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34)
할리의 현대 일기 (1)
각오했던 것과 달리 방송국에서의 첫 일정은 큰 트러블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철저한 익명성과 안전이 보장되는 인터넷상에서라면 모를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대놓고 악의를 표출하기는 힘든 법이었으니까.
‘그것도 언제든 자신을 해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상대 앞에서 말이지.’
대규모 테러에 수도가 쑥대밭이 되고도 다음 날 대부분의 가게가 정상영업을 할 정도로 폭력에 익숙한 세상이다.
최근 온건한 노선을 지향하고 있다곤 하지만 흡혈귀는 엄연히 포식자.
괜히 까불다가 화나게 해서 한 대 맞기라도 하면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으니, 상대 쪽에서 알아서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간혹 이렇게 겁 대가리를 상실한 친구가 나오기도 하지만 말이지.”
“끄으윽···!”
방송국의 지하 주차장.
자신의 손아귀에 안면을 잡힌 채 발버둥 치는 사내를 내려다본 할리가 다른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잡힌 사내가 연신 팔을 쥐어뜯으며 할퀴고 발길질을 해댔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손가락에 아주 약간의 힘을 더해 상대를 얌전하게 만들 뿐.
“으음, 혹시 이렇게 나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긴 했는데.”
지금은 리코리스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동안은 특별히 이렇다 할 사건이 없었다.
그저 아이돌 프로젝트의 취지대로 여러 방송국에 출퇴근하며 얼굴을 비추길 반복하는 게 전부였으니.
‘친밀감을 위해선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워낙 세간에 화제가 되는 그룹이다 보니 섭외와 관련해서는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쏟아지는 제의들 속에 감춰진 악의를 솎아내는 게 더욱 귀찮았을 정도.
괜한 꿍꿍이를 품고 있는 놈과 일을 같이 했다가 악마의 편집이라도 당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그런 건 프로그램의 책임자와 그 주변을 조사해서 어느 정도 선별할 수 있었는데···.
지금처럼 말단 스태프가 일을 벌이는 것까지 사전에 파악하기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거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차량에 폭탄을 설치하려고 할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은폐 기능에 화력 강화 술식까지 더해진 특제 마도 폭탄을.
할리가 묘한 눈으로 축 늘어져 기절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그저 이곳 방송국에서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는 스태프일 뿐.
보통 폭탄도 아니고 이런 이계의 기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겠어.’
자고로 서로 간의 오해를 풀고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는 데는 대화가 최고인 법.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알아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용당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사내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뭐,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일단 하나하나 차분히 파헤쳐 보는 수밖에.’
몰랐다면 모를까 위험을 감지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 물건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적이 어딘가에 숨어서 그들을 노리고 있단 뜻이었으니.
‘어쩌면 번천회 놈들이 슬슬 간을 보는 걸지도 모르고.’
할리는 제압한 사내를 차량에 대충 던져놓고 다시 담당 아이돌들이 촬영 중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역시 정보 조직을 좀 더 확충해야겠어. 앤드류 위버처럼 아예 그쪽 관련 이능을 가진 녀석들로 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런 녀석들 어디 하늘에서 안 떨어지나?’
혈맹이 한국의 밤을 지배한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가장 큰 음지 세력으로서의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었다.
이곳은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인 데다가 정부의 통제력도 멀쩡히 살아있는 강대국 중 하나였으니.
‘앤드류를 좀 더 굴려봐야겠군. 녀석도 동종 업계 종사자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되면 더 좋아하겠지. 어떻게든 일단 인원부터 확충한 다음에···.’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할리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동시에 어느 한 지점에 집중되기 시작한 날카로운 감각.
선글라스에 가려진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얼씨구?”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게 무슨 일인지.
그가 손목을 꺾으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래도 오늘은 푸닥거리를 좀 해야 할 모양이었다.
***
싸늘한 분위기가 감도는 예능 촬영 현장.
하지만 방송국의 스태프들은 물론 이곳의 선장인 PD도 차마 뭐라 입을 열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란의 중심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쯧, 하여간 누가 괴물들 아니랄까봐. 어딜 눈 똑바로 뜨고 대들어?”
“웃기는 일이지. 오늘만 해도 몇 명이나 잡아먹고 왔을지 모를 마인들이 이렇게 대놓고 방송국을 활보하고 있다니.”
“꺄하핫! 그만큼 쟤네들 빽이 빵빵하다는 소리 아니겠어? 이거 오히려 우리가 연예계에서 매장될지도?”
“흥, 그러면 다른 곳으로 이민 가면 될 뿐이지. 흡혈귀들의 뜻대로 좌지우지되는 나라는 이쪽에서 사양이야.”
“아, 그럼 나도 진지하게 이민을 고려해 봐야겠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쳐들어와 촬영장을 얼어붙게 만든 저 다섯 명의 남녀는 그만한 힘과 권력이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평소엔 보기도 힘들 유명 인사들이 한꺼번에!’
좋지 않은 일로 찾아온 것만 아니었다면 어떻게 섭외 요청이라도 해볼 텐데.
하지만 PD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상대의 이름값 때문에 몸을 사리는 건 아닌, 좀 더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어머? 노려보면 어쩔 건데? 왜? 한 판 붙어 볼까?”
그들의 선두에 선 여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리코리스의 리더, 윤설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
이미 상대가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태도에 거리끼는 기색은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
윤설을 포함한 리코리스의 멤버들도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
소란을 키우지 않기 위해 힘이 있으면서도 참는 게 아니었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자신들이 진심으로 저항한다 한들, 선두의 저 여자 한 명도 이길 수 없으리란 걸.
‘검희 천설향···.’
대격변 초기에 마인을 사냥하는 가디언으로 활동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은퇴 후, 연예계로 전향하여 그 정점에 선 여배우 천설향.
로드의 은총 덕분에 6레벨에 오른 윤설보다 훨씬 더 강한, 인간의 한계인 소드 마스터에 오른 귀환자 출신이었다.
귀환자의 등장은 사회 각계각층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건 연예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리코리스는 마인이란 프레임이 씌워진 흡혈귀로서 연예계에 진출을 선언했기에 화제가 된 것일 뿐.
이미 세계적으로 이쪽 업계에 진출해 자리 잡은 각성자의 수는 결코 적지 않았다.
그중 천설향은 연예계에서 활동한 지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은 대표 격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에 더해 CG나 와이어 따위가 필요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액션 소화력.
그리고 전직 가디언이라는 훈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반열에 오른 강자가 대놓고 적의를 풍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저기 있는 이들 모두 윤설 언니 이상···. 우리로선 대적할 수 없어.’
일행의 뒤쪽에 선 이나희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멤버들을 보호하듯 가장 앞으로 나선 맏언니가 모든 굴욕을 감수하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알고 있었어.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아무리 데뷔곡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들 그것만으로 흡혈귀에 대한 인식이 바뀔 리 없었다.
애초에 그 힘든 걸 해내기 위해서 이 프로젝트가 만들어진 거니까.
이런 적대적인 반응을 마주하는 것도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다.
“불쾌하니까 공기 그만 더럽히고 이 바닥에서 사라져 주지 않을래? 아예 죽어버리면 더 고마울 것 같은데···.”
“······.”
온건파의 크루에 있을 때부터 친언니처럼 자신을 챙겨주었던 진소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키워온 ‘스타들의 세계’에 대한 동경도 함께.
‘그래도 나는···!’
그동안은 체념하고 있었다.
흡혈귀 주제에 연예인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버지의 희생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면서 분에 넘치는 욕심을 품었다고 자책했다.
“PD님한테도 실망이 커요. 아무리 시청률에 목이 말랐어도 그렇지 마인까지 불러들이다니.”
“그, 그게 저는···.”
“흐음, 국장님이랑 따로··· 아니, 본부장님이랑 이야기해 봐야겠네요.”
“허업! 처, 천 배우님!”
헤테로시스의 사무 보조로 일하던 그녀가 이번 프로젝트에 가장 먼저 지원한 건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이번 계획을 진행하며 즐거워하던 진소란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고생한 멤버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겨우 이런 일로 포기할 거 같아?’
지나간 과거의 기억이 지금의 현실에 오버랩되었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그녀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끊어졌다.
“후우.”
그 때문이었다.
한 차례 깊은 한숨을 토하며 앞으로 나선 이나희의 입에서 거침없는 발언이 터져 나온 것은.
“···아줌마. 이제 저희 일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용건만 간단히 하고 이만 가 주시지 않을래요?”
순간적으로 공기가 얼어붙었다.
시끄럽게 떠들며 시비를 걸던 이들과 배경이 되어 구경만 하던 스태프, 심지어 같은 리코리스의 멤버들까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 아줌···. 너···!”
천설향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경지 덕분에 젊음을 유지하고 있을 뿐, 그녀의 나이도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어 있었으니.
그런 만큼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에게 들은 그 말이 더욱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나희야? 아무리 그래도 선배님인데···.”
“아참, 그랬지? 말실수, 말실수. 아니, 근데 그렇잖아요? 지금 주변 안 보이세요? 선.배.님.들 때문에 전부 올스톱된 거? 불만이 있으시면 다 끝나고 나중에 따로 찾아오시던가, 대체 몇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지 참. 선배님이면 단가?”
말투가 좀 그렇긴 해도 누가 들어도 정론이었다.
사실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이 이렇게 떼로 몰려와 행패를 부리는 게 얼마나 평판에 악영향을 줄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런 짓을 벌인 건, 그만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렇게 하는 게 목적 달성에 더 유리하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간 쌓아온 게 있는 만큼 나름대로 적당히 무마할 자신도 있었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건방지구나, 너.”
천설향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거침없이 입을 열던 이나희의 목구멍이 턱 막혔다.
그제야 뒤늦게 제정신이 돌아왔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몸이 딱딱하게 굳은 그녀를 내려다보는 싸늘한 눈빛.
그와 함께 서릿발처럼 휘몰아치는 기세에 주변이 정적에 휩싸였다.
“어이구, 저 꼬마가 누님의 성질을 건드렸구만.”
“언니~ 살살해요. 아무리 그래도 죽이면 안 돼요? 수습하기 곤란해지니까.”
“후, 일이 번거롭게 되겠군.”
지금 세상는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과는 달랐다.
이능관리국과 가디언들이 어떻게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들이 바뀐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각성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에 대한 것.
지구에는 쓰러뜨려야 할 몬스터도, 세계를 위협하는 마왕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능을 가진 이들의 능력 사용을 마냥 억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아무래도 그 잘난 팬텀만 믿고 설치는 것 같은데···. 호가호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조금 가르침이 필요해 보이는구나.”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개인의 무력이었다.
그것을 무분별하게 발산하여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빌런으로 낙인찍히지만, 서로 간의 갈등 해소 수단으로 사용하는 건 그리 책잡힐 만한 일이 아니었다.
상대를 죽이거나 너무 심한 상처를 주지만 않는다면.
‘흡혈귀니까 기본적인 재생력 정돈 있겠지.’
대충 손날을 세운 천설향이 그것을 가볍게 휘둘렀다.
물론 그녀의 기준으로.
“잠깐···!”
“나희야!”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리코리스의 멤버들이 얼어붙은 나희를 감싸고 뒤로 끌어당기는 것과 동시에, 가장 강한 윤설을 포함한 셋이 혈마력을 끌어올리며 그 앞을 막아섰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 아니야! 적어도 일격 정도는···!’
흡혈귀 기준으로 최소 7레벨을 웃도는 상대의 공격이었다.
설사 막아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멀쩡하진 못할 터.
그렇게 엉망이 되어버리면 촬영은 어떻게 하지··· 라는, 현실도피와 같은 상념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거참, 다 큰 양반이 어린애가 맞는 말 좀 했다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이제는 익숙해진 사내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었다.
콰드드득—
대체 언제 나타났는지, 어느새 그녀들의 앞을 막아선 넓은 등판.
한 손을 앞으로 쭉 뻗어 허공을 움켜쥔 사내의 손아귀에서 뭔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 실장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올백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거구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그녀들을 한 번 쭉 살펴보더니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멀쩡하구만? 머리만 정리하면 촬영에는 별 지장 없겠어.”
“···실장님, 싸패세요?”
그런 그의 태도에 멤버 하나가 어이없다는 듯 툭 내뱉었다.
지금 상황에서 촬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카하핫! 뭐, 사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다음 스케줄 있어서 더 이상 시간 낭비는 곤란해.”
“아니, 촬영은 당연히 취소인 게···.”
그에 대한 항변을 무시한 할리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다섯 명의 남녀에게로.
‘이 인간들도 폭탄을 설치하려던 놈들과 한패이려나?’
그의 눈이 순식간에 상대방을 스캔했다.
지금 찾아온 귀환자 출신의 연예인들은 모두 연배가 어느 정도 쌓인 이들이었다.
즉, 어떤 식으로든 ‘마인’ 흡혈귀의 잔혹함을 몸으로 겪어온 세대란 소리.
나름의 정의감을 품고 이렇게 나설 동기가 충분한 이들이었다.
‘특히 저 여자는···.’
그의 시선이 가장 앞에 선 여배우에게로 향했다.
헤스페론을 통해 순식간에 정리된 관련 정보가 전달되었다.
‘천설향, 가디언의 차기 지부장으로 추대될 만큼 강하고 인망이 있었지만···.’
십수 년 전 한창 기승을 부리던 혈맹의 함정에 빠져 모든 부대원을 잃고 홀로 살아남아 돌연 은퇴해 연예계로 들어간 인사였다.
그 능력으로 보나 인맥으로 보나 함부로 대하긴 껄끄러운 상대.
물론, 할리는 그런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신, 정체가 뭐죠? 아무리 봐도 흡혈귀는 아닌 것 같은데···.”
“됐고, 바쁘니까 빨리 정리하자고! 개별 면담은 촬영하는 동안 하면 되겠지.”
양복 재킷을 벗어 대충 옆에 던져둔 그가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으며 목을 꺾었다.
환한 미소 속에서 드러난 새하얀 건치가 촬영장의 조명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