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75)
굵은 백룡의 목소리에 이어진 청아한 청룡의 말이 뇌리를 울렸다.
오룡들은 아래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싸움을 예의 주시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죽음의 기운을 억제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인간들의 운신을 돕고 천마에게 제동을 가하기 위해서.
그들의 특성상 직접 나서서 무인들과 합공하는 건 그리 여의치 못하기도 했고, 당장 마경의 환경을 고정하는 데에도 상당한 힘을 쏟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다행 아니야? 그놈이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서 항상 경계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잖아? 당장 이번 일도 마찬가지고.]적룡의 말대로 이제까지 그들은 탐이 벌일 수작에 대비해 상당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었다.
놈의 성정을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나,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선 사소한 것 하나도 아쉬운 것이 사실.
그런데 이렇게라도 그 죽음을 확인하게 되었으니 확실히 낭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죽음이 상당히 미심쩍다는 게 문제일 뿐.
대체 누구에게 살해당했기에 그 유해가 이곳에 묻혀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는?
[···역시 천마겠지?] [글쎄, 천마가 대단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혼자서 탐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마교의 고수들이 힘을 합치면 모를 일이죠.] [아니면, ‘그자’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벌인 일일지도···.] [그리 오래전부터? 하지만···.]그렇게 세 용이 부지런히 의견을 나누는 동안.
흑룡은 그쪽 화제보단 근처로 다가온 호루스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너 아까 대단하던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쪽 세계 용의 능력인가? 그거 얼마나 자주 쓸 수 있어?]흑요석처럼 윤기 나는 검은 비늘을 차르륵 움직이며 밤하늘을 유영하는 그 자태는 확실히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보석처럼 빛나는 맑은 눈동자 또한 마찬가지.
괜히 용을 마주한 이들이 신앙심마저 품게 되는 게 아니리라.
‘물론 나한텐 어림도 없지.’
다만 그녀의 성향을 알고 있는 호루스로선 그 모습을 마냥 호의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인간과 요괴들의 화합을 바라는 그로선 강경파의 대표 격인 그녀가 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으니.
[잠깐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응? 그래, 그럼.]거기다 아까 무리한 것 때문인지, 「엘더 드래곤의 심장」을 이용한 성체화도 슬슬 버거워지던 참이었다.
혹시 모르니 서둘러 계획을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모두 잠시만 주목해 주세요!] [음? 호루스?] [뭐지?]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호루스의 의사에 분주하게 의견을 주고받던 다른 용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처음 마경에 등장했을 때처럼 다른 용들의 중심에 선 호루스.
[천마를 보다 보니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떠오른 게 있습니다.]그 상태로 그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용의 아이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용심을 회복시킬 방법이죠.]이전부터 준비했던, 방금 찾아낸 것처럼 위장한 한 계획을.
[으응?] [그게 가능한···.]슬쩍 내린 호루스의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엔 거센 공세에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천마가 있었다.
콰아앙—!
쿠웅!
여전히 막강한 위용을 보이곤 있으나 누가 봐도 그 패색이 역력했다.
아마 별다른 변수 없이 판을 뒤집긴 힘들겠지.
낮부터 이어져 한밤중이 될 때까지, 거의 하루 종일 진행되었던 최후의 싸움이 마침내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종장인가.’
이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만 남은 시점.
시나리오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
제갈혜미를 구해 한참 뒤로 물러난 후, 휴고는 더 이상 천마와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다른 고수와 용들이 가세한 참이기도 했고, 만약을 사태를 대비해 누군가는 그녀를 근접해서 지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근처에 있던 다른 용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고.
“···으음.”
“괜찮으십니까, 소저?”
부축하고 있던 제갈혜미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오자, 슬슬 막바지로 접어드는 전투를 주시하고 있던 휴고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이 닿은 그녀의 백옥같이 새하얀 목엔 새카맣게 변색된 천마의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무리 극도로 짧은 시간에 불과했더라도, 초고위 언데드가 생자의 업을 갈취하는 과정이 상냥할 리가 없으니 당연한 일.
그 자국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이번에도 공자님의 도움을 받았네요.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런 그의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식은땀을 흘리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가리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태도에 이미 마모되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양심이 쿡쿡 쑤셔왔다.
“···개의치 마십시오. 앞으로 살아가면서 서로 도움이 필요한 일이 한두 가지겠습니까? 그때마다 일일이 대가를 주고받는 것보단 이렇게 도울 수 있을 때 돕는 게 좋죠.”
“앞으로··· 인가요.”
그의 말에 제갈혜미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이 끝나가는 만큼 자신의 삶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그건 설령 하승훈과 제갈세가가 그녀를 지키려고 하더라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목숨에 걸려있는 것은 이 세계의 안위였다.
아무리 그들이 대단하다고 해도 인간과 요괴들을 막론한 전 세상과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건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지고 있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환란이 시작됨과 동시에 태어나 어머니를 죽게 만들고, 이후로도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던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길.
“혜미야!”
그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일단의 무리가 서둘러 달려왔다.
피와 먼지가 엉겨 붙고 상처투성이가 된, 가주 제갈호원을 위시한 제갈세가의 일원들.
제갈혜미를 본 그들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맺혔다.
“아버님···. 다른 분들까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볼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역시 희생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정해진 멸망을 다 함께 마냥 기다리느니, 일부의 헌신으로 이 세상에 밝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면 훨씬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소저.”
그런 그녀의 상념을 끊듯, 바로 옆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이미 몇 번이나 생명을 구해준 건 물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절망을 이겨낼 수 있도록 그녀를 지탱해 주었던 믿음직스러운 사내.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진 알겠습니다만, 너무 쉽게 포기하진 말아 주십시오.”
그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 아하하··· 제가 무슨···.”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제 나이에 경험이 많으면 얼마나 많냐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건이라는 게 꼭 나이에 비례해 찾아오지는 않더군요.”
정확히는 여러 개의 몸을 이용해 이쪽이 사건을 찾아가는 것에 가까웠으나 그건 지금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건, 그가 겪은 일들의 스케일들이 하나같이 세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들이라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면서 느낀 게 있는데··· 세상일이란 게 반드시 정해진 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세워도 사소한 변수에 어그러지기도 하고, 뜻밖의 일을 계기로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돌파구가 생기기도 하지요. 뭐, 진짜 운까지 따라줘서 계획한 대로 잘 풀리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의 머릿속으로 그간 겪어왔던 수많은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처음 「아바타」 스킬을 얻었을 때부터 시작해 언데드가 된 한스가 불사왕이 된 일, 예상치 못한 일로 번천회의 존재를 깨닫고 그들의 말살을 결심하게 된 일, 그리고 열 개까지 늘어난 아바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일과···.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전 사람에게 반드시 정해진 운명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수히 늘어선 갈림길에서 선택의 연속이 있을 뿐이지요. 그것이 일방통행인 것처럼 보여도··· 막다른 길처럼 보여도, 그때 선택할 수 있는 게 꼭 하나만은 아닙니다.”
앞을 가로막은 벽을 부수든, 무언가를 밟고 넘어가든, 개구멍을 찾아 기어들어 가든.
그것도 아니면···.
벽 위에 서 있던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끌어올려 주든.
“아, 이거 너무 잘난 듯이 말했군요. 물론 제 말이 무조건 다 맞는 건 아닙니다. 정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상황에 내몰려 고사하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요.”
그제야 자기 말이 건방지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애써 수습하며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는 그의 모습에 제갈혜미가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가 저런 말을 꺼낸 것도 다 자신을 걱정해서 그런 거란 걸 그녀가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대충 알겠다.
그러나 그녀는 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고마워요, 하 공자님. 그렇게 말해 주시니 조금 위안이 되네요.”
“흠흠, 그거 다행이군요. 아, 저쪽도 전투가 끝났나 봅니다.”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은 단순한 막다른 길이 아니었다.
온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만장단애의 절벽 위, 한 평도 되지 않는 비좁은 공간.
그것이 그녀가 선 위치였다.
“혜미야, 몸은 좀 괜찮으냐?”
“네, 아버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벗어나는 길 따윈 아무것도 없다.
그대로 말라죽거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거나 둘 중 하나뿐.
동화 속 이야기처럼 하늘에서 황금 동아줄이라도 내려오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그래도··· 잠깐만, 아주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이 세상에서 좀 더 꿈을 꾸고 싶다.
길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지라도.
그녀가 두 눈을 꾹 감았다.
[아, 이제 끝났나?]그때.
머릿속을 울리는 기묘한 울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후웅— 후웅—
그와 함께 들려오는 거센 바람을 동반한 날갯짓 소리.
묵직한 존재감이 사위를 짓누른다.
여명의 빛이 새벽의 어둠을 밝히듯, 밝은 황금빛 광채가 천천히 지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마침 용의 아이들도 이곳에 있으니 잘됐네.]그렇게, 하늘 위에서 기적이 내려왔다.
***
거의 하루 종일 진행되며 양측에 많은 희생이 있었던 전쟁이 끝났다.
무림 연합은 마교를 완전히 뿌리 뽑고자 잔당들을 생포해 놈들의 근거지를 알아내려고 했으나, 그건 투항 따위는 모른다는 듯 미쳐 날뛰는 마교도들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무슨 금제라도 걸려있던 건지 완전히 전황이 기울자 오히려 폭주하는 그들 때문에 애를 먹어야 했던 것은 덤이었다.
“진영은 나중에 구분하고 일단 생존자들부터 수습해!”
“후우, 죽겠군. 이봐, 현월창. 돌아가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그간 아껴둔 백화주를 꺼내도록 하지.”
“좋지. 그럼 난 통돼지라도 잡아가도록 할까. 네 덕분에 불구가 되는 걸 면했으니까.”
[크르릉— 어이, 인간. 괜찮나? 정신 좀 차려봐라.]“어윽! 괜찮으니까 흔들지 마! 골이 울리잖아!”
많은 희생이 있었던 만큼 말 그대로 생사를 함께 나눈 전우가 된 이들은 인간과 요괴, 파벌과 성향 등을 가리지 않고 한데 어울렸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렇게 마음을 연 건 아니었으나, 그런 이들조차 날을 세우고 경계할 기력조차 없어 기진맥진한 마당이라 문제 될 건 없었다.
죽은 이들도 한둘이 아닌지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원한의 대부분이 마교도들로 덮어씌워지기도 했고.
그렇게 전장 정리가 한창인 와중.
각 세력의 수뇌부들이 모인 곳에선 한창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이보게, 신광마. 자네 정말 괜찮은···.”
“거 영감. 한 번만 더 그런 이상한 별호로 부르면 그 수염을 다 뽑아버리겠소. 신(新)이고 구(舊)고 간에 진짜 광마는 나 하나뿐이라니까? 이미 합의까지 다 마쳤다고!”
“···그놈 참 성질머리하고는. 오냐, 광마 놈아. 정말 그런 불길한 걸 달고도 괜찮으냐? 가장 앞에서 싸운 네놈도 몸이 정상이 아닐 텐데.”
“크하하핫! 이 정도야 침 좀 바르면 낫는 수준이지! 영감이야말로 뼈 부러지면 잘 붙지도 않을 텐데 괜찮나?”
커다란 대소를 터트리는 할리의 호언장담에 기껏 걱정해 한마디 했던 패천도황 곽철이 미간을 찌푸렸다.
십 년만 더 젊었어도 아예 사생결단을 냈을 텐데, 자기 성질도 많이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물론 거기엔 위기의 순간에 시기적절하게 들어온 광마의 도움이 없었으면 한쪽 팔이 부러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과, 함께 싸우면서 상대의 무력을 확실하게 체감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제대로 된 상태에서 한 판 붙더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적수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아미타불, 광마 시주. 버겁다 싶으면 언제든 말씀하시오. 불가의 기운은 마와 상극.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이니.”
“거참, 괜찮다니까 그러네.”
패천도황에 이어 재차 할리에게 말을 거는 신승.
그들이 그렇게 나오는 것은 다 그의 등에 매달려 있는 한 관짝 때문이었다.
새카만 나무판에 음각된 진언과 덕지덕지 붙어있는 부적, 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금줄 등.
딱 봐도 불길해 보이는 디자인답게 그 안에 든 내용물도 범상치 않았다.
“으음, 아무리 그래도 천마를 봉인하다니. 후환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냥 지금이라도 소멸시키는 게 낫지 않겠소?”
한쪽 눈에 피 묻은 붕대를 감고 있는 정천 대장군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는 천마로 뭘 하려고 하기보단 곧바로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이미 결정된 일 아닙니까, 대장군. 불필요한 희생을 막을 방법이 있는데도 그를 외면하는 건 불의한 일이지요. 아니면 혹시 뭔가 다른 의도라도 있으신 겁니까?”
“크흠흠.”
그 목적이 ‘용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것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검성의 묵직한 일침에 대장군이 헛기침하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가 속한 북부군은 황실의 방계인 초량 왕야를 주축으로 하는 집단.
용의 아이 중 한 명이자 마지막 황제의 적통인 주강인의 생존은 상당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용심이 재건되고 대륙 정세가 회복세에 접어들면 장차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물며 세계 수복의 열쇠인 용의 아이 중 하나가 마지막 황손이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정통성을 가지게 된다.
오직 힘만이 정의였던 지금까지는 주강인이 살았든 죽었든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상황도 달라질 게 빤하지 않겠는가?
‘···별수 없지. 돌아가면 대책을 준비해야겠군.’
하지만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요괴 측의 수장인 용들은 물론 이쪽의 대표 격인 신승과 검성, 광마와 그에게 도움을 받은 패천도황까지 그에 찬동하고 있었으니까.
수라혈존은 어찌 되든 좋다는 입장이었고 말이다.
“오! 저기 해가 뜨는구만!”
때마침 그 수라혈존이 한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싸움이 길어지며 드리웠던 어둠을 서서히 물리치는 여명.
마치 이 세계의 앞날을 축복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
최후의 싸움이 있은 후로 며칠이 지났다.
무림 연합은 전장을 마무리하고 북경에서 벗어난 상태였고, 금오도의 요괴들과 함께 환계로 돌아간 오룡들은 의식의 준비를 서둘렀다.
그렇게 모두가 물러난 북경의 지하 깊은 곳.
[···준비는 완벽하다.]오룡들이 떠나기 전 다시 봉인한 탐의 유해 내부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탐의 존재감에 동화되어 배우들의 시선을 피해 무대를 조율한 장막 뒤의 존재.
[이제 슬슬 이 짓을 끝내도 되겠군.]한스의 한 마디와 함께—.
강환계의 흐름을 뒤바꿀 의식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