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47)
황룡의 보주 (2)
제갈혜미가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언니! 괜찮아?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그에 가장 먼저 그녀에게 다가간 남궁소란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며 그 얼굴을 살폈다.
눈 밑에 드리운 다크서클과 다소 거칠어진 피붓결.
자리를 비웠던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건만, 그녀의 말대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안색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초췌해져 있었다.
“으응, 괜찮아. 조금 무리해서 그래. 잠깐 쉬면 괜찮아질 거야.”
아무리 여러 가지 수단을 총동원해 부담을 줄였다 한들, 그만한 기적을 발현하는 데에 아무런 대가도 없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고작 피곤한 정도로 끝난 게 용한 거겠지.
당사자 중 한 명인만큼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승훈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일을 순조롭게 끝냈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케어해주기 위해서.
“고생하셨습니다, 제갈 소저. 다행히 특별한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군요.”
“아, 공자님. 맞아요. 그냥 의식 하나를 돕고 왔을 뿐이니까요.”
“무리하신 것 같은데 얼른 이리로 와서 쉬십시오. 시중드는 도깨비들에게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는지 물어보겠습니다.”
“후훗,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을 걱정해 주는 그의 배려에 그녀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걸렸다.
그렇게 둘 사이에 부드러운 공기가 감돌던 순간.
“아! 그거 제가 알아요! 언니, 이쪽으로 와 봐! 내가 아까 돌아다니면서 좋은 걸 찾았어.”
그 사이에 불쑥 얼굴을 내민 남궁소란이 그녀의 팔을 끌어안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여기 신기한 데가 정말 많더라고? 피로 해소는 물론 상처 회복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온천인데, 그래서인지 피부 미용에도 아주 그만이래. 언니랑 같이 가려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그리곤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의기양양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 소란아?”
“우리가 또 언제 이런 데에 와 보겠어? 기회가 왔을 때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봐야지. 거기다 초대받아 온 손님이라서 전부 공짜래!”
“넌 집안에 돈도 많은 애가···.”
“원래 아낄 수 있을 때 아끼는 게 좋은 법이잖아? 애초에 요괴들 사이에 통용되는 화폐랑 다르기도 하구. 그리고 아까 여우 직원 언니한테 들었는데, 거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춘 그녀가 제갈혜미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고 뭔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직 전음(傳音) 같은 기예를 사용하기에는 경지가 다소 부족한 그녀였지만, 그렇게 하니 흉내 정돈 낼 수 있었는지 밖으론 조금의 소리도 새지 않았다.
“···정말?”
“진짜로.”
“···가자.”
“응응.”
그리고는 곧 둘이 의기투합해 하승훈에게 인사를 건네고 급히 자리를 떴다.
호루스는 주로 용들의 거처에만 머물렀기에 금오도에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전부 알지는 못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라도 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사이좋게 나란히 사라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워낙 큰 의식을 치른 직후라 조금 걱정했건만, 저 모습을 보니 기력이 완전히 다한 건 아닌 듯해 안심이 되었다.
‘뭐, 확실히 여긴 인간 입장에선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긴 하지.’
남궁소란의 말처럼 피부가 좋아지는 온천 같은 건 시작일 뿐이었다.
먹으면 키가 커지는 죽순, 죽은 사람도 벌떡 일으킨다는 고약한 향초, 몸에 문지르면 투명 인간이 되는 꽃망울 등.
‘가만, 그러고 보니 이거 그냥 웃고 넘어갈 게 아니잖아?’
문득 한 가지에 생각이 미친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차원 상인」으로서의 촉이 말해주고 있었다.
아까부터 진한 돈 냄새가 풍기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제한이 걸려있어서 내심 포기하고 있었으나, 이젠 그 문제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어. 이거 어쩌면···.’
그렇게 하승훈이 새로운 수익 모델을 구상하며 생각에 잠겼을 때.
“흠, 여우로군.”
문득 옆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심하기라도 한 건지 금오도에 온 이후 줄곧 일행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목인광이었다.
본인은 심심한 게 아니라 사부의 명령으로 그들을 챙겨주고 있을 뿐이라고 했지만,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괜히 이곳저곳 참견하고 돌아다니는 아저씨 그 자체였다.
“여우요? 아, 방금 소저들이 갔다는 온천 말입니까?”
“뭐, 거기도 여우 요괴들이 운영하는 데긴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쪽이 아니야. 아까 그 꼬마 아가씨 말이다.”
“남궁 소저가요?”
어울리지 않게 도사들이나 입을 법한 차림을 한 상대의 말에 하승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보고 진짜 여우 요괴라 한 건 아닐 테니 단순한 비유일 터.
굳이 따지자면 그녀는 여우보다는 강아지 쪽에 더욱 가깝다는 느낌이었는데···.
‘아니, 둘 다 갯과니 그게 그건가?’
목인광은 연신 눈을 깜박이는 하승훈을 힐끗 보고는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가 본 남궁소란의 경지는 일류 수준.
이제 막 십 대 후반에 접어든 소녀가 벌써 일류 고수라는 건 천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상 논외라고 할 수 있는 몇몇 현경의 고수를 제외하면 사실상 화경이 최고수나 다름없었으니.
‘이 맹한 괴물 놈은 예외로 쳐야지.’
일반적으로 대문파의 장로급이 초절정이고 무력 부대의 대주급이 절정이라는 걸 생각하면, 일류는 어느 문파에서나 정예 무인으로 취급받는 위치였다.
벽지에선 문파까지 세워 제자들을 키우며 수장 노릇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고.
대명문가의 직계로서 재능과 노력은 물론 풍족한 지원까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터.
그런 출중한 능력과 빼어난 외모를 가진 명가의 여식이 안전한 가문의 품에서 벗어나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어이, 천룡검. 짜증 나는데 한 판 붙자.”
“예? 갑자기? 그리고 천룡검은···.”
“지랄, 너한텐 협(俠)이라는 말도 아까워. 크흐흣, 설마 사내자식이 쫀 건 아니겠지?”
“허, 좋습니다. 마침 좀 움직이고 싶던 차니까요.”
목인광은 젊고 잘생긴 데다 성격도 좋은, 누가 봐도 매력적인 청년 고수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저게 어딜 봐서 자신과 동급의 강자란 말인가?
본인의 성질이 더러운 거야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딱히 신경 써본 적은 없었으나, 너무나 비교가 되는 명백한 대조군이 바로 옆에서 멀뚱히 서 있으니 괜히 열이 뻗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천룡검협이라고? 뭐냐, 그 멋진 이름은! 누구는 아직도 구광마라는 웃긴 별호로 불리고 있는데!’
더 짜증 나는 건 정작 자기한테 ‘광마’라는 별호를 강탈해 간 그 강도 놈은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용의 아이를 이용한 세계 수복이 있었던 날로부터 지금까지 줄곧.
‘쓰지도 않을 거면서 대체 왜 빼앗아 간 거냐! 안 쓸 거면 돌려달라고, 이 개자식아!’
물론 이제 와선 아무 의미도 없는 아우성일 뿐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씩씩거리며 열을 내는 목인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승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역시 할리의 물리 치료가 없으니 수그러들었던 광증이 재발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상대의 스트레스에 대한 지분 대부분이 자신이라는 자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뭐, 저렇게 적극적이면 「무극」의 숙련도를 올리는 데에도 적잖은 도움이 되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목인광 또한 화경의 끝자락에서 현경을 바라보는 고수.
같은 위치에 있는 상대와 무공을 나누면서 얻는 깨달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분간은 저쪽도 정신없을 테니.’
그는 용신전이 있는 방향을 흘깃 바라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호루스를 포함한 오룡은 물론, 그 외의 다른 용들 또한 한동안은 이쪽에 신경 쓰기 힘들 것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요괴 전체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던 대전쟁 당시 완전히 대가 끊어졌던 황룡의 핏줄.
그것이 마침내 온전히 부활했으니까.
***
“자, 이거 한번 먹어볼래?”
[꺄웅!]“꺅! 먹었어! 귀여워! 사랑스러워! 또, 또 먹을래?”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땋은 십 대 중반의 소녀, 흑룡이 호들갑을 떨며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곤 다시 주머니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도깨비불 같은 것을 꺼내 앞으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각진 데가 없이 둥글둥글한 데다 조막만 한 용의 주둥이를 향해.
날름—
그에 동그란 눈을 깜박거리다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 없이 그것을 넙죽 받아먹는 작은 황룡.
연신 머리를 흔들며 짭짭거리는 그 모습에 흑룡의 입가가 흐물흐물하게 풀렸다.
“우흐흣! 또 먹었어! 자, 그럼 다음은···.”
“거기까지 해라, 흑룡. 휘아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지나친 과식은 해가 될 뿐이다.”
“···백룡, 그런 말을 할 거면 손에 든 선과(仙果)나 내려놓으시죠?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만?”
“크흠.”
샐쭉한 눈초리로 답하는 흑룡의 말에 백룡이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손에 쥔 복숭아처럼 생긴 과일을 내려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기···.”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촌극에 작게 한숨을 내쉰 호루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에게 지금 상황에 대한 불평을 토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입을 열기 무섭게 달콤한 과일이 쏙 들어와 저도 모르게 우물거리느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귀여운 거 옆에 귀여운 거라니. 이건 귀하네요.”
“크흠, 흠흠. 뭐, 나쁘지 않군.”
“적룡? 설마 그거 화상 저장구인가요? 그건 어느새···?”
“흥! 완전히 끊어졌던 황룡의 대를 이을 후계가 드디어 다시 탄생한 순간이다. 우리에겐 이 순간을 기록해 후대에 전달할 의무가 있어, 청룡.”
“과연, 역시 적룡이군요. 옳은 말이에요. ···나중에 저한테도 공유해주실 거죠?”
용의 여의주는 그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인간 사이즈로도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구슬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용으로 변했을 때 입에 물기 편한 바위 크기까지.
이번 의식에 사용된 여의주는 성인의 주먹 두 개 정도를 합친 크기로 보관되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거기서 태어난 황룡의 크기도 작을 수밖에 없었는데···.
“쩝쩝, 너 정말 성장이 빠르구나?”
[꺙?]호루스는 입안의 과일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삐죽 내민 작은 용을 바라보았다.
예닐곱 살 사내아이의 상체를 휘감은 누리끼리한 동체는 어느새 처음 여의주에서 나왔을 당시의 미꾸라지 크기에서 어엿한 뱀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애초에 정상적인 생명체가 아니니까 당연한 건가.’
부화할 여의주의 크기를 처음부터 집채만 하게 키웠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중요한 건 초기에 투입되는 기운과 이후 성장 과정에서 섭취하는 에너지일 뿐.
히죽 웃은 호루스가 한 손으로 새끼 황룡, 휘령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아프지 말고 쑥쑥 자라렴.’
그 진심이 담긴 손길에 두 눈을 지그시 감은 녀석이 몸을 비틀며 그의 손에 자신의 머리를 비볐다.
“아아—.”
“에? 청룡? 괜찮아요? 정신 차리세요!”
“···적룡, 유실될 가능성이 있는 기록은 여러 곳에 분산해 저장하는 게 기본이다. 너라면 알고 있겠지?”
“흥, 글쎄?”
외야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그가 가만히 휘령에게서 느껴지는 일체감에 집중했다.
단순히 자신 덕분에 탄생한 아이에 대한 애착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게 「황룡의 보주」가 가진 진정한 힘.’
느껴졌다.
의식을 주재하면서 이어진, 그와 휘령 사이에 연결된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우우웅—
호루스의 손끝에서 미약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갓 태어난 휘령으로부터 비롯된 힘이었으나, 이건 이 아이에게서 빌려온 것이 아니었다.
‘딱 그에 비례해서 나한테 추가로 부여된 거지. 거기다 이 힘, 여의주랑 비슷해.’
즉, 이 아이의 존재 자체가 그에게는 또 하나의 여의주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용의 능력을 극한으로 증폭해 주는 여의주는 역천을 범하지 않는 이상 단 하나밖에 활용할 수밖에 없는 기물.
흡족한 미소와 함께 슥슥 쓰다듬는 손길에 휘령의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완전 토템이네.’
지금은 갓 태어난 새끼 용에 불과하지만, 태생 자체가 비범해서인지 성장 속도가 범상치 않은 녀석이었다.
이 아이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그가 다룰 수 있는 힘도 그만큼 더 커질 터.
의식의 기둥이 되었던 다른 용들은 물론 무녀로서 용신과의 중개를 담당한 제갈혜미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오로지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지금은 휘령 하나뿐이지만 여기서 추가로 황룡을 더 늘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아이들을 무사히 성장시킬 수 있다면···.’
과연 호루스는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까?
여의주 하나를 거친 브레스가 북경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여기서 2차, 3차 증폭이 더해져 몇 배로 부풀려졌을 때의 위력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구상을 당장 실현할 수 없었다.
그의 요청에 참회동의 상황을 살펴보고 온 청룡이 난색을 표했던 것이다.
“방금의 의식으로 축적해 두었던 기운의 대부분을 소모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환계의 운영도 빠듯해질 지경이죠. 물론 환계에 거주하던 요괴들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으니 시간만 있다면 다시 회복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른 시일 내엔 무리라는 말이었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호루스도 단념을—.
‘그럼 에너지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거지?’
—하지 않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위대한 옛 성현의 말씀을 떠올린 그가 자신의 방에 돌아와 휘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파괴와 약탈을 거듭하며 이 세상을 벼랑 끝까지 내몰았던 극악무도한 악의 조직.
천마신교의 창고를 통째로 털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
서울 외곽에 마련한 안락한 나만의 보금자리.
“···그랬는데.”
나는 컴퓨터 앞 의자에 앉은 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발치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넌 왜 여기에 있냐?”
[뀨?]동그란 눈을 깜박거리며 내 떨떠름한 시선을 마주하던 휘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전히 내 다리 한쪽을 둘둘 휘감은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