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6)
언데드 (1)
허탈하게 웃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사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한스가 사망했다.
아예 연결이 끊겨서 역소환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명상을 하며 스킬을 이리저리 시도해 보다가 「아바타」에 대해 몇 가지 더 자세히 깨닫게 되었다.
아바타가 사망하면 일정 기간 후에 재생성이 가능하리라는 것.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아바타는 이전까지의 쌓아 온 모든 것이 초기화된 새로운 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사망한 개체야 며칠 빡세게 운동한 것이 다였으니 크게 아쉬운 것은 없지만, 입맛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원인을 파악해야 할 때였다.
안전한 마을에 있던 한스가 어째서 사망했는가?
그것도 아무리 깊게 잠들었다지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순간에?
‘뭐, 생각해 보나 마나 뻔한 문제지만.’
단순히 외부의 습격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중간에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겠는가?
‘그 노인네가···.’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위험하다는 숲에서 표범 한 마리만을 마주쳐서 어떻게든 쓰러뜨릴 수 있었고, 근처에 작은 마을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만난 촌장이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확실히 안일하기는 했다.
생판 모르는 땅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다.
마을에서 만났다고 게임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해한 NPC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경계하고 날을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뭐래도 이쪽에서 먼저 찾아가서 신세 지는 입장이 아니었던가.
‘뭘 어떻게 한 거지? 술에 뭔가 약을 탔나? 수면제? 하지만 잠들기 전까지 특별한 이상을 느끼진 못했는데···.’
심지어 그 술은 촌장과 같이 나눠 마셨으며, 마시기 시작하고 한참이 지나도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
혹시 그냥 내가 오해를 하는 것뿐이고, 뭔가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 것은···.
짝!
거기까지 생각하다 말고 뺨을 때려 정신을 차렸다.
사실 내가 본 손해는 크지 않았다.
한스의 며칠간의 노력과 그로 인한 식비, 딸려 보냈다가 잃어버리게 된 소지품이 다였다.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한스를 잃게 됨으로써 「아바타」에 대해 더 자세히 파악하게 된 것은 큰 성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며 안일하게 굴 수는 없었다.
이세계의 위험성은 평균 귀환율 20%라는 통계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 내가 겪은 일만 하더라도, 넘어간 것이 아바타가 아니었다면 이세계로 간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아 사망하고 모든 게 끝이었을 것이다.
이제 대응 방법을 생각할 때였다.
다른 아바타를 보낼까? 이계전송진도 하루의 쿨타임이 있어서 당장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어떤 위험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곳에 다시 보내기도 꺼려진다.
다른 곳으로 보내? 전송진으로 보낼 수 있는 곳은 이전 아바타가 지나왔던 데로만 가능했다.
마을과 멀리 떨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위험하다는 숲의 한복판인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이세계의 아바타와 다시 연결되었다.
***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촌장의 목소리였다.
“쯧··· 쓸 만한 놈인 줄 알았더니 영 맹탕이었구만.”
“그러게나 말입니다. 마물의 숲을 혼자 지나온 것도 그렇고, 일하는 것도 보아하니 뭔가 한 수가 있는 놈 같았는데.”
“고작해야 엘리트 스켈레톤(Elite Skeleton)이라니. 기대가 너무 컸나 보구만. 이만 가지.”
“네. 스승님.”
누군가와 대화하던 촌장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철컥하고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는지 딱딱하게 굳은 몸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딱—”
아니, 기분 탓이었다.
깨닫고 보니 딱딱하게 굳은 몸은 풀리지 않았고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시선을 내려 몸 상태를 체크하려는 순간이었다.
《개체의 종족값이 ‘언데드’로 변경되었습니다. 특수스킬 「부패한 심장」을 획득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문구를 떨떠름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내려 내 몸을 살폈다.
학교 다닐 때 양호실에서 보았던 인체 골격 모형이 여기에 있었다.
다시 자세히 살펴봤다. 팔뼈를 들고 갈비뼈 사이를 요리조리 확인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심장이 없는데···?’
「부패한 심장」이라며?
개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작명에 괜히 투덜거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촌장은 네크로맨서였고, 나를 살해한 뒤 그 시체를 언데드로 되살려냈다.
그리고 ‘한스’는 움직이는 해골인 엘리트 스켈레톤이 되었다.
-개체명 : 한스
-종족 : 언데드 (엘리트 스켈레톤)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초회복」
-개체 특성 : 「부패한 심장」, 「마력 친화」
-특이 사항 : 금단의 술법으로 언데드화 되었다. 죽음, 독, 저주, 환상 등 모든 부정적인 효과로부터 면역. 「마인드 허브」의 영향으로 정신 오염이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진다. 뇌가 없으니 기분 탓이겠지만.
그러다 이내 신세 한탄을 멈추고 주변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을 뿐, 어차피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바타였으니 달라질 것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이전과 달라진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 빛 한 줌 없는 어둠 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훤히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걸 ‘본다’고 해야 할까.
혹시나 싶어 눈구멍에 손가락뼈를 넣어봤다.
음, 역시 휑했다.
눈구멍을 휘적거리던 손가락을 빼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눈알이 없음에도 보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눈동자의 초점 때문에 시야각에 제한이 있는 인간과는 다르게, 눈구멍이 향한 전면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변의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내 뒤통수 쪽에서 쥐구멍을 들락거리는 쥐 한 마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것도 「부패한 심장」의 효과 중 하나일 것이다.
대충 확인해 보니 정신 공격과 냉기에 대한 내성부터, 언데드 감염과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증오까지 일반적인 ‘언데드’의 특성들을 포함한 스킬이었다.
‘나야 「마인드 허브」로 부정적인 효과들은 거를 수 있으니 상관없겠지.’
내가 있는 곳은 커다란 지하창고인 것 같았다.
낡은 지하실 같은 주변을 대충 둘러보고 쥐가 느껴졌던 곳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아 깜짝이야! 뭐야 이것들은!’
그곳에는 나와 같은 언데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중간에 잡동사니들이 쌓여있었고, 어둠 속에서 미동도 없이 멍하니 서 있어서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좀비부터 시작해서 활을 들거나 갑옷을 입고 무장한 뼈다귀들까지.
그렇게 잠시 살펴보고 있자니 아까부터 느껴졌던 쥐가 쪼르르 나와 좀비 한 마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달랑달랑 매달려 있던 새끼발가락 하나를 물고는 다시 쥐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으··· 디스거스팅···.’
그렇게 진저리를 치다가 좀비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눈에 밟혀 자세히 살펴봤다.
···성인남녀는 물론이고, 노인들과 아이들까지 있었다.
‘이 새끼들이 설마···.’
기억을 되돌렸다.
마을에 들어왔을 때부터 다음날 마을을 돌아다니며 봤던 풍경들.
···그 어디에도 아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처음 보자마자 화전민 마을이라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인 마을에 딸린 밭.
마을 일을 돕겠다고 돌아다니면서,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농사에 대해 알지도 못하다 보니 무심코 넘어갔었지만···.
‘이 새끼들이 마을 하나를 통째로 잡아먹고 눌러앉았구나!’
놈들의 악독함에 치가 떨린다.
동시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함에 한숨이 나왔다.
‘물론 한숨은 못 쉬지만. 아니, 이건 이제 그만!’
이 마을 전체가 흑마법사들이 점령한 적지나 다름없었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사처럼 보이는 언데드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화전민 마을로 위장해서 주변의 시선을 속이고 뭔가를 꾸미고 있던 놈들이겠지.
나는 괴물의 아가리 속인 줄도 모르고 신나서 쫄래쫄래 들어간 먹잇감이었을 것이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촌장이 묻던 질문들도 내가 갑자기 사라져도 문제가 없는 사람인지 파악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하루의 유예는 이놈을 잡아먹어도 탈이 안 날지 살펴보는 과정이었으리라.
‘이놈들을 어떻게 해야 처리할 수 있을까?’
살해당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나 이후 언데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물론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긴 했지만 이 정도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인드 허브」 덕분에 감정이 여과되어 충격이 크지는 않다고는 해도, 아이들까지 희생된 것을 보니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놈들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몰랐으면 모르되 알면서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언데드이니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은가?
내 뒤통수를 친 놈들을 엿 먹일 수 있으면 좋고, 해봤는데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일단, 정보부터 모아 볼까.’
어차피 나에겐 남는 게 시간이었다.
***
그 후 며칠간 내가 갇힌 지하창고를 수색했다.
그래 봤자 지구의 시간으로는 하루 남짓이었을 뿐이었지만.
입구는 원래 두 개였던 것 같지만 하나는 완전히 무너져서 사용할 수 없었다.
사실상 촌장과 제자가 드나들었던 통로 하나만 있다고 봐야 했다.
‘워우, 이게 전부 몇 마리야.’
그다음으로는 함께 있던 언데드들을 살폈다.
좀비들은 대부분 마을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보였지만, 온갖 무기들로 중무장한 뼈다귀들도 적지 않았다.
좀비들만 오십여 구. 해골기사를 비롯한 스켈레톤 병사들도 삼백 구는 되어 보였다.
철컥,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는 즉각 행동을 멈추고 다른 언데드들처럼 멍하게 섰다.
내가 언데드가 되어 이곳에 갇힌 이후부터, 2~3일에 한 번씩 촌장의 제자들이 번갈아 가며 내려와 창고를 확인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휴, 대체 언제까지 이런 산골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건지.”
투덜거리며 대충 창고를 둘러보는 이는 같이 마을 목책을 보수하며 한번 봤던 얼굴이었다.
이름이 제피라고 했던가.
어쩐지 그때도 열심히 안 하고 뺀질거린다 생각했는데, 흑마법사의 제자였구나.
“응?”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놈이 이쪽을 쳐다봤다.
‘눈치챘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패한 심장」밖에 없지만.
“이건 또 왜 여기에 있어. 하여간 나 빼고 일을 제대로 하는 놈들이 없어. [저쪽으로 이동해라.]”
순간 두개골을 울리는 음성과 함께, 몸을 강제로 움직이려는 힘을 느꼈다.
그리고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마음먹으면 충분히 무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다.
나는 몸을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힘에 거스르지 않고 순순히 다른 스켈레톤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정렬했다.
“뭐, 이상 없네. 근데 애초에 여기엔 우리밖에 없는데 귀찮게 왜 매번 확인하라는 거야? 노친네가 깐깐하게.”
빛나는 지팡이를 대충 휘적거리며 건성건성 확인하던 제피는 이내 투덜거리며 창고를 떠났다.
끼익— 철컥
나는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나서도 몇 시간 동안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조심스레 움직였다.
괜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방심하다가 덜미를 잡히는 것보다는 매사 조심해서 공들이는 것이 나았다.
‘한스’에게는 넘치는 게 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한 가지 큰 소득이 있었다.
제피가 내 몸을 조종했을 때 느껴졌던 힘.
굉장히 익숙한 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에 내 몸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힘이었으니까.
이 언데드의 육신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일반적인 생명체와는 달랐다.
애초에 근육도 없는 몸이지 않은가.
지금 내 몸에 흐르는 힘. 일명 ‘검은 마력’이 감각기관이나 근육 등을 대신해서 온갖 작용을 일으켰다.
이것도 「부패한 심장」의 기본효과겠지.
그리고 「마력 친화」를 가지고 있던 나는, 직접 몸으로 느낀 이 힘의 새로운 사용법을 따라할 수 있었고.
‘다른 언데드를 조종하는 방법을.’
공교롭게도 그런 내 주변에 마침 언데드들이 수백 구가 넘게 방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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