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56)
#56
엘프 (4)
“젠장, 대체 저놈은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지?”
역천의 서약의 장로, 누라베는 갈가리 찢겨나가는 몬스터와 부하들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원인은 갑자기 등장한 저 인간인지 라이칸스로프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괴물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놈.
공들여 준비한 제물을 빼돌려 도주 중인 놈이었다.
‘최근 운이 좋다 싶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시작은 평소와 같이 노예 상인을 통해 엘프를 구했을 때였다.
그가 속한 학파는 제물 의식을 통해 더욱 강한 악마나 소환수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곳으로, 가치가 높은 제물일수록 그 효과가 뛰어났다.
그렇게 노예들을 관리하던 중에 발견해 버린 것이다.
자신들의 손아귀에 하이 엘프의 자격을 갖춘 제물이 있다는 것을.
‘운이 좋았지. 마침 소환했었던 악마가 그걸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
그는 곧바로 악마의 조언을 받아 평소보다 더욱 강한 봉인 마도구를 제물의 목에 채웠다.
인과율에 따라 세계수가 제물의 정보를 쉽게 노출하지 못하도록.
그러고도 불안해서 최대한 빨리 의식의 날짜를 잡았다.
엘프들에게 하이 엘프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놈들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제물을 되찾으려고 할 터였다.
그 전에 깔끔하게 의식을 마치고 자리를 옮길 생각이었는데···.
‘세계수의 가지까지 사용한 건 욕심이었나?’
‘하이 엘프의 자격을 갖춘 자’와 ‘하이 엘프’의 가치가 같을 리가 없었다.
기껏 얻은 최상급 제물을 좀 더 제대로 써먹고 싶다는 욕심이 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
그래서 조직에서 보관 중이던 세계수의 가지를 이용해 제물과 함께 의식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진짜 하이 엘프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가지를 매개로 삼아 일시적으로 ‘유사 하이 엘프’로 삼을 수는 있었으니까.
세상의 모든 행운이 그를 돕는 것만 같았다.
일을 마친 직후 곧바로 이동할 생각으로, 대부분의 인원을 불러들이고 의식을 시작할 때도 모든 게 순조로웠다.
갑자기 결계에 구멍이 뚫리기 전까진.
‘설마 그 순간에 세계수가 끼어들 줄이야!’
의식이 흔들린 아주 찰나의 순간을 노린 개입이었다.
세계수의 가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진 줄곧 봉인된 상태였고, 의식이 시작된 후부터는 법칙에 의해 간섭이 차단됐을 터였다.
그 의식이 흔들려 버린 게 문제였지만.
하지만 여러 가지 제한으로 인해, 세계수의 가지만을 매개로 삼아 발현된 이적은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제물을 동굴 가장 깊은 곳에서 조금 바깥쪽으로 이동시킨 것이 전부였으니까.
복잡한 동굴의 구조를 생각하면, 직선거리로는 얼마 되지도 않으리라.
그 제물을 홀랑 집어 들고 달아나 버린 놈이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다행히 금방 뒤쫓을 수 있었다.
‘아직 봉인구가 걸려있으니 이곳의 위치가 발각되진 않았을 거야. 그래도 최대한 빨리 제물을 회수해야 의식의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처음엔 몬스터들을 쏟아 부어 놈의 체력을 바닥내고 안전하게 제물을 회수하려 했지만, 현재 상황을 보아하니 그것도 무리인 듯했다.
“크하하하—! 덤벼라!”
한껏 부풀어 오른 전신의 근육과 인간과 마수를 반씩 섞어놓은 듯한 외형.
하지만 그런 야성적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정련된 움직임에 휘하의 암흑기사들이 맥을 추지 못할 정도였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군. 더 시간을 지체할 순 없어.”
혹시 몬스터 혼혈인가 싶어 통제를 시도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의 마물들의 살점으로 체력을 회복하는 모습은 몬스터 이상이었다.
누라베가 흑마법사들에게 눈짓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순식간에 준비된 소환진.
그리고.
전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
“카하핫—! 곤란해! 아주 곤란해! 핫핫핫!”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정확히는 새로운 놈들이 전장에 합류하고부터.
또다시 몸을 찌르는 듯한 살기가 느껴지고, 할리의 「야성」이 곧바로 반응했다.
촤아앙—!
흑마력에 휩싸인 검은 대검이 그의 도끼에 튕겨 나갔다.
동시에 광석으로 이루어진 볼트 한 대가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지만,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할리의 오른손이 기묘하게 꺾이는 볼트를 낚아채고 그대로 부숴버렸다.
‘까다롭군. 역시 만만치 않은 놈들이야.’
흑마법사들도 본격적으로 나서려고 마음먹었는지, 상당한 수준의 소환수들을 전장에 투입했다.
[제법이구나, 잡종!]심지어 악마까지도.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며 쉴 새 없이 그를 압박하는 3미터가 넘는 악마를 비롯한 소환수들 때문에, 그도 상당한 피해를 보아야만 했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것은 물론이고···.
‘그래도 「야성」이 있어서인지 한쪽 눈이 없는 것치곤 전투력 저하가 크지 않네.’
가장 큰 피해는 역시 왼쪽 눈을 상실한 것이다.
악마와 소환수들의 갑작스러운 참전으로 한순간에 난전이 벌어지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아까 전의 볼트가 날아와 눈에 박혀버렸다.
‘그것뿐이었다면 「재생」으로 수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광석으로 이루어진 볼트가 그대로 터져 나가는 바람에 어찌할 틈도 없이 눈 하나를 잃었다.
거기다 이쪽이 「괴식」을 사용해 체력을 회복하는 것을 경계했는지, 흑마법사들이 자잘한 몬스터들을 뒤로 물려 버려 에너지 회복도 힘들어졌다.
아예 소수의 강한 소환수들만으로 상대할 심산인 것처럼.
‘그래봐야 놈들도 내 소중한 영양식이 되었을 뿐이지만.’
지금은 그 강한 놈들도 대부분 쓰러진 후였으니까.
하지만 놈들에게선 마석만을 겨우 회수했을 뿐, 회복을 저지하려는 저쪽의 방해가 너무 심해 에너지가 고갈되기 직전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세실리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줄여도 되었다는 점.
표범 가죽에 함께 둘러싸인 세계수의 가지에서 은은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충격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한 것이다.
‘간접적인 충격을 흡수하는 정도지만, 이거라도 없었으면 더 움직임에 제한이 생겼을 테지.’
아무래도 격한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적들이 그녀를 직접 노리진 않는다고 하지만, 싸움의 여파가 누적되면 그녀도 몸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오래 못 갈 것 같긴 하지만. 세계수도 상당히 무리하나 본데?’
가죽 틈새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가지의 끄트머리가 물기 하나 없는 것처럼 바짝 말라비틀어져 있었으니까.
분명 처음 봤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다.
후우웅—!
그때 검게 타오르는 흑마력에 휩싸인 대검이 날아들었다.
할리가 곧바로 대응하려는 순간.
‘큭! 저게 또!’
아주 잠깐의 경직.
하지만 찰나가 생사를 가르는 전투 중에 벌어진 치명적인 일이었다.
다급히 오러를 끌어올려 대검을 쳐낼 수 있었지만, 다시 팔뚝에 기다란 상처가 생겼다.
‘후우, 일단 저놈부터 족쳐야 할 것 같은데.’
악마와 함께 가장 까다로운 상대.
저 뒤쪽에서 금속으로 이루어진 석궁을 겨누고 있는 보석 인간이었다.
‘비싸 보이는 몸이네. 몸값이 상당하겠어.’
전신이 은은한 녹색 광택의 보석으로 이루어진 인간 형상의 소환수.
그의 한쪽 눈을 앗아간, 염동력을 사용하는 저격수였다.
‘저 이마의 눈이 문제인 것 같은데.’
세 개의 초록색 눈을 가진 놈이었지만, 이마의 눈만이 유난히 짙은 색을 띠고 있었다.
놈이 볼트를 조종하거나 염동력을 가할 때마다 그 눈이 반짝거리기도 했으니 아마 틀림없겠지.
“후흐흐··· 이거 빠듯하구만.”
사방을 몬스터들이 둘러싸고 있건만, 눈앞의 놈들이 「괴식」을 사용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놈들은 회복하려는 찰나에 그보다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놈들이라 무시할 수도 없다.
흑마법사들이 퍼붓는 온갖 저주를 「생체 오러」로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몸에 힘이 빠지고 감각이 무뎌졌다.
부족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재생」까지 억눌러 전신은 피투성이였다.
[크크큭. 포기할 생각이냐, 잡종?]앞에 선 악마가 대검으로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할리를 조롱했다.
“카하핫! 일대일로는 쪽도 못 쓰는 주제에 입만 살았구나! 덩치가 아깝다!”
[헛소리! 네놈의 품에 있는 제물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널 토막 냈을 거다, 잡종!]발끈해서 이를 드러냈던 악마가 멈칫하더니 다시 대검을 똑바로 쥐며 이죽거렸다.
[아무래도 시간을 끌 속셈인가 본데. 어림없다!]그리고 곧바로 대검을 휘둘러 왔다.
그와 맞춰 동시다발적으로 할리에게 쏟아지는 공격들.
“틀린 말은 아닌데? 이쪽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지만! 하핫핫!”
할리는 「야성」을 통한 감각으로 사방의 공격에 대응하면서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한쪽에 몰려있는 흑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그 위치를 눈에 각인시키듯이.
그 직후.
팟—
“···뭣?!”
“신성력? 갑자기?”
흑마법사들이 뭉쳐있는 곳의 바로 위에 섬광이 터져 나온 것과 놈들의 기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동시였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허공에서 나타난 하인리히가 몸을 튕겨 전신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는 중이었다.
주교급에 가까운 신성력으로 뽑아낸 커다란 빛의 검을 두 손에 쥔 채로.
스카카카칵—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날카롭게 벼린 상극의 기운이 수차례나 이어지며, 순식간에 주변의 방어막을 갈아버렸다.
「축복 : 강체」에 덧씌워진 대주교의 강화 성법, 근접에 특화된 온갖 스킬들.
전력을 다한 하인리히의 빛의 검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이 늦은 이들의 전신을 유린했다.
“크헉!”
“이게 무슨···!”
그 신성력의 폭풍 속에서 무사한 이라고는 찰나의 순간에 반응한 한 명뿐.
나머지는 운 좋게 외곽에 있어 휩쓸리지 않은 이들이었다.
“네놈! 어떻게···!”
하인리히의 기습에 반응했던 한 명.
적의 수괴로 보이는 노인이 용암같이 붉어진 얼굴로 볼을 푸들거렸다.
그의 ‘어떻게’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지만···.
“하압—!”
물론 대답해 줄 의무가 없는 하인리히는 개의치 않고 남은 흑마법사들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흑마법사 무리 중 절반 이상이 첫 기습에 즉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제어가 풀려 혼란에 빠진 주변의 몬스터들.
계약자를 잃어 사라지는 소환수와 살아남은 이들을 지키기 위해 급히 이동하는 소환수까지, 전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크윽! 이노옴—!]대검의 악마가 급하게 하인리히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악마와 맞서고 있던 할리는 순간적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해방감.
「괴식」을 통해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에겐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할리의 다리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순식간에 보석 인간에게 쇄도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저놈만은 놓칠 수 없었다!
“하핫! 어딜 한눈을 팔고 계시나?”
그가 버젓이 남아있음에도 다른 곳에 시선이 팔려 있다니!
할리는 그대로 달려들어 보석 인간에게 오른손을 찔러 넣었다.
녹광이 반짝이는 이마의 눈동자에 할리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전투 내내 최후방에서 다른 이들의 보호만 받던 놈이다.
원거리 공격과 지원 타입인 놈의 염동력은, 바로 앞에 접근한 그의 근력을 이겨낼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콰직!
날카로운 벼려진 할리의 손톱이 순식간에 보석 인간의 이마로 파고들며, 수은과도 같은 은빛 액체가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카하하핫—! 드디어 잡았다, 이놈!”
이놈 때문에 한쪽 눈을 잃었다.
애꾸눈 야만 전사라니!
물론 그것도 멋질 것 같기는 하지만···.
‘아니, 역시 아직 일러. 그건 좀 더 연륜이 쌓였을 때 생각해 보자.’
하지만 다른 부위면 모를까, 지금의 재생력으론 눈처럼 복잡한 기관이 새로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초재생」이었으면 순식간에 수복됐을 텐데. 그래도 「돌연변이」가 있으니 적당한 눈을 이식하면 될 것 같긴···. 가만?’
이왕 새로 이식할 거, 성능이 좋은 걸로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지금 그의 손아귀에 있는 이런 거라던가.
“어이, 너. 눈 좋은 거 쓰더라?”
마침 이 녀석은 눈도 세 개였다.
이쪽은 놈 때문에 눈 하나를 잃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불합리한 상황.
따라서 하나 정도는 그가 가져가도 괜찮을 터.
이건 엄연히 정당방위였다.
“하하핫—! 좋은 건 같이 쓰자고!”
그대로 망설임 없이 영롱한 녹색 빛깔의 보석을 뽑아냈다.
[——!]묘한 진동음을 내는 보석 인간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전신을 구성한 광석이 빛을 잃으며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아, 통째로 팔면 비싸 보였었는데. 아까워라.’
이제는 그저 칙칙한 광석 무더기로 보일 뿐이었으니.
아무래도 이마의 보석이 그 존재의 근원이었던 모양이다.
‘이게 규소 기반 생명체인지 하는 놈인가?’
지금까지 봐 왔던 생명체와는 확연히 다른 특성.
어디선가 주워들은 지식이 떠올랐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는 판타지 세계인만큼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할리는 손에 쥔 보석을 힐끔 바라보았다.
매끄러운 광택이 흐르는 눈알에 섬세하게 조각된 듯한 눈동자.
생체 조직이라기보단 그냥 영롱한 보석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는 손에 들어온 보석을 그대로 자신의 비어버린 왼쪽 눈에 집어넣었다.
생각대로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해 보면 알겠지!’
지금은 야만 전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의 본질은 다른 유전자를 탐해 거듭된 진화를 추구하는 생물의 정점.
육체의 구성 성분이 다르긴 했지만 놈도 생명체라면 할리가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확실히 단순한 보석은 아니었는지, 「돌연변이」가 발동하며 보석에 시신경이 연결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구조가 너무 달라서인지 제대로 호환되지 않는다.
「마인드 허브」로 안구 부위의 극심한 통증이 감지되었다.
왼쪽 눈 주변의 핏대가 서고, 주변 근육이 경련하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 이건 안 되는 건가? 종이 너무 달라서?’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잠시.
“핫!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까지 그가 먹어 치운 마수와 몬스터들이 몇이던가?
그들은 언제 종이 비슷해서 그의 양분이 되었던가?
이 눈은 결정화되어있지만 생체조직의 일부였다.
거기다 이미 자신과 하나로 연결된 상태.
그렇다면, 이건 이미 자신의 것이다.
꾸드드득—
할리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정신력을 동원한 강한 암시가 이어지고.
시신경이 연결된 부위의 보석이 「육체변이」의 영향을 받아 변화했다.
보석처럼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를 제외한 부위가 하얗게 변하며 인간의 눈처럼 말랑말랑해졌다.
그리고···.
《새로운 신체를 이식했습니다. 특수스킬「돌연변이」의 영향으로 스킬「보석안 : 염동」을 획득합니다.》
“와하하핫—! 역시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다니까?”
어느새 평범한 야만 전사의 모습으로 돌아온 할리.
그는 어깨를 활짝 펴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몬스터 고기를 씹어 에너지를 회복했다.
물론 그가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휘이이잉—
삽시간에 몰아치는 엄청난 폭풍이 일대를 휘젓고.
화아악—
찬란한 광휘가 주변 일대를 뒤덮어 공간을 차단했으며.
“골통을 깨부숴 주마 이단 놈들아! 하하핫!”
“하압!”
두 명의 팔라딘까지 전장을 휩쓸기 시작했으니까.
[크워어어!]그때 흑마법사 쪽에서 전신에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악마가 등장해 그들과 충돌했지만, 그나마도 오래 버틸 수는 없어 보였다.
‘세실리를 온전히 회수하려고 지금까지 꺼내지 않았던 놈인가···.’
확실히 사방에 불길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아하니, 저 녀석은 특정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데엔 적합하지 않았다.
주변을 모조리 파괴하는 거라면 모를까.
‘그래봐야 지금은 사냥당하는 신세지만···. 악마들은 소환체라서인지 먹을 수 없어서 아쉽단 말이지. 저놈 고기라도 좀 먹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미 앞서 몇 마리의 악마를 먹으려고 시도해 봤지만, 전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뿐이었다.
놈들을 먹기 위해서는 마계까지 찾아가 본신을 노리는 수밖에 없겠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할리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와중···.
“엇! 깜박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앞가슴에 매달고 있던 가죽을 풀어 헤쳤다.
용케 끊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가죽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축 늘어진 엘프 소녀가 튀어나왔다.
이젠 불쏘시개로밖에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 하나를 꼭 쥔 채.
“어이~ 아가씨, 괜찮아?”
숨은 쉬는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걱정스러워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그렇게 몇 차례나 불렀을까.
“답답해···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요···.”
세실리가 웅얼거리며 꿈틀거렸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는 듯했다.
“핫핫핫! 무사하니 다행이군!”
그는 태평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던 거대한 악마가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목표 완수. 이번 임무는 스릴 있었네.’
전투를 통해 그도 제법 성장할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물론, 얻을 게 여기서 끝은 아니지.’
전장이 정리되고···.
주변에 바람을 두른 라포리와 엘프들이 하늘을 날아, 할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