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03)
‘뭐지?’
상대를 마무리하기 위한 공격을 준비하던 마룡 공작이 저도 모르게 여섯 개의 눈을 꿈틀거렸다.
일반적인 감각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나는, 예민하기 그지없는 지각 능력을 지닌 그이기에 알 수 있었다.
‘흐름이···.’
방금 막.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일대의 공기가 한순간에 일변했다는 걸.
자신이 짜 놓았던 수로에서 벗어난 물줄기가 졸졸 새는 것을 넘어 미지의 영역으로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했다는 걸!
[하! 마지막 발악을 하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제 와서 발버둥 쳐 봐야 이미 늦었다!]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하던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자신조차 자주 사용할 수 없는 ‘즉사’를 허용하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상대다.
아무리 드높은 격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고는 해도 그 뒤에 이어지는 이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고오오오—
마룡 공작의 입안에 뭉친 칠흑 같은 에너지가 꿈틀거렸다.
동시에 그의 영역 전체에서 상공 수 킬로미터를 뒤덮는 무수한 마법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브레스와 연동한 그만의 독자적인 술식.
설정한 범위 전체에 브레스급 폭격을 퍼붓는 전략 병기 그 자체였다.
‘이걸로 끝내주마! 어디 이번에도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라!’
주변의 마력이 거세게 요동치며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어갔다.
그 심상치 않은 기류에 지상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악마족들이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간이 수렴하고 위상이 뒤틀린 탓에 어딘가로 도망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헬라가 조금이라도 취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범위를 뒤덮는 파괴의 폭류.
그 압도적인 폭력의 정수 앞에서 내상을 입은 채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던 그녀는···.
“푸흐! 인정할 건 해야겠지. 확실히 대단하단 말이야?”
···여전히 태평한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에게 쏟아지기 직전의 파괴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태도에선 일말의 불안함도 내비쳐지지 않았다.
우우우웅—
그 와중에도 극도로 세밀한 부품들이 하나씩 맞아떨어지듯 일대를 뒤덮은 대마법진이 조금씩 완전을 향해 나아갔다.
이쯤 되면 뒤늦게 마력의 구축을 방해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저 반쯤 살아있는 것과 다름없는 거대한 마법진은— 중간의 어느 부분이 흐트러진다면 흐트러진 대로 거기에 맞는 새로운 그림을 완성해 나갈 테니까.
“흐흥, 하지만 이미 몇 차례나 낙방해서 이렇게 화풀이나 하고 있는 너보단 역시 내가 더 대단한 것 같아. 유감스럽게도 말이지?”
물론 그런 정밀한 술식에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저 지금 상황에선 그 약점을 노리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뿐.
“선물은 고맙게 잘 받을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
헬라의 붉은 역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붉은색에서 시작해 푸르고 노랗고 새하얗게 천변만화하는 중심부의 눈동자.
그 변화는 안구와 같은 색인 검은색이 되고서야 멈춰 섰다.
눈동자를 구분할 수도 없어진, 그저 시커먼 구슬처럼 되어버린 안구가 전면으로 향했다.
지금 주변에 일어나는 변화의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핵이며,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한—.
“[죽어줄래?]”
—마룡 공작 크루샤이어에게로.
[뭣?! 큽! 쿨럭! 커헉! 이건··· 설마···!]마룡의 거체에서 피가 쏟아져 내렸다.
푸확—! 후두둑!
육체를, 정신을 파고드는 ‘즉사’의 힘.
그에 입 안 가득 모여들어 압축을 거듭하던 브레스가 덧없이 흩어졌다.
그렇게 일순간 통제를 벗어난 에너지가 그의 내부를 파괴하기 시작하자,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리던 거대한 마법진 역시 일시에 삐걱거리다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대체 어떻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니, 이 경우에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해야 할 터.
자신이 준 것보다 더 큰 피해를 돌려받은 마룡이 피가 흐르는 여섯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즉사의 마안이라고? 마안이 변했어? 지배에 이어 즉사라고?’
그의 머릿속이 혼란에 빠져들었다.
마안족이 일생동안 가지는 마안은 오직 타고난 단 하나뿐.
후천적으로 새로운 마안을 개안했다는 소리는 듣도 보도 못했다.
거기다 또 다른 마안족에가 뭔가를 받았을 가능성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남아있던 마안의 일족은 자신이 모두 싹을 뽑아버렸으니까!
‘그랬는데, 그럴 터인데···!’
이젠 묻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되살아나 또다시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
마룡 공작 크루샤이어.
그는 명실상부 현 마계 최강이라 불리는 존재였으나, 당연히 그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강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겪은 수많은 목숨의 위기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헬라가 지적했던 대로 그는 드래곤으로서의 규율을 어기고 마계로 피신해 온 도망자 출신이었으니까.
아주 오래전, 드래곤의 청소년기인 쥬브나일(Juvenile) 시절.
문득 그는 자기 자신과 다른 드래곤들의 처우가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째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인 우리 드래곤이 이렇게 은인자중하며 조용히 살아야 하는 거지? 저 하찮은 벌레들도 나름의 문명을 세우고 아랫것들의 추앙을 받으며 자기 마음대로 사는데, 왜 놈들보다 훨씬 우월한 나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거냐!’
드래곤은 다른 열등한 종족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존재였다.
갓 태어난 순간에도 어지간한 상대는 타고난 힘만으로 찍어 누르고, 그저 나이를 먹어가는 것만으로도 마력과 육체가 끝도 없이 성장한다.
다른 종족들이 목숨을 걸고 도전하고도 채 한 줌도 되지 않는 이들만 통과하는 초월의 문조차 그들에겐 그저 통과의례일 뿐.
다만 그들에겐 그 모든 장점을 상쇄할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 강력한 힘만큼 수많은 제약에 얽매여 내키는 대로 힘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크루샤이어는 그 답답한 규율은 물론 그것을 순순히 따르는 고리타분한 일족 모두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야말로, 나야말로 세상의 지배자에 가장 합당한 존재다! 그런데 어째서! 대체 왜!’
···사실 그 이유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조화와 중용을 지키고 세상의 균형을 수호하는 것.
그들이 지닌 모든 능력은 오직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애초에 그게 바로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탄생 배경이자 존재의의였다.
당장 그의 머릿속에도 그에 대한 본능이 태어난 순간부터 박혀있는데 어찌 그걸 모르겠는가?
‘드래곤으로서의 숙명이라고? 정해진 운명? 웃기는 소리!’
하지만 다른 드래곤들과는 결이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그는 그걸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건 지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그에 따라야 한다니!
아직 천 살도 되지 않은 지금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이런 용생(龍生)을 앞으로도 수천 년 이상 더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어두운 감정을 꾹꾹 짓눌러 담은 채로 시간이 흘러.
어느덧 그도 어엿한 성룡이 되어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게 된 그는 곧바로 줄곧 계획만 해오던 한 가지 작업을 실행에 옮겼다.
[존재를 구속하는 제약을 부수고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보통 방법으론 어림도 없겠지.]세상의 모든 마법에 정통한 그는 그 조건에 가장 합당한 신비가 무엇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역천을 행하여 정해진 흐름을 뒤틀고 마(魔)를 강제하는 힘.
—‘흑마법’이었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다. 섣불리 움직이다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차근차근···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을 터.’
다른 태평한 드래곤들과는 달리 마치 인간과도 같은 치열함을 가지고 있던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철두철미하게 일을 진행했다.
마을과 도시를 통째로 제물로 바치기도 하고, 인간 세상에 전쟁을 일으켜 부정적인 에너지를 수집하기도 했으며, 아예 대륙적인 테러 조직을 만들어 세계를 막후에서 뒤흔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본신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최대한 혐의를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약 천 년쯤 지났을까?
[···뭐냐, 네놈은?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너무 경계하지 마십시오. 전 당신을 도우러 왔으니.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 간의 이해가 일치한다고 해야 할까요.”
[하! 같잖은 미물 따위가 건방지구나. 됐다. 산 채로 뇌를 뒤져보면 되겠지!]“이런 이런, 아무래도 제 소개는 조금 나중에 해야겠군요.”
첫 만남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사도’와의 인연은 그가 과업을 진행하는 데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같은 일족의 드래곤 몇을 사냥해 은밀하게 그 영육을 제물로 바치는 것도 성공했을 정도로.
‘현실에 안주해 주저앉은 돼지들! 이렇게라도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겨라.’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아무리 주의를 기울였어도 천 년 만 년 완벽할 수는 없었다.
추가로 약 천 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결국 그는 그동안의 행적이 들통나 다른 드래곤들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크루샤이어, 이놈! 끝내 금기에 손을 대고 말았구나!] [그간 위반한 규율이 한둘이 아니군.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정체를 숨기고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는지···. 그 죄, 죽음으로 사죄하거라.]당시의 그는 흑마법과 제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나이에 맞지 않은 수준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크루샤이어라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드래곤이라는 종족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유를 포기하고 신의 노예가 되어버린 버러지들! 내 기필코 다시 돌아와 네놈들을 산 채로 씹어 먹을 것이다!’
다행히 사도의 도움을 받아 마계로 몸을 피할 수 있었던 그는 일단 다친 몸을 치료하며 주변 환경에 맞게 자신의 몸을 조금씩 개조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이라는 종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진행했던 그간의 연구 결과 덕분에 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계의 기운을 몸에 담고 사냥한 악마족들을 이용해 육체를 변질시켜 스스로의 몸을 서서히 악마로 만들었다.
‘그래, 어찌 보면 이건 오히려 기회라 할 수 있지 않나! 이곳 마계에서 드래곤의 한계를 탈피해 더 높은 존재가 되는 거다! 고작 에이션트 드래곤도··· 드래곤 로드 수준도 아닌···!’
그 시점에서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이 마계의 정점인 마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다음으로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드래곤이 아닌 마왕으로서, 자신이 도망치듯 쫓겨 온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 세상 모두를 무릎 꿇리리라!
그는 자신을 사냥하고자 밀려든 고위 악마들은 물론 군대까지 상대하면서도 오로지 마왕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천 년 이상을 쉼 없이 이어진 끊임없는 투쟁은 그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쓰러뜨린 상대의 기반을 흡수하고, 그들이 쌓아 온 지식을 빼앗았으며, 힘의 근간이 되는 정수를 먹어 치웠다.
그런데—.
‘어째서···!’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는 건 틀림없는데도 도무지 목표에 다가설 수 없었다.
그가 아직 후작급 악마였을 당시 진행된 12대 마왕 선발 때는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만큼 자진해서 가장 유력한 마왕 후보의 휘하에 들어갔고, 결국 순조롭게 마왕위를 차지한 그의 밑에서 얌전히 힘을 길렀다.
그러나 12대 마왕이 대륙 침공에 나섰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돌아온 이후.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힘을 기른 끝에 마침내 공작급 마족에 오른 마룡 크루샤이어는 자신만만하게 13대 마왕 선발전에 참여했고···.
‘젠장, 거의 다 됐었는데! 설마 그 음흉한 놈의 지배의 마안에 당한 놈들이 이렇게 많았을 줄이야?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시종일관 우위를 차지한 끝에 마왕 자리가 코앞에 다가온 순간.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로 라이벌이었던 마안족 후보에게 승자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후우, 후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괜찮다. 이 정도면 다음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속이 많이 쓰리긴 했지만 그는 금방 마음을 수습하고 더욱 절치부심하여 다음 선발을 준비했다.
그간 쌓아 온 수양이 적지 않았기에 굳이 지난 일을 오래 붙잡고 있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흐른 뒤.
재차 진행된 14대 마왕 선발 때는···.
[크아아아! 르레이에—! 이 잡종이 또!]이번에도 아슬아슬한 차이로 마왕 자리를 빼앗겨 버린 순간엔 아무리 그라도 쉬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이전 마왕 선발 시점엔 태어나지도 않았던, 라이벌인 13대 마왕의 몇백 살 되지도 않은 딸이라는 사실은 그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물론 변명거리는 있었다.
오랫동안 마왕 선발만을 준비하며 공들여 키워온 그의 파벌이 대단한 건 사실이었지만, 13대의 추종자인 구 마왕파와 마안의 일족, 그리고 또 다른 공작급 악마인 서큐버스 퀸의 파벌 드림 워커의 결합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또한 13대 마왕이 물려준 그 거슬리는 마안을 지닌 르레이에의 마성은 진영을 정하지 않고 눈치만 보던 중립파는 물론 적대 세력의 일원까지 홀릴 정도로 대단했으니, 어찌 보면 일이 그렇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지배의 마안! 또 그것 때문에!’
마안족은 소수 부족으로 분류될 만큼 마계에 남은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종족이었으나,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막강한 마안 덕분에 그 전투력은 익히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심지어 ‘지배’의 힘은 역대 마안 중에서도 최고로 칠만큼 대단한 능력이었으니—.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어떤 감정에 그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사악한 마룡은 굳이 그 감정을 억누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힛, 안녕하십니까? 선대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요, 헤헤. 앞으로 잘 부탁드립죠.”
대체 어떻게 이 마계의 땅에 발을 들인 건지, 연신 헤픈 웃음을 흘리는 정체불명의 신의 사도가 그를 찾아왔다.
“···그런데, 뭔가 고민이 있긴 있으신가 봅니다요? 낄낄낄! 제가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상대의 손을 잡았다.
과연 이전에 함께했던 사도가 생각날 만큼 놈은 굉장히 유능했으며 또한 유용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답답한 상황조차 그 도움만 있다면 어떻게든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 여겨질 정도로.
그는 그런 조력을 바탕으로 마계를 뒤엎을 혁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계획을 꾸미고 그것을 성공시켰다.
대륙 침공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이용해 공작들의 위기감을 충동질하고 르레이에와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는 한편 마계의 대륙 침공이 실패하도록 적극적으로 상황을 주도했으며, 마침내 원정이 실패로 끝나고 나선 남은 잔재들을 처리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낌새를 느낀 다른 공작 놈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드림 워커까지 완전히 끝장내진 못했지만···.’
그들을 이용해 가장 세력이 커진 자신을 견제할 심산이었을 터.
다행히 최우선 척결 대상이었던 마안족들은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들도 결코 약한 편은 아니었으나 대륙 원정을 지원하면서 큰 피해를 입은 것이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덕분에 얻은 것도 적지 않지.’
그렇게 사로잡은 이들을 대상으로 온갖 실험과 연구를 거듭한 마룡 크루샤이어.
그는 마침내 그 능력의 메커니즘을 밝혀낸 건 물론, 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마안 여섯을 선별해 자신에게 이식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즉사의 마안’의 소유자를 보는 순간— 그는 곧바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자기가 이번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대로 마냥 다음 대의 마왕 선발을 준비하기만 했다면.
차기 마왕위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니었을 거라는 사실을.
혁명을 일으킨 것은 더없이 옳은 판단이었다는 것을.
‘그랬는데.’
고작 어린아이가 사용한 즉사의 힘은 자신에게 통하지 않았다.
같은 일족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똑바로 자신을 노려보던 그 건방진 꼬마는, 유력한 차기 마왕 후보였던 그 존재는 자기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절망에 잠겨 비참하게 스러져 갔다.
“으음, 이런 느낌인가?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는데?”
그런데 지금.
이미 죽어 사라져 버린 르레이에와 굉장히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혼혈 악마 하나가.
그때 자신의 손으로 완전히 뿌리 뽑고 강탈했다고 생각한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때의 그 꼬마처럼.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뭐, 자주 사용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어디, 그럼 이번 기회에 다른 것들도 사용해 볼까?”
아니, 어쩌면 그때 느꼈던 것은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즉사의 마안을 가진 아이가 성장해 봤자 저런 불가해의 존재를 넘어설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즉사뿐만이 아니다. 설마, 내가 가지고 있던 마안들을 모조리···!’
헬라의 눈이 재차 다채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 마계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