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27)
마스커레이드 (5)
처형자가 사자탈이란 사내와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을 무렵.
“오라클, 이쪽에 문제가 생겼소.”
외부와의 통신을 시도한 번천회 동남아시아 지부장 나가라자가 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곳의 공간 봉쇄는 모든 교신을 모조리 차단할 정도로 강력했으나, 당연히 술식의 주체인 번천회에는 그를 우회할 방법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으음, 나도 확인했어. 인과의 흐름이 아주 미쳐 날뛰더군. 놈들이 상당히 요란하게 일을 벌인 모양인데,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당연히 그렇겠지. 이곳에 마스커레이드 놈들이 들이닥쳤소. 그 수는 총 네 명.”
-“넷? 뭐, 그 정도면 어느 정도 상정했던 수준이긴 한데···.”
“그중 셋이 처형자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로 추정되오.”
-“···응?”
이어지는 라가라자의 말엔 오라클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처형자는 회주를 제외하면 그들 내부에서도 무력 하나만은 최고라고 인정받는 전력이지 않았던가?
물론 그렇다고 그가 번천회의 이인자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조직의 존재를 철저히 숨긴 채 지금의 위치까지 이끌어온 오라클이나, 복합 술식과 이차원 생성 등 세간의 이능학을 몇 단계는 뛰어넘는 기술력을 보유한 닥터같이 종합적인 측면에선 그 못지않은 인재들도 더러 있었으니.
하지만 그런 이들도 무력 하나만큼은 그를 최고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바로 그가 ‘처형자’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이유였다.
사실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회주를 대신하여 번천회에 대항하는 이들을 앞장서서 처단해 온 칼날이 바로 그라는 존재였으니까.
사실 타오르는 횃불이 겪었던 재앙도 이미 전 세계적으로 몇 번이고 일어났던 일의 반복일 뿐이었다.
“더 놀라운 게 뭔지 아시오? 그중 둘이 우리가 진즉에 알고 있던 그 이계의 성자와 흡혈귀 팬텀이라는 사실이오.”
-“···그들이 그 정도였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리 그동안 성장했다고 해도 준신격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건···.”
“고민은 나중에 하시고. 이제 내가 왜 급히 연락했는지 아시겠소?”
앞서 수집해 두었던 정보와의 괴리에 오라클이 고뇌에 잠긴 순간, 단호하게 그것을 잘라낸 나가라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는 서론일 뿐 지금 이게 연락을 취한 진짜 목적이었다는 듯이.
“이대로 가다간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죽게 생겼다는 거요.”
그러니 줄초상 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빨리 뭐라도 좀 해 보라고.
쉽게 말해서 살려달라는 소리였다.
-“···알았으니까 조금만 버텨 봐. 바로 손을 쓰도록 하지.”
당연히 오라클 입장에서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 파견된 인원들은 하나같이 번천회 입장에서도 쉽게 버릴 수 없는 고급 인력들이지 않던가?
특히 그중에서도 신성을 싹틔운 처형자나 상급 초월자인 나가라자 만큼은 어떻게든 무사히 회수해야 하는 인재였다.
“아.”
하지만 그녀의 대답에 나온 반응은 안도의 한숨이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나직한 탄식.
-“···또 무슨 일이지?”
“으음···.”
그에 뭔가 사달이 났음을 직감한 오라클이 무겁게 되물었지만, 정작 나가라자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눈앞에서 펼쳐진 장엄한 광경에 압도되어 버린 탓이었다.
“···뭘 하려거든 되도록 빨리 해주었으면 좋겠소.”
이 공간에 성역을 선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물밀듯 밀려드는 빛의 파도.
부상당한 타오르는 횃불의 간부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회복시키고, 그들과 적대하던 번천회 일원들에겐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을 선사한 신성력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파아앗—
그 이적의 중심에 선 채,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존재가 그의 시야에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손쓰기도 전에 모두 당해 버릴 테니까.”
지부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이미 몇 차례 접해보았던 존재.
하지만 익숙한 노을빛이 아닌, 여명과도 같은 백금빛을 두른 천사가 단죄의 검을 치켜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확히 그들을 노려보면서.
***
짧은 턱수염을 가진 중년 사내, 타오르는 횃불의 리더 총통.
그와 똑같은 얼굴을 한 번천회 소속 초월자 미믹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위험한데.’
전투를 시작한 처형자는 분명 확연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저대로만 간다면 시간이 좀 걸릴지언정 결국 승리를 쟁취할 수 있으리라.
다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게 난입해 온 적이 그 상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흐음, 미믹이라 했던가? ···그렇군. 아직 완전히 먹히진 않았나.”
자신과 눈이 마주친 직후, 상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미믹의 몸이 움찔했다.
다수의 초월자를 홀로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태양을 담은 듯 황금빛으로 빛나는 한 쌍의 눈이 그의 내면을 투시하듯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젠장, 어쩐지 운이 좋다 싶더라니.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그에 정곡이 찔린 미믹이 이를 악물었다.
분명 겉으로 티가 나지 않도록 확실하게 숨기고 있었을 텐데!
오라클의 소집령에 별생각 없이 여기까지 와서 임무를 수행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이번에 맡은 역할은 그로서도 썩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덕분에 자기 혼자서 상대하는 건 어림도 없었던 수준의 강자인 총통을 날름 집어삼킬 수 있었으니까.
타인의 존재를 흡수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을 강탈해 똑같이 따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초월의 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고유스킬이었다.
‘윽, 저 거지 같은 신성력 때문에 저항이 더 강해졌잖아!’
물론 그런 사기적인 이능에 아무런 제약도 없을 순 없었다.
온전히 소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을뿐더러, 흡수 대상을 본인 혼자 제압했다는 ‘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극도로 높아지는 게 그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썩을, 하필 지금···. 얌전히 좀 있어라!’
이번엔 다른 초월자들의 조력으로 흡수 자체는 성공할 수 있었으나, 처형자가 잡아 온 사냥감에 숟가락만 얹었던 그로서는 자신보다 격이 높은 대상을 소화하는 데 상당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아마 온전히 소화하는 데 족히 몇 년은 걸릴 터.
이번 작전에 동원된 번천회의 전력이 워낙 막강했기에, 특히 악명이 자자한 처형자를 믿고 있었기에 무력을 사용하는 일에 자신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조금 아쉽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 됐군. 리더가 다시 돌아온다면 타오르는 횃불도 조금 더 쓸모가 있어 지겠지.”
빛나는 광검을 손에 쥐고 당장이라도 산 채로 배를 가를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신성함은커녕 피 냄새가 풀풀 풍기는 눈빛을 한 천사를 마주하고 있자니, 지금은 그렇게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콰아앙—!
아니, 당장 전면에 날아드는 거대한 빛의 기둥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 이전에 생존 본능이 먼저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끝장날 판이었으니까.
“격리 구역 설정! 강화 방벽! 교류 차단! 반응 역장··· 커헉!”
그동안 다수의 강자에게서 강탈해 온 온갖 수단을 총동원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박살 나는 방어에 미믹이 헛숨을 토해냈다.
그 와중에 힘을 사용할수록 내면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었으니, 도무지 어느 한쪽에 집중할 수 없었다.
“좌표 지정, 에너지 증폭, 대신성 방벽 전개!”
“그 무엇도 내게 범접할 수 없으리라, 앱솔루트 실드!”
“함정 카드 발동— 무한 거울 회랑.”
그나마 지금 버티고 있는 것도 그와 함께하는 이들이 모두 지구에서도 내로라하는 강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온갖 세상에서 유래한 신비와 그것들이 최고의 효율을 보일 수 있도록 한데 엮은 연계는 번천회의 전매특허나 다름없기도 했고.
채애앵!
그들의 호흡은 방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바닥에서 솟구친 거인의 손이 빛으로 휩싸인 검끝을 흔들고,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중력이 빈틈을 키웠으며, 한 마리 뱀처럼 영활하게 파고든 창날이 상대의 급소를 노리고 쇄도했다.
“과연···.”
그 연계엔 하인리히도 진심 어린 감탄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격의 차이가 확연함에도 저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그들 역시 목숨을 위협하는 온갖 수라장을 이겨내고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자들.
그 하나하나가 한 세상의 영웅이며, 세계를 위협하는 재앙이었던 존재였다.
‘무엇보다 저들에 비하면 내 경험이 일천하다는 것도 제법 크고.’
꼼수에 행운까지 더해져 안전한 환경 속에서 빠르게 지금의 경지에 도달한 하인리히와는 달리, 저들은 모두가 최소한 십 년 이상은 목숨을 건 수행과 실전을 반복한 경험이 있었다.
자기가 가진 능력을 한계 그 이상으로 쥐어짜는 데 익숙한 전투의 베테랑들.
역량은 차고 넘치지만 경험이 부족해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그를 상대로 이렇게 분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뭐 좋아. 이것도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겠지.’
하인리히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호흡이 느려지고 감각이 곤두서며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아닌, 저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그에 대한 ‘해답’을 궁구해 나갔다.
‘생각해 보면 이만큼 훌륭한 교보재가 따로 없지. 번천회주를 상대할 때도 도움이 될 테고.’
할리가 처형자와의 일대일 싸움을 고집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그동안 너무 효율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정작 개체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등한시하지 않았던가?
이런 상태로 무작정 역량을 키우는 데만 집중해 봐야 덩치만 크고 실속 없는 존재가 될 뿐이었다.
그런 마음가짐의 변화는 곧 현실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번천회 동아시아 지부장으로서 대(對) 천사전을 진두지휘하던 나가라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미친, 무슨 말도 안 되는···!’
상대가 가진 힘에 비해 우스울 정도로 많았던 빈틈이 하나하나 수정되며 실시간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한 번 통했던 공격이 두 번째엔 통하지 않았다.
그를 응용한 공격도 또 그다음 차례에는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강대한 적에게 맞서기 위해 궁리하고 쥐어짜 낸 최선의 수를, 어마어마한 속도로 모조리 흡수하며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었다.
이게 생존을 건 혈투인지 오류 수정을 위한 디버깅인지 헷갈릴 지경.
그것을 느낀 다른 이들의 표정에도 점차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큭, 아무리 격이 드높다 한들 학습력과는 별개의 문제일 텐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건 더욱 심해졌다.
이전까진 그들이 지적하는 빈틈을 수정하는 과정이 메인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저쪽의 질문에 어떻게든 답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상대의 수는 마치 질문을 하는 것과 같았다.
이 공격엔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저렇게 나왔을 땐?
그 대응을 우회해 들어오면 어떻게 방어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커헉! 제, 젠장···!”
끊이지 않고 가파르게 상승하는 공방의 연쇄.
결국 가장 먼저 파탄에 이른 건 제약을 끌어안은 채로 아득바득 버티던 미믹이었다.
제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진 그의 몸뚱이 아래에서 뭔가가 울룩불룩 치솟으며 이목구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내부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려는 것처럼.
공포 영화 속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회수부터 해야겠지.’
분리 과정이 끝나면 양쪽 모두 취약해져 있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기도 할 겸, 신성력을 이용해 살짝 도움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미믹이야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으나, 총통은 앞으로 그와 함께 번천회를 상대할 든든한 노··· 부하였으니까.
화아악—
세 쌍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눈부신 빛이 사방을 휩쓸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적진에 널브러져 있던 미믹은 어느새 그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었다.
당연히 번천회 측도 가만히 있진 않았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어떻게든 아득바득 버티고 있던 상황에서 한 명이 이탈해 버렸는데, 심지어 그 상대를 지키기까지 해야 하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미믹의 체내로 신성력을 불어넣던 하인리히는 단순히 그것 말고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응? 이건···.’
신성력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뭔가 인위적인 흐름을 느낀 하인리히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총통이 최대한 온전한 상태로 미믹과 분리될 수 있도록 돕는 정체불명의 힘.
그의 감각이 뻗어나가며 그 근원을 추적했다.
그리고 그 끝에 발견한 것은—.
‘안? 이 감각은··· 그렇군. 공간을 가르고 이 안으로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인데. 그때도 이 방법을 사용했던 건가.’
하인리히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간부들 중심에 있던 안이었다.
그 덕분에 일행들을 보조하는 데 사용하던 힘을 아낀 그녀가 타이밍을 맞춰 재차 능력을 발현했던 것이다.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끄으으— 끄아아악—!”
한계를 넘어선 이능 발현의 실패는 항상 그에 걸맞은 반동을 동반한다.
반동이 없거나 약하다면 그건 능력을 딱 정해진 한계치 내에서만 사용해서일 뿐.
당연히 저보다 격이 높은 존재를 제대로 된 ‘업’도 없이 집어삼키려 들었던 미믹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촤아아악—
의복이 찢어지며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듯··· 아니, 인간 형상의 슬라임이 나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었던 존재가 두 사람이 되었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공포 영화처럼 산 채로 몸을 뚫고 나오는 끔찍한 장면은 아니었으나 이것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끄흑, 커헉! 꺽!”
그중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비쩍 마른 사내가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아마 저게 미믹의 본래 모습일 것이다.
저 피골이 상접한 미라 같은 몰골은 대부분의 영양분을 다른 쪽에 빼앗겨서인 것 같긴 하지만.
그리고 다른 하나는···.
“프레이!”
뒤쪽에서 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저게 진짜 총통의 모습일 텐데.
하인리히는 상황에 맞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라? 진짜로?’
턱수염이 가득하던 우락부락한 중년 사내는 어디 가고, 그 자리엔 건강한 인상의 미녀 하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미믹과 마찬가지로 반나체 상태로.
‘여자였다고? 아니, 분명 총통인 프레디는 남자라고··· 아니, 가만. 프레이?’
문득 그의 뇌리로 안의 외침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켄의 감각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와중, 번천회의 등장 직후에 안이 했던 말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총통은— 프레이는 어떻게 됐냐고 묻고 있잖아—!”
‘그땐 그냥 당황해서 발음이 샌 건 줄 알았는데.’
설마 진짜 그게 본명이었던 건가.
묘한 표정으로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던 하인리히는 아공간에서 꺼낸 담요를 대충 그녀에게 덮어주곤 시선을 돌렸다.
웃긴 점은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어? 저게 누구야? 총통은?”
“진짜 여자잖아? 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큭, 미믹이···! ···그런데 정말 저게 총통이냐?”
“···아니, 그런데 미믹은 정말 그걸 몰랐던 건가?”
안을 제외한 ‘타오르는 횃불’의 동료 간부들은 물론, 위장을 위해 총통을 사로잡기까지 했던 번천회의 초월자들까지.
모두 이 뜻밖의 상황에 당혹스러운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변신계 고유스킬이었나?’
아무래도 온전히 흡수되지 않은 탓에 당사자인 미믹조차 끝까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거짓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었던 덕분에 흡수가 더욱 더뎠던 걸지도.
‘뭐, 어찌 되든 상관없나.’
결과적으로 타오르는 횃불을 이끌어야 할 리더이자 상급 초월자인 총통을 무사히 되찾은 데다, 위험한 능력을 지니고 있던 번천회 측의 요인 하나를 무력화하지 않았던가!
이제 남은 일은 나머지 놈들까지 확실하게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아직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계속 저들을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회는 다음에도 있겠지.’
그의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온 안을 포함한 간부들이 기절한 총통을 수습했다.
거기에 더해 근방에서 끓어 넘치는 신성력을 피해 멀찍이 떨어져 있던 켄과 내부를 조사하던 해리스까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럼 슬슬 끝내도록 할까.”
그리 말한 하인리히가 재차 검을 치켜든 그 순간.
빠지직—
이 공간을 철저하게 봉쇄하던 결계에 균열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