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6)
번천회 (4)
드르륵—
방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봤다.
아침이 되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아바타를 통해 바깥과 자주 접한 덕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더는 바깥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직접 밖에 나가기에는 아직 심적인 부담감이 있었으나, 이렇게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쐬는 것 정도는 이제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멍하니 밖을 내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개체명 : 하인즈 2세
-종족 : 뱀파이어 (진혈)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명경지수」
-개체 특성 : 「피의 일족 (진혈眞血)」, 「혼혈진화」, 「피의 신비」, 「정제혈정」, 「가속」, 「초재생」, 「간파」, 「은폐」, 「투명화」
-특이 사항 : 여러 차원의 흡혈인자를 수집하여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포식자로서 다른 흡혈귀들의 적대적 능력을 일부 무시하고, 본능적인 위압을 가한다. 최근 유입된 과도한 에너지가 체내에 형성된 혈정(血精)에 저장되었다.
별장에서의 전투 후, 하인즈는 한동안 과식으로 고생해야 했다.
‘간부진은 물론이고 경비를 서던 흡혈귀들까지 전부 피를 빨아들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수준이 낮더라도 새로운 흡혈인자를 수집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버리기도 아까워서 꾸역꾸역 먹어 치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물리적인 제약이 덜하다지만, 어떤 일에도 한계가 있는 법.
더 이상 체내에 담지 못하고 포화상태에 이를 지경이 되자, 강해진 혈액 통제력으로 넘쳐나는 흡혈인자들을 뭉치고 압축해 하나의 정수로 만들었다.
‘그 대부분이 쓸데없이 양만 많이 차지하는 저급한 흡혈귀의 것이었지만.’
체내에 들어온 이상 「혼혈진화」의 영향을 받아 진화가 이뤄지긴 했으나, 질 자체가 너무 낮아 직접 사용하기 애매한 것들이었다.
이미 까마득하게 수준이 높아진 하인즈에겐 별로 도움이 안 되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계륵.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 새로 얻은 특수스킬인 「정제혈정」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피에 담긴 사념이란 말이지? 그럼 해결책도 간단하지. 나한테는.’
이미 해본 적도 있지 않은가.
하인리히를 통해 세례 의식을 받을 때 말이다.
자신이 가진 스킬들과 혈액 통제력을 연계해, ‘하인즈 2세’의 혈정에서 사념을 비운 흡혈인자를 추출한다.
그렇게 시도한 끝에 획득한 스킬이자 결과물이 바로, 「정제혈정」이었다.
어떤 사념도 담기지 않은 흡혈귀 진화의 정수.
이렇게 만들어진 「정제혈정」이 다른 흡혈귀의 체내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의 흡혈인자를 진화시키는 촉매가 되어줄 것이다.
촉매일 뿐이니 소량만으로도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을 터.
물론 많이 투여하면 투여할수록 그 변화의 폭이 더욱 크며 변이 속도도 빨라질 테지만 말이다.
‘부작용이 없진 않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부작용도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피를 ‘하사’하고 ‘계승’ 받는 절차가 이뤄지는 것이었으니, 하사하는 자에게 계승 받는 자가 종속되는 아주아주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으니까.
흡혈귀에게는 별것도 아닌 문제였다!
‘흡혈귀라면 다들 익숙한 일이니까. 그 대상이 바뀔 뿐이지.’
충성을 대가로 확실한 힘을 얻는다.
간부들의 빈자리로 혼란스러워진 강경파 잔당들에게도 나쁠 것은 없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동족 포식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을 갈망하던 이들이 아닌가.
그렇게 받아들이는 놈들은 포용하고, 기존의 체제를 주장하며 반항하는 놈들은 소비된 혈정의 재료로 만들고.
아주 이상적인 구조였다.
‘···어라? 이거 강경파 놈들이 하려던 짓이랑 다를 바 없는 것 같은···. 흠, 아니지. 나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놈들을 제거하는 거니까.’
그 와중에 아주 살짝 이득을 보는 것뿐이다.
현상금 사냥꾼과 다를 바 없는 아주 건전한 계획.
실없이 비실비실 웃던 나는 다시 창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화면에는 한 사건에 대한 인터넷 검색 결과가 떠 있었다.
-20XX년 8월 서울역 테러 사건.
그가 가족을 잃었던 곳이었다.
맥없이 실실거리던 입가가 경직되고, 입꼬리가 스르륵 내려갔다.
심장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이세계에서 힘을 얻고 돌아온 초인들이 한곳에 득실거리는데, 정작 그들이 힘을 쓸 만한 몬스터나 마왕 같은 건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거라곤 그들과 같은 처지의 초인들뿐.
하지만 처지가 같다고 가치관 또한 같지는 않으니,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했다.
그곳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힘.
더 강한 힘이야말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정의였고, 질서였으며, 이 세계의 전부였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이들의 희생이 수없이 따랐지만, 힘이 없는 이들은 그저 참고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사고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나 또한 그랬다.
쾅—!
이전까지는.
가볍게 내려친 주먹에 책상에 균열이 생겼다.
「아바타」를 각성하고 그간 맹목적으로 힘을 추구해왔다.
힘이 없어 당했던 무력한 순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페르소나」는 감정에 매몰되어 자신을 좀먹지 않게 도와줄 뿐, 그것을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었다.
그 감정은 줄곧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쌓인 힘을, 갈 곳 없는 분노와 원망을 ‘빌런’들을 심판하는 데 쏟아 부었다.
그때의 사고는 각성자의 동기를 알 수 없는 묻지마 테러였고, 그 테러범은 사건 직후에 그의 눈앞에서 폭사했으니까.
때문에 힘을 얻고 나서도 그의 분노와 복수심을 표출할 곳이 없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에 띄는 빌런들을 족치는 것밖에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데··· 있었네? 범인이?”
경직됐던 표정이 풀리고 다시 입꼬리가 부드럽게 위로 휘었다.
다시 매가리 없는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계속 웃음이 나왔다.
‘아, 그랬구나.’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망가져 있었구나.’
그렇지 않으면 이런 상황에 이렇게 웃음이 나올 리 없지 않은가.
“큭···크흐흐흣···. 큭끅끄으윽··· 흐으···.”
계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 웃어서 침은 물론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를 지경이었지만, 도저히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하아··· 하아···.”
유쾌하다.
한바탕 웃고 났더니 어느 때보다 정신이 또렷해졌다.
목표가 생기니 전에 없던 의욕이 샘솟았다.
“이야~ 이게 이렇게 되네? 역시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니까? 나쁜 놈들을 족치고 족치다 보니 이렇게 배후가 떡하니 튀어나오잖아.”
나는 눈물을 닦으며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놈들을 엿 먹일 수 있을까를.
이미 몇 번 해본 적도 있지 않은가.
이젠 경험도 제법 쌓였으니,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 쉽게 물러날 놈들이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그 난장을 치진 않았겠지. 이번엔 숨어들었지만 반드시 다시 머리를 내밀 터.’
그때 확실히 모가지를 잡아챌 준비가 필요했다.
혹시 모를 배후의 배후까지 확실하게 뿌리 뽑을 준비가.
‘거기에 놈들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놈들인 것 같으니까. 당장 한국에서 활동을 멈추게 한 게 어느 정도 큰 타격인지도 모르겠고.’
톡, 톡, 톡.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다리를 꼬고 앉아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일이 이 정도로 커지면, 확실히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미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이쪽도 마찬가지로 세력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속해서 놈들을 추적해 정보를 모으고, 유사시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세력이.’
그리고 그 역할은 혈맹이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여러모로 지원해서 세력을 키우고, 다른 조직을 휘하로 복속시켜 가며 규모를 불리면 더 도움이 되겠지.
마침 자신에게는 이세계와 범죄조직에서 털어온 자금이 넘치도록 있기도 했고.
‘나름 음지의 조직이니 자금 세탁 정돈 알아서 하겠지. 그러고 보니 그때 금괴를 거래했던 놈들을 혈맹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것도 괜찮겠군. 직접 휘하로 들이기엔 아쉬운 놈들이지만, 하부 조직으로서는 제법 유능한 것 같으니까.’
나는 아직도 방 한편에 보관 중인 로또 용지들을 힐끔 쳐다봤다.
당장 급하지도 않으니, 저건 그 후에 사용해도 되겠지.
하지만 이번 싸움에서도 그랬듯, 결국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강자의 존재였다.
‘한스와 하인즈··· 그리고 하인리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 하지만···.’
부족하다.
이번엔 이쪽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충돌해 놈들이 큰 피해를 보고 물러났지만, 다음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놈들은 이미 한스와 하인즈에 대해 인식한 상태였고, 지금까지 얻은 정보만으로도 번천회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었으니까.
놈들의 활동 범위를 감당하면서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선, 좀 더 많은 강자가 필요했다.
그들이 예상할 수 없는, 예측을 벗어난 그런 존재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몸이 열 개라도 될 수 있는 이가 아닌가.
몸이 부족하면 늘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카르마가 필요하다. 느긋하게 고유스킬을 성장시킬 여유가 없어. 카르마를 쌓기 위해선 이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이세계의 영향을 줄 만한 큰 사건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전쟁···이라든지?”
말을 뱉고 나서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과연 그 선을 넘어도 되는가.
내 욕망에만 눈이 멀어 인간성을 버리고, 무고한 이들을 제물로 삼아 힘을 추구하고자 하는 각오가 되어있는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라는 것은 자신도 잘 알지만, 딱히 분노와 복수심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설렘과 기대감이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흐··· 나도 제정신은 아니군.’
자신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타당하고, 가진 모든 악의를 쏟아붓기에도 합당한 상대.
그러면서도 쉽게 부서지지 않으며 오히려 전력을 다해 맞서야만 하는 상대가 생겼다.
···지금 심정으로는, 전쟁은 딱히 내키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럼 일단 보류. 무고한 이들의 희생 없이 전쟁 급으로 세계에 영향을 줄 방법.’
그런 편리한 방법이 있을 리가···.
“···있네?”
때마침, 매우 공교롭게도 딱 적절한 소재가 내 손아귀에 있었다.
“마왕과 용사.”
악의 세력을 이끌고 대륙을 위협하는 사악한 마왕.
인류의 지원을 받고 그와 대적하는 정의로운 용사.
고전 중의 고전인 클리셰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충 틀은 그렇게 잡는다 치고. 시나리오는 좀 고민해 봐야겠군. 자세한 정보도 필요하고, 중간에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당장 떠오른 계획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한스가 악의 조직을 거느리고 부패한 귀족을 치면, 하인리히가 놈들을 처단해 영웅이 된다.
그것의 반복.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악의 조직들을 싹 다 끌어모아 전멸시키면, 대륙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 아닌가?
주의할 점이라면, 스케일이 큰 만큼 대충 일을 벌이면 민간의 희생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변수가 무수히 발생할 터.
하지만 전쟁이라는 선택지에서 많이 순화된 탓인지, 전 만큼의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쪽의 노력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 달라질 수 있기도 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희생을 합리화하는 순간, 나도 놈들과 다를 바 없어지겠지. 최대한 노력해 보는 수밖에.’
방법이야 찾기 마련.
당장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장기적인 계획인 만큼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당장 시행할 수도 없었으니까.
아직 한스는 대륙을 상대로 일을 벌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마지막 남은 ‘불사왕의 파편’부터 찾는 것이 우선이겠지.
‘시간은 충분해. 번천회 놈들도 이번에 큰 피해를 입은 만큼, 최소 몇 년은 잠잠할 테니까. 이세계와의 시간차는 10대 1. 차분히 진행해도 늦지 않는다.’
당장 놈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까지 막기에는 무리다.
차라리 그동안 확실히 힘을 길러두는 것이 나을 터.
“흐···.”
나도 모르게 또 한 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왠지 모르게 다시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그래··· 너희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뭘 원하든. 내가 전력으로 방해해 주마.”
불만 있으면 찾아내 보시든지.
당분간 아우테리카에 집중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한스는 교단의 시선을 피해 불사왕의 파편을 찾아야 했고, 하인리히는 교단에서 인정받아 높은 곳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하인즈는 대륙의 정보를 파악할 정보 조직을 구축해야 겠지.’
그리고 마침 그 조직으로 아주 적합한 놈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할리’를 키워야겠군. 최대한 빨리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적응」을 이용하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급할 건 없었다.
차근차근, 하나씩 일을 진행하면 될 뿐이다.
한 편의 연극을 준비하듯이.
“무대는 아우테리카, 주연은 나. 그리고 관객은 전 대륙. 스케일이 좀 크긴 하군.”
개봉일은 아직 미정이지만···.
글쎄,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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