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58)
방문 (2)
서기관을 암살하러 왔을 때 이후 처음으로 보는 판테온 총본부.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위치한 그곳은 한때 넓은 숲이었던 장소에 조성되어 있었다.
여러 차원, 다양한 성향의 신들을 모시는 성직자들이 한데 모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 각자가 필요로 하는 조건이 워낙 제각각이었으니.
상극인 불의 신을 모시는 환경과 물의 신을 모시는 환경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땅값이 비싼 도심 내부에는 그들이 요구하는 면적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전엔 숲이었던 곳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리고 판테온이 설립된 지 이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게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주변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번성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상 작은 규모의 도시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각 교단의 신도들은 물론이고 신성력의 수혜를 입고자 하는 이들까지 몰려 들여 주위에 거주지와 상권이 생겨났으니까.’
막상 그 특이한 정경을 다시 마주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정작 지금 가장 크게 신경 쓰이는 점은 따로 있었으니···.
“경계가··· 굉장히 삼엄하군요?”
과연 이곳이 성직자들이 모인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경비 수준이었다.
‘저번에 왔을 땐 이 정도가 아니지 않았나?’
차창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던 하인리히가 슬쩍 주변을 훑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방범 결계의 수만 해도 벌써 십여 개 이상이었다.
그것도 초월자조차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아직 총본부 내부에 진입한 것도 아닌데.’
외곽 지점은 외부인에게도 개방된 만큼, 기존에도 철저한 방비가 갖춰져 있긴 했다.
애초에 타깃이 아예 영역 밖으로 나갔을 때를 노려 암살을 시도한 것도 전부 그 때문이지 않았던가?
“으음, 이세계인인 하인리히 형제님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사실 최근 총본부에서 큰 변고가 있었습니다. 저도 한국에 체류 중이었던지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그에 제이슨 사제가 깊은 침음을 흘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곧이어 그가 꺼낸 이야기는 어떤 ‘극악무도한 범죄 집단’에 의해 판테온 운영의 대표인 12위원회 중 한 명이 피습당해 실종되었다는 비보였다.
“···이후 모든 경계 수준이 대폭 향상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말이 도망간 후에야 마구간 문을 닫는 격이긴 하나, 그렇게라도 해야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 저도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들어본 것 같습니다.”
“워낙 시끌시끌한 사건이었으니까요. 그때의 일 이후로 저희 판테온뿐만이 아니라 다른 조직들도 모두 한층 경계를 강화했다고 하죠.”
말하는 것만으로도 괴롭다는 듯, 실종된 사제와도 나름의 친분이 있었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제이슨 사제.
하인리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기도를 올렸다.
‘아하! 나 때문이었구나?’
뻔뻔하게 그 와중에도 「페르소나」 덕분에 속내가 드러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며.
“제이슨 사제님? 오랜만이시군요. 그렇다면 동승하고 계신 분이···.”
“아! 미리 연락받았습니다. 얼른 들어가시지요.”
하인리히가 탄 차는 여러 차례 검문을 거쳐서 곧바로 성직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중심 구역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성직자 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들을 다수 마주칠 수 있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그들 대부분이 하나같이 개성적인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자유의 땅이니까요. 한국과는 달리 보다 자유로운 히어로 활동이 용인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따르긴 합니다만.”
하인리히가 슬쩍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검문소 너머를 바라보았다.
초록색 전신 쫄쫄이를 입고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몸매를 과시하는 거한부터 시작해, 게임이었다면 굉장히 방어력이 높을 것 같은 비키니 아머를 입은 여전사까지.
‘자유의 땅이라···.’
확실히 한국에 비하면 각성자의 자유도가 높긴 했다.
그만큼 각성자들의 입김도 훨씬 강한 편이었고, 그건 판테온뿐만 아니라 세계 귀환자 협회의 본부가 미국에 자리 잡는 데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이능 범죄자 역시 활개 치기 쉬운 환경이 되었다는 게 문제지만.’
거기서 대두된 존재가 바로 일명 ‘히어로’였다.
총기의 사유화가 허락된 나라답게 이능을 사용해 스스로를 지키는 걸 넘어, 자경단 활동에도 면허를 발급해 치안을 유지하는 방안을 적극 채택한 것이다.
‘살인을 비롯한 과잉 진압 행위는 면허 발급과 갱신에 감점 요인이라고 했던가.’
말이 히어로지 실적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는 점에서 보면 현상금 사냥꾼이나 다름없었으나, 그런 기믹은 영웅에 열광하는 미국 시민들에게 굉장히 큰 호응을 받았다.
유명해진 후에 캐릭터 상품을 내거나 직접 연예계에 진출하는 경우도 그리 드물지 않을 정도로.
사실상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결합한 형태나 다름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이세계 종교 연합, 판테온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운영위원회입니다.”
그런 하인리히의 상념을 끊듯 부드럽게 전진하던 차량이 멈춰 섰다.
이어서 제이슨 사제를 따라 차에서 내린 그는 의외라는 듯 눈앞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본 개성적인 외양의 신전들과는 달리, 이 건물은 지극히 평범한 겉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일종의 중립 지역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지요. 괜히 특정 종교색이 들어가면 꺼리시는 분들이 많다고 이리 무미건조하게 지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만 들어도 벌써 피곤함이 느껴졌다.
하긴, 이렇게 많은 종교를 하나로 아우르는 게 쉬울 리가 없겠지.
본인 스스로도 신을 따르는 성직자였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신의 성향에 물들어 독선적이 되며, 그렇게 되면 다른 방식을 용납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뭐야? 제이슨 아냐? 그동안 안 보여서 드디어 죽었나 싶었는데 살아 있었구만.”
곧바로 그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막 운영위원회 건물로 들어가려던 그들을 한 낯선 목소리가 가로막았다.
누가 들어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짜증이 한껏 담긴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윌터.”
그에 제이슨 사제가 굳은 얼굴로 그쪽을 돌아보았다.
깔끔한 인상의 그와는 반대로 한껏 풀어헤친 차림새에 헝클어진 머리,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술 냄새까지.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극도로 단련된 육체와 형형한 눈빛이 없었으면 영락없이 난봉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이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저자도 성기사 출신인가. 그러고 보니 제이슨도 성기사였지.’
하인리히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막 다가온 윌터라는 사내와 제이슨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늠한 두 사람의 실력은 박빙.
거기다 모시는 신의 성향도 정반대로 보였으니 저렇게 으르렁대는 사이가 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마찰은 외부인인 내가 나설 일이 아니지.’
자신은 엄연히 초대를 받아서 온 사람.
괜히 친분 때문에 한쪽 편을 들었다간 문제만 더 키울 수 있었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저들끼리 알아서 잘 해결하도록 해야—.
“파핫! 그렇다는 건··· 이쪽이 그 자칭 성자라는 인간인가 보구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군. 그렇게 쌩 난리를 쳐가면서까지 불러와야 할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너한테는 잘 어울리는 임무였다. 듣도 보도 못한 소국까지 심부름 가는 것 말이야.”
“···판테온 전체를 대표해 모셔 온 손님이다, 윌터. 예의를 갖춰라.”
“전체? 누구 마음대로 대표해? 적어도 나는··· 우리 퀼라디아 교단은 인정한 적 없는데?”
“윌터.”
처음부터 시비를 걸기로 작정한 듯 대놓고 이죽거리는 사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성직자라고 모두가 성격이 좋진 않다는걸.
모시는 신 자체가 난폭한 경우도 있을뿐더러, 설령 같은 신을 모시더라도 모두가 똑같은 성격으로 닮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만 해도 남에겐 잔혹하지만 자식에게만은 온화한,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흔한데 그보다 훨씬 높은 차원에 있는 신의 경우는 오죽하랴.
“자원봉사라는 좋은 일을 하고 다니신다지? 보아하니 제법 단련도 하신 것 같은데. 성기사 흉내를 내고 싶었던 건가? 풋, 그러고 보니 이명이 화이트 나이트였다고 했었지.”
“윌터, 마지막 경고다.”
공식적인 첫 방문이기에 주신교단의 예복을 입고 왔는데 그것 때문에 이쪽이 순수 사제 출신이라고 착각한 모양.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이렇게 대놓고 시비를 걸어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명백히 자신보다 강한 신성력을 보유한 사람한테.
‘아무리 깊은 신앙심을 증명했다고 해봤자 어차피 다른 신의 신도라 이거지?’
워낙 색다른 경험이었던지라 화도 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자신은 완전히 다른 부대 소속의 상급자라고 볼 수 있었다.
아니, 어찌 보면 그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쪽은 아예 소속 국가가 다른 걸 넘어 ‘차원’이 다른 경우였으니까.
“영상으로 볼 때는 제법 훌륭한 육체였던 것 같은데 말이지. 쯧, 전부 갑옷빨이었나?”
···하지만 그의 여유로운 태도도 딱 거기까지였다.
시비에 반응하지 않는 자신이 아니꼬웠던 건지 그만 놈이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 경고라고 말했지. 결투다, 윌터. 오늘이야말로 확실하게 버릇을 고쳐주도록···.”
“···잠깐, 제이슨 사제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형제님···?”
굳은 얼굴로 앞으로 나서는 제이슨을 만류한 그가 천천히 숨을 골랐다.
방금 전 그 말만큼은 도저히 그냥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그건 자신의··· 하인리히의 역린이었으니까.
하인리히가 슬쩍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이어서 가슴팍을, 복부를,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딜 어떻게 봐도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든 부피를 다시 확인하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설마 천사에 이런 부작용이 있었을 줄이야.’
천사.
신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는 일종의 종족 특성이었다.
천사가 된 후로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던.
물론 부피만 줄어들었을 뿐이지 육체 능력이 떨어진 건 아니었다.
극한의 압축으로 단위 면적당 낼 수 있는 힘이 증가한 데다, 근육의 형태 또한 이상적으로 바뀌었으니 오히려 진화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하지만 이건 결코 자신이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근손실! 근손실이라니! 열심히 만들고 가꾼 내 멋진 근육이!’
하인리히의 근육에 대한 애착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육체를 자유롭게 제어해 원하는 대로 조형할 수 있는 할리와 달리, 하인리히의 근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지 않은가?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신성력 도핑 덕분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뼈를 깎는 고생 끝에 만들어낸 결실을!’
—「마인드 허브」 덕분에 고통스럽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 잃어버린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걸 조롱거리로 삼아?’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후 다시 벌크업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하지만 이 빌어먹을 종족 특성은 그의 몸이 이전과도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저 윌터라는 자의 말은 여태까지의 자신이 들인 노력들을 모두 부정하는 짓이었으니···.
“결투라고 하셨죠. 그거, 제가 직접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가능합니다만.”
“혹시 거기에 필요한 절차가 있습니까?”
“이래 봬도 저희는 모두 신을 섬기는 자들. 신의 이름 앞에서 정당하게 승부를 겨루고, 그 결과에 승복하기로 맹세하는 것 외엔 어떤 절차로 불필요하지요.”
“그거 잘 됐군요.”
과연, 시원시원해서 마음에 들었다.
아마 이게 그동안 판테온이 긴 세월 동안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이겠지.
물론 그것을 위해선 상대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 결투라니. 내가 그런 걸 받아들일 것 같은가? 이겨도 져도 손해인데 내가 왜?”
설령 상대의 신성력이 자신보다 더 높다고 할지라도, 전투 직군인 성투사가 비전투 직군인 치유 사제와 결투를 벌이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오욕이었다.
퀼라디아의 성투사에게 사제란 지켜야 할 대상이지 싸워서 쓰러뜨릴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성기사인 하인리히는 이럴 때 확실하게 상대를 도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흐음, 쫄기라도 하셨나 보군요. 뭐, 알겠습니다. 제가 이해해 드려야겠지요. 그런데 퀼라디아 교단은 교리가 굉장히 널널한 모양입니다?”
“하?”
교단의 무력을 대표하는 이에게 그 이름을 건 도발은 절대로 묵과해선 안 되는 법.
자신이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얼굴을 찌푸린 윌터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
하인리히의 얼굴을 향해 번개처럼 손을 내뻗었다.
물론 정말로 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 겁 없는 자칭 성자에게 진정한 성투사의 힘을, 마스터의 끝자락에 다다른 무인의 무서움을 보여주려고 했을 뿐.
그랬기에···.
퍼억—!
그는 자신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타격감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뭐?’
그는 이곳으로 온 뒤 처음으로 당황했다.
다시 말하지만 코앞에서 멈출 생각이었지, 정말로 칠 생각은 없었다.
‘내가 거리 조절에 실패했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감각은 완벽했다.
그럼 상대가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아니, 그럴 리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의 머릿속이 일순 어지럽게 헝클어졌다.
‘젠장, 이건 계산에 없었는데.’
이건 지금까지 시비를 건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제대로 결투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판테온을 찾아온 손님의 면상에 느닷없이 선방을 갈긴 셈이 되지 않았나?
손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을 보니 신성력 덕분에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진 않았으나, 지금 중요한 건 그가 먼저 손을 썼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일단 자리에서 물러난다.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해. 제기랄, 된통 깨지게 생겼군.’
판테온은 수많은 교단이 한데 뭉친 집합체.
당연히 그곳엔 비슷한 성향과 교리를 가진 이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파벌이 있었고, 그건 12위원회에 속해 있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12위원회의 일좌였던 아델라인 슈나이더가 실종되고도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 곧 차기 위원 선출이 있을 터.
그때 그 좌석을 자신들 쪽 파벌의 인물로 채우려면 지금부터 제대로 밑밥을 깔아둬야 하는데···.
그래서 당황한 그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상대가 무슨 수를 써서 자신의 거리 감각을 흔들어놨는지.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 생각할 시간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콰아아앙—!
“커헉!”
갑작스럽게 찾아온 물리적인 충격이 머리를 뒤흔들어 놨기에.
인지를 초월한 일격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먼저 치셨군요. 그럼 이건 정당방위입니다?”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 사고 너머로.
흐릿하게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의 의문.
그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왜 갑옷을 입고 다녔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죠?”
뻑뻑해져서 잘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가 아닌.
“지금부터 그 이유를 차근차근 확실하게 새겨드리지요.”
아직도 팔팔한 육체의 대화를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