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52)
#52
할리 (3)
새로 소환할 수 있게 된 아바타는 ‘휴버트’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게 이름을 짓기까지는 무수한 고뇌와 갈등이 있었다.
지금까지처럼 ‘하’ 발음만으로는 작명에 제한이 생기니,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 틀을 깨부숴 ‘H’로 한계를 넓히고자···.
···라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쓸데없는 고민 끝에 나오게 된 이름.
사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지게 된 스킬이었다.
휴버트의 초기 스킬은 「감정」.
물건의 정보를 볼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능력이었다.
‘진짜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아직 능력의 숙련도가 낮은 탓인지, 그렇게 정확한 정보는 볼 수 없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은 그 물건의 개략적인 정보 정도.
‘물론 막 능력을 얻은 참이니, 앞으로 성장할 여지가 충분히 있지.’
미래의 거상, 휴버트의 첫 임무는 할리가 마수의 숲에서 드잡이질하는 동안 그가 사용할 물품들을 준비하는 것.
이동할 수 있는 도시를 돌며 「감정」으로 할리가 쓸 만한 무기를 고르고, 가죽 장인에게 마수 머리의 가공을 맡겼다.
-훌륭한 실력의 장인이 무겁고 단단한 흑철 합금을 두드려 만든 양손 도끼. 튼튼해서 쉽게 망가지지 않지만, 매우 무거워 어지간한 힘으론 들 수 없다.
-평범한 장인이 마수 검은 표범의 머리를 가공해 만든 투구. 모양을 만드는 데 집중한 터라, 재질 이상의 방어력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그 외에도 휴버트는 할리의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인적인 취향을 듬뿍 반영해서.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대륙 서부에 위치한 툴크 왕국의 북부 아오니아 백작령, 타라크의 한복판에.
웅성웅성—
“세상에, 저게 뭐야?”
“남부 야만인인가? 서부까진 무슨 일로 온 거지?”
“엄마— 저게 뭐야?”
“쉿, 보지 마! 빨리 집에 가자.”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이 할리에게 집중되었다.
성문을 지나며 경비병들에게 받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눈길이었다.
‘후, 이 몸이 좀 멋지긴 하지.’
할리에게 쏟아지는 동경 어린 시선.
그만큼 그의 모습에는 주변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으니까.
2미터가 넘는 거구에 맹수처럼 부리부리한 눈.
뒤집어쓴 검은 표범의 머리에 연결된 가죽이 망토처럼 어깨와 등을 덮었다.
목에는 짐승의 이빨이 주렁주렁 엮인 채 걸려있고, 벌거벗은 상체에는 위압적인 근육이 꿈틀거렸다.
얼굴과 몸 곳곳에 붉은 염료로 그려진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과, 등에 메인 채 양 어깨로 삐죽이 튀어나온 커다란 도끼의 손잡이 두 개.
그러면서 방어구라고는 철판을 덧댄 가죽 조각이 중요 부위 몇몇에 배치된 것이 전부였다.
요즘엔 볼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나 봤던 야만 전사가 이곳에 있었다.
“후후후.”
나직하게 웃으며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할리의 아름다운 근육에 압도된 이들이 황급히 시선을 피하고 경로에서 비켜섰다.
사실 이렇게 요란하게 차려입은 것에는 취향 외에도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목적은 대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웅이 되는 것.
영웅의 조건에는 일신의 능력 말고도 유명세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강자와, 누구나 알고 있는 강자.
어느 쪽이 더 영웅에 가까운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도 영웅 지망생인 할리에게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음, 그렇고말고. 절대 사심만으로 이런 건 아니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마친 호탕한 야만 전사 할리는 주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대로를 가로질러 용병 길드로 향했다.
콰앙—!
길드의 문이 부서질 듯 시원하게 열렸다.
한순간에 입구로 집중된 시선.
‘살짝 밀려고 했는데, 할리의 근력을 생각 못했네.’
내심 민망했지만, 상남자 할리는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법.
당당하게 로비를 가로질러 창구로 향했다.
“뭐야?”
“야만인?”
용병 산업이 발달한 도시이기 때문일까.
길드의 내부는 깔끔하면서도 나름대로 세련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은행처럼 마련된 창구와 그 앞에 줄을 선 채 기다리는 사람들.
터프하지만 예의를 모르지 않는 할리는 얌전히 가장 짧은 줄 뒤에 서서 기다렸다.
여유가 생긴 김에 잠깐 딴짓 좀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갈 테니까.
“후욱, 후욱.”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온 거친 숨소리에 앞에 선 이의 어깨가 움찔했다.
“흠흠···, 그러고 보니 급한 일이 있었는데···.”
그리고는 괜스레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길드를 빠져나갔다.
왠지 모르게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 밥을 안 먹었더니 배고픈데, 일단 먹고 다시 와야지.”
“내 정신 좀 봐. 약속 있던 걸 까먹었네.”
그의 앞에 선 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피하고, 줄은 순식간에 줄어들어 그의 차례가 다가왔다.
‘쯧쯧쯧, 사람들이 이렇게 건망증이 심해서야.’
안타까운 현실에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급한 용무가 있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어쩌겠는가.
할리는 기다리는 동안 두 개의 도낏자루를 겹쳐 하던 바벨 스쿼트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끼가 두 개니 날을 양쪽으로 하면 무게도 잘 맞고 좋네. 양손 도끼라 손잡이가 길기도 하고.’
그래봤자 이 정도 무게로는 땀 한 방울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는 도끼를 척척 정리해 다시 등에 걸며 창구로 향했다.
“그, 이곳에는 무슨 일로···.”
2미터가 넘는 근육 덩어리가 앞에 서자, 여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핫핫핫! 당연히 강철의 성채로 향해서 사냥을 하기 위해서지! 이곳은 그러기 위한 도시가 아닌가?”
시원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
할리가 굳이 타라크로 온 이유가 이것이었다.
강철의 성채 위쪽에 있는 산맥에서 출몰하는 다양한 몬스터들을 사냥해, 더 많은 유전자 정보를 획득하고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
사실 남부의 부족연맹과 야만족들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으니, 바로 그쪽으로 향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사칭을 하려면 현지인들이 없는 곳에서 하는 게 유리하지 않겠는가.
‘일단 강해진 후 유명해 지면 방법은 어떻게든 생기게 되는 법이니까.’
당장 다른 아바타들도 전부 바빠진지라 더 이상 할리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상 이제부터는 혼자서도 충분했다.
그리고 명성을 위해서는 정식 절차를 밟는 것이 좋으니, 용병으로서 의뢰를 받아 산맥에 들어가기 위해 굳이 타라크에 먼저 온 것이다.
생각해 둔 할리의 진로는 두 가지.
야만족 출신으로서 이름을 떨쳐 남부 부족연맹 국가를 움직일 수 있는 거물이 되든가, 전사로서 용병계에서 명성을 쌓아 용병왕이 되든가.
‘둘 다 될 수도 있지.’
사실 그게 목표였다.
“파하하핫—!”
당장은 이제 막 용병이 된 신출내기였지만···.
그렇게 야만 전사 할리는 용병이 되어 북부 산맥으로 향했다.
***
하인리히는 오늘도 한가하게 로셀리아 대신전 내부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예상했듯이, 지난 근무 기간은 계속 평화 그 자체였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 이 대신전 내에서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마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남아도는 정신력을 다른 아바타에 배분하고 있을 때였다.
“음?”
그가 지키고 선 길목 안쪽에서 뭔가 부산스러운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고위 성직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향하는 통로.
아무래도 교단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자신이 알아도 될 이야기면 언젠간 알게 되겠지 싶어 신경을 끄려던 찰나.
“앗! 하인리히 경,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좋네요!”
안쪽 통로에서 성녀가 나타났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지금 날씨는 한창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중이었다.
“비가 오면 지렁이들이 나오거든요. 꼬물꼬물 얼마나 귀여운데요!”
이 아가씨의 감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개인의 취향은 존중해 줘야겠지.
“예···. 그 길쭉하고 번들거리며 꿈틀거리는 그··· 굉장히 귀엽죠. 네.”
“역시 하인리히 경은 이해해줄 줄 알았어요! 지렁이의 귀여운 점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그 작은 생명체가 꼼지락거리는 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하하하···. 그런데 교단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뭔가 들뜬 듯한 기색인데···.”
대화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전에 서둘러 주제를 바꿨다.
하인리히가 알면 안 되는 이야기라면 대화는 여기서 끝나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
“아! 이번에 다른 세력과의 협력이 결정됐거든요.”
아무래도 자신이 알아도 되는 이야기였나 보다.
아무리 성녀가 철딱서니가 없어 보인다고 해도, 명색이 성녀이니 지킬 것은 철저히 지킬 테니까.
···그렇겠지?
“에나멜 대륙의 엘븐 킹덤에서 하이 엘프가 파견되기로 했어요. 어쩌면 불사왕의 후예를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에나멜 대륙은 지금 우리가 있는 이온 대륙의 사분지 일밖에 되지 않는 작은 대륙이었다.
그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인간을 제외한 이종족들.
사실상 에나멜 대륙 전체가 이종족 연합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하이 엘프라면 엘븐 킹덤에서 상당히 고위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저희를 돕기 위해 바다 건너 이곳까지 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간 한 번도 불사왕에게 침공당한 역사가 없는 에나멜 대륙인 데다, 엘프들은 아우테리카에 몇 존재하지 않는 소수 교단인 세계수를 섬기는 이들이니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쪽에서도 저희 쪽에 바라는 것이 있으니 협력 작전이 성사된 거죠. 엘븐 킹덤은 인간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저희 주신교단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요!”
엘프들이 세계수를 섬긴다고 해서 주신을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주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과 숭배의 대상을 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주신교단도 타 종교를 배척하지 않는 만큼,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주기적으로 교류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결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안인 것 같은데, 제가 들어도 되는 이야기입니까?”
“어차피 곧 공표될 거예요. 엘븐 킹덤의 사절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 되니까요.”
다행히 성녀도 따질 건 다 따져보고 이야기해 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하인리히 경 정도면 이 정도는 알아도 괜찮아요! 세례를 받은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주교급 신성력에 가까워지다니! 어쩌면 나중에 성자급까지 오르실지도 모르니까요!”
···진짜 제대로 판단해서 이야기해준 게 맞겠지?
그간 겪어본 성녀는 이상할 정도로 하인리히에게 호의적인 면이 있었으니까.
신성력이 강한 이들을 친밀하게 여긴다고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 큰 차이가 있었다.
‘사실 나한테 나쁜 일이 아니긴 하지. 성녀가 직접 말해줬다고 하면 뭐라고 따질 사람도 없고.’
그래도 이 순진한 아가씨가 어떤 못된 악당에게 속아 중요한 정보를 술술 불어 버릴까 봐 심히 걱정되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내가 옆에서 잘 지켜주면 되겠지.’
우리 착한 성녀님을 이용해 먹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으니까!
“아앗! 쉬는 시간이 끝나 버려요! 하인리히 경이랑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전 지렁이를 봐야 해서 이만 가 볼게요!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성녀는 일방적인 인사를 남기고는 다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음, 그런 능력을 지렁이를 관찰하는 데 사용하다니.”
일전에 비가 오는 날 성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이쪽은 우산을 들고도 흥건히 젖은 채였건만, 성녀는 맨몸으로 화단에 쪼그려 앉아 지렁이를 관찰하는 와중에도 뽀송뽀송한 상태 그 자체였다.
투명한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빗방울이 그녀의 일정 범위 안으로 범접하지 못한 것이다.
‘거기에 지렁이들에게 신성력을 퍼부어서 치유와 축복까지 걸어주고 있었지.’
성녀의 축복을 받은 지렁이라니.
처음 그걸 목격했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신도라도 쉽게 받을 수 없는 호사건만.
더 이상 그녀에 대해 생각해 봤자 의미 없는 일.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전환했다.
‘그나저나 엘븐 킹덤의 하이 엘프라···.’
그들의 존재가 어떤 변수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딱히 접할 수 있는 정보도 없었으니까.
‘설마 들키진 않겠지?’
성녀의 눈길에서는 벗어났지만,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 미지수인 하이 엘프까지 가세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결계를 좀 더 보강해 둘까.’
다른 차원의 술법을 좀 더 섞어서 공을 들여 놔야 할 것 같았다.
***
그리고 불과 며칠 후.
하인리히가 광휘수호 성기사단에서 근무할 날이 절반 정도 남은 시점에.
엘븐 킹덤의 사절단이 대신전의 게이트를 통해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