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66)
#66
커스터마이징 (2)
‘엘프라··· 엘프가 될 수 있단 말이지?’
언데드나 뱀파이어처럼 인간에서 변화한 종족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종족으로 탈바꿈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곧바로 「커스터마이징」을 사용하자, 매개체는 일회용이었는지 손에 들린 가지가 부스러져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달리 눈앞에 반투명한 형상이 떠올랐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뾰족한 귀를 한 자신과 닮은 엘프의 모습이.
‘하인즈와는 다른 느낌으로 잘 생겼네.’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의 하인즈 2세와는 달리,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미남자였다.
‘···그래도 살짝만 손볼까.’
이 얼굴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연상하기는 힘들 테지만, 매사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도 아바타는 계속해서 늘어날 테니까.
한스는 해골이니 의미 없고 하인즈 2세와 할리는 자력으로 외모를 변경할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인연을 맺은 하인리히는 어쩔 수 없지만, 휴버트는 조만간 성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시간,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공들여 외형을 변경했다.
백옥 같은 피부에 금발과 녹색 눈동자, 장인의 마음으로 빚은 이상 속의 엘프 그 자체였다.
‘성별 바꾸기는 안 되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지만··· 아직 스킬의 숙련도가 부족하거나 다른 조건이 필요한 듯, 여성 아바타로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딱히 아쉬운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하니까. 정체를 더 확실하게 숨길 수 있기도 하고.”
아무도 듣는 이 없는 변명을 주절거리다 헛기침하며, 아바타 생성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초기 능력치를 재조정할 차례였다.
후보 직업군은 정령사와 궁수인데, 역시 어느 쪽도 포기하기 힘들었다.
‘그럼 둘 다 하면 되지.’
진짜 게임도 아니니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도 둘 모두 엘프들의 기본 소양이기도 했고.
‘능력치는 친화력 쪽으로 몰아넣자. 빨리 강해지기 위해선 일단 정령사 쪽이 유리할 테니.’
대부분의 능력치가 친화력으로 변환되었다.
물론 궁수도 겸할 생각이다 보니 신체 능력치는 많이 깎지 못했지만, 그 부분은 추후 단련으로도 성장시킬 수 있으리라.
‘회복력도 많이 떨어졌다지만, 공용 스킬로 「초회복」이 남아있긴 하니까 어느 정도 벌충은 되겠지.’
가진 회복력을 증폭시키는 스킬인지라 기본 수치가 낮으면 효과도 떨어지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렇게 여러 고민을 거친 끝에, 드디어 엘프 아바타가 생성되었다.
-개체명 : 해리스
-종족 : 엘프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초회복」, 「명경지수」
-개체 특성 : 「세계수의 아이」
-특이 사항 : 한성현의 일곱 번째 아바타. 세계수의 가지를 매개체로 엘프로 탄생했다. 「세계수의 아이」의 효과로 친화력과 자연력의 성장 속도가 대폭 상승한다.
아까 한스도 그렇고 해리스의 정보창에도 「즉사 면역」에 관련된 내용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특전으로 받은 능력은 개체 정보창에 표기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더 잘 생겼네.’
앞에 자리한 수려한 외모의 엘프 남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기분 탓인지 뭔가 주변에서 신선한 숲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커스터마이징」으로 탄생해서인지 초기 스킬도 매개체에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무작위로 부여되는 스킬이라기에는 너무 개체의 특성에 딱 맞아떨어졌다.
아마 「커스터마이징」의 추가 효과일 터.
이는 다음에 또 새로운 아바타를 만들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였다.
그런데 부드럽게 웃고 있던 해리스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서서히 찌푸려졌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불쾌한 느낌에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답답해···.”
뿌연 연기 속에 있는 기분.
그나마 있던 친환경 공기청정기가 사라지면서, 남아 있던 효과가 서서히 떨어져 바깥 공기의 매캐함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예민하네.’
본체로는 아무렇지도 않건만, 해리스는 주변 환경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무라고는 가로수와 한 줌의 공원밖에 없는 메마른 도시 한복판.
그저 이곳에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괴롭게 느껴졌다.
‘이 환경에 익숙해져서 본체의 자연 친화력이 떨어진 건가···.’
굳이 이런 환경에 오래 노출되어봤자 좋을 일은 없으니, 일단 해리스의 소환을 해제했다.
오늘 자 이계전송진은 한스를 대신전으로 보내며 사용한지라, 내일에나 아우테리카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드디어 하인리히가 정신을 차렸군.’
새 아바타 생성에 몰두한 지 몇 시간, 아우테리카의 시간은 이미 하루가 넘게 지나 있었고···.
치료실에 입원해 있던 하인리히가 눈을 떴다.
***
“으음···.”
“아! 하인리히 경, 정신이 드시나요?”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뜨자, 옆에서 한 여성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집중 치료실이에요. 하인리히 경이 이곳에 오신 지 꼬박 하루가 지났어요.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셔서 다행이에요.”
강아지 같은 인상의 치유 사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인리히의 몸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맨몸으로 그 정도 수준의 저주를 뒤집어쓰신 것 치곤 예후가 굉장히 좋으시네요. 강체의 축복에 회복력까지 원체 뛰어나신지라 후유증도 딱히 남지 않을 것 같고요.”
“그거 다행이군요···.”
사실 그것도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각본이었지만, 하인리히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직은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상태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요. 한 달 정도는 상태를 지켜보며···.”
“웃차~”
이런저런 설명을 시작하는 치유 사제.
그는 계속 가만히 누운 상태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답답해서 그대로 상체를 일으켜 세워 앉았다.
“아앗! 아직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돼요! 고통이 엄청나실 텐데!”
그녀의 말대로, 잠깐 움직였다고 「마인드 허브」에 걸러지는 정보량이 폭증했다.
이걸 그냥 버텨야 했다면 눈물 콧물을 쏟으며 데굴데굴 굴러다녀야 했으리라.
“아··· 좀 아프긴 한데, 이 정도는 참을 만합니다.”
“그, 그걸 참으신다고요? 아··· 아! 그래도 안 돼요! 누워요, 누워!”
잠시 당황하던 그녀는 기어코 하인리히를 억지로 자리에 눕히고 나서야 진정했다.
“단순히 고통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 저주는 정신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혀서, 당분간은 평소에도 차분히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어요. 스트레스에 취약해져서 사소한 자극에도 발작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음, 그런가요?”
물론 그것도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수준 높은 흑마법들 중에서도 그에게 별 영향이 없는 것만을 엄선해서 고른 저주였으니까.
‘「마인드 허브」로 ‘불사왕의 심장’의 정신 오염도 막아내는데 이 정도 수준이야 뭐···.’
그보다 지금은 자신이 기절한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에 대한 내용을 물어보자 치유 사제는 괜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여겼는지, 그냥 다른 생각 말고 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기엔 너무 답답해서 말이죠. 이대로 있는 게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데요? 간단하게라도 말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계속되는 하인리히의 고집에 그녀도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사망자는 없어요. 대신전의 결계 덕분도 있겠지만, 불사왕이 방심하고 여유를 부린 탓이 컸겠죠. 부상자는 많지만 전부 입원 치료 중이고요.”
그리고 마물의 숲으로 파견되었던 토벌대도 급히 귀환해 대신전의 보안이 한층 강화되었다고 한다.
이미 거하게 침입을 허용한 이상, 아마 당분간은 경계수위가 내려갈 일은 없으리라.
“이단심문관들은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느라 바쁜 상황이죠.”
불사왕이 침입한 경위를 알아내기 위한 현장 조사는 물론, 마물의 숲에는 현지의 이단심문관들이 일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급파되었다.
‘이번 사태로 엘프들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겠는데···.’
결과적으로 그들이 대신전의 방비를 낮추는 데 한몫한 셈이 되어버렸으니···.
당장 교단 측에서 대놓고 뭐라 하진 않겠지만, 지난밤의 소동을 지켜보기만 했던 그들은 자리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 이단심문관들이 한스의 비밀 실험실을 발견하고 나면 엘프들의 억울함도 풀리겠지.’
그들은 한스가 언제 어느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아낼 능력이 있었으니까.
“아! 하인리히 경! 깨어나셨네요!”
때마침 성녀가 치료실로 들어서다가 하인리히와 눈이 마주쳤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치유 사제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물러갔다.
“몸은 좀 어떠세요?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하지 않나요? 이렇게 일어나 계시는 것보단 푹 주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가 재워드려요?”
하인리히가 누워있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쉴 새 없이 호들갑을 떠는 그녀의 모습에 하인리히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가만히 있다간 정말로 성녀가 성법을 사용해 그를 재워버릴지도 몰랐으니.
“아, 괜찮습니다.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는 건데요 뭐. 오히려 제가 기절한 이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다죠?”
서둘러 화제를 돌린 효과가 있는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하인리히 경이 늦지 않게 불사왕을 쫓아버린 덕분이죠. 놈을 그 자리에서 해치우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모두 전멸하는 최악의 사태만은 면했으니까요.”
“모두가 힘을 합친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저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축복을 얻어 불사왕의 심장에 빛의 검을 꽂아 넣는 순간은, 마치 영웅담의 한 장면 같았어요!”
반짝이는 눈으로 공치사를 날리는 성녀와 쑥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겸양의 말을 하는 하인리히 사이의 공기가 부드럽게 풀렸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었던지라, 그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저는 지금 라포리 님께 갔다 오는 중이에요. 일이 이렇게 됐으니 다시 한번 불사왕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을 드렸는데···.”
라포리도 상황은 대충 파악하고 있던 터라, 성녀의 요청에 급하게 재탐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제까지만 해도 마물의 숲에 머물러 있던 불사왕의 기운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고 한다.
“물론 엘븐 킹덤 측을 의심하진 않아요. 라포리 님은 침묵의 축복까지 받으셨기도 하고, 애초에 그럴 이유도 없으니까요.”
타이밍이 공교롭기는 하지만, 엘프들을 의심하기보단 불사왕이 대신전의 방비가 약해진 틈을 절묘하게 노리고 들어왔다고 봐야 하리라.
여전히 ‘어떻게’라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긴 했지만.
“앗! 말하다 보니 너무 하소연만 늘어놓았네요! 환자이신데 괜히 신경 쓰이게!”
“괜찮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냥 누워만 있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요. 말동무가 되어주시면 저야 좋죠.”
이렇게 여러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 말이다.
이후 성녀가 다시 일을 보러 떠나기 전까지,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
이계전송진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하인리히가 입원한 지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우테리카 차원으로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해리스는 타라크의 거점에 머무르고 있던 휴버트 앞으로 곧바로 전송되었다.
그리고 휴버트에게서 그간 차고 있었음에도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았던 하이 엘프의 팔찌를 인계받았다.
“음··· 확실히 뭔가 느낌이 다르군.”
팔찌를 팔목에 걸자마자 오는 반응.
처음부터 친화력이 강한 상태였기 때문인지, 다른 아바타가 착용했을 때와는 느껴지는 감각 자체가 달랐다.
주변의 자연력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지고, 속성에 대한 감응력도 확연히 증가했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이건 그야말로 해리스를 위해 미리 준비된 장비였다.
‘그것도 더 업그레이드할 필요 없는 최종 장비나 다름없지. 무려 하이 엘프가 직접 사용하던 거니까.’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쓰다듬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알림이 떠 오른 것은, 그가 한참 느껴지는 감각에 심취해 있던 순간이었다.
《세계수가 자신의 아이를 바라봅니다.》
“어라?”
세계수가 해리스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내 분신이 거물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