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44)
천룡검협 (2)
코앞으로 다가온 익숙한 요괴의 모습에 하승훈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할리가 금오도에 방문했을 때도 먼저 시비를 걸더니, 이번엔 모산파 영역에서 이렇게 대놓고 사고를 칠 줄이야!
이건 세계 재건을 위해 화합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할리를 불러서 박살을 내주고 싶지만···.’
품 안의 제갈혜미에게 내공을 씌워 뒤쪽으로 던진 그가 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틀어쥐는 것과 동시에, 손아귀에서 뜨거운 화기가 솟구쳤다.
이윽고 한 마리의 화룡이 된 그것은 곧장 검신을 타고 휘돌며 한순간에 크기를 키워 나갔다.
화르륵—! 콰아앙!
「공령지체」의 힘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품게 된 불의 강기.
그것이 전면에서 쇄도해 들어오는 대요괴를 집어삼켰다.
[이노옴! 하찮은 버러지 주제에 감히—!]아무리 서로 간에 격의 차이가 난다지만 「천룡신공」을 이용한 공격은 절대 얕잡아볼 수 없었다.
이래 봬도 이건 용신의 축복을 통해 터득한, 이 강환계 전체에서 첫손가락에 꼽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공이었으니까.
덕분에 검성과 싸우는 틈을 노렸다곤 해도 현경의 고수인 귀검마제의 한 팔을 자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조금 활약해서 주변에서 추켜세워 주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이 정도 수준으론 내게 어림도 없다!]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딱 그 정도일 뿐.
그런 공격으로는 도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세울 수는 있을지언정, 대요괴인 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순 없었다.
[크허어어엉——!]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천둥과도 같은 포효에 거센 기의 격류가 일어나며 커다란 몸뚱이를 살라 먹던 불의 강기가 속절없이 찢겨나갔다.
그러다 이내 산산이 흩어져 사라지는 불씨를 힐끗 바라본 하승훈의 입매가 모로 비틀어졌다.
‘어마어마한 강기 내성. 거기다 손상을 순식간에 회복하는 재생력까지···. 이 정도면 할리의 하위호환이라 봐도 되겠어.’
도올은 최후의 전쟁 당시에도 활약했던 무투파 대요괴.
과거 모든 면에서 월등했던 할리에게는 손도 못 써보고 박살 난 전적이 있지만, 그 순수한 전투력은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는 강적이었다.
압도적인 맷집과 체급을 가진 만큼 같은 인간인 현경의 고수보다 더욱 까다로운 면도 있었고.
‘아직도 화경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야. 제대로 맞붙으면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하고 무너지겠지. 하지만···.’
그가 강하게 검을 틀어쥐며 정면을 노려보았다.
얼마 전에도 깨닫지 않았던가?
진정으로 강해지기를 원하면서 편하기만을 바라는 건 멍청한 생각이라는 것을.
‘특히 무공으로 벽을 넘어서길 바란다면 더욱 그렇지.’
이건 그에게도 하나의 도전이었다.
지금까지처럼 「아바타」의 특성으로 부작용을 회피해 벽을 넘어서는 게 아닌, 수양을 통해 자신을 갈고닦아서 진정으로 초월에 이르기 위한.
그간 엄청나게 커진 정신력 스테이터스의 대부분이 아바타들의 격을 유지하는 데에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건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었다.
사아아—
그때, 그런 그의 결의를 응원해 주듯.
이전에도 한 번 느낀 적이 있었던 기운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명만이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힘이.
‘용신의 신성력?’
힐끔 뒤쪽을 바라본 그가 씨익 미소 지었다.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그의 육체가 뜨겁게 고양되었다.
그와 반대로 이성은 차갑게 가라앉으며 주변 상황이 세세하게 인지 아래에 들어왔다.
컨디션은 최상.
아직 정리하지 못해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흑룡비서’의 문구들이 뇌리를 파고들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했다.
“후우, 좋아. 이 정도면···.”
재차 호흡을 고를 틈도 없었다.
대기를 찢어발기며 짓쳐 드는 흉악한 손아귀.
쾌(快), 환(幻), 변(變).
그의 몸이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처럼 도올의 팔을 타고 위로 솟구쳤다.
발치에서 휘돌던 풍룡이 그의 검 끝에 집중되었다.
스악—
하지만 이어진 예리한 검격은 대요괴의 목에 기다란 생채기만을 남겼을 뿐.
그나마도 잠깐 사이 완전히 재생되어 버렸다.
두꺼운 가죽이 베이는 순간 배어 나온 약간의 핏물만이 공격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벌레 같은 놈이!]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도올을 분노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그간 우습게 보며 신경도 쓰지 않았던 하찮은 인간 나부랭이가 감히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다니!
이걸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기필코 죽여주마!]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지금, 용의 아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최대한 빨리 목적을 이루고 이곳을 빠져나가려던 기존의 계획마저 깡그리 잊어버리고 분노를 터트렸다.
오로지 저 하찮은 인간을 찢어발기기 위해서.
콰아앙—!
“커헉!”
번개처럼 움직인 그의 손가락에 스친 하승훈의 몸이 땅에 처박히며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다.
직전에 지룡을 둘러 충격을 분산하지 않았으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터.
하지만 숨을 돌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콰르르릉—
황급히 피한 자리 위로 짓뭉개듯 이어진 도올의 발 구름.
그에 쩌적 금이 간 지반이 무너져 내리며 발생한 거대한 산사태가 주변을 휩쓸었다.
***
산이 무너지는 굉음 속에서도 연달아 울려 퍼지는 살벌한 폭발음.
“하 공자···!”
거대한 기가 충돌하며 발생한 여파가 쉬지 않고 밀어닥치는 가운데, 술법을 이용해 몸을 피한 제갈혜미가 입술을 짓씹으며 그 발원지를 바라보았다.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랬나? 괜히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바람에 하 공자가···.’
하승훈이 늦지 않게 쫓아와 그녀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그녀가 사용한 용의 도술 덕분이었다.
과거 마교에 납치 감금되었을 때의 경험을 살려서, 침착하게 염화(念話) 술법을 완성해 그와 소통하며 자신의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전달했던 것이다.
‘나한테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으면. 그랬다면 도움을 요청할 필요도 없이 혼자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도올이 무투파라 하지만 명색이 대요괴라 불리는 존재였다.
비밀리에 통신을 이어가는 정도라면 모를까, 공간 이동씩이나 되는 고위 술법이 그리 쉽게 통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까도 시기적절하게 이뤄진 기습 공격으로 놈의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았으면 절대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쿠르르릉—!
산사태의 진원지에서 재차 거센 후폭풍이 밀려들었다.
그 중심에서 화려하게 솟구쳐 주변을 수놓는 다양한 색상의 용들.
하나하나가 전부 어지간한 산봉우리 정도는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의 정화였으나, 안타깝게도 그 강기들은 나타나는 족족 부서져 흩어지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손을 마주 잡은 제갈혜미가 꾸욱 눈을 감았다.
술법 외에는 이렇다 할 재주가 없는 그녀가 저 싸움에 끼어들어봤자 방해만 될 터.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가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축복을 통해 힘을 보태며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요괴가 이렇게 시끄럽게 난동을 부리고 있으니 금오도에서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야. 그때 봤던 용들이 나설 때까지 버틸 수만 있다면!’
그러던 순간, 하승훈과의 연결을 통해 힘이 뭉텅이로 깎여나가는 것을 느낀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마침 공격을 허용한 그의 몸이 절벽에 파묻히며 크고 작은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안 돼!’
축복이 상당한 충격을 흡수하기도 했기에 당장 전투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이른 건 아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저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자니 마음이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저 요괴를 순순히 따라간다면···.”
지금의 그는 절대 저 대요괴를 이길 수 없다.
이대로라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터.
그러니 괜히 계속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는 것보단 자신이 저 요괴를 따라간 뒤에 금오도에서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쪽이···.
“흐, 그건 관두는 게 좋을걸?”
그때, 그녀의 상념을 자르듯 낯선 이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었다.
“저놈은 또다시 제물을 빼앗길 위험을 감수하느니, 그냥 곧바로 먹어 치워 버리는 쪽을 선택할 테니.”
“헛?!”
화들짝 놀란 그녀가 몸을 돌리며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언제 다가온 건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한 중년 사내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와중에도 여유롭게 싸움의 진원지를 바라보면서.
‘기척을 느끼지 못했어. 대체 누구지?’
이런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주위를 경계하는 걸 늦추지 않고 있었다.
어지간한 수준의 상대라면··· 아니, 설령 화경에 오른 상대라도 약간이나마 기척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대단하군. 천룡검협이라고 했던가? 아직 이십 대라고 들었는데 벌써 벽을 마주하다니.”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태연한 목소리였지만 제갈혜미는 알 수 있었다.
그 바탕에 질투심이 선명할 정도로 가득 깔려있다는 것을.
그에 그녀의 경계심이 더욱 짙어진 순간.
“끌끌끌— 이놈, 아직도 번뇌를 떨쳐내지 못했구나.”
“끅!”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먼저 나타났던 사내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어허, 스승에게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아직 교정되려면 멀었구나.”
“끄으으—!”
제갈혜미는 당황한 눈으로 새로 등장한 인물을 바라보았다.
낡은 도복을 입고 기다란 수염을 늘어뜨린 선풍도골의 노인.
그는 그저 인자한 웃음을 머금고 수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있을 뿐이건만, 사내는 여전히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아댔다.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단다, 아이야. 저 청년은 그리 쉽게 쓰러지지 않을 테니.”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 걸 눈치챈 노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구나. 대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거지? 완전히 이 세상의 섭리를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곤 다시 격전지를 바라보며 감탄을 토했다.
주름이 가득한 그의 눈가에서 경이와 호기심이 짙게 일렁였다.
“끄으, 뭐가 말입니까? 확실히 저 나이에 저 정도 수준이란 건 대단하긴 합니다만···.”
“허허헛, 이 멍청한 제자 녀석은 눈이 있어도 보질 못하는구나.”
머리를 싸매 쥐고 인상을 찡그린 사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으나, 노인은 여전히 싸움에서 눈을 떼지 않고 탄성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으니까.
저 천룡검협이라는 청년의 몸을 통해 표출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갖가지 무리(武理)들이 얽히고설켜 하나의 체계로 완성되고 있다는 것이.
애초에 그게 아니었으면 대요괴를 상대로 저렇게 오래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분명 경지는 노인이 훨씬 더 높을진대 뻔히 보면서도 그 원리를 파악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막을 수 없어야 했을 공격이 미끄러지듯 빗겨지고, 통하지 않아야 했을 반격이 어느새 두꺼운 가죽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용을 두른 움직임은 세상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났으며, 그 검로 또한 자신의 이해를 넘어선 영역에 있었다.
‘게다가 성장도 비정상적으로 빠르군. 단순히 천재라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목숨을 건 실전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건가?’
절대적인 힘의 총량 자체가 압도적인 열세였기에 밀리고 있을 뿐.
사실 둘 간의 역량 차이를 생각하면 버틴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건, 이렇게 밖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 노인이 아니라 그를 직접 상대하고 있는 도올 본인일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혈안이 되어서 저 청년을 노리고 있는 거겠지.”
쯧쯧 혀를 찬 노인이 사나운 표정의 도올을 바라보았다.
얼핏 봐선 오로지 분노만 담겨있는 듯했으나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눈가에 어렴풋한 공포심이 어려 있다는 것을.
몇 번이나 손을 섞었음에도, 그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심지어 그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성장하고 있었으니, 어떻게든 개화하기 전에 뭉개려고 광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 불가해한 것이 완전히 개화하게 된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노릇이었으니.
“저 청년을 생각해서라도 더 기다려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이제 한계인 것 같구나.”
노인이 위태위태한 모습의 하승훈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버티며 성장을 꾀한다고 하나 그것에도 한계는 있었다.
도올은 금오도에서도 악명이 높은 대요괴.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난다면 놈의 의도대로 저 재능이 완전히 꽃피우기 전에 부서지는 게 먼저이리라.
“제자야, 네가 가서 좀 거들어 보거라. 저 청년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선배로서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 대요괴와의 생사투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
“···미치셨습니까, 영감? 나도 아직 벽을 못 넘었는데 도올한테 덤비라고? 드디어 날 죽여 버릴 셈인가 보지?”
“어허! 이놈이 또!”
“끄으윽! 알겠소! 알겠다고! 젠장! 제 발로 저 늙은이에게 찾아가다니 내가 미쳤지!”
결국 중년 사내는 전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상황을 파악하던 제갈혜미가 그를 뒤로하고 눈을 빛냈다.
보아하니 이들도 저 대요괴를 적대하는 입장인 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는 건···.
‘모산파··· 아니, 그 위에서 온 이들이구나.’
가볍게 숨을 고른 그녀가 아직도 옆에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저는 호북 제갈세가의 제갈혜미라고 합니다. 어르신께선 혹시 금오도에서 오신 분이신가요?”
“오호?”
모산파는 금오도의 정문이나 다름없는 장소.
그곳의 영역에서 대놓고 사고를 치고 도망쳤으니 이렇게 빨리 추적자가 붙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허헛, 역시 눈치가 빠른 아이로구나. 내가 금오도에서 온 건 사실이지. 마침 제자 때문에 근처에 왔다가 우연히 상황을 파악하게 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문제를 마주한 이상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다며 눈을 빛낸 그가 천천히 수염을 쓰다듬었다.
은연중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위압감에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고 있을 때, 그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이름을 버린 지 오래인지라 딱히 말해줄 명칭이 없구나. 뭐, 금오도에서 나를 부르는 칭호로 소개하자면···.”
제갈혜미가 커다랗게 뜬 눈을 연신 깜박거렸다.
사실상 모산파를 제외하면 요괴들에 대해 가장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제갈세가의 여식인 만큼, 그녀는 상대의 입에서 나온 호칭이 어떤 존재를 뜻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찰왕(羅刹王).
오룡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금오도 수뇌부의 일좌가 용의 아이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
“젠장! 갑자기 이게 무슨 꼴이야!”
갑자기 싸움에 끼어든 사내를 본 하승훈이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던지라 여기까지만 하고 지원군을 부를까 싶었던 찰나에 이어진 참전.
‘목인광?’
할리가 강환계를 떠난 뒤로 잊고 있었던 반가운 얼굴이었다.
물론 그가 끼어들었다고 상황이 극적으로 변한 건 아니었다.
구광마라고 불리게 된 목인광도 아직 현경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화경의 끝자락에 서 있는 무인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가세로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덕분에 자신을 가다듬을 기회가 조금 더 생겼을 정도로.
“끄아악! 이 망할 노인네! 제자 죽는다! 진짜로 죽는다고!”
거기다 말하는 걸 보아하니 그의 스승 또한 근처에 있는 모양이었다.
‘광제심결을 가르쳐준 요괴인가.’
고아인 데다 통제할 수 없는 광증까지 앓고 있던 목인광에게 광기를 제어하는 심공을 알려줬다는 요괴.
아무래도 전쟁 이후 금오도와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기어코 그를 찾아내 사제의 연을 맺었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잘살고 있었나 보네.’
워낙 바빠서 따로 신경 써 주진 못했으나, 한때 부하로 부리던 이가 멀쩡히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반가운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젠장! 썩을! 그 노인네, 언젠간 죽여 버리겠어!”
할리의 특별 물리치료의 효과가 끝나면서 수그러들었던 광기가 재발한 것 같긴 하지만.
같은 시각, 환계(幻界).
바쁘게 움직이며 언제든 공간을 넘어설 준비를 마쳤던 황룡— 호루스가 다시 몸을 웅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