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4)
번천회 (2)
별장과 제법 떨어진 거리에 있는 야산.
“크윽··· 생각보다 결계가 강하군. 이 정도로 부담이 될 줄이야.”
거기다 예상보다 멀리 이동하지 못했다.
하회탈이 쳐 놓은 결계에 영향을 받은 탓이겠지.
“후우, 놈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 이 자리도 서둘러 벗어나는 것이 좋겠어.”
박광천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당장 「공간조작」을 다시 사용하기엔 무리였으니, 걸어서라도 최대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무리해서라도 고유스킬을 두 번 강화한 보람이 있군. 고유스킬은 성능은 좋은데 워낙 성장이 느리니.’
숙련도가 오를수록 꾸준히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카르마 상점을 이용한 급격한 성장에는 큰 메리트가 있었다.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는 결계를 설치한 것과 놈들의 잠입을 파악한 것, 또 자신과 부하들의 기척을 감출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래봤자 결국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지만, 여기서도 강화 효과인 ‘즉시 발동’이 도움이 되었으니까.
‘회복 시간도 빨라졌지. 이제 몇 분 정도만 더 있으면 다시 사용할 수 있겠어. 이번엔 결계도 없는 만큼 더 멀리까지 도망갈···.’
[여기 있었군.]순간, 등 뒤에서.
이곳에서 들려선 안 될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육성이라기보다는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울림.
듣는 것만으로 정신력이 갈려 나가는 듯한 기성.
박광천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떻게 알았지? 결계에 남은 흔적으로? 그걸로는 기껏해야 방향 정도만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내 위치를 특정···.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시간을 끌어야 해. 「공간조작」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곧바로···.’
콰악—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나.]검은 장갑을 낀 서늘한 손아귀가 그의 뒤통수를 쥐었다.
인간의 손이라기엔 일말의 부드러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얼음으로 조각한 인형의 손이 이럴까.
[처음엔 쉽게 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또 언제 어떻게 빠져나갈지 몰라서 말이지. 그래서 그냥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아···안돼···.”
뒤통수를 통해 음습한 흑마력이 밀려든다.
박광천은 온몸을 뒤틀며 저항했으나, 이미 그의 전신은 검은 그림자로 묶인 뒤였다.
‘커헉! 이···이제 일 분도 안 남았는데···! 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끄으윽···.’
머릿속을 쇠꼬챙이로 쑤시는 듯한 감각과 함께, 정신이 혼미해지고 사고가 뚝뚝 끊긴다.
[크흐흐··· 죽음으로 끝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내 앞에서는 죽음조차 탈출구가 될 수 없으니.]한스의 흑마력이 인정사정없이 그의 두뇌를 헤집고 기억을 파헤쳤다.
당연히 이 녀석에게도 금제가 걸려 있었다.
그래도 한 번 해 봤기 때문일까.
간부라서인지 좀 더 복잡하긴 했지만, 푸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그렇게 읽어 들인 기억은···.
‘···이건 또 뭐야?’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 놈의 정신세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것과 마주쳤다.
-설마 여기까지 보안을 해제하고 들어올 수 있을 줄이야.
[호오? 네놈은 누구냐?]녹색으로 빛나는 인간의 형체.
머리와 팔다리만 구분될 뿐, 이목구비는 분간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영체 상태로 보니 새삼 대단하군. 그 정도 밀도의 흑마력이라니···. 하회탈, 생각 이상이구나.
그 말을 듣고 살펴보니 자신 또한 그와 비슷한 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와는 달리 심연을 뭉쳐놓은 듯한 검은색이었지만.
[이놈의 머릿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나. 그럼 네놈이 번천회의 수뇌부겠군.]-이제 와서 부정해봐야 소용없겠지.
자신은 안전한 곳에 숨은 채 타인의 머릿속에 금제를 심어 남을 훔쳐보다니, 음험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이성 한편에서 ‘동족 혐오’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 단순한 착각일 것이다.
어쩌면 놈의 정신 공격일지도.
-하회탈. 흑마력 사용자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적이구나. 아깝군, 아까워. 혹시나 해서 묻는데, 우리와 함께할 생각은 없나?
설마 했던 스카우트 제의라니.
그래도 놈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좋은 기회였다.
[하! 정체도 알 수 없는 놈들의 뭘 믿고? 그래, 이참에 물어보지. 네놈들의 목적은 뭐지?]-귀환자들의 자유. 우리가 주도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
‘뭔가 형식적인 느낌인데? 진심인가?’
그가 말하는 것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귀환자인 한스를 회유하기 위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할지 누가 알겠는가.
[최근에야 두각을 드러낸 조직이라고 보기엔 목표가 과하군.]-우리는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유를 위해 투쟁해왔지.
투쟁이라는 단어가 왠지 모르게 신경에 거슬렸다.
오래전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그 말은, 이전부터 테러를 계속해 왔다는 건가?]-테러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고.
‘그래, 이럴 줄 알았다.’
나왔구나. ‘어쩔 수 없는 희생’.
이놈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남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놈들이었다.
더 이상 따질 필요도 없는 명백한 ‘악’.
그리고 그간 벌인 테러를 합리화하는··· 나의 ‘적’이었다.
갑작스레 떠오른 기억에, 나도 몰래 울컥한 감정을 서둘러 「마인드 허브」로 다스렸다.
하지만 영체 상태에 익숙하지 못해서일까.
아주 찰나의 순간, 감정의 일부가 새어나간 듯했다.
이쪽의 낌새를 눈치챈 듯 놈의 기색이 일변했으니.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지. 이곳은 정신세계. 마력량보다는 정신적인 능력이 우선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호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만약 내가 수락한다면? 내 머릿속에도 금제를 심을 생각이냐?]-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그게 싫다면 저항해도 상관없다. 이곳에서 영체에 입은 피해는 현실의 육체에도 영향을 끼치니까. 방해물을 처리할 좋은 기회가 되겠지.
아주 자신이 갑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시키는 대로 닥치고 목줄 매고 따르면 좋지만, 반항하더라도 언제든 처리할 수 있다는 듯.
어쩐지 여유롭다 싶었다.
-선택해라. 참고로 쉽게 빠져나갈 순 없을 것이다. 설령 운 좋게 나가더라도 치명상을 입고 많은 걸 포기해야 할 터.
정신세계라 그런지 여전히 바깥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한스가 번천회 간부의 머리를 움켜쥐고 머리에 흑마력을 밀어 넣은 지 몇 초 되지도 않았으니까.
그 말인 즉, 아직 한참 여유가 있다는 의미였으며···.
[큭, 크흐흐흣— 정신세계라···. 정신적인 요소로 서로 우열을 나눈단 말이렷다?]그건 저놈을 족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뜻이었다.
[감히··· 죽음을 지배하는 이 몸에게 그딴 협박을 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그쪽 방면에서는 이쪽이야말로 베테랑이었으니까.
***
“하인리히 군? 하인리히 군! 자네 괜찮은가? 이상하군. 몸에는 별 이상이 없는데···?”
멀어졌던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어느새 하인리히의 코앞에는 사제복을 입은 노인이 다가와,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대사제님. 잠시 딴생각을 좀 하느라··· 아하핫!”
“에잉~ 젊은 사람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게야? 갑자기 넋을 놓아서 눈 뜨고 조는 줄 알았잖은가. 꼭두새벽부터 교육받는다고 이러고 있으니 이해는 한다만.”
잠깐 급하게 정신을 집중할 필요가 있는 일이 좀 생겼을 뿐이지만.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문제인지라 그는 급하게 변명을 쥐어짰다.
“아, 성과를 얻고 보니 지난날이 떠올라서요.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엄살은! 겨우 그 기간 만에 이 정도 수준의 성법을 쓸 수 있게 됐다는 건 굉장한 재능일세. 자네는 훌륭한 전투 사제가 될 자질이 있어!”
그 말대로, 마침 ‘정신을 놓기’ 직전에 성법 교육의 결실을 보았던 참이었다.
《개체가 반복된 훈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아우테리카 성법」을 획득합니다.》
축복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터득하게 된 신성력을 이용한 술법인 「아우테리카 성법」.
아무래도 그동안 익숙해진 다른 기운들과는 차별점이 많았기에 생각보다 오래 걸린 면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사제님. 하지만 저는 곧 성기사가 되니까요. 성기사로서 대사제님께서 가르쳐 주신 성법으로 더 많은 이들을 구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랬지. 자네는 성기사가 돼서도 잘할 테니 걱정하지 않겠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니.”
물론 오래 걸렸다는 것은 내 기준일 뿐이었다.
이세계에서 각성자에게 주어지는 보정과 「아바타」에 딸린 분신체의 성장 가속의 시너지는, 이곳의 사람들이 경악할 만한 성장세를 제공했으니까.
성법 교육을 맡은 대사제와 인사를 나눈 하인리히가 교육관을 나서며 아침 해가 떠오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1차 목표를 달성했다!’
그래, 얼마 후면 드디어 하인리히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성기사로서 서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제저녁에 「축복 : 강체」 획득을 보고하고, 성기사로서의 조건을 달성하자마자 곧바로 승인된 사안이었다.
하인리히가 주신교단에 입교한 지 반년 만에 이뤄낸 쾌거.
당연하지만 일반적으로 반년 만에 성기사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인리히의 경우가 매우 특별했을 뿐.
재능도 재능이지만 여러모로 타이밍이 굉장히 잘 맞았다.
신성력이 충만하고 능력만 있으면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주신교단의 특성도 한몫했고 말이다.
‘이쪽 일은 순조롭고, 저쪽 일도 잘 풀렸으니. ···풉, 그런데 아까 그놈이 뭐라고 했더라.’
운 좋게 빠져나가더라도 치명상을 입고 많은 걸 포기해야 할 거라고 했던가?
하인리히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땀이나 좀 빼둘 생각에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훗··· 운이 좋네?”
누구에게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웃음만 남긴 채로.
***
온통 붉은색과 금빛의 화려한 장식품들로 가득한 호화로운 객실 안.
“큽··· 크허억— 쿨럭!”
쿠당탕—!
의자에 앉아있던 한 삼십 대의 남성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크흡··· 젠장···!”
“율령자(律令者)님! 괜찮으십니까?!”
갑작스러운 이상 상황에 숨어있던 호위가 나타나 주변을 경계했으나, 애초에 외부의 공격이 아니었으니 쓸데없는 짓일 뿐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졌다고? 내가? 정신세계에서의 싸움에서?’
정신세계에서 이뤄진 하회탈과의 싸움.
익숙한 전장이었고, 익숙한 전투였다.
생소한 상대라는 점만 빼면.
“우웨엑—!”
각혈한 피에서 내장 조각이 섞여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왼쪽 눈에서도 피와 함께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콰앙!
“율령자님!”
“서둘러! 빨리 치료를 준비해라!”
객실의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부하들과 치료 능력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큭, 그래 봐야 소용없겠지.’
이것은 육신에 입은 피해가 아니었으니까.
영체가 손상된 영향으로 인한 반동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그는 순순히 부하들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입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역류했으나, 치료 이능 덕분인지 더 이상 악화하지는 않았다.
[크카카캇—! 잡 았 다—!]눈을 감자 정신세계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뇌리를 맴돌았다.
심연을 뭉쳐놓은 듯한 검은 형체가 기괴한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에게 손을 뻗는 그 순간.
“크윽···.”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고유스킬인 「심상투영」이 아니었다면 겨우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걸 사용하고도 전투에 패배한 순간, 신뢰도는 바닥을 쳤지만.
‘왜 졌지? 단순히 정신력의 차이는 아니다. 스킬의 차이? 내가 가진 정신계 스킬이 부족할 리가.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이···.’
처음에는 어느 정도 대등한 싸움이 이어졌다.
자신의 정신에 날을 세워 상대를 베어내고, 서로의 공격은 방벽을 세워 막아내는 일련의 과정.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대의 대응이 바뀌었다.
이쪽의 공격은 안개를 베는 듯 상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고, 저쪽의 공격은 세상의 모든 광기와 악의를 휘두르는 것처럼 치명적이었다.
철옹성이라고 자부했던 자신의 단단한 정신 방벽이 박살 날만큼.
그때 상대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공포, 절망, 비탄, 고통, 분노, 죽음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집결체.
인간이 아니라 괴물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대화할 때는 그런 기색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떻게 평소에 그런 광기를 숨길 수 있었지? 아니, 애초에···.’
인간이 그런 악의를 품는 게 가능한가?
하회탈은 정말 인간인가?
‘그 모습은 차라리 고위 언데드 같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이세계로 전송된 각성자는 언데드가 된 순간 사망 판정을 받아, 카르마 상점을 통해 지구로 귀환할 수 없었다.
설령 자의식이 있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일 적의 망념이 밀집하고 변질된 존재일 뿐이었으니까.
이계의 언데드라면 지구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지구에서 그 정도 수준의 언데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걸 다 떠나서, 영체 상태로 처음 마주쳤을 땐 분명 인간이었다. 품고 있던 흑마력의 양이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그건 틀림없어.’
물론 전투가 벌어지고 나서는 급격하게 변질되긴 했지만.
그나마도 인간의 요소가 조금은 남아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마인과 비슷했달까.
그 광기와 수준 차이가 훨씬 심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면에 악마라도 봉인하고 있었나?’
그러다 위기가 닥치자 봉인을 해제한 것이라면···.
‘지금으로선 그 가설이 가장 신빙성이 높군. 그렇다면 놈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다. 그 정도 존재를 재봉인하기 위해서는 큰 대가가 필요할 테니까.’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한쪽 눈을 떴다.
“율령자님! 괜찮으십니까?!”
처음 그의 이상을 알아챈 호위가 다급히 물었다.
다른 부하들은 여전히 그를 붙잡고 치료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여전히 몸 내부는 걸레짝이고 왼쪽 눈은 영구 손실을 입었으며, 두 다리에선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영혼의 일부가 뜯겨 나가고 마력 회로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지금 상태는 그야말로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으니 서둘러야 했다.
“서울 지부에 특급 지령. 즉시 모든 작전을 중단하고 정보를 폐기한 후 잠적하라. 혈맹에서는 알파만 회수, 그 외에는 사소한 연결까지 전부 차단하고 꼬리를 자르도록.”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숨을 고르고, 마저 말을 이었다.
“한국에 있는 모든 지부에 일급 지령. 현재 머물고 있는 거점을 폐쇄하고 모든 흔적을 지우도록. 새로운 거점은 자의적으로 판단 후 추후 보고. 별도의 지시사항이 있을 때까지 활동을 중단··· 쿨럭!”
말을 많이 한 탓인지, 그의 입에서 다시 피가 뿜어졌다.
“율령자님! 지금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치료하던 이들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리고 회주에게 전해라. 한국에 괴물이 있다고. ···나는 최소 몇 년은 정양해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끝으로, 그는 억지로 버티던 정신줄을 놓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명령을 받은 호위가 다급히 몸을 날리고, 남은 이들은 응급처치를 마친 그를 더욱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움직였다.
한국의 일을 총괄하던 율령자가 쓰러지면서, 번천회의 작전에 제동이 걸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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