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79)
#79
개체 투영 (1)
브라이트 공작가의 저택.
“이걸로 근방에 있는 이들은 전부 끝난 건가?”
“그렇다. 나머지는 순차적으로 호출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
“···것입니다.”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은 하인즈가 옆에 선 이를 가만히 바라보자, 그곳에서 보고하던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투를 정정했다.
족히 수십 년은 존댓말을 쓰지 않아 굉장히 어색했지만, 이제 익숙해져야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탈리아 왕국의 막후 지배자가 아니었으니까.
‘역시 로드가 남아있으니 클랜을 수습하는 작업도 순조롭네.’
그리고 하인즈는 옆에 서서 한숨을 내뱉는 뮬로를 바라보며 내심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
처음엔 그를 제압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종속시키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애초에 브로코슬락이 가진 영향력을 이용하려고 클랜을 먹어 치운 게 아닌가.
그런데 가장 핵심 인물인 뮬로를 배제해서야 온전히 세력을 접수했다고 볼 수 없었다.
지금 같은 세력을 꾸리기 위해, 탈리아 왕국의 그림자에서 수십 년간 클랜을 이끌어 온 것이 바로 뮬로 브로코슬락이었다.
같은 진혈이지만 현장파인 오보르와 프리지아가 대체할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그래도 생각대로 돼서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그를 처리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뮬로는 하인즈 이상 가는 혈마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격도 높아서 제대로 통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데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상대의 수준이 높아서 고민이라면, 그것을 강제로 깎아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고.
뱀파이어가 가진 힘의 근원은 피에 담긴 흡혈인자였다.
그럼 그것을 죽지 않을 정도로만 쪽 빨아들여 버린다면?
그 결과가 지금의 뮬로였다.
‘그래도 그간 쌓은 격이 있는 만큼 진혈 밑으로 떨어지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깎여나간 힘도 꾸준히 흡혈하며 시간이 지나면 차차 복구될 것이다.
그 과정이 지난하긴 할 테지만, 클랜로드의 피를 만족스럽게 포식한 대가로 그의 「정제혈정」을 듬뿍 채워줬으니 전투력의 하락도 그리 크진 않을 터였다.
‘「정제혈정」이 좀 많이 소모되긴 했지만, 그만큼 더 양질의 피를 얻을 수 있었으니 남는 장사지. 뮬로에 대한 종속이 더 강해지기도 했고.’
거기다 이제 피의 변이를 숨길 필요도 없는 만큼, 다른 혈족들도 하나씩 불러 「정제혈정」을 아낌없이 주입했다.
헤테로시스처럼 그들도 자신의 손발이 되어줄 훌륭한 노동력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로 인해 현재 수도 내 클랜의 전력은 전보다 족히 두 배 이상은 증가한 상황이었다.
“그럼 지방에 있는 이들을 불러들이고 조직을 수습하는 건 알아서 하도록. 그런데 주신교단에서 온 전언이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불사왕의 부활과 관련한 내용이었지요.”
아직 존대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지만, 그건 많이 하다 보면 차차 나아질 테니 신경 쓰지 않았다.
‘교단이 여러 방법을 통해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탈리아 왕국에서 교단의 세력을 더 키울 순 없단 말이지.’
이곳은 이제 그의 손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굳이 불편한 이웃을 마주할 필요는 없었으니, 교단에 대한 방침은 이전에 하던 방식을 고수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나머지는 원래 하던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앞으로 대륙의 정보를 다각도로 수집할 수 있게 준비해라. 직접 정보 조직을 꾸리든, 이미 있는 조직과 협약을 맺든, 방법은 자율에 맡기겠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능력은 충분히 증명해 주셨으니, 이제 저도 전력으로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뮬로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발소리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아, 그게 있었지 참.’
그리고 뒤늦게 뮬로의 반응을 이해한 하인즈가 손끝으로 턱을 긁으며 고민에 빠졌다.
사실 그때 했던 말은 프리지아의 협조를 얻기 위해 내뱉은 공수표에 불과했던지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클랜을 완전히 집어삼킨 지금에 와서는 대충 시늉만 해도 상관없는 공약.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영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제법 도움도 될 것 같고 말이지. 한번 진지하게 판을 짜 봐야겠는데?’
이왕 노릴 것 정점을 노리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한 클랜뿐만 아니라, 뱀파이어 전체를 아우르는··· ‘흡혈왕’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흐음···. 흡혈왕이라···.”
하인즈는 안락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
“하인리히 경! 이제 근무 복귀하시는 겁니까?”
“하핫— 그동안 오래 쉬었으니 이제 일해야지요.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이, 무슨 소릴 하십니까. 하인리히 경한테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 좀 더 쉬셔도 됩니다.”
“사실 제가 좀이 쑤셔서요.”
불사왕의 습격 사건이 있은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갑옷을 차려입고 근무지로 이동하던 하인리히는 새삼 변한 자신의 위상을 실감했다.
사실 그동안에도 간간이 밖에 나오며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고 있었다.
이곳 대신전의 사람들이 유독 자신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애초에 그러기 위해 판을 짜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효과적이네.’
불사왕이 부활했음에도 이렇게 조용한 것은 하인리히가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덕분이고, 그래서 뒤늦게나마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는 것이 교단 전체에 퍼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내심 흡족하게 여기며 발걸음을 옮기던 중,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성녀를 발견했다.
멍하니 무언가를 바라보는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은 공벌레가 꼬물거리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볼 때마다 한결같네.’
작게 미소 지은 그가 성녀에게 다가가며 가볍게 헛기침했다.
“흠흠··· 성녀님, 안녕하십니까?”
“아, 앗! 하인리히 경! 오랜만이에요. 많이 회복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제 완전히 나으신 건가요?”
“네. 사실 한참 전부터 괜찮았는데, 담당 치유 사제님이 워낙 꼼꼼하셔서요. 무슨 후유증이 있을지 모르니 한 달은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하시는 바람에··· 하하핫.”
물론 그를 걱정해서 그렇게 까다롭게 확인한 거겠지만, 정말 문제가 없었던 하인리히에게는 답답하기만 한 일이었다.
그것 때문에 치료실에 딸린 간이 수련 시설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으니.
‘거기에는 고중량 운동 기구가 없었으니까. 그동안의 근손실을 보충하려면 오늘부터 빡세게 단련해야겠네.’
그나마 그 시설도 전대 성기사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거였다고 하니, 어찌 보면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저주에 관해서는 아무리 신중히 여겨도 부족하니까요. 거기에 불사왕이 건 저주라면 더더욱 조심해야죠! 당연한 거예요.”
성녀는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보다 하인리히 경. 그동안 자주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동안 대책을 마련하느라 너무 바빠서···.”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는 그녀.
그간 불사왕과 관련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느라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세력에게 정보를 전하는 것과, 그에 대한 협력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문헌을 뒤지고, 마탑 연맹에 자문을 구하고, 정보 조직과 접선하기도 했다.
거기에 이단심문관을 통해서 흑마법사들을 심문해 불사왕 한스에 대해 분석까지 시도하는 중이었으니···.
그야말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던 터라, 책임자인 성녀도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느라 정신없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선에서 뛰시는 분들이 저보다 더 바쁘시겠지만요···.”
그녀는 흐릿한 시선으로 화단을 돌아보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
“오늘은 모처럼 일이 일찍 끝나서, 정말 오랜만에 화단에 나올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하인리히 경까지 만나게 되다니, 여러모로 운이 좋은 날이네요.”
그 자리에 있던 공벌레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지만, 성녀는 그 자취를 쫓듯 하염없이 풀 틈을 바라보았다.
그 애틋한 시선에 하인리히는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내가 공벌레와 동급이 된 것 같은데.’
어쩌면 그 이하일지도 모르겠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아마도.
“흠흠, 성녀님. 그럼 저는 이만 근무지로 가 보겠습니다.”
“아! 제가 너무 오래 잡고 있었네요. 그러고 보니 아직 광휘수호에서 연수받는 중이셨죠?”
“네, 그렇습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그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아직 며칠은 더 채운 후에 다음 성기사단으로 배속받을 것 같습니다.”
치료실에 있던 시간은 연수 기간에 포함되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군요···. 하인리히 경은 최종적으로 자유 성기사가 되는 게 목표라고 하셨죠?”
“예. 대륙을 모험하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주신의 뜻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요.”
자유 성기사가 되도 충분히 교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뿐더러, 성기사단에 묶이게 되면 필요한 무대를 준비하기도 힘들었다.
감독 입장에서는 배우에게 제약이 적을수록 좋았으니까.
“흐음— 그렇군요.”
그의 대답에 성녀는 뭔가를 고심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재차 인사를 건넨 하인리히가 돌아서서 발을 옮기려던 순간.
“아 참!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으실 거예요!”
갑자기 들려온 말에 다시 뒤를 돌아봤지만, 그녀는 그저 빙글빙글 웃으며 손만 파닥거리며 흔들 뿐이었다.
‘사람 궁금하게 해 놓고 말을 하다 말다니···.’
그래도 대충은 예상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승급 같은 게 아니겠는가.
이번에 공을 세우기도 했고, 주교급 신성력을 가진 성기사를 언제까지나 말단으로 놔두기도 애매했을 테니 말이다.
‘뭐라도 주면 나야 고마울 뿐이지.’
기대감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하인리히는 다시 근무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상당히 지체한지라 늦지 않으려면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
『카르마 상점』
『고유스킬 강화 (900,000)』
『스테이터스 강화 –상세 보기』
『보유 카르마 – 1,393,934』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번에 브로코슬락 클랜을 접수한 일로 상당한 카르마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대신전 습격 사건 직후 고유스킬을 강화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이는 매우 고무적인 결과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나저나 이번엔 뭘 얻으려나.’
저번 강화에서는 「커스터마이징」을 얻은 덕에 해리스라는 엘프 아바타를 만들 수 있었다.
능력치를 조절해 정령사로서의 진로에 큰 일조를 하기도 했고.
거기에 한창 치안 유지 활동 중인 한스의 외모를 변경한 것은 덤이었다.
어차피 가면을 쓰고 다니니 큰 의미는 없겠지만, 이왕 얻은 능력을 묵혀두는 것도 아깝지 않은가.
‘두상에 너무 큰 변화를 주면 가면으로 가리기 힘들어질 테니 큰 변화는 주지 못했지만, 나름 공을 들이긴 했지.’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완벽한 조형을 자랑하는 매끈한 두개골과 예리한 턱선, 가지런한 건치,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안와를 자랑하는.
카리스마 있게 잘생긴 해골이었다.
‘명색이 불사왕인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그보다 이제 강화를 시작해 볼까?’
더 뜸 들일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곧바로 ‘고유스킬 강화’를 선택하고 닥쳐올 두통에 대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바타의 잠재력이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개체의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고유스킬이 성장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특수스킬「개체 투영」를 획득합니다.》
항상 느껴왔던 두통이 지나간 뒤.
잠시 기다려도 더 이상의 변화가 없자,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떴다.
‘···없다?’
항상 강화를 할 때마다 당연한 옵션으로 딸려왔던 ‘아바타 개체 수 증가’가 이번엔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에 얻은 것이라고는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두 줄이 전부.
‘무려 90만짜리 강화였는데···.’
왠지 사기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바타들이 많은 만큼 그들이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도록 성장 속도가 증가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어?”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새로 얻은 스킬을 확인하던 와중, 내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스, 하인즈 2세, 하인리히, 할리, 휴버트, 해리스.
각자 특출난 능력과 개성을 가진, 자랑스러운 나의 아바타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얻은 「개체 투영」의 효과는···.
하루에 한 번, 아바타 중 하나를 고스란히 내 몸에 투영시키는 능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