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8)
불사왕의 파편 (1)
위험했다.
‘불시에 목을 물어뜯었는데 이빨도 안 박힐 줄이야···.’
만약을 대비한 상시 보호막이었는지 강도는 그리 높지 않아서 흑마력으로 강화된 언데드의 치악력에 금세 깨져나갔지만, 그것 때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제라프가 흑마력을 내뿜어 튕겨져 나갔을 때도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이 세계의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대응하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놈의 뒤에 있던 좀비를 움직여 저지할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계획을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실패할 뻔했다.
나는 시체가 된 제라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체에는 아직도 마을 청년 좀비가 매달려서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었다.
이놈들은 원래부터 나쁜 놈들이었지.
저 좀비를 포함한 이곳의 모든 언데드들이 놈들에게 희생당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으나 정신적인 충격은 크지 않았다.
아니, 사실「마인드 허브」가 없었다면 위험했을 테지만, 다행히 지금은 게임에서 캐릭터를 죽인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보다 생각해 볼 문제가 생겼다.
‘사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짱돌로 뒤통수를 후려치려고 했는데.’
제라프의 언행을 지켜보다가 화가 나서 그냥 지금 바로 행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살심을 품고 공격 의도를 가지자 ‘한스’의 육체가 본능적으로 이빨로 목을 노려 공격했다.
이후의 대응도 육신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 것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이게 내 제어를 벗어났다고 하기도 좀 그렇고.’
본능적으로 움직였다고 했지만, 급박한 상황이었던지라 내버려 뒀을 뿐 충분히 제어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짱돌로 뒤통수를 노리는 것보다 확실히 효과적이기도 했고.
원래 계획대로 했으면 아마 보호막도 못 깨지 않았을까.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이 느낌은···.’
그래, 비유하자면 몸에 새겨진 습관과도 같았다.
의식하면 충분히 제어할 수 있지만 무의식중에는 저도 모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언데드가 된 육체에 새겨진 본능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딱히 지구에 있는 본체까지 악영향을 주지도 않고, 오히려 이 점을 이용할 수도 있겠으나 일단 주의는 해 둬야겠지.
이제 슬슬 다음 계획을 진행할 때였다.
***
말콤 촌장.
아니, 대륙에서 암약하는 조직 ‘역천의 서약’의 장로 중 하나인 ‘마르코스 지오칼리’는 흐뭇하게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변의 언데드들에게서 죽음의 기운을 빨아들이며 맥동하고 있는 검은 보석.
‘불사왕의 심장’을 찾아다닌 지 어언 수십 년.
하지만 고생 끝에 간신히 찾아낸 것은 불완전한 상태의 파편에 불과했다.
그리고 본거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대륙의 교단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어, 사람이 오지 않을 외진 산골 마을을 골라 그곳에 파편을 봉인하고 숙성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이제 곧이다. 조금만 있으면 드디어···.’
‘불사왕의 파편’에 쏟아부은 자원이 적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지위마저 휘청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게 완성된다면 모든 게 뒤집힌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스승님?]그때 갑자기 입구를 지키고 있을 제자에게 통신이 걸려 왔다.
[무슨 일이냐?] [스승님. 그것이, 지금 밖에···.]***
“그러니까, 제 동생이 이 안에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그 친구는 얼마 전에 떠났다고 하지 않소.”
나는 마을 앞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앞에 있는 사람은 내가 마을을 발견했을 때 처음 만났던 중년 사내였다.
“아니 그러니까 틀림없이 신호가 이쪽에서 이어지고 있다니까요! 그냥 안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게 해주세요.”
“뭘 믿고 외지인을 함부로 안에 들인단 말이오?”
“아 그럼 촌장님이라도 직접 뵙고 말씀드리게 해주세요!”
이렇게 촌장을 끌어낼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안 나와도 정보는 얻을 수 있으니 상관없었다.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라는 뜻이었고, 이 마을에서 중요한 것이라곤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내가 촌장일세.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이신가?”
그리고 쉽게 나를 무시하거나 해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미 연고가 없다고 생각하고 죽인 이를 찾아온 사람이 생겼고, 그런 일이 또 생기지 말란 법이 없으니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하고 싶었으리라.
나는 인자한 웃음을 머금은 촌장, 말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인즈라고 합니다. 제 쌍둥이 동생 한스가 이쪽에 있는 것 같아 실례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흐음, 한스라··· 기억나는군. 그런데 그 청년은 혼자 여행하다 길을 잃었다고 했던 것 같네만?”
“아··· 부끄럽지만 얼마 전에 크게 싸우고 헤어졌었습니다. 그래도 화해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믿을 수밖에 없겠지.
내 얼굴이 ‘한스’와 똑같이 생겼을 테니까.
그리고 이젠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었다.
이미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
‘하인즈’로 마을 밖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촌장 말콤이 나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한스’는 곧바로 움직였다.
무시할 가능성도 꽤 크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다.
중요한 순간이라고 들었으니 사소한 것까지 확실히 챙기고 싶었겠지.
위험한 상황이 와도 외부에서 오지, 결계로 둘러싸인 최심부에서부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치 못한 점도 있으리라.
우웅—
덕분에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불사왕의 파편’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좀비 쥐인 알프레드를 통하지 않고 직접 파편을 접하자 숙성이 뭘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왜 주변에 언데드들을 저렇게 둘러놓았는지도.
‘언데드들로부터 흑마력을 흡수하는 건가? 아니, 공명인가?’
파편은 단순히 흑마력을 흡수하는 게 아니었다.
어딘가 불완전한지, 흑마력을 흡수하는 동시에 결핍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동기화하며 안정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서 있는 언데드들은 유령과 목 없는 기사를 비롯해 하나같이 위압적으로 보이는 개체들밖에 없었다.
제일 약해 보이는 게 해골기사였고, 그나마도 창고에서 보았던 개체보다 월등해 보였다.
‘아니, 그럼 내가 있던 창고는 불량품 창고였던 건가? 갑자기 기분 팍 상하네.’
저 ‘숙성’ 과정에 저급 언데드는 불순물밖에 되지 않았으리라.
자신을 죽인 것도 쓸 만한 언데드가 나오면 파편의 먹이로 던져주기 위해서였겠지.
결국 기대에 못 미쳐 불량품 창고에 처박히게 되었지만.
‘오히려 다행인 일인데, 이상하게 열 받네?’
가까이 다가갈수록 압도적인 존재감과 함께 내 몸의 흑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섣불리 건드리는 것만으로 언데드가 되어 버릴 것이고, 몸이 약한 이는 곁에서 숨만 몇 번 쉬어도 죽음에 이르겠지.
품고 있는 힘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 강대한 저주의 응집체나 다름없었다.
나는 ‘불사왕의 파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편식하면 못쓰지. 어디 불량식품 맛 좀 봐라.’
물론 순순히 먹혀 줄 생각은 없었다.
나름 믿고 있는 것도 있었고.
***
“그러니까, 저희가 쌍둥이라서요. 날 때부터 서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단 말이지요.”
“허허허, 그것참 믿기 힘든 말이로···.”
부드럽게 웃던 촌장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일그러져 흉신악살이 된 표정으로 마을 쪽을 돌아보았다.
파편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
이런 시답잖은 녀석과 말씨름할 때가 아니었다.
“거기 그놈은 죽여 버려!”
말콤은 곧바로 흑마력을 사용해 파편이 있는 곳으로 향하며 외쳤다.
그 명령에 마을 입구의 중년 사내, ‘역천의 서약’의 암흑기사 바우칼은 곧바로 하인즈를 죽이기 위해 고개를 돌렸으나.
“···언제?”
그 자리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
[죽여라.]···공포 절망 비탄 고통 억압 광기 결핍 증오 살의 욕망 분노···.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모든 산 자들을 증오하라. 이 땅을 절망으로 뒤덮어라. 세상이 죽음으로 물들수록 너의 힘이 더욱 강대해질 것이다. 생을 갈망하라. 가지지 못한 것을 빼앗아······.]‘와, 이거 진짜로 장난 아닌데?’
「마인드 허브」를 통해 걸러지는 정보량이 어마어마했다.
어지간한 수준이면 이 내재된 에너지에 육체가 언데드가 되는 것은 물론, 정신이 완전히 파괴되어 파편에 잠식되어 버릴 것이다.
아니, 이걸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나는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말콤이 어떻게 눈치를 채고 이쪽으로 향했으니, 이제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이쪽에도 뭔가 조치를 취해 둔 거겠지.’
이쯤 되면 강박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이 파편의 영향을 견딜 수만 있었다면 온종일 끼고 살았으리라.
‘일단 해보는데, 잘 되려나. 거의 다 된 것 같기는 한데.’
흡수당하는 흑마력을 매개체로 언데드를 조종하던 감각을 살려 ‘불사왕의 파편’과의 동기화를 시도했다.
보통이라면 어림도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언데드이며, 파편으로부터 전해지는 폭력적인 정신 공격을 무시하고 자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되면 좋지만 잘 안돼서 이게 못쓰게 되더라도, 놈들을 방해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시도해 보자.’
파편은 불완전했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주변과 공명하고 있는 무방비한 상태였다.
나는 그 결핍에 ‘한스’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결과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특수스킬「사악한 지혜」를 획득합니다.》
눈앞에 나타난 문구.
하지만 그걸 보기도 전에 자신의 변화를 인지할 수 있었다.
뼈밖에 없는 몸은 그대로였으나, 존재의 격이 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각인되었다.
[오! 이제 말할 수 있잖아?]성대에 흑마력을 공명시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건 사소한 변화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내려 몸을 내려다보았다.
갈비뼈 사이에서 맥동하는 검은 보석.
심장이 생겼다.
-개체명 : 한스
-종족 : 언데드 (데미리치)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초회복」
-개체 특성 : 「부패한 심장」, 「사악한 지혜」, 「마력 친화」
-특이 사항 : ‘불사왕의 파편(1/3)’의 힘으로 격이 상승했다. 파편에 잠재되어 있던 흑마력이 개체와 동화되었다. 「마인드 허브」의 영향으로 정신 오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엘리트 스켈레톤’에서 불사의 마법사인 ‘데미리치(Demi-Lich)’로 진화했다.
***
후얀은 오늘도 비밀통로 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어제 좀비 쥐가 한 마리 빠져나온 것을 제때 처리하지 못한 벌이었다.
‘아 괜히 제라프 놈 때문에 나까지 덤터기 썼잖아.’
그러고 보니 들어간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제라프가 나오지 않는다.
‘뻔하지 뭐, 그 성격에 화풀이나 하고 있겠지.’
후얀은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몸을 기댔다.
1년이 지났지만, 오늘도 이 촌구석은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한 일이라고는 마을 입구에서 전해진 소식을 안에 있던 스승에게 전달했던 것밖에 없었다.
[후얀! 후얀 이 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콰당!
갑자기 전해진 스승의 통신 마법에 후얀은 의자 채로 뒤로 넘어가 나뒹굴었다.
[예! 스승님! 여긴 아무 이상 없습니다!]벌떡 일어난 후얀이 의자를 세우고 앉아 뒤통수를 문지르며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스승의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 이상이 없어?! 뭔 개··· 아니, 빨리 파편부터 확인해! 빨리! 제라프에게도 연락하고!] [예, 옙!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파편이 있는 곳을 둘러싼 결계 때문에, 창고 내부로 통신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입구에 비치된 특수한 마도구를 이용해야 했다.
[야! 제라프! 그만하고 빨리 파편 확인해··· 어?]서둘러 제라프에게 통신을 보내던 후얀은 동작을 멈추고 마도구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통신을 보냈다.
[제라프? 야, 제라프 들리냐?]답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당연했다.
애초에 연결이 되지 않았으니까.
“어···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당황한 후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였다.
우웅—
창고로 가는 입구의 마법진이 반응하더니 이내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야! 제라프! 너 왜 갑자기···.”
열린 문에 반색하며 돌아보던 후얀은 이내 그대로 굳어버렸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제라프가 아니었다.
“어··· 어··· 아니, 왜···?”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해골을 위시한 언데드 수백 마리가 바글거리며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언데드들을 통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금 내 몸에 있는 흑마력의 양은, 쥐꼬리만큼 있는 걸 박박 긁어서 사용했을 때와는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많은 수를 조종하다 보니 알프레드와 연결했을 때처럼 감각까지 공유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휘하에 좀비와 스켈레톤은 물론, 파편 근처에 있던 상위 병종들까지 포진해 있었으니까.
‘파편에 오랫동안 기를 빨려서 그런지 상태들이 별로 안 좋긴 한데···.’
이 정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이리라.
그동안 얼마나 많이 희생됐었는지 ‘불사왕의 파편’의 주변 바닥에는 온통 언데드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나는 언데드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통로를 가로질렀다.
이내 밖으로 통하는 입구가 보였다.
‘저긴 결계가 있어서 그냥 나갈 수는 없을 텐데···. 때려 부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바로 무언가를 깨닫고 제라프가 했던 것처럼 손을 문 위로 올렸다.
그리고 「사악한 지혜」의 효과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우웅—
마법진이 반응하고 문이 열렸다.
이제 나에게 흑마법은, 더 이상 미지의 신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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