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7)
진소란 (1)
흡혈하면서 감마의 억울함과 분노, 답답함 등의 사념이 밀려들었지만···.
뭐, 이제 와선 상관없겠지.
‘그보다 은폐가 혈계 능력이었군. 그러면 정신조작은 고유스킬인가?’
감마의 기척을 알아낼 수 없었던 이유, 결계의 은밀성이 뛰어났던 이유가 이 「은폐」 덕분이었으리라.
‘좋은데? 지금 상황에선 베스트로군.’
일단 자신의 기운을 좀 더 잘 숨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흡혈귀임을 더 확실히 감출 수 있게 되었으니, 자신보다 강한 이라고 해도 그 정체를 쉬이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은신에도 도움이 될 테니 암살자 포지션에도 유용할 것이고.
‘무엇보다, 동족 포식의 흔적을 감출 수 있게 된 게 크지.’
흡혈귀들은 피에 민감하다.
당장 감마도 하인즈의 피 냄새를 맡고 접근하지 않았나.
그런데 동족 포식을 통해 여러 흡혈귀의 흔적이 남은 상태라면?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공격부터 받으리라.
-개체명 : 하인즈 2세
-종족 : 뱀파이어 (순혈)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명경지수」
-개체 특성 : 「피의 일족 (순혈純血)」, 「혼혈진화」, 「가속」, 「재생」, 「혈마법」, 「간파」, 「은폐」
-특이 사항 : 타차원의 흡혈귀의 피를 통해 체내의 흡혈인자가 진화를 거듭했다. 모든 육체 능력, 마력 운용 기술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마인드 허브」의 영향으로 정신 오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쉽게도 바로 진혈이 되지는 못했다.
아마 질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절대적인 흡혈인자의 양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당장의 전투력은 진혈과 싸우더라도 크게 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인즈가 얻은 것들을 정리하는 동안, 한스는 흡혈귀들이 사망한 곳에서 강령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는 흑마법.
아쉬운 대로 이렇게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흐으으···, 그게 무슨, 개소리···. 동족 포식을···. 힘을, 나의 비원이···.] [이렇게 죽고, 싶지 않···. 언제까지, 숨어 살···. 힘.]한스가 그동안 강령술을 애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망령들은 강렬한 기억이나 마지막 원념 같은 단편적인 사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남은 사고에 부정적인 감정이 클수록, 영혼의 집착이 그 크기를 부풀려 악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망령들에게 정보를 얻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차라리 직접 뇌를 뒤져 기억을 읽는 게 더 쉽고 확실한 방법.
[그극, 켁! 히···힘을 얻기 위해. 연구, 연구를!]물론 힘들다 뿐이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한스는 흑마법으로 감마의 망령에게 적절한 고통을 주며 원하는 정보가 나오도록 사고의 방향을 유도했다.
[키헥···. 연구, 협력. 지원···. 번천회의 기술! 약속···. 베타···.]불러낸 모든 망령을 심문했지만, 이번 일은 감마가 주도했는지 나머지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힘을 미끼로 그의 뜻에 따랐을 뿐.
거기에는 은연중에 사용한 정신조작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그보다 또 번천회인가. 혈맹의 강경파에 기술을 지원하고 무엇을 얻을 속셈이지?]감마를 더 심문해 봤지만, 그것에 대해선 더 이상 나오는 것이 없었다.
지원의 대가로 협력을 약속했을 뿐, 아직 자세한 대화가 오가진 않은 모양이었다.
[‘베타’라는 건···, 이놈의 상급자인가? 거기까지 선이 닿아있나 보군. 하긴, 이 정도 수준의 녀석이 단독으로 일을 벌이기엔 규모가 크긴 했지.]혈맹 강경파의 수뇌부 중 하나일 것이다.
합리적인 추론으로 ‘알파’가 있다면, 그놈까지 연관이 있을지도.
‘그건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겠지.’
하인즈는 기절한 진소란이 옮겨진 구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감마에게 당한 그녀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 방은···.”
하인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러 오컬트 요소가 난잡하게 섞인 방이었다.
방 전체에 피로 그려진 마법진, 금박으로 문양이 새겨진 해골, 온갖 알록달록한 장신구들까지.
하인즈로썬 거기에 혈마법의 일부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 한계였다.
[오호라, 이건 또 새로운 발견이로군.]물론 한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방 안으로 들어온 한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곳곳에 사용된 흑마법의 잔재가 「사악한 지혜」를 통해 낱낱이 해부되고, 「금단의 지식」으로 분석되었다.
그런데 이곳에 흑마법과 연관된 다른 술법이 한둘이 아니었다.
[주술과 저주, 이건 카발라의 ‘아인 소프 오르’인가? 거기에 기문진(奇門陣)까지 사용되었군. 내가 모르는 체계도 제법 있고. 이렇게 많은 술법들을 한데 엮어 내다니···.]한스가 흑마법 전문이기는 하지만 한 분야의 극에 이른 만큼 마법 자체에 대한 보는 눈이 달랐다.
그간 자경단 활동을 통해 여러 세계의 술법을 접한 한스는,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아볼 정도의 충분한 안목이 있었다.
‘이런 게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지금 지구에는 수많은 세계에서 온갖 기술과 신비를 습득하고 돌아온 이들이 가득했다.
보다 발달한 문명에서 기술을 배우고 온 사람도 있고, 마도 공학을 깊이 파고든 이도 있었다.
그런 귀환자들이 등장한 지 약 20년.
하지만 여전히 마도구는 희귀하고, 기술 발전도 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각각의 차원마다 적용되는 법칙이 다르기 때문이지.’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부터, 미시 세계에서 이뤄지는 물리법칙까지.
모든 것이 각자의 법칙으로 돌아간다.
‘그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바로 이능이지.’
그나마 물리법칙은 어느 정도 외형상의 유사점이라도 있지, 이능의 법칙은 그야말로 제멋대로였다.
또 애초에 다른 세상의 에너지이다 보니 타인에게 전수하는 것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지구에는 존재하지도 않고, 사용할 수도 없는 힘인 것이다.
‘이계의 법칙이 안정적인 상태로 고착된 마도구를 제외하면, 예외는 오직 한 가지. 귀환자가 직접 이능을 사용하는 경우.’
귀환자 본인이 바로 세상의 법칙에서 유리된 매개체 그 자체였으니까.
그것이 한스가 지구에서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설치한 결계를 발동할 때도 중심에서 매개체가 되어줄 귀환자가 꼭 필요했으니. 마도 공학이 발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이세계에서 장인이었더라도 자신과 별개로 가동하는 마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출신 세계의 법칙에 속한 재료가 필요했다.
지금 지구에 있는 물건들 대부분이 이세계에서 귀환자가 직접 가지고 온 것들이었으니, 마도구가 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방의 풍경은, 각자 다른 법칙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들을 하나의 체계에 맞게 뿌리부터 하나하나 뜯어고쳐 결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지구의 환경에 맞춰서.
[이 정도면 확실히 자신만만할 만하군.]한스는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미완성인지 발동시키기 위해선 결계와 마찬가지로 귀환자가 필요하다는 한계가 남아있긴 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한스조차 「사악한 지혜」와 「금단의 지식」의 도움을 받아야만 겨우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것도 오직 ‘흑마법’이라는 카테고리에 한해서만.
[흠···, 그런데 뭔가 부족해 보이는데. 설마 이게 끝인가?]확실히 대단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짜임새 있어 보이지만 술식은 여전히 불안정했고, 그렇게 허술한 상태로는 흡혈인자의 사념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없었다.
[여기서 추가로 공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그걸 감안해도 이곳의 술식 자체가 너무 불안정하군.]직접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흑마법의 정점에 오른 한스의 「사악한 지혜」에는 그 허점이 훤히 들여다보였으니까.
당장에는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이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 정도면 약간의 트리거만으로 폭주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설마?’
이 연구를 지원한 것이 번천회라고 했다.
여러 차원의 술식을 모아 하나로 엮는 데에도 그들이 상당 부분 기여했을 터.
그들의 손에 시한폭탄의 격발 버튼이 쥐어진 셈이다.
[허! 그놈들, 상당히 여러 곳에서 거슬리게 하는구나.]거기에 역량도 상상 이상인 듯했다.
필요한 술법을 모으고 개량해서 한데 섞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좀 더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혹시 다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 곧바로 언데드들을 부려 건물 전체를 수색했다.
덤으로 놈들의 연구 성과도 좀 챙기고.
더불어 사는 세상, 좋은 건 같이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스가 건물 내부를 살피고, 쓸 만한 것들을 챙기며 정보수집에 몰두하는 동안···.
하인즈는 방 중간에 널브러져 있는 진소란에게 다가갔다.
흡혈귀들과 격전을 벌이느라 생긴 전신의 상처는 이미 아물어 있었고, 핏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혈액을 회수해 자가수복에 들어간 건가?’
아군에게 기습당해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강한 흡혈귀인 듯했다.
하인즈는 곧바로 새로 얻은 「간파」를 그녀에게 사용했다.
“으음, 이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군.”
상태창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를 기대했건만.
느껴지는 것은 추상적인 기운의 분포에 가까웠다.
그녀의 체내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핏빛 기운과···.
‘그런데 묘하게 흐릿한데. 뭔가 불투명하게 가린 것처럼···. 아! 이거 「은폐」잖아?’
지금은 정신을 잃어서 그런지 약해지긴 했지만, 그것은 감마에게 강탈했던 「은폐」의 기운이었다.
전신을 뒤덮은 불투명한 기운은 스스로는 물론, 핏빛 기운마저 가려 흐릿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 여자도 감마랑 같은 혈계 능력을 가진 건가? 같은 차원 출신?’
어쩐지 묘하게 격의 없어 보이더라니.
물론 그 감정의 대부분은 적대감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이 여자는 혈맹에 접근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제법 끗발이 있어 보이기도 하니, 이쪽의 뜻대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
와장창!
달그락— 달그락
방 바깥에서 한스의 명을 따르는 언데드들이 소란스럽게 내부를 뒤엎는 소리가 들렸다.
‘으음, 여기서 깨우는 건 곤란하겠지?’
하인즈는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포니테일로 묶여 바닥에 흩뿌려진 길고 검은 생머리, 창백하고 투명한 피부와 대비되는 붉은 입술과 긴 속눈썹, 조화로운 이목구비.
모든 요소가 흡혈귀의 비인간적인 매력과 어우러져 압도적인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그래, 잠이 든 공주님을 구출한 기사 컨셉으로 가자.’
하인즈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성인 여성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가벼운 건지 무거운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압도적인 근력에는 한없이 가볍게 느껴질 뿐이다.
“그보다 무대는 어디가 좋을까···.”
물론 지금은 시나리오를 먼저 짜는 게 급선무였지만.
***
“···흐냑!”
묘한 기성과 함께 진소란이 눈을 번쩍 떴다.
「간파」를 통해 슬슬 깨어날 때라는 걸 알고 있던 하인즈는 마스크를 낀 채 태연하게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군.”
부우웅—
부드럽게 도로를 질주하는 스포츠카.
감마에게 흔쾌히 기증받은 하인즈의 새로운 애마였다.
“어··· 어? 저기, 이게 어떻게 된···.”
진소란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운전석에서 운전하는 하인즈와 차량 내부를 둘러보더니, 자신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전투 과정에서 옷가지의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리고 기력이 약간 상한 것 외에는 멀쩡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저기, 아까 그 자리에 있던 분 맞죠?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감마에게 대하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예의 바른 태도.
뭐, 이게 교양 있는 상식인의 대화겠지.
“운이 좋았지. 기회가 생겨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상황을 보니 그쪽도 피해자인 것 같아 챙겨서 나왔지.”
“운이요···? 그 상황에? ···혹시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묻는 진소란.
하긴, 그 상황을 직접 겪은 당사자이니 이런 설명으로는 그녀를 납득시킬 수 없으리라.
“하회탈이라고 아나?”
“하회탈이라···. 들어는 봤죠. 범죄자들을 비롯해 그 조직들까지 공격하는 이라고 하던데. 설마···?”
“그래, 거기에 하회탈이 나타났다.”
하인즈는 이어서 날조된 사실을 담담히 풀어놓았다.
갑자기 습격해 온 하회탈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본거지.
격렬히 부딪치는 그들의 틈에서 기회를 노리다가, 기절한 진소란을 확보하고 그대로 탈출.
그 과정에서 운 좋게 탈취한 감마의 차키를 이용해 절찬리에 도주 중.
“그으, 정말 굉장히 운이 좋았네요?”
그녀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기색에도 불구하고, 하인즈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저, 그런데 그쪽 분은 누구신지···. 아니! 이게 아니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난리 통에 혼자 빠져나오기도 힘드셨을 텐데, 굳이 저까지 구해주시고.”
깨어난 직후의 혼란스럽던 정신이 어느 정도 수습되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해왔다.
“죄송해요. 정신이 없어서 제 소개가 아직이었네요. 저는 혈맹 소속의 진소란이라고 합니다. 녹터니아 출신의 6레벨이고, 그 자리에는 도한수의 무리가 저희 크루원을 납치했다는 정황을 발견해서···.”
열심히 설명하던 그녀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도와준다고 해서 같이 따지러 간 건데···. 크루는 다르지만 같은 온건파에 속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예···, 뭐. 그렇게 됐네요.”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마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진소란.
동료라고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한 것이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뭐라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조용히 전방을 주시하며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잘 빠져나와서 다행이네요! 배신자도 밝혀졌고 그놈의 수작도 알아냈으니,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죠?”
그녀는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상부에 보고하면 그놈과 연결된 놈들까지 끝장이라느니, 이걸로 이제 맘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느니 희망 가득한 견해를 늘어놓았다.
‘글쎄···,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까?’
일의 규모로 봐서는 이미 강경파의 상층부까지 동조하는 것 같은데.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도 내전이 벌어질 뿐, 평화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지만.’
어차피 내가 먹을 조직, 최대한 온전한 상태인 게 좋다.
‘강경파의 수뇌부를 깡그리 해치우고 온건파가 주도하는 혈맹을 손에 넣는다.’
그 해피엔딩으로 가는 첫걸음이 바로 진소란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