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62)
#62
대신전 습격 사건 (1)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죠? 지금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전력은 충분한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리 어느 정도 대비를 해 뒀던지라, 여유 전력은 충분합니다. 어차피 이번엔 최정예 인원들만 파견 보낼 예정이기도 했으니까요.”
기운이 탐지된 곳은 대륙의 서쪽 끝.
거리가 거리인 만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보낼 수 있는 인원수에는 제한이 있었다.
교단이 냄새를 맡았다는 낌새를 내비쳤다간 놈이 또 언제 어디로 도망갈지 몰라, 전처럼 탈리아 왕국에서 불사왕 토벌대를 소집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일정 수준 이하의 전력은 별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 탈리아 신전에선 성기사단과 대사제 이상의 전투사제만 지원받기로 했다.
“작전에 참여할 팔라딘만 넷, 대주교는 저까지 셋입니다. 이단심문관 측에서도 참여할 예정이지요.”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강자들을 몽땅 한자리에 불러들이는 작전.
로셀리아 대신전에서 상주하던 팔라딘 중에 세 명과 대주교 두 명이 참가하고, 서부에 파견 나가 있던 팔라딘과 대주교 한 명씩도 현장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또 각 성기사단과 전투사제 중에서 선별된 최상위권의 인재들이 함께 파견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제국의 제론 대신전에서 피레이 추기경께서도 함께하겠다고 밝히셨습니다.”
대륙에도 몇 없는 대신전의 최고 책임자인 추기경까지 직접 참전을 선언했다.
“음··· 하긴, 그분은 유난히 호전적이셨죠. 성기사 출신이시기도 하고. 첫 토벌전에 참여하지 못한 걸 상당히 아쉬워하셨다고 들었는데.”
“이번엔 마침 시간이 나신 모양입니다. 소수정예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니 마침 잘되었지요.”
로셀리아 대신전에도 두 명의 추기경이 있었지만, 그들은 불사왕과 관련한 문제는 모두 성녀에게 맡기고 대신전과 교단 전체를 운영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흠흠··· 이렇게 된 이상 저도···.”
“성녀님은 안 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잘라 말하는 라티우스 대주교.
“교황께서 노환으로 몸져누우신 지금, 성녀님께선 주신교단의 상징이십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자리를 지키셔야지요.”
“하지만, 추기경님들도 계시는데···.”
“안 그래도 대신전의 전력이 상당히 밖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니, 부디 성녀님께서 이곳을 지켜주시지요. 아무리 비밀리에 이뤄지는 작전이라고 해도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으니까요.”
“하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여파는 하인리히에게도 그대로 돌아왔다.
“흠··· 하인리히 랜드가드 경도 이번엔 성녀님과 함께 대신전을 지키는 게 좋겠네.”
“저도 말입니까?”
당연히 지금까지 이번 일에 깊게 개입해 왔던 만큼, 자신도 참여하게 될 줄 알았던 하인리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티우스 대주교는 그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 진중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성녀님께서 많이 상심하신 것 같으니 곁에서 말동무라도 되어주며 위로해 드렸으면 하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대주교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작전이 될 게야. 추기경께서도 함께 가는 만큼, 놈도 저번처럼 쉽게 도망가지는 못할 터. 아마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겠지.”
저번에 결계를 치고도 한스를 놓친 전적이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추기경까지 합세해 더욱 철저하게 대비를 할 것이다.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치게 되겠지. 나 또한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고.”
그리고 하인리히는 그런 전장에서 희생되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당장에도 작전에 참여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실력이기는 했으나, 그래봐야 이번에 선별된 성기사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대주교는 그의 진짜 가치는 성장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 있다고 판단했다.
가파른 성장세를 가지고 주신과 성녀의 관심까지 받는 영웅의 씨앗.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작전이 실패할 가능성도 생각해 둬야겠지. 우리가 전부 전멸할 가능성을.”
이미 충분히 과한 전력을 준비하고는 있으나, 앞으로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그때가 온다면 성녀와 하인리히가 교단의 희망이 될 수 있을 터.
“···알겠습니다. 대주교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고맙네, 이해해 주어서. 자네도 지금까지 각오를 다지고 있었을 텐데.”
결연한 표정을 짓는 라티우스 대주교의 모습에 하인리히는 그저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음, 그··· 열심이신 모습이 보기 좋네.’
게이트를 통한 전송은 성녀를 비롯해 작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제들이 총동원되어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선별된 소수정예만 파견된다고는 하지만 그 인원이 수십 명이 되다 보니, 그들이 전부 탈리아 신전으로 보내지는 데에는 하루가 더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하루 이틀로는 도착할 수 없는 거리니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숨어 있던 곳에서 그리 급하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진 않을 테니까요.”
라티우스 대주교는 로셀리아 대신전의 파견 인원을 통솔해 차근차근 일을 진행했다.
우우웅—
마지막 전송 인원이 대기하는 와중, 다시 게이트가 진동하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원에 포함된 대주교는 고개를 돌려 배웅하러 나온 이들을 바라보았다.
성녀와 하인리히를 포함한 일행들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는, 신념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게이트로 향했다.
그 비장한 뒷모습에는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뒤를 부탁한다’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편하게 바깥바람이나 쐬다가 오세요.’
하인리히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게이트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우웅—
진동하는 게이트의 푸른 소용돌이.
그렇게 모든 인원이 대륙 서부의 탈리아 신전으로 이동을 마쳤다.
***
[흐흠··· 탈리아 신전에 모인 이들이 이곳까지 도착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전부 정예인 만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탈리아 왕국의 수도부터 마물의 숲의 깊은 곳까지.
일반적으로는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해도 한 달은 넘을 테지만, 그들이 또 어떤 축복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당장 하인리히도 「축복 : 도약」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저쪽에서는 이동에 걸리는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싶을 것이다.
아마 탈리아 신전에서 합류하자마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곧바로 출발하겠지.
[이제 슬슬 준비해 볼까.]한스는 천천히 동굴을 나섰다.
화르륵—
그의 걸음걸이마다 지옥의 불길이 일며 동굴에 남은 모든 것들을 녹여버렸다.
실험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부터 시작해서, 내부에 남아 있던 온갖 결계의 흔적들까지.
[굳이 다른 정보를 내줄 필요는 없겠지. 크흣···.]그에 따라 결계들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미 그의 온몸에는 파편의 존재를 감출 수 있는 은폐장이 겹겹이 펼쳐진 상태였다.
‘그럼 어느 타이밍에 일을 시작하는 게 좋을까?’
지금이 로셀리아 대신전의 방비가 가장 허술해진 시점이었다.
그곳이야말로 한스를 잡기 위해 가장 많은 전력이 차출된 곳이었으니까.
‘거기다 게이트를 무리하게 가동하느라 사제들도 지친 상태지.’
파편 주위에 펼쳐진 봉인의 수준으로 봤을 때, 그것을 해제하는 것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아마 파편을 손에 넣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
그때를 대비해 대신전의 전력을 최대한 바깥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마침 하이 엘프의 탐색이 시작됐으니 시기도 적절했다.
일부러 기세를 드러내 유인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교단 측이 수상하게 여길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준비만을 갖춰둔 채 자연스럽게 발각당할 수 있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계전송진 쿨타임도 미리 맞춰둔 상태.’
이제 언제든 일을 벌일 수 있었지만, 한스는 그 자리에 선 채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를 잡기 위해 파견된 인원이 뒤늦게 연락을 받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도록.
[크흐흐··· 이제 시작이다.]달이 높게 떠오른 자정.
숲속을 비추는 달빛에 만물이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곳에는 더 이상 한스의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
《아우테리카 차원으로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빛이었다.
눈이 멀게 만들겠다는 듯 사방에서 뿜어지는 압도적인 광량.
[크흐,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대단하군.]몸에 두른 은폐장이 순식간에 빛에 타들어 가고, 주변에 맴돌던 흑마력들이 신성력과 힘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거 별로 좋지 않은데.’
온 사방이 한스에게 적대적인 공간이었다.
계속 이 상태라면 파편을 온전히 수습할 수 없었다.
되도록 평화롭게 일을 마치고 떠나려 했지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일.
한스가 지팡이를 위로 추켜세웠다.
[크하하핫! 모두 부서져라!]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흑마력이 한 곳에 밀집되고···.
해골 지팡이 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불꽃이 삽시간에 몸집을 키웠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신성력이 흑마법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이제 한스는 그 정도 방해에 흔들릴 실력이 아니었다.
화르륵— 콰과광!
커다래진 지옥 불꽃이 순식간에 여러 갈래로 나눠지더니, 황금빛 문장이 빛나는 사방의 벽면으로 향해 폭발했다.
후두두둑—
벽면의 문장이 떨어져 나가고 녹아내리며, 흑마력을 억누르는 기운이 약해졌다.
‘한결 나아졌군.’
애초에 내부에 있는 부정한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만들어진 봉인지였다.
직접적인 충격에 대한 대비는 덜할 수밖에 없는 노릇.
‘한 번 더!’
스으으— 파파팟!
한스의 주변의 땅이 검게 물들며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그곳에서 튀어나온 그림자의 칼날들이 사방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파손된 문장의 빛이 서서히 흐릿해지며, 그의 몸을 짓누르던 신성력이 약해졌다.
[크흣, 이제야 좀 속이 시원하군.]물론 직접적으로 공격해 오는 힘만 줄었다 뿐이지, 그는 결코 평소와 같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대체 몇 개의 신성 결계가 중첩되어 발동된 건지 모르겠네.’
한스의 침입과 동시에 대신전 전체에 설치되어 있던 온갖 종류의 결계가 동시에 발동했다.
‘서둘러야겠어. 그래도 진입로가 복잡한 만큼 교단 측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건 좋군.’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중앙의 제단으로 향했다.
‘그런데 여긴 그 와중에도 멀쩡하네.’
한스의 흑마법이 한바탕 주변을 뒤집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단과 그것을 봉인하는 기둥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파지직—!
그의 손길이 파편을 엮은 쇠사슬에 닿자 새하얀 스파크와 함께 불꽃이 일어 그의 팔을 뒤덮었다.
[흠, 그래. 그렇게 쉬울 리 없지.]한스는 흑마력을 일으켜 손에 달라붙은 불꽃을 털어내며 담담히 중얼거렸다.
[지금부턴 시간 싸움이군.]외부의 방해가 들어오기 전에 봉인을 풀고 파편을 회수해야 하니까.
그는 재차 파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
사건은 한밤중에 일어났다.
화아악—
대신전 곳곳에 새겨진, 그동안 장식이라고 여겨왔던 문양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고···.
“뭣?!”
“갑자기 이게 무슨!”
경비를 서던 성기사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바닥과 벽면, 천장을 가리지 않고 신성력이 담긴 문장이 떠올랐다.
공간을 단절시키고, 내부의 삿된 기운을 억누르며, 신성력을 가진 이들의 힘을 북돋는 종류의 신성 결계들.
이 순간, 로셀리아 대신전은 하나의 철옹성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침입을 허용한 뒤지만.’
함께 경비를 서던 성기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하인리히는 주변을 둘러보며 속으로 태평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그는 지금 봉인지로 향하는 통로에서 야간 경비를 서는 중이었다.
대신전을 지키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광휘수호 성기사단의 업무에 복귀하게 된 것이다.
토벌대에 참가하지 못한 만큼 다른 쪽으로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이 통로 경비에 지원한 것도 의도한 일.
거기에 그동안 업무를 빠진 것도 있겠다, 그것을 벌충하겠단 핑계로 모두가 꺼리는 야간 경비에 자원해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곳에 있으면 흘러가는 상황을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겠지. 한스가 봉인을 해제하는 동안···.’
그 순간.
[비사—앙—!]대신전 내부에서 머릿속을 울리는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비상 상황! 전 병력 전투태세! 준비가 갖춰지는 즉시 각자 위치로 집합!] [성기사단은 단장의 지휘에 따라 이동!]머릿속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음성.
몇 번 본 적도 없던 추기경의 목소리였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휘이익—!
그때, 한쪽에서 시커먼 복장을 한 이십여 명의 무리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그 선두에서 그들을 이끄는 건 저번에 한 번 본 적 있던 이단심문관장이었다.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긴 한데.’
다른 이들처럼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관장을 상징하는 배지를 통해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이 구역의 통행증이나 마찬가지였다.
통로를 지키던 하인리히와 동료 성기사가 황급히 자리를 비켜서자, 그들은 바람처럼 안쪽으로 사라졌다.
“···이거 보통 상황이 아닌 것 같군.”
옆에 있던 성기사가 굳은 목소리로 조용히 뇌까렸다.
그의 말대로.
로셀리아 대신전 역사상 최초로 허용한 내부 침입 사건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