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70)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
#70
각인 (3)
두 거한이 방문한 지 이틀째.
후루룩—
“후우···.”
노파는 따뜻한 찻물을 홀짝이며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오랜만에 남부의 전사들을 만나고 각인을 새길 준비를 하다 보니 감회가 새로워졌다.
사실 한 명은 정말 남부인이 맞는 지도 의문이었지만, 그런 것까지 그녀가 신경 쓸 필요는 없으리라.
사람들에게는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었으니까.
자신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마라키···.’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남부를 떠나 이곳에 정착한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유망한 전사였던 아들은 용병으로서도 제법 이름을 날리며, 도시에서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십 년 전 어느 날.
평소와 같이 북부 산맥으로 향한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그녀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홀로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냥 조용히 이곳에서 살다가 죽을 생각이었는데.’
미련 때문에 타라크를 떠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더는 생에 대한 의지도 없었다.
또 도시 내에서도 외진 주거지역에 있다 보니, 그간 동향 사람들을 마주칠 일도 없었는데···.
“할매! 우리 왔소!”
“하하핫—! 노인장 기력 보충 좀 하라고 고기를 싸 왔지! 든든하게 먹고 힘내 보자고!”
바깥에서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왔다.
노파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젊은 전사들과의 인연이었지만, 사실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들이 떠오르기도 했으니까.
“고기는 옘병. 이가 약해서 씹는 것도 시원찮구먼.”
괜스레 불평을 내뱉으며 투덜거리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
한바탕의 고기 파티가 끝나고 각인 시술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노파의 치아 건강을 생각해서 최대한 부드러운 고기를 준비해 오기는 했지만,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양을 먹어 치웠다.
‘남부인들은 대부분 육식에 대식가라고 하더니···.’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해도 남부인의 피가 어디 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씁— 오랜만에 고기를 먹으니 기운이 좀 나는구먼. 육질도 부드러운 것이 제법 고급품인 듯하고. 흘흘흘···.”
“하핫핫! 오늘 잘 부탁한다고 특별히 신경 써서 골라왔지.”
“걱정 마라 이놈아. 그 정성을 봐서라도 내 신경 써서 해 줄 테니.”
몬스터의 뼈를 갈아 만든 바늘을 비롯한 주술 도구에, 오우거의 피에 약품을 섞어 가공한 정체불명의 액체 등 온갖 기괴한 물건들이 준비되었다.
“넌 이쪽에 눕고···. 집중하는 데 방해되니까 거기 털복숭이는 밖에 나가 있는 게 좋겠구먼. 치료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반나절 후에 다시 오라고도 해 주고.”
“걱정 마쇼 할매. 내가 잘 말해서 돌려보낼 테니.”
털보가 믿음직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문밖으로 향했다.
“에잉··· 저, 저. 괜히 동네 사람들 겁만 주고 쫓아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먼.”
가볍게 혀를 찬 노파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작업대 위에 드러누운 할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허 참. 고놈 참 몸뚱이가 크기도 하구나.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되겠어.”
정해진 위치에 정해진 비율로 새겨야 하는 게 각인이었다.
몸집이 크면 그 면적도 넓어지니, 재료도 더 필요하고 주술사도 더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만큼 각인의 효과도 더 강해지므로, 전사들은 몸집을 키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나 참, 전사 없이 바로 대전사를 새기는 건 처음이구먼. 끌끌끌···.”
두 각인이 새겨지는 위치는 동일했다.
심장에서 시작해서 목까지 이어지는, 타오르는 불꽃 문양의 ‘전사의 각인’ 위에 추가로 더 복잡하게 덧그린 것이 ‘대전사의 각인’이었으니까.
“그럼 시작할 테니, 이거나 꽉 물고 있게나.”
“으응? 필요 없소, 노인장. 그냥 바로 시작해 주시오!”
“흘흘··· 상당히 아플 텐데? 괜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물어 두는 게 어떤가?”
“핫하하! 거 쓸데없는 걱정이로구만. 진정한 전사에게 고통 따윈 아무것도 아니지!”
애초에 그에게 통증이란 의미가 없었으니, 노파가 내미는 나무토막을 시원하게 거절했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그녀는 더는 권하지 않은 채 곧바로 각인 시술을 시작했다.
“후우···.”
작은 한숨과 함께, 노파의 얼굴에 새겨진 각인에서 은은하게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스승에게 사사하는 동시에 새겼다던 ‘주술사의 각인’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뼈바늘이 검붉은 액체에 깊게 담겼다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할리의 심장부에 꽂혀···.
“으잉?”
바늘은 여전히 그의 가슴 근육 위에 놓여,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채였다.
“이놈 이거, 피부가 단단해서 바늘이 박히지가 않는구나!”
“어라?”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몬스터 같은 그의 몸뚱이는 이제 일정 이상의 기운이 담기지 않은 공격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으니···.
그가 당황하고 있자니, 노파가 혀를 차며 양팔을 걷어붙였다.
“됐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누워 있어라. 에잉··· 이거 고기 아니었으면 영 맥을 못 출 뻔했구먼!”
그리고 노파의 각인이 더 강하게 빛나기 시작하며, 뼈바늘에 희끄무레한 기운이 덧씌워졌다.
이후 몇 시간.
시술 작업은 특별한 일 없이 조용히 진행되었다.
***
《개체가 조건을 달성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칼코스식 전투 각인」를 획득합니다.》
마지막 바늘땀이 턱 아래를 찔러오는 순간, 몸 전체에서 활력이 들끓었다.
그리고 할리는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근육과 뼈 등에 잠들어 있던 생체력의 일부가 완성된 각인으로 빨려 들어가며, 모든 육체 능력을 일거에 활성화 시키고 있었다.
‘대단한데? 「생체 오러」를 사용해 강화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야.’
여기에 추가로 각인에 오러까지 부여한다면···.
생각이 났으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할리는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가슴에 새겨진 화려한 불꽃 문양의 ‘대전사의 각인’이 서서히 붉게 물들며, 정말 타오르는 것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오옷—!”
그의 전신에서 은은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주먹을 움켜쥐자 뿌드득거리는 살벌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 정도면 「육체변이」를 안 쓰고도 맨손으로 오우거를 때려잡을 수 있겠는데?’
희희낙락하던 할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노파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시술이 마침과 동시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독한 놈 같으니. 정말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을 줄이야. 네놈은 고통이 마비되기라도 했느냐?”
“노인장, 괜찮소?”
“그냥 기운을 너무 써서 지친 것뿐이다. 각인 시술을 한 지도 십 년이 넘었다 보니, 갑자기 무리해서 탈이 난 게지.”
핼쑥해진 얼굴로 땀을 잔뜩 흘리는 그 얼굴을 보니 할리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그의 단단한 몸뚱이를 뚫기 위해 상당히 힘을 많이 쓴 모양이었다.
‘아직 새겨야 할 각인이 많이 남은 상황에, 벌써 이런 상황이면 곤란한데···.’
역시 그녀를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삼시세끼 고기와 몸에 좋은 건강식품들을 먹이고, 규칙적인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체력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었다.
“노인장···.”
“나는 이제 좀 쉬어야겠으니, 썩 물러가. 내 이러다 골로 가겠구먼.”
노파는 비틀거리며 걸어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아무래도 나중에 기회를 봐서 말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남은 잔금이 든 주머니를 작업대 위에 올리고 밖으로 나서자, 밖에 놓인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털보가 보였다.
“여어~ 투라바!”
“으···으잉? 할리? 끝났남?”
할리의 부름에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선 털보가 그를 돌아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오오—! 그것이 대전사의 각인!”
“후하하핫!”
그 남부 전사는 연신 감탄하며 동경 어린 눈빛으로 할리를 바라보았다.
전사들이 가진 단조로운 불꽃 문양이 아니라 화려하고 생동감 있게 타오르는 불꽃이 가슴팍에서 시작해 목까지 뻗어 있었고, 그것이 벌거벗은 상체를 통해 밖으로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아! 그랬구나!’
그리고 할리는 깨달았다.
이전 세대의 남부 전사들이 왜 이런 차림을 고집했던 건지를.
‘단순히 근육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각인까지 과시하려는 거였구나!’
지역, 생태, 문화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결과였지만, 지금의 할리에게 그런 요소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한껏 어깨를 펴고 거들먹거리는 걸음으로 길을 나서자, 기분 탓인지 주변의 시선에서 이전보다 더한 선망이 느껴지는 듯했다.
“투라바, 이렇게 각인의 효과가 좋은데, 왜 남부 전사들만 이런 걸 쓰는 거지? 기술 보안이 그렇게 철저한 것 같지도 않은데.”
기술을 가진 주술사가 마음대로 남부를 떠날 수 있을 정도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기술을 빼돌릴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동안 다른 지역 사람들이 각인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뭐, 부작용 때문이지. 여러 가지로 조건이 까다로우니까. 뭣보다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게 커.”
새겨지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빨려 나가는 생명력.
물론 그 이상으로 강화 효과가 좋다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제각각이었다.
“남부인들은 선천적으로 생명력이 강하게 태어나니까. 우리한테 잘 맞는 방법인 거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차라리 오러를 집중 단련해, 필요할 때 육체를 강화하는 쪽이 효율이 높다고 한다.
그만큼 남부 전사들은 오러를 다루는 데는 좀 약한 편이라고···.
“그렇군. 뭐, 이제 어엿한 남부의 대전사인 나한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와하핫핫—!”
“그러게 말이야! 내 친우가 대전사라니! 껄껄껄!”
“파하하하!”
“끄헐헐!”
두 사나이의 웃음소리가 골목길을 메아리쳤다.
물론, 그런 그들의 모습에 뭐라고 항의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앗! 하인리히 경! 벌써 일어나셔도 괜찮은 건가요?”
“아하하, 가볍게 걷는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사실 전부터 일어날 수는 있었는데, 담당 치유 사제님이 워낙 엄해서요.”
“그래도···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조심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걱정스러운 듯 말하는 성녀와 반갑게 대화를 나누는 하인리히.
상태가 많이 호전된 그는 이제 치료실 바깥으로 외출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마침 오늘은 중요한 날이기도 했으니, 타이밍이 잘 맞았다고 볼 수 있으리라.
“오늘은 엘븐 킹덤의 사절단이 떠나는 날이니까요. 그간의 연이 있는 만큼 배웅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우여곡절이 있던 엘프 사절단이 마침내 자국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하인리히도 그들의 수장인 라포리와 많은 인연이 있었으니, 마지막으로 얼굴 정도는 비추는 게 좋았다.
이렇게 헤어지면, 이제 두 번 다시 만나기는 힘들 테니까.
‘애초에 하이 엘프가 직접 사절을 이끌고 온 게 특이한 경우였지.’
엄연히 한 종족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었으니, 이번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세계수 옆을 떠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게이트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엘프 사절단이 사제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섰다.
라포리와 사절단 외에도 그 일행은 두 명이 추가된 상태였다.
하이 엘프 후보 세실리와··· 할리의 소개를 받고 온 엘프, 해리스까지.
“하인리히 경. 많이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나오셔도 괜찮으십니까?”
“아, 정말 괜찮습니다. 라포리 님.”
곳곳에서 교단 측과 사절단의 작별 인사가 오갔다.
그들이 제법 오래 머문 만큼 친분이 생긴 이들도 많아 시간이 제법 소요되었지만, 어느새 정말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우우웅—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간 교단에서 보여주신 호의는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양측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리에스타 성녀와 라포리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엘프 사절단은 게이트의 푸른 소용돌이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제 그들은 며칠에 걸쳐 대륙의 동부 끝으로 이동하고, 거기서 그들만의 수단을 이용해 에나멜 대륙으로 넘어갈 것이다.
해리스와 함께.
신대륙을 코앞에 둔 탐험가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