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85)
#85
드라샤의 축제 (2)
해리스는 무대 쪽으로 이동하며 조원들을 둘러보았다.
‘좋아, 준비는 완벽해.’
그들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이미 모든 대비를 끝마친 상황이었다.
소심한 여성 조원인 큐리가 잠시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이번에 얻은 「조화의 선율」 덕분에 당장의 고비는 넘겼다.
일단 초반에 실수만 하지 않으면 그 이후는 자연스레 음악에 몰입하게 될 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혹시나 하고 써 봤는데, 그냥 목소리에도 스킬이 적용돼서 다행이야.’
「조화의 선율」은 음악에 온갖 긍정적인 효과를 부여하는 전형적인 음유시인의 스킬이었다.
단순히 더 듣기 좋게 해 주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소리에 담긴 기운의 증폭부터 온갖 버프 효과까지.
아마 이번에도 엘프의 종족 특성이 톡톡히 빛을 발한 것 같았다.
엘프가 된 해리스의 목소리는 그냥 말하는 것도 왠지 노래하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으니까.
-개체명 : 해리스
-종족 : 엘프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초회복」, 「명경지수」
-개체 특성 : 「세계수의 아이」, 「정령술」, 「자연 친화」, 「요정 사법」, 「조화의 선율」
-특이 사항 : 번개, 불, 바람, 소리의 정령과 계약했다. 여러 가지 요인과 높은 친화력으로 자연력이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근방에 자리한 세계수의 영향으로 과하게 자연과 동조된 상태다.
또 며칠간 계속 노래를 연습하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세계수의 곁에 있는 한은 어떻게 해도 해리스의 노곤함을 고칠 수 없으리란 것이었다.
‘아무래도 「세계수의 아이」 때문이겠지.’
정령술 수업 때 배운 대로 노래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긴 했다.
그게 그리 오래 가지 못해서 문제지만.
음악을 통한 자극이 없으면 식물처럼 늘어지려고만 해서 조금 번거롭기는 했으나, 그만큼 성장에 가속이 붙고 여러 가지 도움도 되고 있으니 썩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조금만 신경 쓰면 지금처럼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있었으니까.
“다음! 무대 위로 올라가세요.”
그때 그들의 앞 차례였던 아카데미 학생들이 무대 밑으로 내려가고, 무대 진행자가 그들을 호명했다.
“좋았어! 그럼 가보자구!”
무거운 드럼 세트를 허공에 띄우고 있던 티메르가 신이 나서 무대 위로 올라갔다.
큐리는 잠시 심호흡하고는 한결 침착해진 기색으로 그의 뒤를 따랐고, 샤피론은 평소처럼 도도한 발걸음으로 무대로 향했다.
해리스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좋아, 그럼··· 「조화의 선율」도 최대치로 사용해서, 이세계 엘프들에게 지구 현대 음악의 정수를 머릿속에 때려 박아줘 볼까?’
엘븐 킹덤의 수도 드라샤에, 그만이 아는 지구의 문화 침공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
웅성웅성—
~♪
한창 축제가 벌어지며 수도 곳곳에 화려한 볼거리가 들어섰다.
자신들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진 엘븐 킹덤인 만큼, 엘프 주민들은 그간 준비한 것들을 아낌없이 꺼내놓았다.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예술품은 물론, 의복이나 카펫 같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물건들도 있었다.
“아! 라포리 님, 세실리 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여기서 드라샤 아카데미의 공연이 있다고 해서 한번 보러 왔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마침 조금 후에 샤피론 양의 무대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아, 딱히 제 딸의 무대만 보러 온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제가 후원하는 친구도 같이 무대를 서게 되어서 말이지요. 여기 세실리 님과도 연이 있는 친구라. 하하하···.
세실리는 반짝이는 별 모양 동공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라포리의 뒤를 따라갔다.
개안의 여파에서 깨어난 그녀는 라포리와 함께 축제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이온 대륙의 작은 엘프 마을에서 태어나, 그저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화려한 행사는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물며 이 축제는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것이 아닌가.
오늘이 이틀째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곳은 하나같이 놀라운 볼거리로 가득한 별천지였다.
~♪
짝짝짝—!
춤과 노래를 선보인 학생들이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가자, 잔뜩 들뜬 세실리가 연신 손뼉을 쳤다.
“역시 엘븐 킹덤이네요. 저희 마을에서는 간단한 춤과 노래가 전부였는데. 너무 멋있어요!”
그때, 다음 조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커다란 무언가를 비롯해 제각기 손에 악기를 하나씩 든, 해리스의 팀이었다.
“저건 또 특이한 악기··· 앗! 해리스 씨네요!”
여러 개의 북과 심벌을 식물의 가지로 엮은 드럼 세트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그녀가 해리스를 발견하고 반색했다.
그래도 함께한 시간이 제법 되었던 만큼, 오랜만에 보게 되니 반가웠던 것이다.
“와··· 그런데 해리스 씨도 그간 엄청 성장하셨네요. 제가 하이 엘프가 되지 못했으면 한참 전에 추월당했겠어요.”
무대를 준비하는 그를 보며 감탄을 토하는 세실리의 모습에 라포리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보기에도 해리스의 성장은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자연력을 받아들이는 수준이 특출하다고 느끼긴 했는데, 못 본 사이 더 강해졌군. 계약한 정령도 벌써 넷이나 되고. 그 중 하나는 상당히 희귀한 정령인데···.’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무대에 선 샤피론을 보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는 딸을 보자, 그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만 맴돌았다.
그때 조원들과 눈빛을 주고받던 해리스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조금 색다른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제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인데, 여기 계신 분들에게는 많이 생소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바람과 소리, 두 정령의 도움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가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멀리서 지나가던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바라볼 정도의 그 목소리는, 무대의 시작 전부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시작합니다.”
그렇게 주변의 기대 속에서 그들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
시작은 묵직한 현악기의 소리부터, 곧이어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북 소리와 날카로운 악기 소리가 뒤따랐다.
그 생소한 음악에 관객들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뭐지? 이 음악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소리에 모두가 당황한 순간.
“저~ 흰 백사장 끝까지~♪”
해리스의 강렬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장내를 휘감았다.
그 노랫소리가 닿는 범위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음?”
“뭐야? 이건?”
엘프들의 노래는 대부분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이 강했다.
시끄러운 소음을 싫어하는 그들의 기본 성향이 음악의 발전에 영향을 준 것이다.
신나는 분위기의 노래를 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같이 그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고성방가가 주를 이루는 드워프의 노래는 아예 혐오할 정도였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정관념은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무대에서 선보이는 음악은 그간 들어왔던 무분별한 소음과는 달랐다.
과하지 않은 절제와 철저하게 계산된 완급.
거기에 해리스의 목소리에 담긴 자연력은 강제로 청자를 동조시키며, 익숙함에 젖어있던 그들의 심장을 서서히 뛰게 만들었다.
“와아···.”
그리고 그런 감정은 하이 엘프인 라포리와 세실리도 함께 느끼는 중이었다.
‘대단하군. 이 정도의 동조력이라니.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연신 어깨를 들썩이며 반짝이는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세실리와 달리, 연륜이 있는 라포리는 음악을 즐기면서도 차분히 노래를 분석했다.
‘가사의 주제는···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인가.’
어려서부터 혼자 대륙을 떠돌며 용병 생활을 해 온 해리스.
온갖 고난을 거치고 이렇게 엘븐 킹덤에 도달했지만, 그의 본질은 자유였다.
왠지 그 가사가 지금의 해리스의 상황과 썩 흡사하지 않은가.
~♪
그의 목소리에 빨려 들어간 모두가 음악에 집중한 사이, 어느새 무대 바닥에는 자욱한 수증기가 깔린 상태였다.
무대 위에 선 이들의 발치에만 고인 하얀 연기는, 마치 그들이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호오, 정령을 저런 식으로···.”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화려하게 반짝이는 빛의 정령을 위시한 각양각색의 정령들과···.
화르륵—
바닥에서 솟구치는 불기둥까지.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와아!”
“오오—!”
이전 무대까진 조용히 감상하며 고개만 끄덕이던 엘프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모르게 온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의 꿈을 찾게 될 거야~♪”
그들과 교감한 정령들이 격렬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음악에 담긴 기운에 동화된 주변의 자연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무대를 이끌어 가는 이, 그 무대를 보는 이, 그들과 감응한 정령 가릴 것 없이 모두 노래의 감정 속에 빠져들었다.
‘저 정도 감응력이라니.’
그리고 라포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재차 감탄했다.
중앙에 선 해리스를 중심으로 감응력이 계속해서 치솟으며 그들의 정령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뭔가가, 다른 이들의 교감과는 뭔가가 달랐다.
~♪
그리고 마지막 연주음을 끝으로 무대가 마무리되었을 때.
짝짝짝짝—!
“와아아—!”
“오! 뭔가 색다른데 좋아!”
무수한 박수 세례와 상기된 관객들의 찬사가 무대 위로 쏟아졌다.
생소함에 거부감을 느끼지도 못하게 음악에 몰입시켜 버린 것이다.
“와! 이런 음악이라니! 역시 엘븐 킹덤은 대단하네요! 저 이런 건 처음이에요!”
한껏 음악을 즐긴 세실리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에게 재잘거렸다.
“음··· 사실 저도 처음 듣습니다.”
“네?”
“하하핫—”
고개를 갸웃하는 세실리를 보며 라포리는 그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저 음악에 대해 가장 궁금한 것은 그였으니까.
‘나름 오래 살면서 이온 대륙의 음악도 많이 접해봤지만, 이런 건 진짜 처음인데.’
그 구조를 보면 절대 단기간에 만들어진 체계가 아닌데, 그로서는 정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디 다른 세상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는 무대 위에서 마지막으로 인사하며 뒤쪽으로 사라지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기다 아직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조금 전의 공연은 단순히 교감만 대단한 게 아니었다.
‘음악을 듣고, 즐기는 순간··· 내부 기운의 유동이 좀 더 원활해졌어. 아직 미약한 수준이긴 하지만, 단순히 음악만으로 불특정 다수의 상대에게 이 정도로 영향을 줄 수 있다니.’
라포리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잠재력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기는 했으나, 이건 그의 예상을 너무 벗어나지 않았는가.
‘이거, 제법 파장이 있겠는데.’
유동 인구가 많은 중심부의 광장인데다, 이상할 정도로 넓고 선명하게 퍼진 소리에 홀린 이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그들 모두의 머릿속에 새로운 음악이 강제로 때려 박힌 상황.
때문에 무대가 끝난 지금도 웅성거리는 관중들에 의해 장내가 어수선한 채였다.
그렇게 누군가가 의도한 대로, 이문화가 성공적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켰다.
***
이온 대륙 남부.
부족 연맹 국가 칼코스와도 제법 떨어진 위치의, 아무도 찾지 않는 황무지 지하에 모종의 은신처가 있었다.
지하를 파내어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커다란 규모의 석실 내부엔, 알아볼 수 없는 온갖 술법이 빼곡히 들어찬 상태였다.
바닥과 벽면, 천장을 가리지 않고 새겨진 마법진과 결계는 물론, 제단과 마도구를 비롯한 주술 도구까지.
그 기괴한 공간에 십여 명의 후드를 눌러쓴 집단이 나타나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준비는?”
“거의 끝났다.”
커다란 덩치의 남성의 목소리에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음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히 어떻게 교단의 시선을 피하긴 했군. 최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는 놈들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는데.”
“···제법 고생하긴 했지.”
갑작스러운 불사왕의 등장으로 벌집이 쑤셔진 벌들처럼 한창 예민한 주신교단 때문에, 일을 진행하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하마터면 수십 년에 걸친 대계가 들통 날 뻔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했는지, 이번 대의 불사왕이 성지의 대신전까지 침투했다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어찌 그에게 상처를 주고 물리치긴 했다지만,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교단의 위기감을 자극하기엔 충분했으니까.
당연히 그런 자세한 사정은 공개하지 않고 쉬쉬하고 있는 주신교단이었으나, 그들은 특별한 능력을 갖춘 동료 덕분에 어렵사리 알아낼 수 있었다.
“후회는 없겠지?”
“물론. 이 세상을 부숴버릴 수만 있다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의식을 시작하면 그 주체인 노인은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가 되겠지만, 그의 세상에 대한 분노는 그런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게 만들었다.
“불사왕까지 부활했다고 하니, 조금만 거들어 주면 나머진 그자가 알아서 해 주겠지. 크흐흐흣···.”
“흠··· 그래. 확실히 유능하긴 한 것 같더군. 지금은 어디 숨어서 뭘 하는지도 모르겠다만.”
진행 상황을 파악한 덩치 큰 남성이 미친 듯 혼자 킬킬대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자가 의식을 완성하면, 지금의 평온이 깨지고 더욱 혼란스러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그 절호의 기회를, 대륙을 죽음으로 뒤덮으려는 불사왕이 가만히 두고만 볼 리 없었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은 앞으로 그들이 일을 벌이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
후드를 눌러쓴 이들이 서로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하늘을 거스를.”
“서약을 위하여.”
진짜 악의 세력이 음지에서 조용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