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89)
아우테리카의 부속 차원 중 하나인 마계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 면적을 다 따져 봐도 기껏해야 이온 대륙 하나 정도쯤 될까.
거기다 바다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곳곳에서 들짐승처럼 돌아다니는 수많은 마수는 물론, 마물에 가깝게 진화해 적극적으로 먹잇감을 사냥하는 식물들까지.
이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악마족의 전투력이 자연스럽게 증가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호시탐탐 지상을 노리는 것도 이해가 되네.’
마계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그것만큼 절실하게 느껴지는 사실이 또 없었다.
헬라는 자신의 앞에 차려진 기괴한 형상의 음식물을 내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만화 속 과장된 연출로만 접하던 것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난 됐으니까 치워. 버리기 뭐하면 너희가 먹던가.”
“알겠습니다, 헬라 님.”
일단 이곳엔 즐길 거리가 너무 없었다.
식도락은 그저 몇몇 고위층들의 유희일 뿐이었고 그나마도 그 퀄리티가 썩 높지 않았다.
애초에 식사 자체가 필요 없는 악마족이다 보니, 요리란 것이 그저 미각이라는 감각을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쪽으로만 발달한 것이다.
‘물론 거기엔 식자재의 한계가 결정적이겠지만.’
사용인들이 음식물이 든 쟁반을 정리해 물러났다.
헬라는 그 와중에도 끝까지 자신을 응시하는 정체불명의 음식에 박힌 눈알을 지그시 노려보며 혀를 찼다.
‘문화생활도 부족하고 말이야. 기껏해야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치고받고 싸우거나 그걸 가지고 도박하는 게 전부라니.’
이런 환경에선 설령 예술을 좋아하거나 문학을 즐기는 악마가 있더라도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기 힘들 것이다.
애초에 그런 걸 접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할 테고.
“흐음, 이 부분도 적당히 손볼 필요가 있겠네.”
풍족한 문화는 대중에 대한 통치를 수월하게 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물론 무력의 가치가 최우선이 되는 이 마계 사회에서 감히 마왕의 명령을 무시하는 놈들은 없겠지만, 마지못해 따르는 것과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그 효율성 면에서 차원이 다르지 않겠는가?
‘물론 그런 건 전부 나중에 생각할 문제지만.’
헬라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림과 조각품, 희귀한 생김새의 갑옷 등.
마계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온갖 예술품들로 꾸며진 이 공간은 그녀가 처음 방문한 도시인 달룬의 성이 아니었다.
“송구스럽습니다, 헬라 님. 아무래도 마계에서 자생하는 재료들로 요리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보니···.”
“괜찮아, 크롬웰. 그런 건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옆에 다가와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사내를 향해 헬라가 대충 손을 휘저었다.
두 발로 선 염소의 하체와 뿔, 사각형의 눈동자를 지닌 인간형 악마.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바로 저 자작급 악마 크롬웰이 지배하는 영토였다.
달룬의 조력으로 빠르게 확장하기 시작한 그녀의 영향력이 어느새 이 예술을 사랑하는 악마에게까지 닿게 된 것이다.
“그보다 작업은 잘 되어가고 있지?”
“물론입니다. 저 크롬웰, 발이 넓기로는 마계 제일이라 자부하는 몸입니다. 정세가 어지러운 탓에 백작 이상의 고위층들은 힘들어도, 그 아랫선이라면 자리를 만드는 것쯤이야 고블린 머리 깨기지요.”
···저 비유는 마계의 속담인 걸까?
과연 악마들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살벌한 표현이었으나, 대충 쉬운 일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운이 좋아. 저런 인재를 이렇게 빨리 거두다니.’
공간계 마법의 대가이자 뛰어난 사교성을 바탕으로 많은 인사들과 인연을 맺고 있는 자작급 악마 크롬웰.
그는 어느 파벌에도 들어가지 않은 중립파였다.
그 덕분에 같은 중립 성향을 지닌 이들은 물론, 서로 대립 중인 파벌에 속한 이들과도 어렵지 않게 다리를 놔줄 수 있는 귀중한 인력이었다.
‘사실 우연이라기보단 필연이라고 봐야지.’
그 넓은 인맥에는 남작급 악마인 달룬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다른 이들과의 만남을 꺼리지 않는 그는 달룬의 접견 요청을 대수롭지 않게 승낙했고,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지금 보이는 그대로였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해. 아직은 시선을 끌 때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야 원래부터 다양한 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걸 즐기는 한량이니까요. 이제 와서 그걸 이상하다고 여길 이들은 없을 겁니다.”
마계에서 새롭게 움트기 시작한 헬라 파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순조롭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녀의 휘하에 들어온 악마들은 겉으로는 계속해서 기존의 파벌 활동을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그 모든 소속을 무시하고 새로운 명령 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내부 배신은 염려할 필요도 없지. 말단들이 알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으니.’
각 세력의 우두머리는 물론 그 휘하의 수뇌부들까지 이미 그녀의 손아귀에 떨어진 상태다.
여전히 귀족급을 거두는 데는 상당한 수고가 들었지만, 그보다 격이 떨어지는 악마족은 그리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각 파벌에서 심어놓은 스파이들이 자수하고 이쪽으로 돌아선 것도 적잖은 수확이었다.
‘역시 뭐든 익숙해지는 덴 자주 사용하는 게 최고라니까?’
꼭 「지배의 마안」뿐만이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막대한 가능성을 품고 태어나 시작부터 초월을 이뤘다곤 하나, 완전히 새로운 육체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해선 그에 적응할 시간이 필수였다.
그 불균형으로 인해 이전까지는 자칭 마왕치곤 다소 부족한 면모가 있었던 것도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매혹 능력 원툴이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이었다.
《마신이 당신을 굽어봅니다.》
저 시선이 바로 그 증거일 터.
그만큼 바빴던 건지 아니면 헬라가 아직 부족하다고 여겼던 건지는 몰라도, 마계에 들어선 직후에도 잠잠하던 마신이 드디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일을 마치면 이종족이 만든 것은 물론 이계의 예술품들도 잔뜩 안겨줄 테니 잘 부탁해?”
“오오! 이계의 예술품이라니! 이 크롬웰, 신명을 다해 헬라 님의 명을 이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지상으로 소환될 때마다 귀한 작품들을 대가로 받아 수집해 온 악마, 크롬웰이 흥분에 젖어 절도 있게 허리를 숙였다.
적절한 보상으로 부하의 사기를 고취시켜 능률을 끌어올린 헬라가 작게 끄덕였다.
공간을 다루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데다 인류 친화적 사상을 지닌 크롬웰은 차후 휴버트 상회가 마계로 진출하는 데에 도움을 줄 핵심 인재.
지금부터 잘 길들여 둔다면 나중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 헬라 님. 그리고 또 한 가지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응? 뭔데?”
휴버트 상회 마계 지부장(예정)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헬라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서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사랑스러움에 재차 고개를 푹 숙인 그가 애써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미 첫 만남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그 아름다움을 찬미했다가 늘씬하게 얻어터진 경험이 있는 크롬웰.
헬라의 성향을 온몸으로 체감한 이상 말 한마디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자칫했다간 폭군 기질이 있는 새로운 주군에게 괜히 찍혀버릴지도 몰랐으니.
“‘드림 워커’와 비밀리에 접선을 마쳤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기다렸다는 듯 반응해 오더군요. 이미 언제 오시든 환영할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합니다.”
“오호? 그래?”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헬라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비밀리에 세력을 키우는 일도 막중했지만 저쪽 일도 중요한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럼 더 지체할 거 없지. 바로 넘어갈 테니까 준비해 줘.”
“명하신 대로.”
드림 워커.
그곳은 후작급 악마가 수장으로 있는 강대한 세력임과 동시에.
헬라의 뿌리인 14대 마왕 르레이에를 배출한 서큐버스의 본거지였다.
***
대륙의 성지에 위치한 로셀리아 대신전.
“···으음, 이상하네. 역시 착각이었나?”
예배실에서 기도를 올리던 주신교단의 성녀 리에스타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분명 뭔가가 느껴졌었는데···.”
그것은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언제나처럼 업무에 매진하면서도 불사왕의 수작에 대비해 대륙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그녀의 감각에 뭔가 이질적인 것이 감지되었던 것이다.
‘분명 언데드 쪽보단 악마 추종자 쪽에 더 가까웠던 것 같은데. 한동안 느껴지다 지금은 또 깨끗이 사라져 버렸단 말이지.’
그 때문에 그녀는 지금도 시간 나는 대로 그때 감지한 무언가를 추적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미지의 위협을 감지했는데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지금으로선 툴크 왕국이라는 것 말곤 이렇다 할 단서도 없지만.’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젓곤 예배당을 나섰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무작정 붙잡고 있기엔 당장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으니.
타라크를 습격했던 초대형 거인이 쓰러진 후, 대륙 전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백색 거인 사태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그로 인해 백색 거인의 출몰에 빠르게 대항하기 위해 결사대와 함께했던 리에스타 성녀는 다시 현장에서 한발 물러서게 되었지만, 그게 그녀의 업무가 줄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 직후 ‘이세계에서 건너온 악신의 사도’가 로셀리아 대신전을 습격해 큰 피해를 주기도 했을뿐더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Conclave)도 얼마 전에야 끝났···.
“아니, 잠깐. 타라크?”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던 그녀가 우뚝 발걸음을 멈춰 섰다.
지금까지 그곳은 수많은 후보지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느껴진 어떤 직감이 그 타라크를 주시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으음, 타라크라.”
이전에도 충분히 대도시라 불릴 만했으나, 휴버트 상회라는 대륙 규모의 거대 상단이 둥지를 튼 후 더욱 급성장한 요충지 중 하나.
이제 와선 중앙의 제국과 서부의 왕국 연합을 잇는 물류의 중심이 된 타라크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역시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순 없겠어.’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인 성녀가 다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휙 뒤돌아서 방금 나섰던 예배당 안으로.
이제는 신의 품으로 떠난 전대 교황이 앓아누운 후부터 그녀는 줄곧 이 거대한 교단의 정점이었다.
추기경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도와주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
때문에 그 무게감에 짓눌려 아무도 모르게 힘들어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굳이 나 혼자 끙끙 앓을 필요가 없지.’
지금은 그녀의 짐을 함께 분담해 줄 상대가 있었다.
성녀와 마찬가지로 주신의 선택을 받아 그분의 뜻을 대리하는 교단의 성자이자, 이 땅을 어지럽히는 절대 악 불사왕을 처단할 운명을 부여받은 빛의 기사.
“—하인리히 님.”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은 그녀가 성표를 꼭 쥐고 두 눈을 감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이에게 연락을 보내기 위해.
[···성녀님?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교단에 무슨 일이라도?] [아, 갑자기 죄송해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그녀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맺혔다.
***
다양한 마법진이 설치되어 각지의 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공간.
그 넓은 공간을 각자 개성이 뚜렷한 미남미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까진 다른 파벌들과의 균형을 맞추며 어찌어찌 버텨오고 있었는데, 최근 그것이 무너지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 한창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이다.
“···연락은 잘 마쳤니?”
“그렇습니다, 대모님. 저희는 물론 크롬웰 쪽에서도 몇 차례나 주의를 기울인 터라 보안에는 큰 이상이 없습니다.”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던 피곤한 표정의 서른 초반의 여인.
그녀가 발걸음을 돌려 복도로 나서며 꺼낸 말에 비서처럼 차려입은 뿔 달린 미남이 뒤를 따라붙으며 답했다.
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비서와 함께 있던 다른 여인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시아나, 정말 그자가 퀸의 정수를 가지고 있었단 말이지?”
“네, 대모님. 제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사실입니다.”
“허어···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뿐이건만. 정말로 그게 대륙에 남아있었단 말이렷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사의 군대 소속으로서 불사성에서 업무에 매진하던 시아나.
그녀는 지금 자신의 고향인 마계의 드림 워커 영역에 돌아와 있었다.
불사왕이 직접 명한 파견 근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리고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수색 임무를 끝마치기 위해서.
“네가 큰 공을 세웠구나, 시아나. 설마 진짜로 해낼 줄이야. 장하다, 장해.”
“···아뇨,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저 심부름꾼이었을 뿐인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네가 위험을 무릅쓰고 불사왕의 휘하로 잠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결국 그의 신임을 얻지 못했더라면 이런 연결고리조차 생기지 않았을 터이니. 만약 퀸의 정수를 가진 자가 다른 파벌과 접촉이라도 했다면···.”
아찔하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서큐버스의 대모.
그 과분한 칭찬에 침착하던 시아나의 얼굴 위로 민망함 어린 균열이 일었다.
온갖 포장을 해서 보고하긴 했지만, 사실 그동안은 그저 불사왕에게 사로잡혀 노예처럼 부려 먹히고 있을 뿐이었으니.
“그런데 정수를 지닌 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네. 부끄럽지만 저로서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주한 순간 압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제가 본 그 모습은 마치···.”
그렇게 입을 열던 시아나의 말문이 턱 막혔다.
마치··· 자기가 그다음 뭐라고 말하려 했지?
저도 모르게 나오려던 말을 삼킨 그녀가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 전설의 이름은 함부로 꺼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물며 그 존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대모님 앞에서는 절대 꺼내선 안 되는 금기였다.
그에 순간적으로 공황에 빠진 그녀가 잠깐 얼어붙었을 때.
“대모님! 크롬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 시아나를 구해주듯 옆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와 함께 대모의 뒤를 따르던 인큐버스 비서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고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 하던가? 이쪽으로 오겠다는 이야기겠지?”
“···네, 그렇습니다.”
“잘 됐구나.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는데 말이야. 이쪽의 출입 코드는 미리 전달해 줬을 테고. 그래, 언제 온다든?”
“···예, 그게···.”
마침 그들의 발걸음이 수많은 전송진들이 설치된 곳에서 멈춰 섰다.
실시간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병력 운송이 이루어지는 이곳은 가장 중요한 전략 시설 중 하나였다.
당장 지금도 일단의 지원군이 위태로운 전장으로 서둘러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가라앉은 눈으로 그 모든 상황을 체크하던 대모의 귓가로 비서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지금입니다.”
“응?”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이잉—
한쪽 구석에 있던 전송진이 요란한 진동음을 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원래 공간 이동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난해한 신비이기에 한 번 발동하는 데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아무리 마법진이 그를 보조한다고 해도 효율적인 에너지 분배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딜레이가 생기기 마련.
우우웅—!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그 모든 과정을 가뿐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몇 분이 소요되었을 시간이 단 몇 초로 압축되고, 필요한 중간 단계가 스킵 되며 곧바로 결과에 도달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궁극에 닿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마도 지식.
그리고 무한에 가까운— 그야말로 압도적인 마력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완성된 공간의 문이 개방되고.
이윽고 그 너머에서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르레이에?”
천 년 이상을 살아온 서큐버스 대모의 입이 쩍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