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72)
차크라 (1)
“차크라 수행의 첫 단계는 우선 자신이 어떤 요소에 적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제대로 된 이해만 수반된다면 무엇이든 개방할 수 있는 게 차크라라는 힘이지만, 그래도 얼마나 적성이 있느냐에 따라서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결정되는 법이니까요.”
널리 알려진 대로 성천 윤가는 뇌전의 차크라를 우대하는 편이기는 하나, 꼭 그 구성원이 모두 뇌전의 차크라만 익힌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시조와 함께 가문을 세운 측근들 중엔 다른 차크라를 익힌 이들도 많지 않았던가?
물론 그 상징성이 있는 만큼 따로 특출난 적성이 있는 게 아니라면 보통 뇌전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뇌제에게 직접 수학한 세대가 성장하여 가문의 기틀을 다진 만큼, 그를 위한 커리큘럼도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있었고 이런저런 노하우를 전수해 줄 수 있는 선배들도 잔뜩 있었으니.
“한번 연 차크라를 다시 폐문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때는 새로운 요소를 개방하는 것의 몇 배나 되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어떤 길을 걸을지 처음부터 제대로 선택하는 건 수행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작이랍니다.”
설명을 이어가던 윤소소가 싱긋 웃자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속마음은 결코 평온하지 못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절박하다고 표현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전히 전혀 반응이 없어···.’
그녀는 자신의 매력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자질이 부족한 탓에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중층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에게 타고난 매력이라는 것은 본인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진로를 변경한 이후 윤소소는 자기 장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과 달리 재능이 출중했던 보육원 동기 루세트가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치고 올라갈 때도 기죽지 않았다.
루세트에게 심층에 도달할 만한 재능이 있다면, 본인에게는 이성을 끌어들이는 매력과 그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믿었으니.
오직 그것만이 지금껏 그녀를 지탱하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내가 이대로 그냥 포기할 것 같아?’
그런데 상대가 조금도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 자존심이 갈가리 찢겨나갈 수밖에 없었다.
눈빛이 흔들리면서 어떻게든 참아내는 기색이라도 보였다면, 설령 임무에 실패하더라도 그 정신력에 감탄하며 승복할 수 있었겠지만···.
저렇게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가!
‘아니, 그럴 순 없지. 어떻게든 함락시키고 말겠어!’
부드럽게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한쪽 귀를 드러낸 그녀가 굳은 결의를 품고 훈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여전히 단 한 점의 미혹도 담겨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깊이 고뇌하고 있을 뿐.
‘후후후—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저도 모르게 살짝 이를 악물었다가 빠르게 턱에서 힘을 푼 그녀가 재차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감정의 차크라를 다루는 그녀인 만큼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후 그녀의 진심이 담긴··· 아니, 그 이상으로 혼신의 힘을 담은 전력 공세가 이어졌다.
차이나 드레스와 비슷한 의복은 자연스럽게 몸에 달라붙으며 윤소소가 움직일 때마다 그 풍만한 몸매의 굴곡을 부각했고,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그녀의 몸짓은 너무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묘한 배덕감을 불러일으키며 주위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입가에 자리한 점이 강의를 하면서 움직이는 그녀의 붉은 입술로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자신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화장은 매혹의 차크라와 어우러져 이성은 물론 동성마저 홀릴 정도의 마성을 내뿜기 시작했다.
‘내가 이 정도로 전력을 다한 게 대체 얼마 만이지?’
타고난 미모 덕분에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손쉽게 타인의 호의를 살 수 있었던 그녀로서는 새삼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지난날을 반성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며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것이야말로 수행자의 본분이거늘, 이성을 유혹하는 게 쉽다는 이유로 그동안 너무 나태해졌던 건 아닌가 싶어서.
“느껴지시나요? 이 흐름을 잘 기억해 두세요. 이걸 이렇게 하면···.”
윤소소의 나긋한 손길이 훈의 가슴팍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차크라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서 다소간의 신체 접촉은 필수였고, 그것은 작정한 그녀에게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초심을 되찾고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전심전력을 다하던 그녀의 심상에 자그마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아아, 그렇구나. 저게 바로···.’
아직은 미약한 변화였지만 틀림없이 그 가능성이 보이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평생 허락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더 높은 경지.
상층으로 향하는 길이.
그녀가 선택한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이정표였다.
‘아직은 가능성일 뿐이지만···. 반드시 도달하고 말겠어.’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거쳐 가야 할 관문이 있었다.
각오를 다진 윤소소가 자신만만한 눈으로 이번 임무의 목표를 바라보았다.
‘자, 어떠냐! 이 정도면 제아무리 고자라도 반응하지 않고선 못 배길걸?’
현재 상태야말로 최선을 넘어선 최선.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임전 태세였다.
설령 심층의 수행자더라도 지금의 그녀를 마주한다면 혹하는 마음을 쉬이 거둘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 뇌쇄적인 모습을 코앞에서 목도한 훈의 반응은···.
“흐음, 그렇군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까지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신 덕분에 확실히 개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담백했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채 쩌적 굳어버린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훈이 휑하니 자리를 떠났다.
용건이 끝난 이상 척 보기에도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그녀와 사담을 나눌 생각은 없었다.
그런 시간에 얼른 돌아가서 라뮤의 상태도 보고, 직접 차크라 개방을 시도해 보는 게 낫지.
“······.”
그렇게 혼자 남겨진 윤소소가 눈을 깜박였다.
설마 강의가 끝났다고 진짜 곧바로 떠나버릴 줄이야.
항상 이성에게 떠받들어지는 삶을 살았던 그녀로선 지금 상황이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 하하하···.”
그녀의 입에서 힘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졌다.”
이어지는 패배 승복.
하지만 그녀의 두 눈엔 이전보다 더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꿈에서도 그려왔던 상층으로 향할 실마리를 막 붙잡은 상황이다.
그런데 고작 한 번의 실패로 포기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저 사내를 유혹할 수만 있다면···!’
그곳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자신은 분명 상층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그녀의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어.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훈이 떠난 자리에서 한 여인의 결의가 뜨겁게 타올랐다.
성천 윤가에 의탁하게 된 그를 위한 첫 차크라 입문 강의가 끝난 직후의 일이었다.
***
이후로도 차크라 개방을 위한 강의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무리 차크라가 양민들도 입문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 문턱이 낮다고는 해도, 명색이 신비라고 불리는 이능의 일각이었다.
자연스럽게 차크라를 개방하기 위해선 최소 십 년 이상을 생업에 종사하며 특정 요소에 통달해야 한다.
그런데 그 세월을 압축해서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정립한 지식을 고작 하루의 강의만으로 모두 전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렇게 강의가 이어지는 동안 윤소소의 공세는 점차 더욱 대담해졌다.
조금씩 노출이 늘어가는 복장과 강의를 핑계로 이어지는 스킨십.
하도 철벽을 치는 훈의 모습에 저쪽에서도 작정한 듯 이제는 아예 의도를 숨길 생각도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의 적성이라.’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이미 그녀의 미인계에 대해선 훈의 안중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뭔가 잡힐 듯 말 듯 한 미묘한 감각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을 뿐.
‘이미 차크라를 개방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이걸 잘 활용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내 특성에 맞추는 일만 남았는데.’
그것은 윤소소는 물론 성천 윤가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교육이 뒷받침되더라도 보통 차크라를 개방하기까진 일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추가적인 보정이 주어지는 이세계인이라면, 혹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재라면 거기서 몇 달 정도로 단축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훈처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설마 그때 먹었던 영약이 여기에도 도움이 될 줄이야.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니까.’
자신의 심장 부위를 쓰다듬은 훈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본체가 쌓아 올리는 신성의 거름이 된 탓에 제대로 발현되지 않고 내면 깊숙한 곳에 잠재된 에너지.
그 일부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절로 배가 불러오는 기분이었다.
‘차크라를 개방하고 나면 더 큰 도움이 되겠지.’
그것은 최상급 마도구였던 토르의 망치를 대가로 윤지윤에게서 받아냈던 영약의 기운이었다.
이곳 사바천에서 유래한, 소림사의 대환단조차 능가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었던 극상의 영약.
그간의 강의를 통해 이제는 그게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생산량이 워낙 적어 윤가에서도 심층의 수행자가 천문 개방을 시도할 때를 대비하여 아껴두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그럼 남은 것은 실전으로 옮기는 것뿐인데 말이야.’
이것까지 교관의 도움을 받을 순 없었다.
그의 특별함은 단순히 남들과 다른 정도를 아득히 넘어섰으니.
자신의 심상 세계는 열셋으로 나뉘었음에도 그 각각이 온전한 하나나 다름없었다.
처음부터 하나에서 분리된 게 아닌, 개체가 늘어남에 따라 추가된 것에 가까웠기에.
또 그 각 심상이 철저하게 독립된 것 같으면서도 본체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복잡한 다중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특이 케이스.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받을 생각도 없었다.
이런 유일무이한 개성은 오직 그만을 위한 특별한 무기가 되어줄 테니까.
‘천천히, 하나하나 시작하자. 우선은 차크라의 주체가 될 훈의 소우주를 여는 것부터가 시작이야.’
다른 심상 영역은 나중 문제였다.
차크라를 사용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훈인만큼, 가장 처음에 열 요소 또한 거기에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훈이 개방할 차크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지.’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해왔던 것.
앞으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소통.’
여럿을 하나로 연결하여 서로 통하게 하는 힘.
「정신감응」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며, 다른 아바타에 내재된 심상을 훈에게로 고스란히 끌어올 수 있는 개념.
우우웅—
숙소에 홀로 앉아 지그시 눈을 감은 훈의 몸 주위로 기이한 공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차크라를 개방하기 위해서는 해당 요소에 대한 기준치 이상의 이해가 필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정신감응」을 사용해 온 그는.
「제노글로시」라는 통역계 스킬을 가진 그는.
많은 이계의 존재들과 대면하여 온갖 시련을 해결해 온 그는.
다수의 아바타를 동시에 다루며 실시간으로 성장해 온 그는.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스킬「차크라 개방」을 획득합니다.》
《개체가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차크라 : 소통」을 획득합니다.》
이미 이 정도는 가뿐히 해날 수 있는 이해가 갖춰져 있었다.
‘문제는 이다음이지.’
훈은 자신의 내면에서 깨어나 회전하기 시작한 기운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그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조차 없던 에너지가 차크라라는 역할을 부여받아 일시에 활성화되고 있었다.
갓 소우주를 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힘.
그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이미 단련될 대로 단련된 그의 정신력은 고작 이 정도에 흔들릴 정도로 무르지 않았다.
‘소통의 사전적 정의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하게 하는 것.’
이로써 그의 「정신감응」은 극의의 경지에 오른 강자의 정신조차 보다 쉽게 꿰뚫을 수 있는 날카로움을 얻었을 테지만, 겨우 이 정도에 만족하려고 차크라를 익힌 게 아니었다.
훈이 점차 커지기 시작한 소용돌이를 통제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끌어내렸다.
다른 신비와는 달리 개념 그 자체에 개입하는 차크라의 특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그의 심상을 따라 거리와 차원 등 모든 방해 요소를 무시하고 곧바로 ‘또 다른 자신’에게로 뿌리 뻗었다.
지이이잉—!
훈을 제외한 열한 개의 아바타는 물론, 그 모든 중심에 있는 본체까지.
막대한 양의 차크라에 의해 총 열셋이나 되는 심상 영역 한쪽에 소통이라는 통로가 놓였다.
언제든 그 안에 깃든 이미지를 끌어와 훈에게로 덧씌울 수 있도록.
“쿨럭, 쿨럭!”
훈이 마른기침을 토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터질 듯 거칠게 뛰는 심장과 핑핑 돌아가는 머리.
차크라를 개방한 직후부터 그 뒤의 작업까지 쉬지 않고 연달아 처리했으니 몸에 무리가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점차 흐려지는 시야 너머.
눈앞에 떠오른 하나의 문구에 훈이 꺼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특수스킬「이상의 뿌리」를 획득합니다.》
어쨌든 처음 세웠던 목표는 달성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