌한 소리와 함께 요란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빠지직—! 파직!
그와 동시에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는 수많은 철근 콘크리트의 잔해.
개인의 힘으론 미동조차 하지 않을 것 같은 육중한 덩어리들이 일제히 중력을 역행해 움직이는 모습은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에게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쿠웅! 쿵!
현장의 사람들이 멍하니 지켜보는 가운데 크고 무거운 잔해들이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고.
그 장엄한 광경은 마지막 철근 콘크리트가 잔해의 무더기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후우, 다음은 어디야?”
그런 압도적인 위용을 선보인 주인공, 귀환자 협회의 지부장 윤지윤은 자신에게 향하는 주변의 경탄 어린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사태는 유례없을 정도로 커다란 규모의 국가적 위기 상황이었으니.
다른 곳에 신경을 분산할 여유는 없었다.
-방금 그곳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부장님.
“···그래? 어디 또 급한 곳은 없고?”
-네, 아직 모든 정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당장 지부장님의 도움이 필요할 만큼 시급한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껏 날이 서 있던 그녀의 긴장은 골전도 헤드폰을 통해 전해진 비서의 통신에 서서히 녹아내렸다.
테러에 대한 소식을 접하자마자 말 그대로 번개처럼 종횡무진 사방을 누비며 정신없이 움직이길 몇 시간.
그런 대규모 재난 사태 속에서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후우.”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그녀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렇다 할 전조도 없었는데 난데없이 이게 대체 무슨 난리란 말인가?
‘이만한 규모의 테러라니. 이건 한두 해 준비해서 일으킬 수 있는 규모가 아닐 텐데.’
그리고 그렇게 여유가 생기자, 그간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여러 상념이 연달아 뇌리를 스쳤다.
이런 짓을 벌인 자들의 정체와 그 의도, 이번 일로 인한 여파와 그 수습 방안 등.
하나같이 골치 아플 것이 자명한 문제들이었다.
“아,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네.”
윤지윤은 애써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어차피 한동안은 계속 그 문제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렇게 혼자 끙끙거려봤자 비효율적일 뿐이었다.
‘이번 일에 혈맹의 흡혈귀들도 큰 도움이 됐지. 그들의 조력이 없었으면 순간적인 치안 공백을 노리고 날뛴 빌런들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을 테니.’
또 그들의 수장인 하인즈의 활약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구호 활동을 거드는 건 물론 여타 지하 조직에 대한 통제까지.
역시 그들과 날을 세우지 않고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은 백번 잘한 선택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외에도 제법 쓸 만해 보이는 녀석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어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혼란 속에서 다양한 활약을 펼치며 존재감을 드러낸 몇몇 각성자들이었다.
그중에는 이미 그녀가 알고 있던 인물도 있었으나, 아예 이번에 처음 보는 이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이능관리국 녀석들, 정말 제대로 전송자 조사하고 있는 거 맞아?’
그간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재야의 인재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난리 통에 한창 바쁘게 움직이느라 따로 접촉하진 않았지만, 미세한 전류를 통해 사방 수 킬로미터를 아우르는 그녀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대체 그런 인재들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이참에 다들 협회에 들어와 주면 일이 더 편해질 텐데. 특히···.’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신경 쓰이는 존재들이 있었는데.
바로 지구인 중에는 극히 드물기로 유명한 정령사와 기묘한 금속 슈트를 입고 하늘을 누비던 정체불명의 괴인이었다.
‘거기다 정령사 쪽은 나도 쉽게 볼 수 없는 상대였지. 거참, 이게 대체 몇 번째야?’
또다시 한국에서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미등록 초월자.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걱정해야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럼 언론에는 그렇게 일러두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일단 현재까지 밝혀진 대략적인 피해 집계는···.”
하지만 그녀의 고민과는 별개로, 정부 측에서는 이미 그들에 대한 노선을 결정한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나라 전체를 뒤덮은 암울한 분위기를 서둘러 거둬내고, 잠시나마 불편한 현실에서 시민들의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위기 속에서 떨쳐 일어난 한국의 영웅들—.
그게 바로 그들이 내세운 프레임이었다.
힘든 상황 속에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대중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데는 영웅을 만드는 방법이 최고였으니까.
-와, 저게 진짜 같은 인간 맞냐?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덕분에 제 아버지께서 무사하셨어요!
-저 슈트 탐난다..! 갖고 싶다! 저거 어디서 팔아? 마도구 같은데 하워드 인더스트리에서 안 파나?
그리고 그 방법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
갑작스럽게 일어난 서울 테러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는 물론 막대한 인명 피해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까지.
정부와 협회, 판테온 등의 여러 조직이 신속하게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의 수는 아직 집계조차 되지 않았고, 관련 기관의 업무는 거의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모두의 노력으로 몇 시간 만에 수습 국면에 들어간 덕분에 계엄령까지 가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 지경.
당연히 전국의 모든 이목은 물론 해외의 시선들까지 고초를 겪은 서울로 향했다.
이번 테러 사태에 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정부의 의사에 따라, 그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 특정한 기조가 조금씩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신에 기를 두르고 불구덩이가 된 건물로 들어가 어린아이들을 구출한 무인.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로 건물 내의 화재를 진압한 마법사.
염동력으로 시민들을 신속하게 안전한 곳으로 운반한 초능력자.
연쇄 폭발에 휩쓸리기 직전에 보호막으로 생존자들을 지킨 사제 등.
테러로 인한 피해보다는 그에 대응한 영웅들의 활약상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 보도였다.
자연스레 매체에 언급된 이들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이들에게는 더 큰 관심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근데 저건 진짜 신기하네. 저렇게 활활 타오르던 불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시커먼 연기도 싹 없어지는 게.
-난 땅이 지멋대로 움직여서 잔해 아래에 깔려있던 사람들이 쑥쑥 올라오는 게 더 신기함ㅋㅋ 구조하려고 용쓰다가 갑자기 상황 종료되니까 당황해서 멍때리는 거 보소ㅋ
-난 저런 거보다 대단한 능력도 없는데 자기 몸 다쳐가면서 사람들 구하려고 발버둥치는 게 더 짠하더라. 나도 모르게 콧물이 찔끔 나왔음.
-아니, 그것보다 진짜 저 파워 슈트 뭔지 아는 사람 없어? 손에서 광선포가 나가잖아! 그것도 별다른 딜레이도 없이 한 방에 벽을 증발시켜 버릴 정도라니! 저거 진짜 뭐야?
혼란 속에서 많은 영웅들이 탄생했다.
사진과 영상이 인터넷에 퍼져나간 건 물론, 발 빠른 기자들은 어떻게든 사건 현장에 있던 생존자와의 인터뷰를 성사시켜 뉴스로 내보내기도 했다.
-그때의 심경이 어떠셨습니까?
-무서웠죠. 아래쪽에선 계속 뭐가 무너지는 소리가 나고, 새카만 연기 때문에 창밖은 잘 보이지도 않고. 하필 또 옥상으로 가는 문이 잠겨있어서 이대로 죽겠구나 싶었는데···.
-그때 그 슈트를 입으신 분이 나타나서 구해주신 거군요.
-네, 맞아요! 갑자기 벽면을 쾅 하고 부수면서 나타나서 이쪽으로 손을 쓱 내미니까, 검은 실 같은 게 저랑 같이 갇혀있던 사람들을 휘감고—.
그런 의미에서 마치 영화 속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 금속 전신 슈트로 무장한 정체불명의 히어로는 굉장히 좋은 소재였다.
그 로망을 자극하는 겉모습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고, 보여준 활약 또한 손에 꼽힐 정도로 특출났으니 대중의 뜨거운 반응도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서울에 등장한 아X언 맨 추정 스펙 정리한 거 나왔다.
-초음속 비행에다 제로백은 소수점 두 자릿수 이하, 전신을 감싼 에너지 역장에 노 딜레이 광선포 연사, 손등엔 강철도 종이처럼 자르는 레이저 검에다, 오른손에선 한도 없이 늘어나는 에너지 와이어까지 ㅋㅋㅋ
-비행하면서 한 손으로 기울어진 건물도 받치더라. 그리고 움직이는 거 보면 동선 낭비가 하나도 없음. 어디로 가서 뭘 해야 할지 미리 컴퓨터로 입력해 둔 것처럼.
-그런데 이거 생긴 것도 그렇고 등장한 타이밍도 그렇고. 혹시 거기서 만든 건..?
그리고 그런 열기는 고스란히 최근에 설립된 수수께끼의 기업, 하워드 인더스트리로 향했다.
최상급 마도구 주문 생산이라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신생 회사, 그리고 그들의 개업 이후에 모습을 드러낸 비슷한 성향의 슈퍼 히어로.
척 보기에도 뭔가 연관성이 느껴지는 조합이지 않나!
-그럼 저거 만들어달라고 의뢰할 수도 있냐?
-의뢰비는 영약으로 대신 받는다잖아. 아마 보통 영약으론 어림도 없을걸?
-알고 보면 저거 팔, 다리, 머리 전부 따로따로인 최상급 마도구들 합친 거 아니냐? 어우, 그게 진짜면 대체 얼마짜리야?
그러다 보니 개중엔 진실에 근접한 이도 있었다.
물론 티탄 심장부의 중앙 동력원으로 고룡의 드래곤 하트 하나가 통째로 들어간 건 물론,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선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계안 : 캘리카스」의 도움이 필수인 만큼 동일한 스펙의 제품을 팔 수는 없겠지만.
사실상 인간 형태의 초소형 우주 전함이나 다름없는 티탄 풀 세트는 특급 마도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물건이었다.
‘뭐, 하여간 덕분에 다시 한번 전 세계적인 홍보 효과가 나왔으니 좋은 일이지.’
이참에 아예 공식적으로 티탄을 하워드 인더스트리의 마스코트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쇼케이스에서 묠니르를 선보인 이후에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망설임을 덜어주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테니.
‘물론 이런 일이 생겼으니 당분간 사업을 확장하는 건 자제해야겠지. 그간 쌓아놓은 재화가 있으니 통 큰 기부금으로 이미지도 챙기고··· 포션도 일정 비율을 재난 지원용으로 내놓는 게 좋겠군.’
사실 이제 와서 자신에게 금전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간 그가 두 이세계에서 수집한 재화만 해도 이미 그 가치를 측정하기도 어려운 수준.
특히 불사왕인 한스와 「황금의 보고」를 계승한 호루스가 가진 금은보화는 말 그대로 산더미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혈맹의 이름으로 따로 베풀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마침 좋지 않은 이미지를 바꿀 기회이기도 하니.’
그간 음지에서 활동하던 흡혈귀들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도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었다.
마인으로 낙인찍힌 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덴 이만한 기회도 없을 터.
물론 그렇게 하고도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그들을 경원시하며 꺼리겠지만, 이전보다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래, 그럼 그쪽은 그렇게 하면 되고··· 남은 건 이걸 처리하는 것뿐인가?’
띠디딕— 삐빅—
삐이——
요란한 기계음이 들려오는 공간.
그 한가운데에 티탄 풀 세트를 갖춰 입은 헤스페론이 홀로 서 있었다.
어깨 부분에서 사출된 와이어 다발의 끝을 기계 장치들의 단말에 연결한 채로.
‘역시 보통 물건들은 아닌 것 같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곳은 비무장지대 지하에 자리하고 있던 번천회의 아지트였다.
미처 철수하지 못한 놈들의 흔적이 잔뜩 남아있는 곳.
그는 놈들이 사용하던 기기들에서 추가적인 단서를 캐내기 위해 「영웅의 발자취」를 이용해 단번에 내부로 들어온 상태였다.
물론 한스로 「개체 투영」을 사용한 본체는 이미 놈들의 기억을 싹 털고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남은 잔당들을 정리하는 건 한국의 뒷골목을 꽉 쥐고 있는 하인즈 2세와 혈맹만으로도 충분했으니.
띠이이—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을 보낸 지 얼마나 되었을까?
복잡한 기호가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가던 우측 안구에서 마침내 기다리던 문구가 떠올랐다.
원래라면 아무리 초고사양의 인공지능이 탑재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아무 기기나 해킹할 순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것들처럼 다른 기계 문명의 영향을 받은 물건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기계안 : 캘리카스」의 기본 탄생 목적은 해킹 같은 복잡한 작업이 아닌, 그저 눈을 대체하는 ‘의안’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워드의 「기술 혁명」을 통한 개조와 「장인의 혼」을 이용한 강화는 그런 기존의 한계를 무너뜨렸고.
헤스페론의 「맹약의 사슬」은 그것을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닌, 명백히 자신의 신체 부위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즉, 「기계안 : 캘리카스」는 헤스페론과 별개인 물건이 아닌— 그와 함께 발전하는 몸의 일부이자 스킬의 하나였다.
그것도 아바타의 성장 보정과 『성장의 비약』의 효과까지 함께 적용받는.
‘거기다 티탄이라는 우주 전함급 하드웨어까지 더해지니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아마 이 기기들은 비밀스러운 임무를 위해 특별히 지급받은 물건일 터.
물론 고작 이런 말단 놈들이 기록한 정보라고 해봐야 별것도 없겠지만···.
기억 추출이 백 퍼센트 완벽하진 않은 만큼 참고하더라도 나쁠 건 없었다.
“···오? 이건···.”
지금처럼 예상외의 소득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우측 안구에 떠오른 정보를 살펴본 헤스페론이 눈을 반짝였다.
놈들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한 것.
그건 번천회의 또 다른 핵심 근거지, 동남아시아 지부에 관한 단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