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9)
진소란 (3)
해가 어스름하게 져 갈 무렵.
이곳의 클랜원들과 다시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진소란을 찾던 도중, 그녀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그럼,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다는 거군요?”
“예.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상부에서도 조심스러운 것 같습니다.”
“하아···, 할 수 없죠.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대화 상대가 사라지고 혼자 남은 진소란은 땅만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고민에 빠졌다.
하인즈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린 모양이지?”
“아! 하인즈 씨. 오셨어요?”
“그래, 무슨 일 있나? 얼굴이 영 말이 아니군.”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 입을 열었다.
“딱히 기밀도 아니고, 하인즈 씨도 당사자니까 아셔야겠죠. 그, 제 윗선에 보고했던 거 있잖아요?”
“감마 일당이 동족 포식을 했다는 거 말인가?”
“네, 그거요. 그걸로 조사단이 파견됐는데, 하회탈이 습격 후에 전부 불태워 버렸는지 증거를 찾을 수 없었대요. 아무래도 민감한 문제다 보니 증거도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시무룩해진 기색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그 고생을 했는데 진전되는 게 없으니 속상한 모양이었다.
‘하인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좀 과하게 손을 쓰긴 했지.’
온갖 세상의 술법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보니, 하인즈의 동족 포식을 숨기기 위해 철저하게 대응했다.
한스의 흑마력이 가득 담긴 지옥 불꽃으로 건물 내부를 통째로 지져버린 것이다.
‘사실상 외부만 멀쩡하고 내부는 깡그리 녹아버렸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기다 흑마력의 영향으로 어떤 탐색도 불가능하니.’
그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차피 그녀의 뜻대로 잘 풀릴 가능성은 별로 없었으니 이게 최선이었다.
그보다 지금은 다른 정보가 더 중요했다.
“네? 강경파의 근거지가 어디냐고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진소란이 당황한 듯 되물었다.
“그, 혹시 왜 물어보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혹시 그새 마음이 변했나 불안해하는 기색이었다.
온건파의 특성상 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어제는 강자 둘이 배신하고 이탈하지 않았나.
그 때문에 하인즈의 합류를 누구보다 반겼던 그녀였다.
“어제 일을 겪어보니 생각보다 더 위험한 놈들 같아서.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위치라도 알아야 피해 다니지 않겠어?”
“앗! 그렇군요! 전부 확실하게 해결될 때까지는 조심해야 하니까요. 저희 크루원들에게도 다시 주의를 줘야겠네요.”
대충 주워섬긴 변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진소란.
그녀는 흔쾌히 자신이 알고 있는 강경파의 근거지를 모두 알려주었다.
“아··· 제 폰이 박살 나 버리는 바람에. 지도 앱 좀 켜주세요. 제가 아는 만큼 찍어 드릴게요.”
좀 과할 정도로 열심히.
혈맹은 여러 파벌의 집단으로 이루어진 만큼 서로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주기적인 교류를 통해 근방에 위치한 이들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됐다. 일단 제가 알고 있는 데는 이 정도예요. 또 필요하신 건 있나요?”
“아니, 괜찮다. 신경 써줘서 고맙군.”
나머지는 그쪽 놈들의 뇌를 뒤져 알아보면 되겠지.
이미 획득한 흡혈인자를 가진 놈들만 대충 선별해서 한스에게 넘기면 될 터였다.
그러던 중,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진소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아침에 알아봤던 정보가 떠올랐다.
“지금부터 방송할 예정인가?”
“···녜헵?!”
당황해서 혀를 씹었는지 기묘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 그, 알고 계셨나요···?”
부끄러웠는지 그녀의 귀 끝이 서서히 빨개졌지만, 여기선 모르는 척해주는 게 신사의 도리겠지.
“처음부터 알았지. 오키드, 맞지?”
“으우우···. 방송할 때랑은 인상이 많이 달랐을 텐데, 용케도 알아보셨네요. 갑자기 면전에서 듣는 건 처음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빙빙 감으면서 애써 평정을 찾으려는 진소란.
귀 끝을 넘어 목덜미까지 빨개졌지만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호···혹시 제 방송 보셨나요? 설마 팔로워? 구독까지 하신 건 아니죠?!”
부끄러워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더니, 끝에 가선 흥분해 쏘아붙이듯 말했다.
갑작스레 시청자를 만나 너무 긴장한 것 같은데.
“아니, 인터넷에서 봤던 게 생각나서 잠깐 찾아본 게 전부다.”
“그, 그런가요오~ 다행이네요.”
다행인 듯하면서도 아쉬워하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확실히 좋은 방법이긴 하군.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서도 사회활동을 할 수 있으니.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지?”
“음···, 제가 아이돌 연습생 출신이었거든요. 이세계로 가기 전에는.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만뒀는데, 막상 힘들게 귀환하고 보니 너무 아쉬운 거예요.”
그래서 대중의 관심을 좇아 방송을 시작했다고.
또 방송 때는 흡혈귀가 되기 전의 모습과 비슷하게 화장한 거라고 덧붙였다.
“돌아오고 나서 이능관리국에 들키지 않았나? 족히 몇 개월은 공백이었을 텐데.”
“제가 각성했을 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거든요. 제가 돌아오고 얼마 안 돼서 생겼던 것 같은데···.”
그녀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연습생을 그만뒀을 때 이세계로 간 거면···, 지금은 몇 살이지?”
“아, 전 18살에 각성했어요. 아이돌이 되겠다고 학교도 그만둔 지라 주변에 알려지진 않았지만요. 지금은 22살이고요.”
연상이었군.
나는 애써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이제 와서 연상 대접하는 것도 모양 빠지니까.
“아니 잠깐, 이세계에서 족히 몇 년은 보내고 오지 않았나?”
“그렇죠?”
“그럼 그 기간까지 포함해야 진짜 나이···.”
“22살이에요.”
그녀가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내 말을 끊었다.
“음···.”
“22살이에요. 신분증 깔까요?”
“아니, 됐다. 원래 나이란 출생 연도를 따져서 세는 법이지.”
번쩍이는 눈빛으로 미소 짓는 얼굴을 들이대는 그녀를 밀어내며 애써 수긍했다.
그래, 나이는 중요한 문제겠지. 내가 너무 무신경했다.
“그럼 수고하고. 나는 이만 가 보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크루원이라고 모두 한곳에 모여 살지는 않는다.
물론 안전을 위해 권장되기는 하지만, 따로 집이 있는 이들은 필요할 때 모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럼 어디 먼저 방문할까.’
나는 지도 어플을 바라보며 슬며시 입맛을 다셨다.
뷔페에서 무엇부터 골라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기분이었다.
***
야심한 시각.
“끄··· 끄윽, 네놈··· 이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
콰직—!
고급 아파트의 한 가정집에서 상당한 소란이 일었으나,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은폐」가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이는군.’
방심한 흡혈귀를 기습해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주변에 은폐장을 구축하여 전투의 기척을 없앤다.
하인즈가 단독으로 흡혈귀 사냥을 다닐 수 있게 한 주력 스킬이었다.
‘감마에겐 고마울 따름이야. 이렇게까지 아낌없이 챙겨주다니.’
「은폐」뿐 아니라 하인즈의 새로운 애마인 스포츠카, 거기에 돈 될 만한 것은 물론 온갖 주술 도구와 연구 설비까지 한스의 아공간에 챙겼으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따로 없었다.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작업을 할 수도 있었고.’
하인즈가 제압된 흡혈귀의 피를 빨며 다음에 습격할 곳을 정리했다.
진소란에게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스와 하인즈는 강경파 크루의 집결지를 습격했다.
내부 인원의 제압은 순식간에 끝났고, 한스는 몇몇 똘똘해 보이는 놈들의 머릿속을 뒤졌다.
그렇게 새로 얻은 정보들.
‘크루 소속이지만 그 근거지에서 생활하지 않는 놈들. 습격 정보가 전해지지 않은 만큼, 방심하고 있는 놈들을 각개격파 할 좋은 기회다.’
그렇게 흩어진 둘은 각자 목표를 정해서 놈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중이었다.
《새로운 흡혈인자를 수집합니다. 특수스킬「혼혈진화」의 영향으로 개체의 혈액 통제력이 향상됩니다.》
한스와 비교하면 아쉬워서 그렇지, 이젠 하인즈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아직 흡혈인자의 양이 부족해 순혈로 남아있지만, 진화된 인자의 힘을 생각하면 전투력만은 진혈과 맞먹을 테니까.
‘그리고 이제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지. 아마 다음이 마지막일 것 같은데.’
전신의 세포가 한층 더 진화하는 것을 느끼며 내부를 관조했다.
어느 한계에 다다른 듯한 흡혈인자와 들끓는 내면의 힘이 느껴졌다.
“일단 여기를 정리하고 이동해야겠군.”
하인즈가 새롭게 얻은 힘을 끌어올렸다.
양 손바닥이 찢어지며 상처가 생기고, 그곳을 통해 피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푸화악!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혈액.
그리고.
피가 묻은 장소에서 아름다운 붉은 꽃들이 피어올랐다.
화르륵—
이글이글 타오르며 주변으로 번져나가는 핏빛의 꽃밭.
이곳에 오기 전에 강경파의 근거지를 치고 얻은 스킬, 「혈화」였다.
타오르는 피의 꽃은 연기는 물론 열기조차 내뿜지 않고, 집 내부만 태우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시전자가 원하지 않으면 꺼지지 않으며 오로지 목표만을 불사르는 파괴적인 불꽃이었다.
‘뭐 그것도 힘의 격차가 크면 소용없긴 하지만.’
전 사용자의 「혈화」는 한스의 압도적인 흑마력에 촛불처럼 꺼져 버렸으니까.
‘물리적인 흔적은 「혈화」로 태워버렸고, 마력적인 흔적은 「은폐」로 감췄으니 이걸로 충분해.’
아직 밤은 길고, 사냥감은 많았다.
***
‘드디어 목표를 이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드디어 원하던 바에 도달했다.
《새로운 흡혈인자를 수집합니다. 특수스킬「혼혈진화」의 영향으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혈류증폭」을 획득합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특수스킬「피의 일족 (순혈純血)」이 「피의 일족 (진혈眞血)」로 진화합니다.》
《개체의 회복력이 한계를 초월했습니다. 스킬「재생」이 스킬「초재생」으로 진화합니다.》
모든 감각이 확장을 거듭한다.
세계가 또렷하게 인식되고 인지 범위 밖이었던 것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열기를 볼 수 있게 되고 소리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피부로 냄새를 느끼며 주변의 파동이 들려온다.
“후우···.”
공감각(共感覺)이 개화되었다.
진화 직후 어지럽게 느껴졌던 감각이 빠르게 안정되었다.
‘「아바타」를 통해 여러 감각을 느끼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면 한동안 고생 좀 했겠군.’
지금도 약간 혼란스러울 정도니 말 다했다.
너무 급격한 성장에 따른 부작용이리라.
보통의 진혈은 오랜 기간을 거치며 힘에 적응해 천천히 성장했을 테니까.
“쓰읍~ 하아···.”
심호흡을 하며 새로운 감각에 적응하던 순간, 방 안 거울에 비친 하인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내 원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겠는데.’
창백한 피부와 날카로운 눈을 가진 차가운 인상의 조각 미남.
은연중에 맴도는 치명적인 분위기까지, 매혹적이기 그지없었다.
얼마 전에 「혼혈진화」를 통해 습득한 기술로 이목구비를 손본 영향도 있어, 이제는 본체와 나란히 선다 해도 연관성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잠시 거울 속의 꽃미남을 감상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 감각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능력을 확인했다.
이번 사냥감을 통해 습득한 「혈류증폭」은 육체 능력과 회복 능력을 강화하는 버프 스킬이었다.
안 그래도 진화를 거듭하며 피지컬이 급상승했는데, 이 능력까지 쓰면 어지간한 상대는 맨손으로 찢어버릴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재생」 스킬이 또 진화했군. 이 정도면 가만히 맞아주기만 해도 죽기 힘들겠는데?’
하인즈는 가만히 오른손 검지를 세웠다.
손톱 주변에서 붉은 핏물이 배어 나오더니, 길게 늘어난 채로 굳어 날카롭고 단단한 손톱이 되었다.
‘혈액 통제력이 상승했군. 혈마력도 더 잘 받아들이고.’
그 예리한 손톱으로 왼팔을 길게 그었다.
푸확—!
순간 뿜어져 나오는 핏물.
붉은 액체가 공중을 수놓은 것도 잠시.
흩뿌려진 핏물이 공중에 멈추더니, 시간을 역행하듯 팔뚝의 상처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문 왼팔에는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진혈의 혈액 제어와 「초재생」이 합쳐지니 시너지가 무시무시한데?’
재생 과정에서 약간의 힘이 소모되었지만 효과에 비하면 미미할 뿐이다.
‘거기에 전투 도중 주변의 피를 빨아들여 회복한다면?’
전장에 널린 혈액은 물론, 상대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인의 몸속에 있는 피는 당사자의 마나와 염(念)이 깃들어 있어 제어할 수 없지만···.
‘아니, 성혈(聖血)이 된다면 어쩌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지.’
성혈은 아우테리카 뱀파이어들의 신앙과도 같은 존재.
쉽게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는 쉬웠나.’
물론, 어렵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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