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60)
정보전 (1)
우우웅—
데이터 센터에 한가득 들어찬 전자 장비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마도 공학을 접목해 마도구처럼 지구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개조된 특별한 물건들.
‘미친, 이 무슨···!’
하지만 그 구하기도 힘든 귀한 장비들이 한계에 가까운 수준으로 가동되고 있음에도 상황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신을 티탄 슈트로 감싼 채 수십 개의 전선들이 뒤엉킨 캡슐 안에 누워있던 헤스페론이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어떻게 이 연산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는 거지?’
지금 이 전자전을 주도하고 있는 「기계안 : 캘리카스」는 그냥 평범한 AI가 아니었다.
단순히 의안에 내장된 인공지능이었을 때와 지금은 아예 차원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맹약의 사슬」을 통해 그와 일체화되어 함께 성장하며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전자 정령.
지금까지 이 파트너는 한 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거기에 티탄의 우주 함선급 에너지가 함께 했을 때는 더욱더.
그런데 지금은···.
평소와 달리 긍정적인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쪽도 크게 밀리지는 않고 있다는 건데, 지금 상황에서 그건 그리 위안이 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유리해지는 건 이미 방어 태세를 굳히고 있던 저쪽이었으니까.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어. 어떻게든 돌파해 내는 수밖에.’
지금 강제로 신호를 끊어봤자 상대는 곧장 남은 흔적을 더듬어 지금 자신이 있는 위치를 찾아낼 터.
어떻게든 정확한 위치가 노출되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저번 동남아에서 겪었던 폭격이 단 한 발만 떨어져도 이 데이터 센터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고 말 테니.
그는 그동안 알음알음 잠식해 왔던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적극적으로 대항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오는 건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그렇게 힘 싸움으로 가니 더욱 불리해지는 건 이쪽이었다.
‘큭, 동원할 수 있는 규모가 차원이 달라.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를 해 온 거지···?’
이만한 일을 꾸밀 수 있는 조직은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번천회.’
그때, 그런 생각에 쐐기를 박듯.
-Hello~?
치열하게 오고가는 데이터 속에서 도착한 음성 파일 하나가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와 단 한 마디였음에도 진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말투.
그게 누구였는지는 굳이 깊게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역시 살아있었군. 이제 다시 활동을 시작한 건가.’
하인즈 2세가 루마니아에서 처리했던 번천회 최고 간부 중 하나, 닥터.
그가 전자의 세계 너머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거 이거, 정말 놀랍군요! 설마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줄이야? 정말 감탄했습니다!
경박한 목소리 너머로 짝짝 박수치는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말마따나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아서 더 열 받았다.
‘이쪽은 죽을 맛인데 아직도 여유가 있으신가 보군.’
헤스페론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계안 : 캘리카스」의 성능이 향상된 대신 사소한 부작용이 하나 있다면, 자신과 하나가 된 만큼 능력을 과하게 쓰면 쓸수록 돌아오는 부담 역시 커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끈거리는 두통을 애써 모르는 체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유를 부려주면 나야 좋지.’
굳이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러다 새어나간 사소한 정보 하나가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올 수도 있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저쪽의 말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기에 상대의 쓸데없는 수다를 묵묵히 듣기만 하고 있을 때.
-흐음? 오호라! 이건··· 혹시 캘리카스 출신이십니까? 좋은 세계에 다녀오셨군요! 그쪽 작품은 저도 참 좋아합니다. 거기에 갔다 온 귀환자가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울 정도지요!
그 말에 순간적으로 등가에 소름이 내달렸다.
지금 자신들은 직접 대면한 게 아니었다.
그저 네트워크상에서 해킹을 통해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고 있을 뿐.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이쪽의 기술 기반을 알아챘다고?’
단순히 기계안의 힘을 빌렸을 뿐인 자신과는 식견 자체가 달랐다.
과연 최고 간부라는 이름값은 한다는 거겠지.
-이야~ 이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시간이 없군요! 별수 없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천천히 하도록 할까요? 우햐햐햣!
과연 그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그 음성 메시지가 끝나기 무섭게 지금까지 이어지던 공세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잠깐, 이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경고 문구가 정신없이 떠올랐다.
상대의 연산 속도가 더 빨라졌다거나 뭔가 특별한 시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바뀐 건 오직 하나뿐.
‘···모든 시도가 카운터로 돌아오고 있어. 설마 벌써 이쪽의 패턴을 모조리 간파했다고?’
전자전은 무한에 가까운 전기 신호 속에서 상대의 약점을 찾아 찔러야 승리하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쪽이 뭘 할 때마다 카운터가 돌아오고 있었으니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비스! 현재 상황 보고해!”
“···대응책은? 이대로 당하기만 한 건 아니겠지?”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떻게든 이번만 넘기면 다시 같은 방법에 당할 일은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건 이 거점을 버리라는 소리였다.
아니, 거기까지였다면 설비들이 아까워도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싸움엔 단순히 그것만 걸린 게 아니지 않은가?
‘판테온에서 일어난 수작을 파고들던 도중 닥터가 튀어나왔다. 그건 그만큼 번천회에서 이 작전을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겠지.’
여기서 물러나면 그 진상을 파헤칠 기회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단서들이 모두 말소되는 건 물론, 한 번 꼬리가 밟혔던 놈들도 더 철저하게 어둠 속으로 숨어 버리리라.
절대 그렇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놈들이 잘되는 꼴을 두고 볼 수도 없거니와, 당장 판테온에 진입한 하인리히가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정보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게 고민하며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발버둥 치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없던 방법이 이제 와서 생겨날 리가 없었다.
직접 대면한 상태도 아니고 네트워크 너머 어딘가에 있는 상대에게 정석적인 방법 외에 무슨 수를 더 쓸 수 있겠는가?
‘놈의 본거지에 갑자기 정전이라도 난다면 모를까. 아니, 비상 발전기 정도는 있을 테니 그것도 소용없으려나? 그럼 아예 폭발 사고라도 나서 싹 다 날아가 버리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무의미한 저주를 퍼붓는 것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한다고 정말 이뤄질 리는 없···.
‘아니, 잠깐. 저주?’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저주.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고 바라는 것.
‘마침 나한테 있잖아? 그것도 마왕이 영락하여 만들어진 끔찍한 저주가.’
깊게 심호흡한 헤스페론이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사실 저주는 그리 함부로 쓸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자신이야 「저주 포식자」 등의 특성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으나, 다루기도 까다롭고 자칫 잘못하다간 본인에게 되돌아올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으니.
무엇보다 명확한 대상을 지정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높기도 했다.
대상이 가까이에 있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상대가 어디에 있는 누군지도 모를 때는 머리카락이나 소지품, 그것도 아니면 생년월일 같은 매개체가 반드시 필요했다.
‘명확한 대상을 설정하는 방법.’
헤스페론의 기계안이 전자의 세계 너머에 있는 적수를 선명하게 인지했다.
비록 직접 마주한 건 아니었지만 그 대상이 분명 이 너머에 있었다.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발상이지. 하지만···.’
오른쪽 눈의 기계안도, 오른쪽 팔의 저주도 모두 자신의 「맹약의 사슬」을 통해 하나로 엮여 있었다.
그런데 그 둘이 서로 연계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인터넷, 그리고 저주. 여기에 딱 어울리는 게 하나 있지.’
더는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그는 곧바로 오른팔을 옆으로 내밀었다.
기기깅—
곧바로 해체되며 허공으로 스르르 사라지는 오른팔의 티탄 파츠.
그 아래에서에 검은 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진 하얀 붕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쓸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드디어 첫 시연이군.”
팔목과 팔꿈치, 그리고 어깨에 채워진 쇳덩이가 빛을 반사하며 서늘한 금속광을 내비쳤다.
확실한 봉인을 위해 다수의 아바타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새로운 봉인구.
철컹!
그의 시선이 닿자 족쇄가 풀리듯 이음매가 벌어지며 일제히 봉인이 개방되었다.
거기에 이어 붕대까지 풀어 헤쳐지듯 나부낀 순간, 오른팔에서 검고 거대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아아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후끈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던 실내의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내렸다.
아예 ‘열’이라는 개념을 빼앗겨버린 듯 이젠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
‘그리 오래 축적하진 못했지만···. 원래 가진 힘이 워낙 강하니까 상관없겠지.’
축적과 발산.
이번에 새로 만든 봉인구가 가진 능력이었다.
착용하고 있는 동안 완벽에 가깝게 내부의 저주를 차단하고, 그렇게 계속해서 억눌러진 저주는 끝도 없이 쌓이고 쌓이며 독기가 중첩된다.
그리고 강하게 억제된 만큼 한 번 해방할 때 더욱 강하게 발산되도록 만든 게 이번 봉인구의 핵심이었다.
“자, 그럼.”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오른손으로 케이블 한 가닥을 쥔 헤스페론이 깊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악의를 담아 소망했다.
그 직후.
파지직—!
손아귀에서 튄 스파크와 함께 한 줄기의 저주가 전자 세계로 스며들었다.
***
지이잉—
“오호? 드디어 답장인가요?”
양팔을 기계장치와 연결한 닥터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표면이 몇 조각으로 갈라져 내부의 금속이 드러난 그의 팔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육체를 개조하면서 이것까지 아예 싹 다 갈아엎었던 것이다.
그는 전송받은 데이터 정보를 안구에 출력하곤 피식 코웃음을 흘렸다.
역시나 정상적인 파일이 아니었기에.
“바이러스? 이거 참, 얄팍한 수를 쓰는군요!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해도 그렇지. 아주 실망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계장치의 신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이런 장난질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곧바로 보안 프로그램을 가동해 바이러스를 깨끗이 제거하고 메시지를 열었다.
바이러스는 바이러스고, 오랜만에 자신을 재미있게 해준 이 흥미로운 친구가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긴 했으니.
“음? 뭐지?”
내용은 별거 없었다.
···아니, 정말로 별거 없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따위로 시작되는 의미 없는 문장 말미에 웬 흑인 청년이 카드 다발에서 한 장의 카드를 뽑으며 음흉하게 웃는 사진이 있을 뿐.
닥터가 황당함에 눈만 껌벅거리던 순간.
이미 변수는 시작되고 있었다.
파지직—
기계장치와 연결된 팔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엇? 이게 무슨!”
한쪽이 보냈고, 다른 쪽에서 받았다.
그것으로 양자 간의 연결이 성사되었다.
전달 방식이 바이러스와 스팸 메일의 형식을 갖춘 건 최소한의 의식이었을 뿐.
그렇게 저주가 발동되었다.
삐빅—! 삐비빅!
띠띠띠띠!
위이이잉—!
온갖 경보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사방에 가득한 기계들의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널뛰기 시작했다.
“큭, 저주? 저주라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저주를 보냈어?”
공학뿐만 아니라 이능학 전반에 일가견이 있었기에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이제 와서 대응하기에는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뒤늦게 손을 쓰기엔 저주의 수준이 범상치 않았으니까.
복합 술식의 창시자인 만큼 닥터의 작업실도 예사로운 장소는 아니었는데,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모든 방어를 뚫고 그에게 직접 닿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푸흐.”
파지직!
콰앙—!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에 스파크 튀는 소리와 폭발음이 섞여 들었다.
“···큿, 크캬하하하—! 과연! 이런 방식의 응용도 가능할 줄이야! 역시 재미있군요. 아주 재밌어!”
하지만 그런 혼란의 한가운데에서도 닥터는 그저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자신이 예상치 못한 새로운 지식을 마주한 희열에 분함보다는 기쁨이 더욱 앞섰던 것이다.
쿵!
그렇게 한참을 낄낄거리던 그는 그대로 제자리에서 앞으로 엎어졌다.
타는 냄새와 함께 그의 몸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힘겹게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간 그는 그곳에서 꺼낸 무언가를 보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킥, 이거 한 방 먹었군요. 역시 바로 끝내지 않길 잘했어. 하마터면 이런 걸 놓칠 뻔했다니.”
새까맣게 타들어가면서 연기를 내뿜는 복잡한 마도 공학 회로.
이내 그것은 어떻게 복구할 수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재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래도···.”
화르륵—
그리고 작업실 곳곳에서 피어오른 화재가 맹렬히 주변을 살라먹는 것을 끝으로.
그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암전되었다.
***
전자 세계를 통해 저주를 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헤스페론은 「맹약의 사슬」과 「기계안 : 캘리카스」를 이용해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제어하는 데 힘썼다.
저주가 괜히 엉뚱한 데로 튀지 않고 제대로 목표물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모든 것을 잊고 한창 집중하던 그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하나의 메시지였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특수스킬「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획득합니다.》
“···응?”
그는 집중하던 것도 잊고 눈앞의 문구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굉장히 멋져 보이는 그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