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00)
휴버트 상회의 응접실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
“···그러니까, 이쪽분이 그?”
얼마 전에 타라크에서 있었던 소동.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련된 이 자리엔 당시 사건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하인리히를 비롯해 문제 해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용사 파티는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준 하인즈 2세와 피해자 대표인 동시에 휴버트 상회의 관계자로 참석한 디아나, 그리고···.
사건의 범인인 테미란 맥클레어까지.
“음,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그 어색한 공기를 뚫고 그의 조심스러운 사과가 이어졌다.
처음 만나자마자 치고받고 싸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평화로운 자리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다니.
거기다 사건의 피해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뻔뻔한 사람이라도 민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 괜찮아요. 사정은 대충 들었으니까.”
그 사과에 디아나가 어른스럽게 답했다.
딱히 그녀가 마음이 넓어서 상대를 용서한 건 아니었다.
그저, 하인즈에게 일련의 사정을 전해 듣고 그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일 뿐.
‘본의 아니게 조종당하는 상태였던 데다 앞으로는 아저씨의 명을 거부할 수 없는 부하가 되었다고 하니까···.’
따지고 보면 이제 한솥밥을 먹게 된 처지인데 계속 날을 세워봤자 서로 피곤할 뿐이었다.
그렇게 피해자 대표로 나온 그녀가 사과를 받아들이자 분위기도 좀 더 부드러워졌다.
물론 따지고 보면 가장 큰 피해자는 부상을 입은 주술사 노파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디아나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요양을 위해 틀어박힌 상태였으니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외모가 못 알아볼 정도로 변했군요. 그 뱀파이어가 고작 며칠 만에 이렇게 빨리 자라다니. 아무리 봐도 신기하네요.”
“···품고 있는 기운도 상당히 바뀌었고요. 하인리히 님께서 동일인이 맞다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했을 겁니다.”
동석한 성자가 이제는 위험하지 않다는 확언도 해줬겠다, 하이 엘프 리디아와 마도사 이세아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눈앞의 소년을 관찰했다.
처음 마주쳤을 때의 십 대 초반의 외모는 어느새 후반으로— 어찌 보면 이십 대 청년으로 보일 정도로 급변해 있었다.
단순히 외형뿐만이 아닌 힘의 근원이자 본질 자체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그녀들이었기에 더욱 신기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역시 불사왕이네요. 최근 비교적 잠잠하다 싶었는데 뒤에서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아무래도 전쟁이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죠. 휴버트 상회는 명실상부 대륙 제일 상단. 그곳을 흔들 수 있다면 여러모로 이득이 될 거란 판단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번 일의 흑막, 불사왕에 대한 화제로 넘어갔다.
그 극악무도한 불사왕이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에 앞서 대륙 상권을 위협하기 위해 암수를 뻗어온 상황이다.
그것도 은연중에 협력을 약속했던 뱀파이어를 이용해 이간질까지 노리고서.
이 어찌 위협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그렇게 성자까지 포함된 일행이 진지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며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에, 그들과 마주 앉아 있던 테미란이 살짝 눈동자만 굴려 옆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하인즈를 바라보았다.
[“앞을 봐라.”]그러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새로운 주인의 목소리에 아무렇지 않게 정면으로 시선을 옮기며 그들의 말에 동조했다.
이 자리에 오기 전, 사전에 명령받았던 대로.
“예, 거기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받은 임무 중엔 마계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세상의 모든 악의를 불사왕에게!
어차피 심연의 신에 대한 내용은 함부로 발설할 수도 없었고, 이쪽 세계의 사람이라면 그걸 이해하지도 못할 거다.
그러니 역천의 서약과 혁명가 때처럼 차라리 모든 사건사고를 불사왕에게로 돌리는 게 더 편했다.
‘이렇게 얻는 카르마도 나름 쏠쏠하단 말이지.’
「종속 지배」까지 더해져 지배력이 더욱 강해진 것 덕분인지 테미란은 기대 이상으로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했다.
이 스킬 덕분에 이제 자신에게 종속된 자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소통까지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뜻하지 않게 얻은 능력치곤 제법 쏠쏠한 소득이라 할 수 있었다.
“마계라면 역시···.”
“악마 추종자들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 둬야···.”
그렇게 조금씩 심각한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하자,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던 디아나가 슬쩍 눈을 돌려 같은 공간에 있는 하인리히와 하인즈를 번갈아 가며 곁눈질했다.
여전히 어딘가 흡사한 냄새를 풍기는 두 사람.
‘역시 틀림없어.’
그녀는 얼마 전 하인즈에게 그 말을 꺼냈던 날을 떠올렸다.
***
“···미안하군. 다시 한번 말해주겠나?”
언제나 냉정 침착한 하인즈답지 않은 태도.
그 당황이 역력히 묻어나오는 반응에 디아나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마음은 저도 이해해요. 하지만 제 능력이 어떤 건지 아저씨도 잘 아시잖아요?”
동물이나 몬스터를 아득히 뛰어넘는 건 물론, 물리적인 냄새뿐만이 아니라 ‘위험’ 같은 실체가 없는 개념이나 영혼의 향취까지 구분할 수 있는 초월적인 후각.
그런 능력을 평생 달고 살아온 디아나가 담담하게, 그러나 분명한 확신을 담아서 선언했다.
“아저씨와 성자님 두 분, 아무래도 어렸을 때 헤어진 형제이신 것 같아요.”
“······.”
“어쩌면 쌍둥이일지도 모르겠네요. 느낌은 다르지만 두 분 다 미남이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인상도 좀 닮았어요.”
“······.”
“저 들어본 적 있어요. 하인리히 성자님도 탈리아 왕국 출신의 떠돌이였다가 주신교단에 전 재산을 기부하고 성전사로 입적하셨다고. 그리고 탈리아 왕국은··· 저희가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잖아요?”
근거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주장.
디아나는 뜻밖의 진실을 마주한 탓에 차마 말문을 열지 못하는 하인즈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거대 상회의 주인이자 뱀파이어의 왕.
그리고 주신교단의 성자이자 신의 뜻을 대행하는 첫 번째 검.
설마 그 둘이 형제였다는 사실을 감히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그녀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절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회주의 신분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어. 그런데 문제는 아저씨의 진짜 정체가 뱀파이어라는 거야. 비록 지금은 양측이 비교적 양호한 관계를 맺고 있다지만···.’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라 믿는 건 너무 낙관적인 기대였다.
사실 지금의 평화도 단지 윗분들의 뜻에 따라 서로가 소 닭 보듯 애써 무시하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오랜 세월 굳어져 온 인식은 그리 빨리 바뀌는 게 아닐뿐더러, 마냥 융화되기만을 바라기에는 두 집단의 성향이 너무 극과 극이었다.
반대파도 당장 코앞에 닥친 불사왕이라는 거대한 위협 때문에 잠자코 있을 뿐,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분명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할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뱀파이어의 포용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한 게 성자님이라고 했어. 사실상 이 결속은 그분에 대한 신용만으로 이루어진 거나 다름없다고.’
성자도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만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그런 식으로라도 뱀파이어 쪽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낸 거겠지.
“···아저씨, 괜찮으세요?”
디아나가 여전히 입을 닫고 있는 하인즈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설령 잃어버린 가족을 찾았다 하더라도 각 집단의 대표인 그들은 사사로이 움직일 수 없었다.
밑에서 발생한 아주 사소한 갈등도 그들에겐 쉽사리 넘길 수 없는 장벽이 되리라.
이게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으음.”
그때, 가라앉은 눈으로 디아나를 바라보던 하인즈가 낮은 침음을 흘렸다.
뭔가 고민하듯 고뇌에 찬 표정으로.
물론 그는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얘는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디아나가 그 혼란의 와중에 정신을 유지하고 두 아바타의 향기를 구분했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신성을 품으며 존재의 파장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건 물론, 강대하고 두터운 격으로 영육을 감싸고 있는 아바타들의 영적 보안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냄새를 맡았다는 것은—.
‘더 성장했군. 그것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아무래도 사도인 테미란과 접촉한 게 뭔가 영향을 준 모양이야.’
그래도 디아나가 이런 말을 꺼내는 걸 보니 그 보안이 아주 쓸모없진 않았던 것 같았다.
뭔가 냄새를 맡긴 맡았는데 정밀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계산에서 착오가 생긴 거겠지.
“···그런가. 알려줘서 고맙다.”
“아뇨, 이 정도야 아저씨가 저에게 해 주신 거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걸요.”
“그래도 일단은 묻어 두는 게 좋겠다. 괜히 그것 때문에 서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네에···. 그, 뭔가 큰 활약을 하면 분명 사람들도 알아줄 거예요! 실제로 최근 서부에선 확실히 뱀파이어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기도 하고···.”
하인즈는 열심히 자신을 위로하는 그녀에게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무리 완전히 자신의 사람이나 다름없는 디아나라지만 비밀을 아는 이는 적을수록 좋은 법.
굳이 자신이 나서서 오해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제법 괜찮은 설정인 거 같은데? 이걸 어디에 써먹을 순 없으려나.’
그렇게 하인즈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 고민의 성격은 디아나가 생각하는 것과는 백만 광년쯤 떨어져 있었지만.
***
“정말 이대로도 괜찮을까요? 물론 불사왕과의 싸움이 급한 건 압니다만···.”
관계자 회담이 끝난 직후.
하인즈와 단둘이 된 테미란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뭔가가 불안한 듯 아까부터 계속 저런 태도였다.
“뭐가 그리 걱정이지? 네가 해 놓고 이제 와서 걱정되는 건가?”
“네, 뭐. 그야···.”
테미란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쪽 진형에 있을 때 자기가 한 수작들을 알고 있는 만큼, 이쪽 진형에 전향한 이후 그것들이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 마계의 상황은 진짜 장난이 아닙니다! 괜히 심연의 그놈이 완전하지도 않은 절 밖으로 내보낸 게 아니에요. 말하자면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막 발악이나 다름없는 게 작금의 마계 사태입니다!”
현재 마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작전은 무려 수천 년을 공들여 작업한 결과물이었다.
비록 테미란이 사도로서 활약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모든 전말을 아는 건 아니었으나, 그 안배의 트리거를 당긴 장본인으로서 대략적인 개요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괜찮다. 그걸 막기 위한 준비도 이미 확실하게 해뒀으니.”
“···예? 준비라니. 마계의 정보를 어떻게 얻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쪽은 완전히 제 손을 떠났습니다. 마계에 직접 가지 않는 한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더 확실한 일 처리를 위해 신의 파편을 지닌 디아나를 찾아갔다가 이렇게 되었지만, 그녀가 없어도 일이 진행되는 데엔 큰 지장이 없다는 소리였다.
“이미 문이 완전히 열리고 심연의 군대가 마계를 침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쪽의 수장도 홀라당 넘어간 지 오래고요. 신앙심이 바닥을 치는 데다 본능적으로 강자에게 복종하는 악마족들은 머지않아 새 마왕 아래에서 새로운 체계에 순응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뒤로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정보가 느리군. 하긴, 타라크로 오기 전에 한 교신이 마지막일 테니 당연한 건가.”
“······?”
하인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테미란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줘 봐야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됐으니 넌 제피아 공화국으로 넘어갈 준비나 해라.”
“아!”
“그렇지 않아도 계약 이행이 계속 늦어져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결과라도 좋아서 다행이군.”
공화국의 부통령 케일라 맥클레어와 했던 약속은 실종된 아들의 소재를 파악해 알려주는 것.
죽었다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시체나 무덤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 그녀였다.
‘그런데 이렇게 떡하니 살아있는 아들을 찾아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초과 달성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이러면 시간이 지체된 것 따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아들이 자신에게 완전히 종속된 뱀파이어라는 점 또한 가산점이라 할 수 있을 터.
여태까진 협력 관계였던 케일라 맥클레어가 하인즈에게 절대복종하는 수족이 되는 셈이었다.
“그, 정말 가도 됩니까?”
“그래.”
“···이십 년 만인데. 절 잊진 않으셨을까요?”
“걱정 마라.”
“아! 이러면 그냥 어렸을 때 모습이 더 나았을 것 같은데! 혹시 지금이라도 다시 되돌릴 수는···.”
“······.”
“없겠죠. 그냥 한 번 해본 말입니다. 그런데 뭔가 선물이라도 들고 가야 할까요? 장성한 아들이 갑자기 찾아뵙는데 뭐라도 가져가야···.”
어렸을 때 납치당한 건 물론 세상으로 나오고 나서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느라 어머니 근처엔 가지도 못했던 테미란.
한숨을 푹 내쉰 하인즈가 허공에서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목걸이형 마도구 하나를 꺼내 우왕좌왕하는 그에게 집어던졌다.
“···대충 그거 가지고 꺼져.”
그게 맞는 선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하인즈가 몸을 돌렸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
보랏빛 하늘 아래에 펼쳐진 전쟁터.
평소엔 온갖 형태의 괴물들이 한데 뒤엉켜 서로의 생과 사를 겨루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전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미묘한 침묵이 사위를 감싸고 있었다.
“후욱! 후욱!”
[크르르릉!]“흐으으—.”
하지만 현장에 있는 모두가 말만 하지 않고 있을 뿐 그것은 결코 싸늘한 정적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전투의 광기가 아닌, 마치 광신도들이 품은 신념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수많은 눈빛.
그것은 모두 전장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한 존재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를 무릎 꿇리는— 처음부터 위에서 군림하기 위해 탄생한 위대한 군주.
말 한마디만으로도 군중들이 자발적으로 심장을 뽑아 바치게 만들 수 있는 치명적인 마성.
감히 불경한 마음조차 품지 못하게 만드는 아름답고 고고한 마계의 별.
마왕이 그곳에 있었다.
[전장 정리가 모두 끝났습니다, 헬라 님.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언제든 다음 전장으로 출진할 수 있습니다!]그때, 커다란 발록이 그녀에게 다가와 바닥에 엎드리며 외쳤다.
그 또한 후작위에 있는 고위 악마였지만 그 태도에는 약간의 거리낌도 없었다.
있는 것은 오로지 선명한 공경과 숭배뿐.
“흐음— 시아나, 다음은 어디지?”
“다크 네스트의 중앙 관문 중 하나, 오토렐의 영역입니다.”
“그래? 생각보다 빠르네.”
빠른 것도 당연했다.
헬라가 이끄는 헬헤임의 군세는 평범한 전쟁을 통해 땅을 점령해 가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군대는 보통 싸움이 계속될수록 그 전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전쟁 한 번 할 때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물론 남은 이들에게도 막대한 피로를 남긴다.
물론 악마족은 태생적으로 그에 대한 내성이 강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 다들 충분히 쉬었지? 바로 이동한다?”
그녀의 군대만은 예외였다.
오만한 미소와 함께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어마어마한 마력.
[명에 따르겠나이다!]“헬라! 헬라! 헬라!”
[우오오오—!]“헬헤임에 승리를! 위대한 마왕께 영광을!”
그에 영향을 받은 군세가 일제히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함께해 왔던 병사들뿐만 아니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앞을 막아섰던 적들까지 모두.
싸움을 거칠수록 수가 불어나며 기세 또한 줄어들지 않는 악마의 군단.
헬헤임의 군세가 그간 어브노말이 잃은 영토를 모조리 수복하고 다크 네스트의 본토로 짓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