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12)
다크 네스트 (2)
마계에서도 손꼽히는 두 거대 세력 간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최근 여러모로 체면을 구기며 소속원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진 여전히 마계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다크 네스트.
그리고 헬헤임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와중에도 연일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며 비밀리에 힘을 모으고 있던 데모니악.
최전선의 접경지에서부터 시작된 전쟁은 조금씩 규모가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양 세력이 조금이라도 엮여있는 곳 전체에 들불이 옮겨붙듯 급격히 퍼져 나갔다.
휘하의 세력들을 총동원한 것은 물론, 파벌의 수장인 두 공작들까지 직접 전장에 나설 정도의 대대적인 전면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네놈! 피에타—! 내 기필코 그 머리를 뜯어 장식으로 삼아 주마!]“크으, 마룡 공작. 갑자기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가 뭐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면전을 벌이는 건 그쪽도 부담이 클 텐데?”
[시치미 떼지 마라! 내가 네놈이 뒤에서 꾸민 짓을 모를 줄 알았더냐!]“···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찔리는 게 많았던 피에타가 눈가의 안광을 일그러뜨렸다.
분명 한창 헬헤임과 치고받고 싸우느라 정신없을 때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 눈치 하난 알아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뭐가 발각된 거지? 비밀리에 관문을 연결한 것? 납치한 간부들을 세뇌한 것? 설마 중심부에 공작원들을 심은 게 걸렸나? 저렇게 흥분한 걸 보니 어지간한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그것도 아니면 설마···.’
너무 짚이는 바가 많았기에 오히려 뭐가 원인인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다크 네스트를 상대로 뒤에서 진행하고 있던 큼직한 수작만 해도 한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
‘어쩌면 전부 들켰을지도 모르겠군. 방심해 버렸구나. 어쩐지 놈답지 않게 헬헤임을 상대로 너무 밀린다 싶더라니, 싸우는 와중에도 계속 이쪽을 경계하고 있었던 건가?’
제 발이 저렸던 피에타가 애써 상황을 분석했다.
아무래도 걸려도 뭐가 단단히 걸린 것 같다고.
사실 떳떳하게 밝힐 수 없었던 건 마룡 공작도 마찬가지였기에 그가 말을 아낀 것도 오해해 불을 지폈다.
또 설령 위화감을 느낀 피에타가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암계를 꾸미고 거짓을 일삼길 즐기는 그의 성향은 이미 마룡 공작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한 법이었다.
[일단 네놈부터 여기서 죽여주마—! 잡종은 그다음이다!]“하! 우습게 보였구나. 내가 카라쿨 그 멍청이처럼 쉽게 당할 것 같으냐?”
마룡의 분노 어린 일갈과 함께 브레스가 쏟아지고, ‘뒤틀림’을 사역하는 흑암 공작의 비술이 그에 대항했다.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파괴적인 에너지와 공간을 비틀어 그것을 흘려버리는 방어.
반격하듯 뒤틀린 마력의 광선이 치명적인 독소를 품고 용의 거대한 동체를 꿰뚫었으나, ‘예지’와 ‘소멸’의 연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쿠르르릉—! 콰앙!
그 여파만으로도 전장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졌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치열한 싸움이었지만, 사실 그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크윽!”
[너 혼자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마룡 공작 크루샤이어! 현 마계 최강이자 곧 마왕조차 넘어설 위대한 존재이니라!]얼마 전에 있었던 헬라와의 싸움으로 적잖은 소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루샤이어는 같은 공작과의 싸움에서 시종일관 우세를 점하며 상대를 압박해 나갔다.
마계 최강이라는 이명이 결코 자칭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듯.
결국 팽팽하게 맞서던 피에타는 전장에서 발생할 피해를 감수하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계속 싸우다 정말 자신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 순간이야말로 모든 것이 끝장이었으니.
‘지금은 물러나 주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처음부터 전면전으로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수작들을 준비한 것도 다 그것 때문이 아니던가?
아직 대부분이 미완성이긴 해도 그 안배들을 총동원한다면 충분히 반전의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커억! 피에타 님!”
[키에에엑—! 죽··· 죽여! 먹어! 배고파아!]“젠자앙!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저쪽으로 넘어갈··· 끅!”
[케윽— 끄에엑—!]그 결과 그의 뒤를 받쳐주던 데모니악의 군세 상당수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새하얀 이형의 괴물들에게 무참히 유린당했으나, 원래 전장에서의 희생은 어디에나 있는 법.
흑암 공작은 부하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무사히 후방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말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자는 것인가? 오냐, 이렇게 된 이상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
그 직후, 그는 곧바로 그동안 준비한 모든 수를 한 번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에 다크 네스트 본토 곳곳이 습격당하고 배신과 암살이 횡행하며 극심한 혼란이 찾아왔다.
[사소한 피해는 신경 쓰지 마라. 중요한 건 최대한 빨리 피에타를 족치는 것이니.]하지만 전선에 나선 마룡 공작은 그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전진만을 계속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배신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살육만을 갈구하는 순백의 괴물들을 이끌고서.
상황이 그렇게까지 흘러가자 데모니악도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 표면상으로라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헬헤임에 급히 연락을 보냈으나···.
-지금은 부대 전체의 피로가 한계에 달한 상황입니다. 누구네들과는 다르게 우린 매일매일이 치열한 전쟁의 연속이었지 않습니까? 그 결과 다크 네스트의 본토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말이죠.
그래서 매우 미안하지만, 당장 원군을 보내긴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대한 오래 버티고 있으면 병력을 수습하는 대로 다크 네스트의 후방을 흔들어 보겠다는 말과 함께.
쾅!
부관을 통해 그 전언을 보고받은 흑암 공작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여파로 테이블은 물론 주변까지 모두 난장판이 되었지만 지금 그에게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멍청한. 이대로 우리가 무너지면 자기들도 힘들어질 거라는 걸 모르는 건가?”
다크 네스트가 데모니악을 상대로 지금처럼 거칠게 나올 수 있었던 것엔 갑자기 소극적이 된 헬헤임의 행보와도 연관이 있었다.
파죽지세로 심장부로 밀고 들어가던 이전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인근 세력을 차근차근 복속시키며 전진기지를 세우고 방어를 굳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좋지 않군. 좋지 않아.”
가만히 전장 지도를 내려다본 그가 작게 읊조렸다.
다양한 안배를 총동원한 덕분에 어느 정도 시간을 벌긴 했으나, 지금처럼 전면전에서 계속 밀리기만 한다면 그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
그 때문에 당장 휘하의 세력이 동요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쯧, 이거 포기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군.’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항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잔뜩 흥분해 자기를 죽이려 드는 상대를 보면 조금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도 냉정을 되찾고 나면 공작인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정작 마룡 본인 또한 그런 식으로 살아남은 마왕 후보자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마지막까지 전부 시도해 봐야겠지.”
물론 그렇다고 쉽게 숙이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바로 이전에 있었던 15대 마왕 선출 때에도 마찬가지이지 않았던가?
당시에도 시종일관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던 마룡 공작이었으나, 결국 마왕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욕심 많은 타누인의 차지가 되었다.
그때 세력을 온존한답시고 항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었더라면 어쩌면 타누인이 아닌 자신이 15대 마왕이 될 수도 있었던 만큼, 이번엔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진 되도록 포기하지 않고 부딪쳐 볼 생각이었다.
‘물론 헬헤임이 변수긴 하지만···.’
당장은 해일처럼 밀려드는 다크 네스트에 대응하는 것이 먼저였다.
여유가 있던 동안에 나름대로 헬헤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 두기도 했고.
그렇게 흑암 공작 피에타는 한 줄기 희망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해골을 굴렸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서 마왕의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물론 그와 같은 시각.
그가 변수로 지목한 헬라가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알았다면 결코 그리 태평하게 생각하진 못했겠지만.
***
“수고했어, 켄. 힘든 임무였을 텐데 아주 잘해 줬어.”
“아닙니다, 헬라 님! 헬라 님께서 보내주신 데이비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저 혼자선 결코 불가능했을 겁니다. 저는 그저 안내만 했을 뿐이니까요.”
“겸손은 됐어. 네가 아니었으면 일이 이렇게 잘 풀리진 않았을 테니까.”
“헬라 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내려진 공치사에 헬라의 앞에 부복한 켄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번 임무는 그에게 억지로 기연을 떠먹여 준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인공적으로 탄생한 정신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육체.
존재 자체가 가짜나 다름없었던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후작급 악마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고.
‘데이비슨이 아니었다면···. 어찌 운 좋게 신전으로 들어갔더라도 본체의 임종을 지키긴커녕 그 저주에 정신과 육체 모두 빼앗기고 말았겠지.’
물론 거기엔 정체불명의 히어로의 도움도 한몫했지만, 그게 그의 헬라에 대한 충성심을 퇴색시킬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 강대한 적들 앞에서 그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녀가 딸려 보내 준 데이비슨 덕분이었으니.
그런 그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한 듯 피식 웃은 헬라가 가볍게 말을 이었다.
“그래, 전대 마왕의 육신은? 진전은 좀 있었어?”
그들이 그 신전에서 얻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룡 공작이 수백 년 동안 야금야금 모아왔던 15대 마왕 타누인의 잔해 역시 그중 하나.
그리고 애초에 그것과 같은 근원을 지닌 켄은 그 잔해를 흡수해 육체의 잠재력을 큰 폭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제 역량이 부족하여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냥 나머지도 전부 데이비슨에게 주시는 게 낫지 않을지···.”
“흐음, 뭐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어. 성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음 단계를 바라는 건 욕심이지. 그리고 데이비슨은 괜찮아. 걔가 식탐이 많아서 그렇지 사실 그 정도만 먹어도 충분하니까.”
데이비슨··· 아니, 할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생명체의 신체에 담겨있는 유전 정보지 육류 그 자체가 아니었다.
물론 격이 높은 대상의 부산물이라면 많이 먹을수록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으나, 이미 신성을 먹어 치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그에게 더 투자하기엔 효율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무리 전 마왕의 육체라 한들, 영혼과 정수는 저주가 되어버린 데다가 육체 또한 영락할 대로 영락해 완전히 박살 난 상태이지 않았던가?
‘차라리 이 녀석을 더 키워서 써먹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대안이 없었다면 지금껏 먹어 치운 공작급 악마들처럼 그냥 홀라당 삼켜 버렸겠지만.
이렇게 훌륭한 노예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흡수할 수 있도록 해봐. 어떻게든 물꼬만 튼다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아···! 감사합니다, 헬라 님!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다 갚지도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다니···!”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알지 못한 켄이 감격해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에 어떻게든 그를 키워서 여기저기 써먹을 생각일 뿐이었던 헬라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런 불편한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고 사라졌다.
‘뭐, 사실 서로에게 좋은 일이잖아? 저 녀석도 다시 지구에 갈 수 있다면 더 좋아할 테니까.’
아무리 진짜 미야모토 켄이 아니라고 한들 그의 기억을 이어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최후에 있었던 계약을 통해 그 영혼의 일부를 계승 받은 것도 그렇고.
따지고 보면 달라진 것은 오직 육체뿐.
기억과 영혼이 여전히 일치한다면, 그건 이미 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켄과의 면담을 마친 후.
헬라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지금 머무르고 있는 근거지 내부를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다크 네스트의 요충지였던 오토렐의 영역을 집어삼킨 후, 주변 세력들을 하나하나 복속시키면서 그 중심부에 건설한 전진기지.
다른 두 세력이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최대한 안정화에 힘썼더니 어느새 이곳도 상당히 그럴듯한 위용을 뽐내게 되었다.
‘물론 이 겉모습은 그저 눈속임일 뿐이지만.’
그녀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전진기지 자체가 아닌, 이곳에 설치된 특별한 무언가였으니.
마지막으로 그것을 재차 확인한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네. 이 정도면 바로 시작해도 되겠어. 신성의 파편 덕분에 일이 더 편해졌군.’
신전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
전대 마왕 타누인을 파멸로 몰고 갔던 그 귀물을 손에 넣음으로써 이제 언제든 계획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직 약간 부족했던 마왕으로서의 자격을 그 신성이 대신 충족시켜 준 덕분에.
“자, 그럼.”
이런 귀한 물건을 흔쾌히 넘겨준 마룡 공작에게 감사하는 마음 절반, 계획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시선과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흑암 공작에게 감사하는 마음 절반을 품고.
상쾌한 웃음을 머금은 헬라가 가볍게 한 걸음 내디뎠다.
“슬슬 시작해 볼까?”
마계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한 일보를.
***
[···뭐지?]다크 네스트의 본거지를 지키고 있던 후작급 악마 세렌타타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상이 감지된 곳으로 몸을 날렸다.
파벌의 수장이 직접 전선에 나갈 정도로 전쟁이 격화된 지금, 모든 관문의 중심이 되는 본거지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작은 변수조차 허용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한껏 긴장해 있던 그가 수상쩍은 기색이 느껴진 곳으로 직접 움직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얼마 전처럼 마룡 공작에게 깨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
[···누구냐!]그리고 단숨에 현장에 도착한 그는.
전신으로 기묘한 기류를 풍기고 있는 한 정체불명의 인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떻게? 관문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었을 텐데!’
혹시 자신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 원래 이곳에 머무르던 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저 상대를 마주한 적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잊어버리는 건 절대 불가능할 테니까.
설령 직접 마주하지 못했더라도 소문 정도는 들어봤어야 마땅했다.
“어라? 벌써 오다니, 감이 좋은 아이네.”
높게 치솟은 한 쌍의 뿔과 붉고 검은 역안, 화려하기 그지없는 옷차림과 그것조차 압도하는 폭력적인 마성.
단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자신의 정신을 사정없이 파고들어 오는 침식에 이를 악문 그는 상대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헬헤임의 군주, 헬라···!]“응, 맞아.”
대체 어떻게 관문조차 거치지 않고 이곳에 침입한 건지.
아무리 전력이 빠져나갔어도 그렇지, 무슨 배짱으로 적진 한복판인 이곳에 단신으로 쳐들어온 건지 물을 시간 따윈 없었다.
화아악—
그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세상이 덧씌워졌다.
완전히 바뀐 건 아니었다.
마치 두 개의 세상이 하나로 겹쳐지듯, 황무지의 형상이 흐릿하게 덮어씌워졌을 뿐.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풍경이 겹친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척척척—
쿠웅— 쿠웅—
겹친 풍경의 황무지 저 너머에서.
매서운 기세를 풍기는, 하늘을 찌를 듯 사기가 충천한 악마의 군세가 일사불란하게 밀려들었다.
[뭣?! 대체 어떻게?]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마계 최대 최강의 파벌인 다크 네스트의 근거지이자, 마계에서 유일한 드래곤인 마룡 공작의 둥지.
허가받지 않은 이가 함부로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라니···.”
물론.
“내가 내 땅에 방문하는 데 허락이 필요하니?”
그런 것 따윈 마계의 적법한 지배자, 마왕 헬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