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08)
마계의 신전 (2)
마계의 정점에 군림하던 위대한 군주에서 한낱 저주로 영락해 버린 15대 마왕 타누인.
그는 정말 오랜 시간을 이 정체불명의 신전에 봉인되어 있었다.
꼼짝없이 당하기 직전— 자폭이나 다름없는 강수를 둔 덕분에 당장 놈에게 이용당하는 신세는 면할 수 있었으나, 상대가 포기하지 않는 한은 얼마간의 시간을 번 것일 뿐 결코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순 없었다.
마룡 공작 크루샤이어는 흑마법을 비롯한 마도 전반에서 세계 제일이라고까지 불리던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놈이 차근차근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켜 나가는 와중에도 이미 영락해 버린 전(前) 마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쉼 없이 원한을 곱씹어 독기를 키우고, 흐려져 가는 자의식을 억지로 붙잡으며 그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수밖에.
“큽··· 여, 여긴 대체 어디···?”
그런데 이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이제 슬슬 한계라 느낀 어느 날, 그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제물로 이용되기 위해 잡혀 온 인간 하나가 아주 특이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저건 마법도 주술도 아니다. 세계의 법칙이란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이질적인 힘이군. ···오히려 그래서 더 가능성이 높지만.’
본인의 의식을 분리해 그것을 다른 곳에 부여하는 능력.
마왕이었던 그조차 악의(惡意)의 결정체인 저주가 된 덕분에 간신히 눈치챈 이능이었다.
한창 바쁜 마룡 공작은 낌새조차 느끼지 못한 듯했고, 어딘가 불완전해 보이는 신전 역시 저 힘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마지막 기회다. 비록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남은 여력을 모두 소모하게 되겠지만, 이건 충분히 그걸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어.’
그에 15대 마왕 타누인은··· 아니, 타누인이었던 존재의 잔존 사념은 한 가지 도박을 감행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의식을 바닥까지 긁어모아, 외부로 뻗어나가는 인간의 의식에 자신의 저주를 섞어 넣은 것이다.
서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그 작업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건 능력의 주체인 켄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덕분에 원래라면 정처 없이 방황하다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야 할 「사고 전이」가 방향성을 갖고 나아간 건 물론, 그 끝에 마룡 공작이 회수하지 못한 ‘마왕의 잔해 일부’라는 극상의 육체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윽, 머리가···. 여긴 어디지? 난 대체···. 아? 아앗! 그 악마 추종자 놈들이!”
그 대가로 아주 약간의 부작용 정도는 감수해야 했으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렇게 마왕의 잔해로 빚어진 육체를 가지고 새롭게 태어난 그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다크 네스트의 본거지로 향했다.
기억이 온전치 않아도 처음 「사고 전이」를 시도했을 때 품었던 본체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히 그의 가슴속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 개입한 저주의 영향도 한몫했겠지만.
사실 마왕의 저주가 바라는 바도 그와 비슷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놈은 그렇게 다시 신전으로 되돌아온 켄을 통째로 집어삼킬 속셈뿐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일부나마 잃어버린 육체를 되찾는 건 물론, 그 자아를 연료로 사용해 고갈된 자의식을 되살릴 수도 있었고, 일부러 자신에게 ‘켄’이라는 불순물을 섞어 ‘타누인’을 타깃으로 한 신전의 봉인도 뒤흔들 수 있었다.
물론 아무리 영락했다 한들 그는 누가 뭐래도 마왕이었던 존재였으니,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가 역으로 집어삼켜질 걱정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이 순간.
조금 늦긴 했어도 그 노림수는 지금 확실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하나로. 먹는다. 완전한 하나가 된다면!’
본인도 모르게 마왕의 저주에 영향을 받은 켄이 이 신전 내부에 들어선 직후.
저주를 구속하던 봉인에 혼선이 생긴 덕분에 놈은 마침내 지하 깊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완전히 신전을 벗어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켄만 흡수할 수 있다면 그 문제도 곧 해결될 터.
‘드디어 다시. 복수를! 마룡, 죽인다! 부활을. 마왕!’
이젠 완전히 파편화되어 버린 저주의 사념이 뒤섞여 꿈틀거리며, 자신을 해방시켜 줄 마지막 열쇠를 손에 넣기 위해 득달같이 이동했다.
괜히 시간을 끌다 마룡 공작이 돌아와 버리기라도 하면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 움직임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로지 완전한 부활을 위해서!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놈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으음, 빡셀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이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우우웅— 우웅!
화르륵—!
···물론 그 과정에서 이런 예기치 못한 변수와 마주하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투덜거리는 듯한 인간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묵직한 기계음.
해일처럼 앞으로 나아가던 마왕의 저주가 시선을 돌려 아까부터 윙윙 날아다니며 저주를 빨아들이는 모기 한 마리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경로상에 뭐가 있든 그냥 지나가는 길에 밟은 벌레처럼 무시하려고 했으나, ‘저것’은 도저히 그냥 그런 식으로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보아하니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언제까지고 거머리처럼 들러붙어서 자신의 저주를 쪽쪽 빨아먹으려 들 것 같지 않은가!
물론 그렇게 빼앗긴 힘의 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놈의 존재 자체가 신경을 거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마왕의 저주는 조금 귀찮더라도 우선 저것부터 확실하게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왠지 모르게 저 작은 생명체에게서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 또한 그 판단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하지만 상대 쪽이 헤스페론을 거슬려 하는 것 이상으로 그 또한 난감한 상황이긴 마찬가지였다.
“아하하··· 이건 맹점이었네. 하긴 격과 존재의 밀도 차이가 이만큼 나는데, 극상성인 스킬 몇 개 있다고 그 힘을 순식간에 전부 빨아먹는다는 건 말도 안 되지.”
티탄을 이용해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흑염룡을 부리던 헤스페론이 쓴웃음을 지었다.
쉽게 말해 발상은 틀리지 않았으나 서로 간의 체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거머리가 자신의 체중의 몇 배나 되는 피를 빨아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고작 한 마리가 하마를 출혈 과다로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처럼.
심지어 점성이 높은 꿀을 빨대로 빨아 먹는 것처럼 피가 잘 끌려오지도 않으면 말 다 했지.
‘일단 이론상으로 가능하긴 한데···. 그렇게 하면 시간이 보통 오래 걸리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때까지 켄이 버텨줄 리가 없는데 차라리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이번 기회에 놈을 제물로 파워업 좀 해 보나 싶었거늘.
사실 상대의 수준이 워낙 높았기에 지금도 얻은 수확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당장 중요한 건 최대한 빨리 놈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헤스페론이야말로 이 일에 적임이라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성상 우위라는 생각에 너무 방심한 탓일까.
급박하게 변화한 상황은 그가 딴생각을 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큿?”
눈 깜짝할 사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새카만 연기가 일대를 뒤덮으며 티탄을 입고 날아다니던 헤스페론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리고 오른팔을 뺀 전신을 뒤덮은 슈트조차 무시하고, 마왕의 근간을 이루던 어떤 의지가 감히 겁도 없이 자신을 귀찮게 만든 상대의 내부로 쏘아져 들어왔다.
-죽어라.
그 안에 담긴 끔찍한 위력에 걸맞지 않게 짧디짧은— 언어라기보단 의념에 가까운 한마디.
저주라기엔 너무나도 원시적인 형태를 띤 어두운 감정이 밑도 끝도 없는 지독한 악의가 되어 헤스페론에게로 파고들었다
‘내 수준으론 막을 수 없다. 그래도···!’
죽음이 몸속을 내달린다.
그에「갈망의 오른팔」과 「저주 포식자」가 기다렸다는 듯 체내로 침투한 저주를 몽땅 먹어 치웠다.
정신을 안정시켜 주는 「명경지수」가 심신을 보호하고, 육신을 보조하는 「튼튼함」과 「초회복」 등 다양한 스킬이 연달아 발현했다.
이미 전부 짐작하고 대비한 만큼 놈의 저주는 그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었다.
“저주는 내게 소용없··· 큭, 이건?”
···그래, 그 공격이 순수한 ‘저주’였다면 말이지만.
아무리 지금은 한낱 저주의 응집체로 영락했다 하나, 놈은 명색이 마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존재이지 않은가?
그런 놈의 공격은 상성만 믿고 방심하던 헤스페론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개체가 사망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즉사 면역」이 발동하여 사망 선고를 무효화합니다.》
《이후, 하루 동안 「즉사 면역」이 봉인됩니다.》
“쿨럭!”
그의 입가에서 새빨간 핏물이 흘러내렸다.
***
“큽! 하아.”
마른기침과 함께 목구멍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잔뜩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전신의 통증.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가눈 헤스페론이 인상을 찡그렸다.
“으윽, 이거 곤란한데···.”
가볍게 입가의 피를 닦은 그가 침음을 흘리며 슬쩍 눈을 돌렸다.
‘일격에 나는 즉사, 티탄은 이 정도 손상이라고?’
그의 한쪽 시야에 온갖 메시지창이 요란하게 떠올랐다.
하나같이 위험을 알리는 내용들이었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건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만약 같은 공격을 한 번만 더 당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끝이었으니까.
‘···언령 계통 능력인가? 말도 안 되는군. 저주가 되고 수백 년은 지나는 바람에 이젠 본능만 남아있을 텐데, 아직도 이런 고급 기술을 사용할 정신이 남아 있어?’
인상을 찌푸린 그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도 충분히 계산할 건 다 하고 헤스페론을 파견한 것이었다.
그 결과 「갈망의 오른팔」과 「저주 포식자」의 조합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마왕급 저주’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이었다.
‘이거 티탄을 안 입고 있었으면 저주 면역이고 나발이고 진즉에 곤죽이 되었을지도. 하긴, 마왕급이라 하면 영락하기 전엔 준신의 격에 도달한 존재인데 그런 걸 초월에도 이르지 못한 몸으로 어찌하려던 게 욕심이었을지도.’
어쨌든 이번 걸로 현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무리 상성으로 우위라 하더라도 격의 차이 앞에선 별다른 의미는 없다는 것을.
자신만만하게 나섰다가 이 모양이 되어버리니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칫, 잘못 왔군···. 내가 비빌 곳이 아니었어.”
헤스페론은 자신의 몸을 휘감고 검은 불꽃을 피워 올리는 흑염룡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아쉽지만 현실을 깨달은 이상 그의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이젠 보험도 없는데 괜히 어물쩍거리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죽어버리기 전에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일 터.
‘후우, 이 녀석한테도 미안하네. 기껏 최고급 뷔페에 와서 디저트만 한 접시 먹이고 끝난 셈이 되었잖아?’
「맹약의 사슬」로 이어진 흑염룡과 헤스페론은 서로의 성장도를 공유한다.
만약 그가 초월··· 아니, 하다못해 제대로 된 극의 수준만이라도 되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얻는 게 많았을 텐데.
막상 이렇게 되어버리니 아쉬울 수밖에 없···.
차르르—
그때.
머릿속에서 잔잔한 쇠사슬 소리가 흐르며.
‘아니, 잠깐. ···「맹약의 사슬」?’
무언가가 그의 머릿속을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떤 기시감이 그의 직감을 강하게 자극했다.
쿠르릉— 콰앙!
저주의 안개가 재차 난동을 피우며 덤벼들었지만, 당장은 그쪽에 할애할 정신이 없었다.
그는 티탄의 부스터를 최대 출력으로 올려 최대한 싸움을 피하며 뇌리에서 간질거리는 무언가를 집기 위해 안간힘 썼다.
대체 자신이 뭘 놓친 건지 차분히 분석하면서.
‘「맹약의 사슬」이 반응하고 있다. 어째서 지금? 무엇 때문에?’
그것은 인물과 사물, 에너지 전반을 가리지 않고 주체와 객체 사이를 연결해 주는 스킬이었다.
인물로는 라일리 황태녀가 있고, 사물로는 티탄과 봉인구 등이 있으며, 에너지로는 「갈망의 오른팔」의 흑염룡이 있었다.
분명 그게 전부일 텐데 자기가 뭘 놓친···.
‘아니 잠깐. 이 스킬을 사용하는 당사자는 분명 헤스페론이야. 하지만 난 육체가 여럿일 뿐 영혼은 분명 하나지. 그럼 다른 육체로 계약했을 때 그 기준은 어떻게 되는 거지?’
쩔그렁— 쩔렁—
한껏 발달한 직감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지금 이 사태를 쉽게 해결할 방법이 바로 여기 있다고.
단지 그것을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라고.
사고가 빨라지며 세상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계약, 영혼, 주체, 아바타···.’
한없이 정지에 가까워진 시간 속에서 헤스페론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와 함께 그동안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었어. 원래부터 진정한 난 ‘한성현’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맹약의 사슬」이 반응한 것일까?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미야모토 켄과 저 저주 덩어리는 사실상 하나나 다름없어진 상태지.’
그리고 켄은 헬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것도 온갖 스킬과 지배력을 한데 엮어 다시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지금 그가 지금까지 넘어가지 않고 버티는 것도 다 그 복잡하고 치밀하기 그지없는 금제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일을 상정한 건 아니었지만, 사실상 그는 자신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그 헬라와 헤스페론은 동일 인물이잖아···?’
자연스럽게 켄과 헤스페론의 주종관계가 성립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켄과 완전히 하나가 되기 위해 저 난리를 치고 있는 저놈 또한···.
‘따지고 보면 내 따까리나 다름없다는 소리지!’
억지나 다름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인과가 생겨 버린 걸 난들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신비’에서 인과란 때론 그 무엇보다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는 힘이었다.
전속력으로 도망가던 헤스페론이 멈춰 섰다.
그에 뒤에서 맹렬히 쫓아오던 검은 안개와 급속도로 거리가 가까워졌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쩔그렁— 쩔그렁—
그의 머릿속에서 사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직 자신에게만 들리는 인연의 소리.
헤스페론의 인지에 따라 서로 간에 인과의 사슬이 연결되었다.
격(格)이란 건 무조건 절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때론 인연에 따라 상대적이기 그지없는 관계에서도 격이 나뉘는 법이었으니.
바로 지금.
아득한 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종이라는 확고부동한 상하 관계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그 인과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상—.
차르르르—
「맹약의 사슬」을 사용한 순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에게 저 끔찍한 괴물의 목줄이 쥐어졌다는 것이.
물론 이것만으로 저 마왕급 저주를 온전히 복속시켜 부릴 수는 없다.
아무리 당장 상하를 가리는 인과가 성립되었다 한들, 여전히 서로 간의 격의 차이는 아득했으니.
하지만 지금도 다른 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래, 이제야 좀 제대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헤스페론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의 등 뒤에 얼굴을 내민 흑염룡 또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그 직후.
하마조차 통째로 집어삼키는 슈퍼 거머리가 전면의 공간을 거칠게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