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58)
#58
뜻밖의 행운 (2)
할리는 엘프들과 헤어진 후, 언제나처럼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타라크의 시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정령이라는 거, 굉장히 편한데?’
바람의 정령으로 이동을 보조하는 것은 물론, 물의 정령으로 몸을 씻기는 것까지 가능했으니.
그는 자신의 깨끗해진 몸을 둘러봤다.
타라크로 이동하기 직전에 엘프들에게 받은 서비스.
직접 경험하고 나니 그에 대한 욕심이 더욱 커졌다.
‘그런데 장비들이 많이 상했네. 조만간 새 걸로 구해야겠군.’
그 와중에 손상된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단한 흑철강 도끼들은 이가 나간 것은 물론, 실금이 생긴 곳도 있었다.
맹수 이빨을 엮어 만든 목걸이는 전투 중 줄이 끊어져 온데간데없었고, 검은 표범 투구는 완전히 누더기가 되었다.
···사실 그게 전부였다.
애초에 착용한 장비들도 별로 없었으니.
‘그것도 전부 장식용이지. 뭐, 도끼야 이제 제법 쓸 만해졌지만.’
「육체변이」의 특성상 몸에 맞춘 장비를 입을 수 없는 할리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야만 전사 컨셉이 찰떡이었다.
그의 진짜 무기는 괴물 같은 육체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맨발로 거리를 거닌 그는 시내 한편에 위치한 평범한 주택으로 향했다.
덜컥—
자신의 집인 듯 힘차게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선 할리.
하지만 안에 있던 집주인은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를 맞이했다.
할리 이후에 타라크에 전송된 아바타, 휴버트였다.
“와하핫—! 「감정」이 있으니까 바로 물건을 확인할 수도 있고 편하군!”
그의 왼쪽 눈동자에 초록빛이 반짝이고, 들고 있던 물건들이 허공을 날아 자연스럽게 휴버트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눈을 이식함으로써 사용할 수 있게된 「보석안 : 염동」.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할리에게 호환된 덕분인지 그의 생체 에너지로도 발동할 수 있게 된 염동력은 생각 이상으로 쓸모가 있었다.
이제 그에게도 원거리 공격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기도 했고···.
‘몸도 띄울 수 있으니 말이지. 거기다 이젠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오드아이로 보일 뿐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변이」에 동화된 보석안은 얼핏 보면 평범한 녹색 눈동자로 보였다.
물론 여전히 미묘한 이질감은 남아있지만, 그 정도야 큰 문제도 아니었다.
‘온갖 인종과 종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거기다 이 험상궂은 덩치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따질 사람도 없을 테고.’
할리가 그렇게 염동력을 시험하는 동안 휴버트는 곧바로 물건들의 감정에 들어갔다.
-뛰어난 거장이 세계수의 가지로 다수의 정령석을 엮어 만든 팔찌. 착용자의 자연력과 정령 소환을 보조함과 동시에, 속성 친화력과 저항력을 크게 증폭시킨다. 이전 사용자의 영향으로 정령석에 바람과 번개, 대지의 성질이 강해졌다.
-한때 세계수의 일부였지만, 지금은 기운을 무리하게 사용한 나머지 원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여러 가지 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흐음··· 애매하군.”
세계수의 가지야 기념품 용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둘째 치고, 팔찌도 사용처가 마땅치 않았다.
물론 라포리는 자신이 가진 물건 중 가장 귀한 걸 내어준 거겠지만···.
‘성능 자체는 좋은 것 같은데. 쓸 수 있는 아바타가 없네.’
정령사에게는 최고의 보물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겐 정령사가 없었다.
욕심과는 별개로 정령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별로 없었고.
지구의 귀환자 중에서도 정령사는 유난히 적은 편에 속했다.
대자연의 존재인 정령과의 친화력은 아무래도 살아온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곳에서 자연과 벗 삼아 살아왔다던가, 그쪽 계통의 고유스킬이라도 각성하지 않는 한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내 아바타는 본체와 같은 조건으로 생성된단 말이지.’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오며 인스턴트식품을 입에 달고 살아온 그에게 자연과 친화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증폭’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가진 게 있어야 효율적인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어쩌면 그에게도 숨겨진 정령 친화력이 있지 않을까?
휴버트는 자기 손목에 슬쩍 팔찌를 끼웠다.
그것이 불편하지 않게 자동으로 사이즈가 조절되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
손목의 팔찌에 집중하며 자연력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평온해진 마음에 떠오르는 산과 바다를 비롯한 자연의 심상.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휴버트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개뿔, 아무것도 안 느껴지네.”
···그래도 첫 시도니까, 계속 차고 있다 보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어차피 따로 쓸 사람도 없으니 휴버트가 계속 착용하기로 했다.
할리가 가지고 있다간 그 전투 스타일 때문에 언제 망가질지 몰랐으니.
그렇다고 아크리치 한스나 뱀파이어 하인즈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차피 이제 내 기본 수준도 쉽게 비명횡사할 수준은 아니니까. 최소한 휴버트가 기습당하더라도 죽기 직전에 소환 해제할 수 있을 정도는 되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팔찌를 찬 손목은 잘 가리고 다녀야겠지만.
사업을 시작하면 여러모로 노려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그 문제도 이번에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은데.’
곧 할리가 주신교단과 인연을 맺은 것이 용병 길드를 통해 알려질 테니, 그와 동업자의 신분으로 사업을 시작하려 했던 휴버트 입장에서는 큰 호재였다.
현대가 아닌 만큼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신경 쓸 점들이 많았다.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단순히 자본뿐만 아니라 무력이나 인맥 등이 필수.
그 때문에 할리의 활동 지역인 타라크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그 이름을 빌려 외부의 간섭을 차단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인물이 교단과 인연까지 있다? 이건 게임 끝이지.’
일단 교단의 이름으로 정식 공표되면, 그 인연이 크든 작든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는 함부로 건들 수 없는 부담스러운 인물이 될 터.
그가 함께 참여한 사업을 건드리는 데에 한 번이라도 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할리가 동업자로서 쏠쏠한 성과를 얻는 동안, 휴버트는 시장 조사를 하며 팔 만한 물건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일단 시작은 후추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우테리카에서 후추의 최대 생산지는 대륙 남동부.
타라크는 서북부 지역이니 운송에 따른 가격 차도 가장 크다.
‘몬스터 산업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상인들을 비롯한 유동 인구가 많으니 상품만 좋으면 문제없어. 주 소비자가 될 고위층인 마탑 지부가 많기도 하고.’
계획은 모두 세워둔 상황.
“으엇차~! 피곤하구만!”
할리가 집 안의 침대로 기어들어 가는 동안, 휴버트는 이번에 구매한 마도구와 세계수의 가지를 챙겼다.
이제 지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
“흐음··· 기념품으론 나쁘지 않네.”
나는 집구석에 처박혀 있던 말라 죽은 식물이 담긴 화분에, 세계수의 가지를 꽂아 넣었다.
물까지 한 컵 부어주자, 기분 탓인지 벌써부터 뭔가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뭐, 이건 됐고. 교역품은 하인즈를 통해 혈맹에게 준비시키면 되겠지. 마도구 판매도 그쪽을 통하면 될 테고.’
기껏 쓸 만한 세력을 집어삼켰는데, 이럴 때 쓰지 언제 쓰겠는가.
‘헤테로시스를 키우는 건 순조롭고, 브로코슬락 클랜은 아직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
틈틈이 벌인 하인즈의 탐색 활동으로, 탈리아 왕국의 뱀파이어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다.
「은폐」와 「투명화」로 몸을 숨기고, 「간파」로 정보를 수집한 결과···.
어이없게도 놈들이 대귀족의 저택을 통째로 본거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 귀족이 클랜 로드일지도 모르고.’
상세한 정보를 완벽히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하인즈의 최우선 과제는 우선 헤테로시스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었으니까.
본격적인 클랜 접수 작업은 그 이후 이뤄지게 되리라.
“흠흠··· 자, 그럼···.”
이번에 큰 사건을 겪었으니, 카르마를 정산할 차례였다.
‘본격적으로 아우테리카 활동을 하기 전에 카르마 포인트가 30만이 좀 넘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있었던 주요 사건.
하인리히가 성기사로 서임 받아 교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한스의 비밀 연구실에서 할리가 완성되고, 마물을 사냥하며 성장해 야만 전사로서 용병이 되었다.
‘여기까진 딱히 특별한 일이 없군.’
대부분 개인적으로 성장한 시간에 가까웠으니, 세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럼 이번에 얻은 카르마의 대부분은 하이 엘프 후보인 세실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거라는 말인데···.
『카르마 상점』
『고유스킬 강화 (800,000)』
『스테이터스 강화 –상세 보기』
『보유 카르마 – 668,189』
‘애매하군. 세실리는 아직 후보라 그런가?’
엘븐 킹덤과 하이 엘프 라포리, 주신교단의 성녀를 비롯한 고위층까지 엮인 일치곤 좀 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당장의 카르마가 전부가 아니었지.’
저번에도 경험했듯, 카르마는 그가 끼친 영향이 이후 세계에 변화를 줄 때마다 유동적으로 증가했었다.
그 말은 이후 세실리가 정식으로 하이 엘프가 되고 뭔가 큰일을 할 때마다 그의 카르마에도 영향을 준다는 소리였다.
아마 이번 일에 엮인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터.
‘이젠 상관없겠지. 어차피 조만간 카르마를 폭증시킬 수 있는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으니.’
당장 고유스킬을 강화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운명의 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
“무례한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라포리 님.”
“아닙니다. 중요한 사안이라는 건 저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교단 측에서 준 도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녀의 사과가 연신 이어졌다.
일을 진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라포리가 교단의 ‘침묵의 축복’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하이 엘프는 엘븐 킹덤의 수뇌부였기에 이는 외교적 결례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시원하게 수락했다.
그만큼 이번에 교단에 진 빚이 컸다고 여긴 것이다.
저벅저벅—
그들은 지금 복잡한 통로를 지나 교단의 심처로 향하는 중이었다.
성녀와 라티우스 대주교, 하이 엘프 라포리.
그리고 이단심문관장과 하인리히까지 다섯 명.
‘설마 진짜 나까지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당연히 이제 성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들어올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아무리 그의 신성력이 주교급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불사왕의 파편에 접근할 수 있는 최소한도는 대주교급 이상.
그 때문에 라티우스 대주교는 이번에도 우려를 표했지만, 하인리히가 바로 직전에 세운 공이 있어서인지 크게 반대하지는 못했다.
당시에 대주교 본인도 주신의 인도가 있었다며 크게 감탄하지 않았나.
물론 성녀라고 마음대로 그를 봉인지에 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쪽으로.”
앞장서서 일행을 이끄는 검은 후드와 사제복을 입은 자.
이곳의 총책임자인 이단심문관장이었다.
이곳은 성녀의 관할이 아니라 그의 허락이 없으면 그 누구의 출입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규율에 철저한 그도, 이어진 그녀의 말에는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으니···.
‘주신께서 하인리히 경을 불사왕의 대적자로 삼으시려는 것 같아요.’
성녀의 말에는 커다란 무게가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엄청 꼭꼭 숨겨져 있네.’
기존에 알고 방비하던 지하 통로는 시작에 불과했다.
미로처럼 얽힌 복잡한 복도, 특정 조건에서만 열리는 비밀의 문, 곳곳에 깔린 성법 함정과 결계까지.
대체 어떻게 이런 공간이 숨겨져 있었나 의문일 정도로 길고 복잡한 복도가 이어졌다.
‘···성법 결계. 그것도 내가 파악할 수 없는 아득한 수준의···.’
그도 「아우테리카 성법」을 습득한 만큼 제법 성법에 조예가 있었지만, 이건 그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정식 통로를 통하지 않고는 벽을 부숴서도, 땅굴을 파서도 도달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공간.
그런 곳의 한가운데에 마지막 ‘불사왕의 파편’이 봉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짜 교단을 무너뜨리고 차근차근 통로를 찾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겠는데? 그게 가능할 리도 없지만.’
통로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중간에는 여러 개의 게이트 중 하나를 발동시켜, 단거리 이동을 통해서야 다음 장소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 강박적인 보안을 거친 끝에 도달한 장소.
“이곳···.”
일행은 마지막 보안을 해제하고 방 내부로 들어서는 이단심문관장의 뒤를 조용히 따라 들어갔다.
‘대단하군.’
순백의 방 내부 전체에는 흑마력을 억제하기 위한 금빛 기도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열고 들어왔던 문짝에까지.
그리고 그 중앙에 있었다.
신에게 바치듯 쌓아 올린 제단 위.
주변을 둘러싸듯 세워진 다섯 개의 기둥에 연결된 가느다란 은빛 쇠사슬에 감싸인 그것.
‘저게 마지막 불사왕의 파편···.’
하인리히의 코앞에, 그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