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479)
성천 윤가 (5)
훈은 모든 아바타들 중에서 가장 막내인 것과 동시에, 탄생 과정에서 어떤 매개체도 사용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이었다.
사실 전투보다는 만능 관리 인력으로 써먹으려 만든 개체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이렇게 일선에서 싸우게 되었지만.
‘거기다 이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
그게 다 그가 습득한 ‘소통의 차크라’ 덕분이었다.
다른 아바타의 심상을 끌어와 그 개체가 가진 능력 일부를 조금씩 빌려올 수 있는 이능.
지금껏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며 성장한 선배들이 훈의 마음속에서 하나가 되어 살아가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실제로도 하나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물론 완벽하게 모든 능력을 베껴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고유스킬인 「아바타」가 평범한 분신술이 되어버린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 대상자가 대부분 저마다의 위치에서 정점에 오른 만렙 캐릭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이너 카피라고 해서 우습게 볼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하물며 「전륜도」 덕분에 여러 개체의 힘을 동시에 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쉬이익—! 샤악—!
다시 한번 전면에서 예기가 휘몰아쳤다.
공간이 한정된 복도 전체를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파괴의 폭풍.
‘그러니 이 정도쯤은···!’
그것에 맞서듯 한 명의 훈이 앞으로 툭 튀어 나갔다.
한 손엔 자신의 피로 빚어진 장검을 단단히 틀어쥐고.
선두에 선 그의 검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연거푸 휘둘러지며 폭풍을 베어 갈랐다.
“뭣?!”
발광하는 핏빛 궤적이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저 본능에 따라 휘두르는 칼질이 아니었다.
여러 아바타를 통해 축적한 전투 경험은 물론 차크라에 의해 ‘무(武)’라는 개념을 품게 된 무인의 정련된 검격.
부족한 신체 능력도 극한으로 강화된 만큼 그 위력은 폭풍에 맞서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쓸데없는 잔재주를!”
하지만 마주한 적수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여유로운 태도를 견지하던 안톤이 인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손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배로 늘어난 예기가 앞으로 나선 훈을 사납게 난도질했다.
파스슥—
결국 연기가 되어 사라진 훈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약간의 틈새를 만든 것뿐.
그러나 일단 한 번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폭풍의 사이에 생긴 빈틈으로 몇 체가 더 파고들며 구멍은 점차 커져 갔다.
“하! 분신술이라니. 계속 죽여도 튀어나오는 게 바퀴벌레가 따로 없구나. 비루한 네놈에게 딱 어울리는 능력이다!”
조금씩 자신에게 다가오는 분신 몇을 더 파괴한 안톤이 광기에 찬 눈을 일그러뜨리며 거칠게 일갈했다.
사실 그는 아직도 전력을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자칫하다가 숙소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 자신까지 다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 일단 네놈부터 확실하게 끝장내 주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어지는 전개에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이성까지 툭 끊어져 버린 그가 자신의 차크라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가 개방한 차크라는 상층의 ‘절단’과 중층의 ‘실’.
‘죽어라!’
전력을 담아 휘두른 그의 손길에 복도 전체에 몇 줄기 직선이 생겨났다.
쩌저적—
지금까지와는 달리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없이 이루어진 쾌속의 일격.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이루어진 그 공격에 방어 태세를 갖춘 분신들이 모조리 조각나 흩어졌다.
그들의 손에 쥐어있던 핏빛 장검과 함께.
후두두둑—
복도 바닥에 부서진 건물 파편들이 떨어져 내렸다.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린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훈이 얼굴을 두들기는 돌가루에 헛숨을 터트렸다.
이제 복도에 남은 것은 그 하나뿐이었다.
‘공들여 만든 혈검이 저렇게 두부처럼 베이다니···.’
확실히 직감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불길함을 느껴 바닥에 몸을 던지지 않았으면 방금 공격으로 자신 또한 반 토막 났으리란 것을.
‘이거 장난 아니군. 조금만 늦었으면 비명횡사할 뻔했어. 역시 상층의 수행자라는 건가.’
다행히 이 숙소도 보통 건축물은 아니었던지라 한 수에 무너지진 않았다.
당사자인 안톤 또한 어느 정도 신경 쓰긴 한 것 같고.
그러나 방금 공격이 건물의 내구성에 타격을 준 건 틀림없었다.
이 이상 싸움이 격해지면 라뮤는 물론 건물 로비에 옮겨둔 이들도 위험해질 터.
‘그렇게 내버려둘 순 없지. 최대한 빨리 끝낸다.’
몸을 튕겨 올린 훈이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그의 모습을 보며 한 손을 들어 올린 안톤이 입가를 비틀며 이죽거렸다.
“네놈 하나 남았구나.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군. 역시 벌레 같은 놈들은···.”
그렇게 비웃음을 흘리던 안톤이 말을 멈췄다.
그리곤 굳은 얼굴로 급하게 몸을 돌리며 뒤쪽으로 손을 휘둘렀다.
“감히!”
스카칵!
그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오자마자 반으로 갈라지는 분신 하나.
하지만 혼란을 틈타 몰래 접근한 건 그 하나만이 아니었다.
천장과 벽, 바닥의 음영에서 튀어나온 분신 셋이 그에게로 쇄도했다.
“훈류 인법술 오의.”
“어림없다!”
양팔을 교차한 안톤이 펼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에 걸린 무언가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그 직후, 그의 주위에 깔려있던 보이지 않는 실들이 한꺼번에 수축하며 믹서기처럼 범위 안에 있던 분신들을 모조리 갈아버렸다.
“키힛! 제법이구나. 하지만 여기까지다.”
공격에 휘말려 연기가 되어버린 분신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일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금방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안톤의 주위를 맴돌며 아른거리는 핏빛 연기에서 일순 짙은 혈향이 확 피어올랐다.
“······!”
“피의 술— 혈폭.”
눈가를 꿈틀거리는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나직한 훈의 한 마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콰과과광—!
쿠르릉—!
안톤의 주위를 둘러싼 피 안개가 일제히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최대한 건물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안쪽으로 지향성을 설정한 일점 폭발이었다.
드드드—
그런 노력 덕분인지 진동은 폭발 규모에 비해 한없이 옅게만 느껴졌다.
나직한 한숨을 흘린 훈이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으음, 빈혈이···. 이거 막 쓰진 못하겠네.’
그가 불러낸 분신은 말 그대로 분신일 뿐이었던지라 혈액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지금까지 사용된 피는 전부 그의 것이라는 소리였으니···.
‘하긴, 애초에 흡혈귀들을 위한 능력이니까. 육체를 강화하면서 재생 능력도 상승하지 않았으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겠지.’
그건 ‘죽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 쓰려고 하면 쓸 수는 있겠지만, 인간인 훈이 불사왕 한스의 힘을 빌려올 때 생길 부작용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런 부작용이 적은 능력만을 사용하는 게 베스트라는 건데···.’
하지만 늘 그렇듯.
세상만사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었다.
“크으으— 이, 이 벌레 같은 놈이 감히—!”
폭발의 중심부에서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서히 사라지는 폭연 너머로 그 모습이 드러났다.
거만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엉망이 된 몰골로 곳곳에 피를 흘리고 있는 안톤.
폭발에 휩싸이기 직전에 차크라로 자아낸 실을 둘러 어떻게든 충격을 흡수한 것 같았지만,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꼴을 보니 시간이 촉박해 완벽하게 막아내진 못한 모양이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갈가리 찢어 죽여주마!”
노성을 터트린 그가 한쪽 팔을 쭉 내밀자 보이지 않는 실이 뻗어나갔다.
그러나 그 손끝은 훈이 있는 쪽과는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는데···.
“크키킥! 내 이 방법만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그곳은 라뮤가 누워있는 방이었다.
신성 결계를 쳐두긴 했으나 놈의 파괴력을 생각해 보면 그리 큰 의미는 없을 터.
인질로 잡을 심산인지 바로 해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곧바로 움직여야 했다.
“후우.”
하지만 훈은 가볍게 심호흡하곤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굳이 저기에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
전투를 시작한 이후부터 시도해 왔던 수가 막 마무리된 참이었으니까.
“···뭐야? 어디 갔어?”
때를 맞춰 안톤이 당황스러운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손은 연신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허공을 휘젓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거기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훈류 인법술 오의.”
재차 울려 퍼지는 나직한 목소리.
그에 안톤의 시선이 다시 전면으로 향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냐는 듯 부릅뜬 눈으로 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게, 뭔가 이상이 발생하는 순간 곧바로 반응하기 위해서인 듯했는데···.
이번엔 그런 반응도 전부 이쪽이 원하는 대로였다.
훈이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배의 술— 마안.”
기이이잉—
“크흡?!”
흑요석처럼 검은 안구에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빛나는 한 쌍의 역안.
눈 주위로 굵은 혈관이 툭툭 튀어 오르며 조금씩 피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무···슨··· 이게···.”
고장난 장난감처럼 삐걱거리던 안톤의 몸이 덜컥 멈춰 섰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역안에 못 박힌 듯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기이한 마력에 휩싸여 몸은 물론 체내의 차크라마저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아, 안 돼.”
굳어가는 혀로 간신히 한 마디 내뱉은 안톤.
이미 지금까지 이어진 전투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그였다.
거기다 심리의 허점을 파고든 마왕의 마안을 정통으로 마주한 상황.
‘물론 정신력으로 이겨낼 가능성도 있겠지만.’
굳이 「위대한 정신」 등 다양한 능력의 보조를 받는 자신과의 정신력 싸움에서 이길 필요는 없었다.
능력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만 되면 이 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
그러나 그것까지 감안하더라도 안톤에겐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다시 말해 체크메이트라는 거지.’
물론 이 마안은 훈에게도 부담이 큰 능력이었다.
힘을 빌려오는 과정에서 열화되어 한계가 뚜렷해지고 시전 시간이 길어졌으며 직접 눈을 마주해야 하는 등 많은 제한이 걸렸지만, 누가 뭐래도 이건 대를 이어 내려온 마왕의 눈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 방법을 택한 이유는···.
‘자, 내게 보여 봐라.’
처음 안톤을 제압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노린 목적.
이번 사태의 미심쩍은 부분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네 안에 감춰진 비밀을.’
마안에 제압당한 채 새빨갛게 충혈된 안톤의 눈동자를 통해서 「정신감응」의 힘이 뇌리로 파고들었다.
***
콰르릉—!
하늘에서 떨어진 한 줄기 벼락이 지상에 내리꽂혔다.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내려와 맞닿은 모든 것을 깨끗이 정화하는 파괴의 정수.
“이크! 위험하잖어?”
하지만 그것은 목표로 했던 이를 불사르지 못하고 애꿎은 땅바닥에 그을음만을 남기고 사라질 뿐이었다.
이미 수차례나 반복된 일에 허공에 떠오른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루세트가 재차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 백정, 당신. 제대로 싸울 생각은 있는 겁니까?”
“으응? 하지만··· 어쩔 수 없잖여? 처자랑은 영 상성이 좋지 않으니까. 내는 뭐랄까··· 좀 더 이렇게 치고받고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좋은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그녀의 말에 추레한 몰골의 사내가 자신의 수염을 벅벅 문지르며 입맛을 다셨다.
말투도 그렇고 맹한 인상에 흐리멍덩한 눈, 지저분하게 자라난 산적 수염 등 겉보기로는 영 미덥지 않아 보이는 상대였으나 루세트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저래 보여도 저 ‘인간 백정’은 그녀와 대등한 심층의 마도 수행자였으니까.
“그래서 그런데, 상대 좀 바꾸면 안 될까? 아니면 다른 애들 잡으러 가는 건 어뗘? 나는 그냥 이대로 물러날 테니까!”
“제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끄잉··· 내가 오늘만 얼마나 기다려 왔는디···! 얼마 죽이지도 못했는데 완전히 공쳤구만.”
그가 투덜거리며 커다란 사각형 식칼을 허공에 휙휙 휘둘렀다.
푸줏간에서나 볼 법한 그 칼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물건보다 배는 더 크고 두꺼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깊게 심호흡한 루세트는 다시 안전거리를 확인하고 굳은 얼굴로 정신을 집중했다.
저 사내와의 싸움에선 단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도살’의 중층 차크라와 ‘살인’의 심층 차크라를 연 인간 백정의 칼날에 눈 깜짝할 새에 고깃덩이가 되어버릴 테니까.
‘대체 어떻게 이 많은 마도 수행자들이 윤가에···.’
지금까지 그녀가 처리한 적들의 수가 몇이던가?
그런데 그녀뿐만이 아니라 내성을 지키는 이들을 제외한 전력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혼란은 도무지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공간을 부수고 넘어왔다고 한들 한계는 있는 법.
저들은 윤가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모종의 방법으로 결계가 무력화된 지점으로만 넘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일이 터지기 직전에 다수의 인물이 내부에서 호응했다. 거기다 방첩망을 무너뜨리고 일을 조율한 이는 상당히 고위층에 속해 있어.’
내부 배신자.
그것도 관리자급에 속하는 핵심 인물의 배신 정황이었다.
가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그녀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으엥? 뭐야, 이거! 벌써 끝났다고?”
그때,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인간 백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디야! 이런 법이 어딨어! 아직 살짝 목만 축였는디!”
뭔가 전언이라도 받은 듯 불평을 토하기 시작한 사내.
그러다가 그의 시선이 허공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루세트와 정통으로 마주쳤다.
“···어휴, 이게 다 저 여우 때문이여. 하필 저런 독종이 걸려 부려가지고.”
그리곤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후퇴 지령이라도 떨어진 모양.
물론 상대를 놓아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 그녀는 도끼눈을 뜨고 재차 전격을 끌어올려···.
“······!”
파직!
일순, 허공에 머물러 있던 그녀의 몸이 스파크와 함께 뭔가에 끌리듯 옆으로 휙 이동했다.
윤가 곳곳에 배치된 금속 구조물과의 자성을 이용한 긴급 회피였다.
그러나···.
푸슛—
루세트는 팔에 난 생채기에서 새어 나오는 핏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곧바로 대응해 스치지도 않았는데 이런 상처가 생기다니.
반응이 늦었으면 어떤 꼴이 되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이고매, 아까비라~ 이번엔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디.”
언제 그녀의 뒤에 나타나 칼을 휘둘렀냐는 듯, 어느새 멀찍이 거리를 벌린 사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쿠구구궁—
그의 뒤편에는 예의 그 부서진 공간이 활짝 입을 벌린 채 굉음을 내뿜고 있었다.
“뭐, 그래도 앞으로는 기회가 많을 테니까! 이번엔 이 정도로 만족해야긋제.”
어깨를 으쓱이며 공간 너머로 몸을 들이미는 인간 백정.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그가 루세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뇌호 처자. 내 다음엔 꼭 이쁘게 썰어줄 테니까 기대하고.”
“당신···!”
분노에 찬 그녀의 전격이 허공의 균열을 정통으로 타격했으나, 그 파괴적인 에너지는 이미 공간 너머로 사라진 이에겐 닿지 않았다.
“···후우.”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숨을 고르며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미 지난 일에 신경 쓰기보단 아직까지 남아있는 적을 하나라도 더 줄이는 게 훨씬 생산적이었으니.
번개에 휩싸인 그녀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파지직!
한밤중에 벌어진 마도 수행자들의 대대적인 성천 윤가 습격 사건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