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80)
#80
개체 투영 (2)
‘내 몸에, 그간 키워온 아바타를 그대로 덧씌운다고···?’
유지 시간은 스킬의 숙련도에 따라 달라질 테니 앞으로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 대단한 능력이었다.
쉽게 말해서, 한스를 투영하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불사왕이 둘이 된다는 소리였으니까.
“와··· 이건 확실히 놀라운데.”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아바타들은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본체인 자신보다 더 강했다.
상단을 꾸리고 있는 휴버트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엘프 해리스까지 포함해도 그랬다.
‘온갖 성장 보정에다 시간의 흐름까지 달랐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이 정도 스킬이라면 아바타의 추가 생성이 없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한 번 사용해 봐야 할 텐데. 누굴 먼저 투영하는 게 좋으려나?’
시범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가장 강한 건 한스였지만··· 아무래도 그 개성이 워낙 강한 친구다 보니, 첫 시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조금 꺼려졌다.
설마 문제가 생기겠냐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음의 준비가 조금 필요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엘프 해리스는 지구의 공기가 몸에 맞지 않았고, 상인 휴버트는 본체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럼 남은 이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아! 그래. 하인리히를 먼저 투영해 보자.’
교단에 귀의한 후로 단 한 번도 현실에 소환하지 못했던 아바타인 만큼,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후우.”
나는 곧바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개체 투영」을 사용해 그 대상을 하인리히로 설정 후, 그대로 내 몸에 적용시켰다.
“······.”
펑 소리가 난다거나 섬광이 번쩍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한순간, 몸으로 직접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하인리히가 되었다고.
부풀어 오른 전신의 근육에서 폭력적인 힘이 느껴지고, 예리해진 감각은 자연스럽게 사방의 정보를 수집한다.
체내에 흐르는 도도한 신성력이 몸에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뭔가 신기한 느낌인데.’
진짜는 여전히 교단에 실재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 자리에 있는 것도 틀림없이 하인리히였다.
존재 자체가 덧씌워지고,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도 하나같이 복사라도 한 것처럼 똑같았으니.
“신성력을 쓰는 각성자가 지구에 돌아오면 이런 느낌인가···.”
나는 한 손에 신성력을 뭉쳐 은은한 빛을 피워 올리며 낮게 읊조렸다.
이미 널리 퍼진 정보를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힘을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물론 아우테리카에 있을 때보다 회복이 좀 많이 느려지기는 했는데.’
대충 절반 정도나 될까?
그래도 주신과 연결된 통로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며 가늘어지긴 했어도, 신성력은 평소처럼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었다.
‘역시 신은 신이라는 거겠지.’
이 점 때문에 지금 지구에는 여러 차원의 수많은 종교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 인터넷에만 해도 ‘XXX차원 XX교 한국 지부’ 따위의 홈페이지를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
‘성직자 출신 귀환자의 힘을 빌리기 위한 사람들 덕에 인기 있는 편이긴 하지.’
하지만 그런 곳들은 어느 선 이상으로 규모를 키우기에 한계가 있었다.
안 그래도 수가 적은 성직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신도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귀환자만이 그 특수성으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을 뿐, 지구는 여전히 이능의 불모지였다.
다른 이들에게 세례를 해 줄 수도 없고, 신성력도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신앙심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신성력도 깎여나가니, 성직자 출신 귀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종교 활동에 매진해 현상 유지라도 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아우르는 이세계 종교 연합인 ‘판테온’이라는 조직도 있기는 했지만, 각자의 교리가 너무 다른 탓에 그 결집력은 별로 좋지 않은 편이었다.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긴 한데, 힘의 메커니즘 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신들끼리 무슨 협정이라도 맺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연결이 단절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리라.
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주변에 결계를 쳐 기운을 은폐하고 있는 한스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내재한 기운이 서로 상극인지라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개체 투영」의 성능은 확실히 확인했어. 「마인드 허브」도 제대로 적용되고 있고. 한스를 투영하면 어떻게 될지 기대되는걸.’
이제 남은 것은 스킬의 유지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한계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어?”
마치 필터를 갈아 끼우듯 순식간에 변화하는 감각.
옆쪽에서 지켜보던 한스의 시선에도 마치 영상 편집으로 보일 정도로, 한순간에 모습이 바뀌었다.
10분.
시간을 확인해 보고 조금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이번이 첫 사용인 걸 감안하면, 숙련도가 증가할수록 유지 시간도 차차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다른 기능을 더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제 앞으로의 일이 더 쉬워지겠군.’
이 스킬을 통해 자신은 좀 더 자유로워졌다.
아바타의 현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필요한 상황에 필요한 능력을 빌려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일단은···.’
이 「개체 투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머리에 떠올랐지만,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
다음 날, 야심한 새벽.
인적이 없는 한 골목길 바닥에서 두 개의 인영이 갑작스레 솟구쳤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낀 수상하기 그지없는 복장을 한 나와···.
사아아—
존재만으로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분위기의 한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한스는 곧바로 다시 바닥으로 스르륵 몸을 감췄다.
‘역시 한스가 있으니 확실히 편하네. 다재다능하기도 하고.’
하긴, 그 정도의 능력이면 안 되는 걸 찾는 게 더 힘들 것이다.
혼자 남은 나는 조용히 한스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됐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개체 투영」을 사용했다.
이번 투영 대상도 역시나 성기사 하인리히였다.
한순간에 변한 감각.
전신에 힘이 넘치고, 신성력이 몸에 들어차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가 볼까.’
나는 머리에 씌워진 투구의 면갑을 내리며, 곧바로 「축복 : 도약」을 사용해 한스의 시선이 닿은 곳으로 이동했다.
파앗—
이동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신성력이 터져 나오며 주변을 밝혔다.
그 상극의 기운에도 주변을 감싼 결계는 흔들림 없이 기운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됐다. 여기까진 순조롭군.’
이곳은 태산이의 할머니가 입원 중인 종합병원 병실이었다.
마침 새로운 능력을 손에 넣은 김에, 저번에 생각해 뒀던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직접 이곳에 찾아온 것이다.
‘뭐든 조용히 처리하는 게 최고지. 한스 덕에 제대로 사전 준비도 마쳤으니까.’
병원의 4인실 한가운데에서 빛이 번쩍였지만,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채였다.
수면 마법과 차폐 결계를 비롯해 부지런히 사전 작업을 해둔 한스의 공로였다.
‘정작 본인은 병실 내부로 들어오지도 못했지만···.’
그는 지금도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곳을 들여다보며 원격으로 마법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마도의 길」과 「마력 지배」 등 온갖 스킬의 도움으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방법.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환자들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니 어쩔 수 없지.’
아무리 그 존재감을 감출 수 있다고 해도,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어떤 악영향을 줄지 모르니 최대한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병약한 이들에게 한스는 죽음의 화신 그 자체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미동도 없이 잠든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많이 늙으셨네.’
태산이와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던 분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손주와 어울려 줘서 고맙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할머니였는데···.
자신이 집에 틀어박힌 탓에 마지막으로 뵌 것이 불과 이 년 전이었건만, 그간 눈에 띄게 수척해지신 상태였다.
하긴, 할머니도 그의 부모님과 친하셨으니 그분들의 변고가 심적인 영향을 끼친 탓도 있었으리라.
나는 앙상하게 마른 할머니의 손을 조심스럽게 쥐고 신성력을 일으켰다.
이윽고 그 손을 통해 은은한 빛이 부드럽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아우테리카 성법」으로 가공해 원기 회복, 체력 증진, 독소 제거 등의 효과를 내는 신성력을 끊임없이 쏟아 부었다.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신성력은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다.
물론 다른 기운보다 회복에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노환으로 인한 병세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당장 주신교단의 교황도 노환으로 몸져누운 상태가 아닌가.
‘그래도 잔병을 치유하고 신체의 회복력을 북돋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지구라는 차원의 한계 때문에 약화되기는 했지만, 주교급의 신성력은 절대 약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성법을 유지하며 감회에 젖었다.
태산과 만나 친구가 되고, 자연히 그의 할머니와도 친해졌다.
아이들의 친분은 그 보호자에게까지 전해져, 그의 부모님과도 종종 다 함께 어울렸다.
할머니가 입원하게 되었을 때도 같이 병문안을 가기도 했었는데···.
그 인연은, 그날의 사고와 함께 산산이 조각났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스킬의 유지 시간이 끝나기 직전까지 성법을 유지하다가 천천히 손을 떼며 물러났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지구에서 주교급 신성력으로 치유를 받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호사였다.
그만한 능력자가 원체 적기도 하거니와, 그런 부탁을 쉽게 들어줄 이들도 아니었다.
“···다음에, 태산이랑 같이 올게요. 그때 좀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뵈어요.”
한결 편해진 표정의 할머니에게 작게 속삭이며, 나는 다시 「축복 : 도약」을 사용했다.
한순간에 한스의 통제하에 있는 골목으로 다시 돌아온 후, 얼마 안 있어 하인리히의 갑옷이 사라지고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후우···.”
딱히 힘들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갑자기 떠오른 과거의 추억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오늘따라, 돌아가신 부모님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렇게 약해진 마음을 추스르던 순간, 뒤처리를 마친 한스가 옆에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처럼 영혼을 얼어붙게 만드는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
그것을 접하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스.
「페르소나」를 사용해 부정적인 감정을 담았던 나의 첫 번째 아바타였다.
분노, 슬픔, 외로움, 원망 등 고여서 썩어가던 감정이 담긴··· 나의 분신, 나의 아바타.
나는 가만히 하회탈 속의 푸른 안광을 바라보았다.
내 아바타를 마주 보는 것뿐임에도 불구하고, 「명경지수」가 사정없이 흔들리며 정신이 어지러워진다.
그 몸에 담긴 소리 없는 아우성이 느껴졌다.
···그랬다.
저것은 죽음의 현신이자, 공포의 화신이고.
나의 부정적인 감정의 응집체인 동시에, 내 약함의 증거였으며···.
그저, ‘나’였다.
“하! 그래···. 계속해서 이렇게 분노하고, 이렇게 원망하고, 이렇게 슬퍼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새삼 감상에 젖을 여유는 없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과거를 돌아보며 추억에 눈물짓는 게 아니라.
그 원수들을 찢어 죽이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었거늘.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가 옆을 바라보았다.
“그럼, 돌아갈까.”
피식 미소 지으며 괜히 한스에게 말을 걸었다.
바닥에서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서서히 우리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아아— 위대한 서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 감상에 젖는 것은 이야기의 종막이 마무리되고, 놈들의 시체 위에서 해도 늦지 않는다. 크흐흐흣··· 그때가 기대되는구나!]···역시 한 가지 추가해야겠다.
이놈은 내 부끄러운 심연이었다.
***
에나멜 대륙의 엘븐 킹덤에 도착한 해리스는 며칠에 걸쳐 세계수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마주한 다른 엘프와 그들의 마을은 새로운 눈요깃거리가 되었고, 정령들과 교감하듯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렇게 이동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도달했다.
세계수가 있는 왕국의 중심부에.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도 원근감을 무시하는 그 크기 때문에 거리감을 잡기 힘들었건만, 지금은 그냥 거대한 절벽을 마주하는 것 같을 정도였다.
“아!”
그때, 그의 옆에서 함께 걷던 세실리가 갑자기 탄성을 내뱉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주황색 눈의 초점이 서서히 사라졌다.
“···시작됐군요.”
하이 엘프 라포리가 조용히 말하며 일행을 뒤로 물렸다.
해리스는 그들을 따라 물러나며 가만히 세실리를 바라보았다.
‘그 세실리가, 이제 진짜 하이 엘프가 된다는 말이지.’
뭔가 미묘한 감상에 휩싸이려던 찰나.
‘아! 저게 바로···.’
해리스의 눈에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이파리가 무성한 나뭇가지 하나가 바람에 휘감겨 나풀거리며 하강하고 있었다.
‘세계수의 열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주먹만 한 붉은 열매 하나를 매단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