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79)
그동안 내가 강력 범죄 이외의 영역에 손을 대지 않은 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휘두르는 것 또한 폭력.
살인이나 강도, 강간 등 누군가의 악의로 행해지는 폭거에 더욱 강력하고 압도적인 힘으로 제재하는 것엔 사람들도 거부감이 덜하겠지만, 그 이상의 영역에까지 과격하게 손을 쓰면 지금 이상으로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강력 범죄에만 대응하는 지금도 자경단의 사적 제재에 대한 찬반 여론이 알음알음 고개를 드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면 백 퍼센트 문제가 생기겠지.’
내가 한국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장악한 것이 아닌 이상 여론의 흐름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쩌면 국가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렇게 되면 여러모로 귀찮아지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물론 지금도 그와 관련된 수사본부가 꾸려진 상태였으나, 그 구성원들도 진지하게 단속에 임한다기보다는 형식적으로 나서는 면이 강했다.
어찌 되었든 자경단의 존재는 한국의 치안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었으며, 현장의 일선에 서는 그들이야말로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쪽과 관련해서는 국민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이대로 마냥 사회의 자정을 기다리다간 평생이 지나도 불가능할 거라는 예감이 든 것이다.
내 주변 인물이 이미 휩쓸려 버렸는데 지금까지처럼 그냥 넘어가는 것 또한 도저히 내 성미에 맞지 않기도 했고.
‘하지만 판결은 정해져 있더라도 집행 과정은 섬세할 필요가 있겠지. 지금까지처럼 무작정 힘으로 해결하면 일이 복잡해질 테니.’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도 없었으나, 어찌 되었든 그들도 겉으론 정상적인 기업의 탈을 쓰고 활동하는 회사였다.
그런 곳을 무작정 폭력을 사용해 때려 부순다면 지금껏 잠잠하던 정재계도 꼬리에 불붙은 멧돼지처럼 날뛰기 시작할 터.
하려면 그들의 방식대로 깔끔하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놈들이 선호하는 대로 스마트하게. 그래서 일단 확실하게 정보부터 수집할 생각이었건만···.’
천종 건설.
혈맹의 조사 끝에 이번 일의 배후로 지목된 조직이었다.
겉으론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평범한 중소기업이었으나, 그 실체는 온갖 더러운 일을 일삼는 기업형 조폭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거, 이놈들이 끝이 아닌 것 같은데?”
강태산과 박미영을 만난 뒤로 몇 시간이 지난 시점.
한밤중의 천종 건설 본사 한복판.
건물을 지키던 경비들은 물론 당직을 서던 직원들마저 전부 기절하듯 잠들어 쥐 죽은 듯 고요해진 사무실에 한 존재가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다.
매끄러운 금속 면에 복잡한 전자 회로처럼 푸른빛이 흐르는 갑주로 전신을 감싸고, 어깨 부위에서 이어진 와이어를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전자기기에 연결한 채로.
헤스페론의 「기계안 : 캘리카스」에 떠오른 작업 진행도가 빠르게 상승하며 한쪽에 알아보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가 출력되었다.
사소한 회계 오차부터 꼭꼭 숨겨두었던 비리 자료까지.
이미 전산 처리되어 저장되었다면 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거 진짜 장난 아니군. 어쩌면 지구에선 다른 초월 아바타들보다 더 효용성이 클지도 모르겠어.’
「맹약의 사슬」로 엮여 헤스페론과 함께 성장하는 「기계안 : 캘리카스」의 AI는 이미 기존의 성능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와 한 몸이 된 덕분에 『성장의 비약』을 비롯한 다양한 성장 보정을 받아, 주변 환경에 따라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슈퍼 인공지능.
그것은 각성자들을 통해 다양한 과학 기술 문명을 접하고도 차원 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현대 사회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천종 건설 사내 인트라넷의 모든 정보를 빨아들인 「기계안 : 캘리카스」는 이어서 외부 인터넷에 접속해 이곳과 연관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자금 흐름을 따라 해외의 조세 회피처를 들쑤시는 건 물론, 은밀하게 오갔다가 삭제된 데이터 부스러기를 끌어모아 복구하기까지.
우우웅—
그 작업이 절정에 이르며 헤스페론이 입은 전신 슈트— ‘티탄’의 표면을 흐르는 회로가 한층 요란하게 발광했다.
사실 지금의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전부 드워프 하워드가 만든 이 마도 공학의 정수이자, 소형 우주 함선이나 다름없는 티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AI의 성능이 좋다 한들 의안 사이즈에다 에너지원에도 한계가 있는 기계안의 힘만으로 이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건 무리였으니까.
‘이것도 양쪽이 서로 「맹약의 사슬」을 통해 연동되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그렇게 이곳, 천종 건설의 사무실에 들이닥친 지 약 삼십 분 남짓이 지난 시점.
“···찾았다.”
그는 마침내 이번 일의 진짜 배후를 알아낼 수 있었다.
“대룡 그룹이라···. 제법 덩어리가 크군.”
그들이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하던 은밀한 비밀들도 함께.
‘이 정도면 충분해. 날 귀찮게 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일을 마친 헤스페론의 발걸음이 옥상으로 향했다.
남은 흔적은 이곳을 은밀하게 점거하는 데 큰 도움을 준 혈맹의 고위 흡혈귀들이 알아서 지울 터.
그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이 일을 마무리 짓는 것뿐이었다.
‘미리 말하고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라일리가 뭐라고 할 테니까.’
본격적으로 제국 황태녀로서의 업무를 시작하며 스트레스가 심한 모양인지, 종종 그를 찾아와 별것 아닌 이야기로 수다를 떠는 게 그녀의 소소한 일과였다.
라일리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 잠깐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지.
‘뭐, 그 사소한 걸로 차기 황제와 친분을 나누고 정신적인 케어까지 할 수 있다면 훨씬 남는 장사겠지만.’
옥상에 도착한 헤스페론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 직후.
은신 모드를 활성화해 모습을 감춘 금속 슈트가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정리되어 가는 천종 건설 사무실을 뒤로한 채로.
***
화창한 햇볕이 내리쬐는 정오, 이능관리국 범죄수사과 휴게실.
“거참, 오늘따라 아침부터 시끄럽네. 하긴, 저런 일이 있었으니 오죽하겠냐만.”
한창 사무실에서 행정 업무를 보다 잠깐 쉬기 위해 밖으로 나온 강태산이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슬쩍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침부터 시작된 뉴스가 아직까지도 시끄럽게 언급되고 있었다.
-그간 한국은 치안 쪽에 관해선 상당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단 말이죠? 물론 서울 테러 이후 상당히 빛이 바래긴 했습니다만, 그 이후에 있었던 기관의 대처와 우수한 시민 의식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네, 그런 만큼 이번 일이 더욱 큰 충격을 주는 것 같습니다. 설마 기업이라는 가면 뒤에서 행해지는 범죄 행각이 이렇게 심각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테니까요.
-거기다 그에 연루된 기업도 한둘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곳만 해도···.
“어휴, 우리가 아무리 빌런을 잡아넣으면 뭐 해. 나라에 도둑놈들이 저렇게 많은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 놓고 우리한테만 뭐라고 징징대니 원.”
먼저 휴게실에 와 있던 동료와 함께 혀를 끌끌 찬 강태산이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시작된 뉴스 속보.
그 시작은 ‘천종 건설’이라는 한 중소기업에서부터였다.
“겁도 없는 놈들이네. 감히 국가 기관에 저딴 짓을 하다니.”
공직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해 내부 정보를 빼내고 약점을 잡는 건 물론 뇌물을 주거나 협박하는 등.
언론을 통해 밝혀진 그들의 범죄 행각은 하나같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아니, 단순히 공직자뿐만 아니라 귀환자 협회 등의 힘이 있는 기관이라면 전부 집적거렸으니 더 대단하다고 봐야겠지.
‘결국 이렇게 꼬리가 밟힐 텐데 말이야. 다 인과응보로군.’
또 뒤이어 밝혀진 다른 기업들의 범죄 행각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한동안 잠잠하던 빌런들을 규합해 사병으로 운용하려던 정황은 높으신 분들까지 발칵 뒤집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
아침부터 시작된 뉴스가 점심이 다 된 지금까지 이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의 여론 흐름도 수상한 건 마찬가지지만.’
휴게실의 소파에 앉은 채 TV를 보며 커피를 홀짝이던 강태산의 눈초리가 예리하게 번뜩였다.
그간 많은 범죄를 겪고 분석해 온 그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진행되는 일들은 결코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닌, 누군가의 외력이 적용된 결과라는 걸.
‘각종 웹 사이트는 물론 작은 인터넷 신문사부터 이름이 알려진 언론사까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관련 내용을 떠들기 시작했지.’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밝혀진 증거는 발뺌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고, 직후 기다렸다는 듯 이어진 세무조사와 수색영장 발부는 그 의심에 쐐기를 박았다.
‘거기에 빌런들이 숨어있던 곳엔 협회의 가디언이 움직여 일망타진하기까지 했지. 이 정도로 일을 벌일 정도면 어지간히 커다란 세력이 움직인 게 아닐 텐데.’
언론은 물론 정치계와 법조계, 귀환자 협회까지 한꺼번에 움직였다.
당연히 자신이 있는 범죄수사과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그가 소속된 팀은 아직 서울 테러에 관한 업무가 마무리되지 않아 그 사건엔 다른 팀들이 움직이긴 했지만, 대략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은 알음알음 전해 듣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조사 결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는데요. 이번에 일어난 사건들의 배후에 대룡 그룹의 방준용 회장이 연루되어 있다는 소식입니다.
-허어··· 이게 사실이라면 파장이 정말 크겠는데요? 대룡 그룹은 한국을 지탱하는 대기업 중 하나가 아닙니까?
그때, TV에서 소식을 전하던 이들의 호들갑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형 폭탄이 터져 나왔다.
“대룡 그룹?”
“뭐야? 거기 대기업 아냐?”
“···야단났군. 보아하니 각성자들도 얽힌 것 같은데, 며칠간 야근은 확정이겠어.”
지금까지 요란하게 언급되던 일들의 배후가 국내 대기업 중 하나란 소식.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규모가 규모였던 만큼, 그 파급력도 장난이 아닐 게 틀림없었다.
강태산은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황급히 스마트폰을 들어 인터넷을 확인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곳은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었다.
-꽉 잡아! 내려간다!
-악!! 전 재산 넣었는데! 방준용 개XX야!!
-근데 진짜 확실한 정보 맞아? 나중에 오보 이 ㅈㄹ떨면 고소한다. 농담 아님.
-같이 방송국에 불 지르러 갈 사람?
-근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냐? 아무리 봐도 누가 대룡에 작업 치는 것 같은데.
-나 관계잔데, 대룡 이전부터 찝찝한 소문이 있긴 했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난 존버한다. 대룡이 어떤 덴데, 이대로 안 무너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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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산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딱히 주식에 관심이 없었지만 어떤 이들에겐 인생이 달린 문제일 것이다.
그런 만큼 노심초사하며 이 사건의 진행 상황을 바라보고 있겠지.
‘그러고 보니 성현이도 주식으로 돈 좀 벌고 있다고 한 것 같은데. 녀석은 괜찮으려나?’
심각한 표정이 된 그는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친구에게 짧은 문자를 날렸다.
이번 사건이 그에게 준 영향은 딱 그 정도였다.
아예 연관이 없진 않으나, 직접적으로 얽힌 것도 없는 그런 관계.
띠링—
그 문자가 오기 전까진 말이다.
“응? 벌써 답장을··· 아니네?”
그 문자의 발신인은 범죄수사과의 다른 팀, 지금 뉴스에 나오는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팀에 속한 선배였다.
할 말이 있으니 잠깐 좀 보자는 것.
세간의 화제가 된 사건을 맡고 있는 만큼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인데 뜬금없는 호출이었다.
‘너무 바빠서 지원이라도 요청하시려는 건가?’
그런 거라면 이쪽의 팀장을 통해 연락이 왔을 터.
잠깐 고민하던 강태산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그 선배가 있는 조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가 보면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같은 건물 같은 층을 쓰는 만큼 여기서 그리 멀지도 않았고 말이다.
“···예? 방금 뭐라고···.”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후 선배에게 들은 말은.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크흠— 에,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몇 차례 헛기침과 함께 한숨을 푹 내쉰 선배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조현진 씨가··· 아니, 너한텐 박미영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려나.”
“네? 누구요?”
그를 사건과 한 발짝 떨어진 관조자에서 직접적인 당사자로 만드는 한마디를.
최근 인생 첫 여자 친구를 사귀며 한창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강태산.
그가 본의 아니게 솔로로 복귀한 날이었다.
***
“끝났네.”
인적 드문 곳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은신 모드를 활성화한 채 인터넷에 접속해 있던 금속 슈트의 사내, 헤스페론이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으니 쉽게 수습하진 못할 거야. 그리 내버려 둘 생각도 없고.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나중에 퇴진한 대룡의 수뇌부에게 우연히 불행한 일이 닥치더라도 발 벗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순히 무력만을 앞세운 처벌이 아닌, 사회의 틀에 맞춘 완벽한 한 방이었다.
‘해킹 능력이 없었다면 좀 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했겠지.’
처음부터 대룡 그룹을 공격하지 않은 것도 일부러 의도한 바였다.
그들 또한 명색이 한국 재계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기업 중 하나.
당연히 언론을 비롯해 각계각층에 끄나풀이 있는 건 그들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겠나.
하지만 놈들이 손발처럼 다루던 천종 건설을 비롯한 기업들은 사정이 달랐다.
애초에 언제든 끈을 잘라낼 수 있도록 철저하게 연관성을 차단한 만큼, 그쪽이 공격당하더라도 차마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그쪽이 터지는 순간 곧바로 꼬리를 끊고 흔적을 지우기에 바빴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기업들에 대한 뉴스도 연달아 터지기 시작하면서 그들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천종 건설 하나만 털린 줄 알았더니 다른 끄나풀들 또한 머리채를 잡혀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고 있었으니까.
‘그제야 부랴부랴 대응을 시작했겠지만···.’
때는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그들이 열심히 연관성을 지우고 있던 동안 자신은 이미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한껏 불을 지핀 후이지 않았던가!
일을 키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딱히 지금 같은 상황을 상정한 건 아니었으나, 혈맹이 한국의 음지를 먹어 치우고 하워드 인더스트리를 설립하면서 뿌린 막대한 자금은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누명도 아니고 증거까지 확실한 사건을 조명하는 것 정돈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거기까지 가면 게임 끝이지.’
일이 그렇게까지 커졌다면 뒤늦게 인맥을 동원하며 용을 써 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저들이 부랴부랴 지웠다고 생각한 증거는 이미 전날 밤 바쁘게 움직인 헤스페론이 백업은 물론 보기 쉽게 정리까지 마친 뒤였으니.
본인들조차 무심코 넘어갔던 작은 단서들까지 일목요연하게 제시된 상황에 뭘 더 할 수 있으랴.
‘···생각보다 일이 커진 것 같긴 한데.’
한국을 뒤흔든 이 대형 스캔들이 고작 친구에게 수작을 부리려던 여자 한 명 때문에 밝혀졌단 사실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
자신을 걱정하는 강태산의 문자에 회신을 보낸 지 오래였지만, 그에게선 이렇다 할 답이 오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연인이었던 이의 정체에 대해 알고 멘탈이 나가 버렸을 터.
‘그래도 태산이라면 금방 회복하겠지.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녀석의 회복을 기원했다.
‘솔로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친구야.’
어쩐지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지만 기분 탓일 거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