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7)
사전 준비 (1)
지구에서의 일을 빠르게 정리했다.
한스는 혹시 모를 번천회의 잔당을 찾아 밤마다 도는 순찰을 강화했고, 하인즈는 온건파와 접선해 협상을 벌였다.
“딱히 부조리한 명령을 내릴 생각은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번천회’와 관련된 놈들을 모조리 뿌리 뽑는 것뿐이다.”
“그 두 가지 목표가 상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가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그의 기준에서는 악을 처벌하는 것 또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고.
하인즈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던 여성, 혈맹 온건파의 수장 ‘아리아’는 그의 말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있을 뿐.
“좋습니다. 하인즈 씨가 강경파를 흡수할 수 있게 돕도록 하죠.”
그리고 생각보다 시원하게 이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약간의 강압적인 무력행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건만, 살짝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뭐한데, 뭘 믿고 그렇게 별다른 고민도 없이 받아들이는 거지?”
“충분한 심사숙고 끝내 내린 결론입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데 거부할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뭘 믿냐니···. 당연히 저 자신이지요.”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하는 아리아.
여전히 두 눈은 감은 채였다.
“일을 하시려면 중간에 가교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겠죠. 소란이를 데려가도록 하세요. 제가 따로 말해 놓겠습니다. 그 외에도 저희 측에서 하인즈 씨를 따르고자 하는 이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지요.”
개인 혼자서 조직 하나를 강제로 종속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력으로 차근차근 세력을 불려 나가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되겠지.
그건 이쪽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쪽의 계획을 밝히며 살짝 협박할 생각이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협조적이었다.
그것도 온건파 측의 간부였던 진소란까지 직접 설득하겠다는 성의를 보이면서.
‘무슨 능력이 있는 건가? 생각을 읽어? 단순히 상대의 성향을 본다던가? 설마 미래를 읽는 건 아니겠지?’
강제로라도 종속시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고 싶었지만, 나름 한 파벌의 수장인 그녀를 그렇게 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정제혈정」의 종속에는 마음까지 세뇌하는 효과가 없었으니까.
시킨 명령에는 따르겠지만 어떻게든 티가 날 것이고, 그건 혈맹을 집어삼키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와 주는데 굳이 척질 이유도 없고.
“좋아. 그럼 온건파 측에 대한 전파는 그 쪽에게 맡기지. 이제 강경파 잔당들을 흡수할 계획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그러죠. 그러기 위해선 먼저 중립파를······.”
시작은 강경파의 잔당을 흡수해 새로운 파벌의 수장이 되는 것부터.
그렇게 혈맹의 접수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
작전명 ‘안방극장 : 마왕과 용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내 뜻대로 움직이는 유능한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주연인 한스와 하인리히, 서포트 역의 조연인 하인즈로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
때문에 아직 진로도 정하지 못한 ‘할리’를 어떻게 최대한 빨리 강화시키느냐가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문제였다.
[호오, 이거 아주 흥미롭군.]그리고 방금, 번천회의 연구소장이 애지중지하던 자료에서 제법 괜찮은 수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스는 내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놈들의 연구 자료들을 꺼내, 그 성과를 살펴보며 야금야금 흡수하는 중이었다.
직접 쓸 수는 없어도 그 개념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연구소장 덕분에 ‘연구 도중’이었던 자료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니까.
[인외종 마인의 신체 일부를 타인에게 이식시키는 실험인가. 이건 키메라 시술이나 다름없는데? 일반인은 당연히 실패했고···, 각성자에게도 부작용이 심하군.]「마도의 길」의 영향으로 이제 다른 분야에서도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하는 한스였으나, 아무리 그래도 그의 전공은 흑마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키메라 연구’는 흑마법과도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분야였다.
‘어찌 보면 전화위복이지. 아우테리카에서 시간의 우위를 살려 「금단의 지식」만을 파고들었더라도, 지금 이 정도로 빨리 성장하지는 못했을 테니.’
양보다는 질.
다양한 세계의 술법을 겪고 자신의 틀을 깸으로써 한스는 더욱 빨리 강해질 기틀을 닦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거 단순한 키메라 연구가 아니었군. 부족함을 버리고 보다 우월한 요소만을 받아들인 채 끊임없이 진화를 추구한다···. 완전 진화 생물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인가.]아직 연구 중인 과제여서인지, 단순히 자료뿐만 아니라 실험에 사용된 신체 조직들도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호오, 이게 용의 피인가? 보석을 녹여놓은 것 같군.]그 핵심 재료인 ‘용혈(龍血)’까지도.
작은 병에 담긴 보랏빛의 액체는 각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영롱하게 빛을 산란시키고 있었다.
[크흐··· 이 자료들과 내 스킬의 지식을 섞으면 쓸 만한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외부 조직에 대한 「적응」을 통한 진화라.]일이 이렇게 되니 당장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지구에서 얻을 것들은 충분히 얻었으니, 이제 아우테리카에서 여유를 가지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교단이 문제란 말이지···.’
정확히는 아직도 매일같이 불사왕의 후예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성녀 때문이었다.
‘그래도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얻기도 했으니까.’
한스가 한 야산에 틀어박혀 ‘전염성 사역마법 최종본_수정_2차_FINAL(3)_진짜마지막’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삼 주.
그리고 그와 같은 기간이 교단 측에서 한스의 존재를 느끼고 탐색에 나선 시간이었다.
‘한스의 존재는 곧바로 감지했지만, 온갖 은폐 결계를 두른 덕에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지는 못했다. 성녀의 탐지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뜻.’
거기에 한스는 그때보다 정체를 숨기는 데에 도가 텄으며, 마법에 대한 성취는 물론 「마도의 길」까지 얻었다.
‘그걸로도 불안하면 하인즈의 「은폐」와 「피의 신비」까지 사용하면 되겠지.’
하인리히를 통해 실시간으로 교단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도 있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교단의 눈을 속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것도 일단 하인즈의 혈맹 접수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사전 준비는 지금부터도 할 수 있으니까.’
***
《아우테리카 차원으로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전송이 완료되고, 할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대로와 인접한 골목길 안이지만, 구조상 빛이 들지 않는 구석진 곳.
하인리히가 성지로 향하며 지나친 도시 중 하나, 이온 대륙 서부에 위치한 툴크 왕국의 대도시였다.
“우왓! 깜짝이야! 이 양반 언제 여기로 온 거여?”
발걸음을 옮겨 구석에서 나오자, 골목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태우던 허름한 사내가 펄쩍 뛰었다.
할리는 눈을 끔뻑이는 그를 무시하고 지나쳐 대로로 나섰다.
‘툴크 왕국의 북부 아오니아 백작령, 타라크. 다행히 아직 낮이군.’
해가 쨍쨍해서 다음날 움직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곳 타라크는 하인리히가 사전답사를 하며 인상 깊게 여겼던 곳이었다.
무기를 찬 채 도로 곳곳을 거니는 용병들과 간간히 보이는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
커다란 수레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싣고 이동하는 상인들까지.
이상적인 판타지 세계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도 판타지 세계긴 했지만···. 이쪽은 더 전형적이니까.’
고정관념을 형상화한 듯한 이곳은 북부 산맥의 다종다양한 몬스터들로 인해 용병 산업이 활성화된 도시였다.
왕국의 국경 부근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신전까지 있을 정도로 번성한 대도시.
대륙의 북쪽 전체에 걸쳐있는 거대한 북부 산맥, 그 중에서도 서북쪽의 자락을 지키는 ‘강철의 성채’로 가기 전 마지막 정비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몬스터 사냥 의뢰를 받기 위한 용병 길드와 사체를 운송하는 상인 조합, 그것으로 연구를 하는 마탑 지부까지.
덕분에 도시는 온갖 군상들로 떠들썩하고 활기가 넘쳤다.
‘생각보다 더 거래가 활발해 보이는데.’
아무래도 물건들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어 보였다.
물론 나중에는 안전을 위해 호위를 고용하든 해야겠지만.
희귀한 소재나 마법적 가치가 있는 몬스터 부산물, 그 외에도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마도구까지.
앞으로 돈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게 될 테니까.
‘이제 돈이야 얼마든 벌 수 있으니 시간을 아끼는 게 우선이다. 일단 가져온 아공간에 귀금속들은 최대한 많이 챙겨오긴 했는데 충분하려나 모르겠군.’
아무래도 마탑 지부로 향해서 아공간 마도구부터 추가로 구해야 할 것 같았다.
“어서 옵셔~. 로카펠리 마탑 타라크 지부 마도구 상점입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마탑 지부의 옆에 딸린 상점에는 마법사라기보다는 상인 같은 인상의 사내가 접객을 하고 있었다.
“아공간 마도구를 찾으신다구요? 정말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로카펠리 마탑의 제품은 타 마탑 대비 공간의 효율이 무려 이십 퍼센트나 차이가 나는 명품으로···.”
“과연, 그렇군요.”
어차피 두고두고 쓸 생각으로 일부러 평판이 좋은 마탑을 찾아왔다.
몬스터 산업이 발달한 만큼 용병들도 사냥을 나설 때 아공간 마도구를 애용해, 온갖 사양의 제품들이 거래되고 있었으니까.
“그중에서도 이 제품은 내부의 물건에 방부 효과를 부여함으로써 좀 더 장기적인···.”
“그 기능은 확실히 필요해 보이네요.”
물론 가격이 살인적인 만큼, 규모가 큰 대형 용병단이나 고랭크 용병파티가 공용으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망가지지 않게 특수 가공 처리를 해 어떤 오지를 가더라도···.”
“오오, 그건 얼마죠?”
마도구 상인의 언변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어느새 기존의 아공간에 담아왔던 귀금속들은 전부 사라지고 몇 개의 마도구만이 손에 덩그러니 들려있었다.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필요하신 물건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로카펠리 마탑 타라크 지부 마도구 상점의 찰튼을 찾아 주세요!”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며 배웅하는 상인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멍하니 상점을 나섰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커다란 가방형의 대용량을 비롯한 온갖 기능을 가진 아공간 마도구들.
나는 새로운 물건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필요한 물건들이었으니까. 하다못해 지구에 되팔기만 해도 몇 배는 이득이고.’
어느 정도 충동 구매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 가치를 생각해 보면 나쁜 일은 아니었다.
도시 특성상 이곳에서 사는 것이 다른 곳보다 싼 편이기도 했고.
‘그것보다, 가진 자금을 거의 다 썼으니 한 번 더 지구에 갔다 와야겠는데.’
다만 빈 자금을 메꾸기 위해 다시 지구에 다녀와야 한다는 점이 번거로울 뿐이었다.
‘아예 지구와의 무역으로 부를 끌어 모으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어. 이세계에 반입할 수 있으면서 돈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지? 향신료 같은 거면 되려나?’
덕분에 새로운 사업 아이템도 떠올렸으니,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거래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
우드득— 뚜둑!
“흐읍, 하아···.”
골격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진소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촉매에 의해 체내의 흡혈인자가 서서히 진화하기 시작했다.
근육이 더욱 질기고 유연해졌으며, 뼈가 단단해지고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혈마력의 양이 늘어나진 않았지만, 그 운용력과 최대 출력량이 증가해 안정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몸 같지 않아! 뭔가 새로 태어난 기분이야!’
신체의 변화가 멈추고, 진소란은 감탄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힘이 끓어오르는 게 전투력이 몇 배는 증가한 기분이었다.
“흠, 이 정도 「정제혈정」으로는 이 수준이 한계인가. 양을 좀 더 늘리면 어느 정도까지 진화할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겠군.”
물론 그녀의 기분은 말 그대로 기분 탓이었다.
당장 그녀에게 투여한 「정제혈정」에는 그 정도 효과는 없었으니까.
「간파」로 확인한 결과, 기껏해야 30% 정도의 강화 효과가 전부였다.
‘물론 6레벨인 진소란의 전력이 3할 증가했다는 건 쉽게 볼 일이 아니지만.’
진소란은 아리아의 제안을 받고 흔쾌히 하인즈의 휘하로 들어왔다.
정확히는 온건파와의 가교 역할을 위한 겸직이었지만, 「정제혈정」을 받아들여 하인즈에게 종속되었으니.
파벌 간의 마찰을 직접 겪은 입장이기도 하니,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중간에 조율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이쪽이야 알아서 일을 조율해 줄 사람이 있으면 편하지. 적당히 제약을 걸어 놓으면 배신할 염려도 없고.’
하인즈는 진소란이 어느 정도 힘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적응됐으면 바로 이동하지. 앞으로 할 일이 많아.”
“예! 알겠습니다. 로드!”
“···로드?”
“예? 예! 로드. 이제 새로운 클랜의 ‘킹’이나 마찬가지시니까요. 혹시 호칭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그러고 보니 진소란의 출신 차원인 녹터니아는 체스의 말로 흡혈귀들의 계급을 나눈다고 했던가.
피를 통해 새로운 종속관계가 맺어졌으니, 하인즈를 혈통의 시조인 클랜 로드로 대하겠다는 의미였다.
“흠··· 아니, 상관없다.”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뭔가 대우받는 기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말인데요, 로드! 이렇게 되면 지구에 새로운 족보가 생긴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럼 그에 어울리는 새 이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따로 생각해두신 게 있으신가요?”
그녀가 발랄하게 웃으며 말했다.
로드로 대한다고 해도 이전의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 듯했다.
“이름이라···.”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딱히 생각해 둔 이름도 없었다.
하지만 소속감이나 충성심 등을 고려하면 그럴싸한 이름 정도는 있는 게 좋겠지.
‘뭔가 차별화된 특징을 따와서 지으면 될 것 같은데.’
「정제혈정」을 통한 강화는 하인즈 체내의 흡혈인자를 촉매로 다른 흡혈귀들을 변이시키는 과정이었다.
이미 온갖 세계의 우성인자들을 받아들여 진화할 대로 진화한 ‘잡종’에게 영향을 받게 하는 것.
투여되는 「정제혈정」의 질과 양에 따라 변이되는 정도가 다르지만, 얼마나 변화하든 이전보다는 훨씬 진보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침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헤테로시스(Heterosis ;잡종강세)로 하지.”
“헤테로시스! 뜻은 잘 모르겠지만, 왠지 어감이 좋네요!”
혈맹 내 최정예 전투 집단이 될 헤테로시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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