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67)
#67
커스터마이징 (3)
“호오··· 과연, 소문대로 아주 질이 좋은 후추로군. 가공 상태도 깔끔하고.”
“직접 사용해 본 이들의 평가도 아주 좋습니다. 높으신 분들도 하나같이 만족하신다고 하더군요.”
“이 정도면 잘만 갖다 팔면 마진은 물론, 인맥을 다지는 데에도 그만이겠는데.”
휴버트의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공간 마도구에 가득 담아온 후추는 상당히 높은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후추 판매 초기에 근처의 대형 상단에 샘플을 보내고 이런저런 연을 맺어둔 것이 좋게 작용한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상대가 함부로 나오지 못하게 할리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교단을 통해 정식으로 용병 길드에 전해진 감사 인사는 할리의 유명세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명해진 만큼 시비가 걸리는 빈도도 전보다 늘었지만, 그 또한 새로운 마케팅이 될 뿐이었다.
‘그 흉악한 외모의 할리에게 싸움을 걸 정도면 나름대로 유명한 놈들이었을 텐데. 그런 이들을 맨손으로 접어 버렸으니···.’
타라크 용병계의 유명 인사가 된 할리.
그런 이가 동업자의 신분으로 있는 휴버트 상회도 나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 좋은 제품과 합리적인 가격, 한정된 물량을 이용한 마케팅. 또 유명인의 이름을 이용한 신뢰도까지. 이건 실패하는 게 이상하지.’
외부의 개입 또한 할리 덕분에 차단할 수 있었다.
대형 상단 등의 커다란 세력은 기본적으로 교단과 연을 맺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인맥을 통해 할리가 정말로 교단 상층부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휴버트 상회를 건드릴 생각을 접어 버렸다.
그들 입장에서는 작은 사업체 하나 꿀꺽하겠다고 교단에 밉보이는 게 더 손해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정보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은···.
“크헉··· 요, 용서를···.”
어두운 뒷골목.
험상궂은 사내들이 곳곳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할리, 이놈이 용서해달라는디?”
얼굴에 문신이 새겨진 산만 한 덩치의 사내가 한 파락호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털다가 옆쪽으로 말을 건넸다.
“용서? 이 새끼들이 그동안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제 와서 용서야?”
“이런 것들은 처음부터 뿌리를 밟아 놔야 다신 기어오르지 않거든? 내가 시범을 보여줄게.”
그의 말에 할리보다 먼저 반응한 것은, 마찬가지로 몸 곳곳에 문신이 있는 덩치 두 명이었다.
한때 그와 마찰을 빚었다가 이제는 형제처럼 가까워진 남부 전사들.
가장 큰 덩치의 루왕, 눈가에 칼자국이 있는 다오, 얼굴에 털이 가득한 투라바 세 사람이었다.
그들은 지금 할리를 도와 휴버트 상회에 개수작을 부리려던 파락호들을 밟아놓는 중이었다.
‘물론 무보수로 부려 먹는 건 아니지만. 돈도 많이 버는데 이런 데에 아낄 필요까진 없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으면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인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득이다.
돈 몇 푼으로 적극적인 협조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음, 그러고 보니 뭔가 할리의 인상이 조금 바뀐 것 같지 않아?”
“너도 그래? 난 뭔가 전보다 친근감이 느껴지는데.”
“그건 그냥 그동안 친해져서 그런 거 아녀?”
“그런가?”
일을 마치고 술 한잔하기 위해 이동하던 도중 별 의미 없이 나온 대화 주제였지만, 할리는 괜히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채지 못하게 찔끔찔끔 바꾸고 있었는데···.’
정말 그의 얼굴형이 처음과는 미묘하게 다를 정도로 변하는 중이었으니까.
남부 현지인들을 셋이나 만났으니, 이참에 그 특징을 자연스럽게 흡수할 기회였다.
뭔가 미묘했던 할리의 얼굴이 매일 조금씩 남부인의 인종에 맞게 수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하핫! 그게 다 우리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의미 아니겠나! 이제 정말 형제처럼 느껴지는 거지!”
할리는 넉살 좋게 껄껄 웃어대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화제를 넘겨버렸다.
그리고 들어선 술집 안에서 그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주제는 대부분 남부 지역에 관한 것으로, 현지인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주가 되는 아주 유익한 정보였다.
“···그래서 남부를 벗어나면 각인을 새기기 힘들단 말야. 주술사들이 대부분 그곳을 벗어나려고 하지를 않으니께.”
“가끔 다른 곳에서 마주칠 때는 있는데, 그때 자격을 증명하고 대가를 지불하면 새로운 각인을 새길 수 있지.”
그 중엔 그들이 자주 말하던 ‘각인’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가끔 멍청한 것들이 분수에도 맞지 않는 각인을 새기려고 드는 경우가 있는데, 어지간한 경우라면 주술사가 알아서 쫓아내거나 할 테지만···.”
“가끔 있단 말이제. 꼭 지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들이.”
협박, 회유, 매수, 속임수 등으로 억지로 몸에 각인을 새기는 경우가 있었다.
“괜히 자격 증명이 필요한 게 아닌데 말이야.”
각인은 단순한 문신이 아니었다.
육신에 흐르는 생명력과 마나, 당사자가 쌓아 올린 업을 엮어서 새기는 신비의 한 갈래였으니.
‘육체를 강화하는 생체 마법진의 일종인가?’
분수에 맞지 않는 각인은 수명을 갉아먹는 건 물론이고 근손실과 정력 감퇴, 노화와 탈모까지 온갖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한다.
“그래서 남부에서는 각인 하나 없으면 전사로 인정해 주지도 않아. 가장 기본적인 ‘전사의 각인’의 자격조차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뜻이니.”
그게 그들이 ‘자칭 남부의 전사’였던 할리에게 시비를 걸었던 이유였다.
벌거벗고 다니는 몸에는 장난 같은 낙서만 있을 뿐, 어디에도 각인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당장 얻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남부로 가기 전에는 꼭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는 상남자답게 커다란 잔에 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휴버트와 할리가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새롭게 타라크에 합류한 해리스는 며칠간 계속해서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끄응··· 뭔가 느껴지긴 하는데···.”
휴버트가 구해 놓은 거점에 틀어박혀 매일 명상을 통해 정령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엘프 아바타 해리스.
하이 엘프가 될 수 있을 줄 알고 기대했건만, 세계수가 바라본다는 알림 이후로 딱히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자연력인 것 같은데, 정령 계약은 어떻게 하는 거지? 아직 내 친화력이 부족한가?’
나무 등의 자연물을 통해 한 번 걸러져 맑고 깨끗하게 정화된 마나, 자연력은 정령 계약 시에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었다.
초기 능력치도 그렇고 「세계수의 아이」와 팔찌의 효과로 친화력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어떻게 정령사가 될 수 있을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러기보단 좀 더 자연력이 풍부한 숲속으로 가서 시도해 봐야 하나···?”
그동안은 엘프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곳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젠 밖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대충 후드를 눌러써서 귀를 가리면 되겠지. 정령을 계약하기 전에는 최대한 몸을 사리려고 했는데···.’
이온 대륙에서 희소한 종족인 엘프는 필연적으로 이런저런 문제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하이 엘프 후보였던 세실리도 그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갔던 것이 아닌가.
‘그래, 세실리처럼··· 응? 가만···.’
하이 엘프 라포리와 후보 세실리, 그리고 스물에 가까운 엘프 사절단까지.
그들은 아직도 로셀리아 대신전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탈리아 왕국의 이단심문관들은 마물의 숲에서 불사왕이 머물렀던 거처를 발견하고, 그가 대신전에 침입하기 직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또한 밝혀냈다.
여전히 그가 어떻게 대신전의 방비가 가장 취약한 순간을 알아차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처음부터 교단 측도 엘프들을 의심한 건 아니었으니까.’
일의 진상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한 것뿐이라, 엘프들에 대해선 교단도 처음처럼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제 일도 마쳤으니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한다고 하던데···.’
독학하는 것보다는 같은 엘프의 도움을 받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그들이 돌아가기 전에 조언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터였다.
‘좋아. 그게 좋겠다.’
해리스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로브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당당히 타라크의 신전으로 향했다.
그가 목적지에 다 와 갈 무렵, 옆의 골목에서 거대한 거구가 어슬렁거리며 접근했다.
가녀린 체구의 해리스와는 반대로 크고 우람한 몸뚱이.
위압적인 걸음으로 다가온 사내, 할리는 자연스럽게 그와 합류해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부 전사들과 술자리를 가지다가 해리스를 돕기 위해 시간을 내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걸어 곧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응? 할리 님이 아니십니까? 여기까지 무슨 일로··· 혹시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너무나 개성적인 모습으로, 그 존재 자체가 신분증인 할리를 알아보고 신전의 입구를 지키던 성전사가 말을 걸어왔다.
“하하핫—! 이번에 도움을 좀 받았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오. 안쪽에 이야기 좀 전해 줬으면 좋겠군!”
그렇게 해서 마련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간단했다.
그리고 징표로서 자신이 사용하기 애매했던 팔찌까지 선물로 줬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도움 요청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합의가 끝난 사항이라, 할리의 이야기는 곧바로 로셀리아 대신전의 엘프들에게로 전달되었다.
***
우우웅—
이미 몇 번이나 이용해 본 게이트를 지나니, 마찬가지로 익숙해진 공간이 그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해리스 님. 로셀리아 대신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쪽만 일방적으로 얼굴을 아는 게이트 담당 대사제가 그를 반겼다.
그리고 해리스는 다른 사제의 뒤를 따라 바깥으로 안내되었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곳을 전혀 다른 신분으로 오게 되니 뭔가 어색하네.’
엘프들의 도움을 받기로 이야기가 되자마자, 그는 교단의 협조를 받아 며칠에 걸친 게이트 이동으로 로셀리아 대신전까지 도착했다.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안내받은 곳은 엘븐 킹덤에서 온 이들이 머무는 숙소였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엘프들이 한데 모여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엘븐 킹덤의 하이 엘프, 라포리 그랜우드라고 합니다.”
해리스가 들어서자 라포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 저는 해리스라고 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할리 님의 부탁이시기도 하고, 같은 동포의 일이니까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대답한 라포리는 해리스의 손목에 걸린 팔찌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 님이랑 절친한 사이이신 모양이군요. 그분이 호인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하신 부탁이 자신의 친구를 도와달라는 것이라는 말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아··· 상당히 친밀한 관계이기는 하죠.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랄까요···?”
절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팔찌는 원래 라포리 님이 사용하시던 거라고 들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 같아서 받기는 했는데, 불쾌하셨다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그것은 제가 감사의 대가로 할리 님께 드린 것이고, 그분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시든 제가 더 이상 관여할 문제는 아니지요.”
그는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오히려 그걸 저희 동포분을 위해 사용해 주셨다는 것에 재차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빛나는 눈으로 해리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왠지 부담스러워지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해리스 님이 원하시는 게 자연력을 다루는 방법과 정령과 계약하는 법이라는 말씀이시죠?”
“아, 예. 그렇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혼자 살아온지라, 그런 걸 알려줄 사람이 없더군요. 어떻게 조언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찾아왔습니다.”
“흐음···.”
라포리는 턱을 쓰다듬으며 다시 그를 가만히 쳐다보고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좀 과하게 친밀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 뭔가 눈치챈 건가?’
아무리 은인의 소개로 찾아온 타지의 동포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라포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 말입니다. 해리스 님만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에나멜 대륙의 엘븐 킹덤으로 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예? 에나멜 대륙으로요?”
“예, 저희도 조만간 돌아가게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짧게 조언만 듣는 것보단 그편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함께 가게 되면 정령술과 궁술 등 여러 가지를 좀 더 세세하게 교육받을 수 있을 거라고 은근히 유혹해왔다.
‘엘프··· 이종족··· 다른 대륙··· 새로운 모험!’
이런 좋은 기회를 굳이 거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흔쾌히 수락하려는 찰나, 라포리가 나직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엇보다, 세계수께서 해리스 님을 눈여겨 보이시는 것 같아서 말이죠. 아직 하이 엘프의 자격을 갖춘 건 아니지만, 적성 정도는 타고나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미묘했던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세계수께서는 해리스에게 관심이 많으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