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5)
첫 접촉
소리 없이 떨어지는 맹수의 습격.
직전에 눈치챈 덕에 아슬아슬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카드드득—!
“크윽···. 갑자기 이건 또 뭐야?!”
호신용으로 들고 있던 금속 막대를 덮쳐온 맹수의 아가리에 끼워 막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강화된 육신으로도 체중으로 짓눌러 오는 맹수를 떨쳐낼 수 없었다.
“크르르르···.”
금속 막대를 아작아작 씹어대는 아가리 사이에서 침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를 한 끼 식삿거리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거겠지.
‘아··· 더럽게시리.’
이미 상체에 걸친 방검복과 팔 보호대는 맹수의 발톱에 너덜너덜해지고 몸 곳곳에 상처까지 났지만, 나는 태평하게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공포심과 고통을 여과한 나에게는 실감 나는 게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기에 긴장으로 실수하는 일 없이 곧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금속 막대를 받치고 있던 두 손을 옆으로 비틀며 잠깐의 틈을 만들고, 잽싸게 한 손으로 허리춤의 손잡이를 잡았다.
푸욱—
“크허엉—”
망설임 없이 맹수의 목덜미에 나이프를 박아 넣었다.
「마력 친화」까지 사용해 내 미약한 마력을 몽땅 나이프에 때려 박아서인지, 칼날은 녀석의 두꺼운 가죽을 꿰뚫고 깊숙이 박혔다.
한 손으론 금속 막대를 밀어붙이며 아가리를 틀어막고, 다른 손으로는 나이프로 목덜미를 계속 쑤셨다.
다행히 급소를 찔린 놈의 힘이 빠진 덕에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악전고투를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서서히 맹수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허억··· 헉···, 드디어 끝났네.”
마지막으로 확인 사살까지 해서 숨이 끊어진 것을 확실히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맹수는 검은 표범이었다.
어두운 밤에 보니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것이, 미리 눈치채고 대응한 것이 천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표범에게서 시선을 떼고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너덜너덜해진 옷과 장비들, 곳곳에 난 상처에서 핏자국까지 보였다.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다.
다행히 상처는 실시간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보호구들이 망가지긴 했지만 덕분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고.
‘아무래도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겠지.’
표범과 싸우며 소란을 일으킨 것도 그렇고, 피 냄새가 퍼질 테니 빨리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몸에 묻은 핏자국들은 물을 부어 씻어내며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완전히 씻겨지진 않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그렇게 걸음을 재촉하던 순간.
아직도 행운이 이어지고 있었을까?
나무 사이 저편에서 불빛이 보였다.
조심스레 다가가 살펴보니 자그마한 화전민 마을처럼 보였다.
‘숲 안에만 있느라 마냥 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직 잘 때는 아닌가보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이세계인들과의 첫 번째 조우였다.
엉망인 차림새였지만 최대한 단정해 보이게 가다듬으며 마을에 둘러진 목책의 입구로 향했다.
늦은 시간인지라 목책의 문은 닫혀있었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니 목책 위로 남자의 머리가 빼꼼 올라왔다.
“누구시오?”
다행히 사람이 있었구나 안도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여행 중에 숲길에서 길을 잃어 헤매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하룻밤만 마을에서 재워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 야밤에 혼자서 숲길을 지나왔단 말이오? 저 마수들이 득실거리는 숲을?”
어··· 내가 마주친 건 검은 표범 한 마리밖에 없었는데, 설마 그렇게 위험한 숲이었나?
진짜로 운이 좋았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예, 고생고생해서 다행히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만신창이가 되었지만요. 아하핫.”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대답하자 중년 사내는 엉망이 된 내 몸을 훑어보더니 잠시 기다려 보란 말만 던지고는 목책 너머로 사라졌다.
‘경계심이 상당하네. 하긴 이런 숲속의 화전민 마을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자신이 수상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음에도 자신의 옷가지부터가 이질적이지 않은가.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 사라졌던 사내는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 한 명과 다시 나타났다.
“그래··· 이야기는 들었네, 청년. 여행하다 길을 잃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
공손하게 대답하고 최대한 무해한 사람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자니,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노인이 인자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들은 힘들 때 서로 돕고 살아야지. 편히 쉬다 가시게나.”
끼이익—
노인과 같이 왔던 중년이 곧바로 목책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에 감사를 표하며 들어가 다시 공손하게 인사했다.
“다시 한번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뭘, 오늘은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 쉬세나. 우리 집에 빈방이 몇 개 있으니 거기서 묵으면 될 걸세.”
노인은 인자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중년 사내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거참, 까칠한 양반일세.’
노인을 따라 이동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생각했던 대로 노인은 이 마을의 촌장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나왔던 숲이 생각보다 더 위험했던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숲에서 검은 표범 한 마리만 만난 것도 그렇고, 마을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내 이름은 말콤일세. 그래, 자네는 이름이 뭔가?”
“아! 제 이름은 한스입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촌장의 집에 도착했다.
마을이 작다 보니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이 방에서 쉬면 된다네. 고생 많았을 텐데 편히 쉬시게.”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뭐, 고마우면 내일 땔감이라도 좀 패주면 좋고.”
“네! 제가 체력에는 정말 자신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이윽고 촌장이 떠나고 방에는 나 혼자 남았다.
빈방이라 그런지 먼지가 좀 있지만, 숲에서 노숙하는 거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후우···.”
비로소 온전히 마음을 놓고 등에 멘 가방을 내려놓고 엉망이 된 옷을 벗었다.
상의는 도저히 못 써먹을 정도였고, 맹수의 발톱에 훼손된 장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단 나을 테니 버리진 않겠지만.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신기하네. 무의식중에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했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닦아내자, 어느새 상처들이 흔적도 없이 전부 아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회복」은 정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능력이었다.
「마력 친화」도 상당히 쓸 만했고.
정리를 마치고 낡은 침대 위에 침낭을 펼치고 들어가 누웠다.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잠깐 사이에 맹수와 싸우고 이세계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응, 잘하고 있어. 대화도 이상하지도 않았고, 촌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인드 허브」가 여기에도 도움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천장을 향해 웃다가 미소를 거두고 눈을 감았다.
사실 이세계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오지 않았지만, 이제 이 세계의 시차에 맞출 필요가 있으니 억지로라도 쉴 생각이었다.
나는 서서히 휴면상태에 접어들었다.
***
포장을 열고 치킨을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역시 치킨은 진리야.”
아바타를 이세계로 보내자마자 치킨을 주문했는데, 온갖 여정을 마치고 마을에 들어가 휴면상태에 이를 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뭐, 지구의 시간으론 고작해야 20분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건 그렇고 진짜 좋네.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치킨을 뜯으면서 편하게 이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니.’
또 다른 아바타인 ‘하인즈’는 이세계로 보낸 ‘한스’의 뒤를 이어 극한의 단련 모드에 들어갔다.
언제 투입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해 둬야지.
치킨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정리하고 있자니, 휴면상태로 있던 이세계 쪽에서 아침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 그럼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보수집이나 해 볼까.”
설렁설렁 걸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사이트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세계 여행은 인터넷을 하면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니까.
***
눈을 감고 휴면상태에 있었지만, 모든 감각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밖이 밝아지며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척이 느껴지자 눈을 뜨고 일어났다.
물론 아바타도 진짜 숙면을 취해서 뇌를 휴식시킬 필요가 있긴 하지만, 이번 밤은 시차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촌장님.”
“그래, 한스 자네도 잘 쉬었는가?”
“예, 덕분에 편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침 방에서 나오던 촌장과 인사를 나누고 뒷마당으로 가서 간단하게 씻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게나.”
“이렇게 먹을 것까지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헛헛헛, 다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나중에 마을 일만 조금 거들어 주면 돼.”
비록 삶은 감자나 딱딱한 빵과 수프가 전부였지만, 이세계에서 먹는 첫 번째 식사라고 생각하니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집에서 요리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에 대해 물어보자 촌장이 대답했다.
“노인네가 혼자 살다 보니 주변에서 끼니때마다 챙겨준다네. 고마운 노릇이지.”
생각보다 마을 사람들끼리 더욱 돈독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촌장이라 여러모로 대우를 받는 것이거나.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고 보니 자네 옷차림이며 장비들이며 하나같이 본 적 없는 것들이던데, 어디 멀리서 오셨는가?
“아하하, 제가 특이한 물건들을 좋아해서요. 이리저리 떠돌다가 하나씩 모으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호오···. 혼자 여행하다 보면 힘들지 않은가?”
미리 생각해둔 떠돌이 모험가 설정으로 대충 얼버무리며, 정처 없이 여행하다가 길을 잃었다고 밝혔다.
그러며 자연스럽게 근처에 다른 도시가 있는지를 물었다.
“흐음···. 산골에서만 사는 노인네가 뭘 알겠는가. 동쪽으로 가다 보면 작은 도시가 하나 있다고는 들었던 것 같네만.”
아쉽게도 돌아온 대답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일단 동쪽을 목표로 잡고 가보기로 했다.
아무 목적지도 없이 방황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마을을 떠나는 것은 다음날 하기로 하고, 그날은 촌장을 따라 마을의 이런저런 일들을 돕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최소한의 정보라도 수집해야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 테니까.
아직 이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원주민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얻을 기회였다.
뒷마당의 물통을 채워 넣고 땔감을 패서 정리했으며, 마을의 목책을 보수하는데도 한 손 거들었다.
“한스 씨, 거기 밧줄 좀 부탁드릴게요.”
“자네 체력이 좋군. 전엔 무슨 일을 하다 왔는가?”
다른 마을 남자들과도 함께 일하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외부와의 교류는 사냥꾼들이 전담해서 한다는 거군요? 혹시 안전한 길 같은 게 따로 있습니까?”
체력이야 넘치는지라 딱히 힘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이번 기회에 좀 더 단련하는 셈 치고 쉬지 않고 일했다.
“오늘은 수고했네. 내일 일찍 떠나려면 푹 쉬어야겠지. 마지막으로 한잔하세나.”
그날의 정보 수집을 겸한 노동을 마치고 씻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촌장이 저녁상과 함께 술병을 꺼내 왔다.
도수는 제법 강했으나 실시간으로 회복되는 간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생각 이상으로 입맛에도 잘 맞았다.
그렇게 이세계의 술을 마신다는 즐거움에 주거니 받거니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더 늦으면 다음 날 일어나는 데 지장이 있을 테니, 아쉽게 자리를 정리하고 방에 들어와 침낭에 들어갔다.
전날과는 다르게 시차도 맞추었고 적당한 노동과 술까지 곁들여지자 이번엔 정말로 푹 잠들 수 있었다.
***
그리고 나는 하던 게임을 멈추고 눈을 감고 집중했다.
헬스장에서 스쿼트를 하며 하체를 조지던 하인즈도 그 자리에서 멈추고 눈을 감았다.
···이세계에 있던 아바타, 한스와 연결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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