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89)
#89
성검의 시련 (2)
주신교단의 성표와 제단이 있는 그곳은, 마치 대신전의 예배당과 비슷한 장소였다.
‘시련마다 시간의 배율이 다른 모양이네.’
아까와 달리 이곳의 시간 배율은 바깥의 약 3배 정도.
그가 침착하게 주변 상황을 살피고 있을 때, 이번에도 머릿속에 의지가 울려 퍼졌다.
반짝—
동시에 단상 쪽 벽면에 새겨진 커다란 문양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마치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빛을 형상화한 듯한, 주신교단의 상징인 성표였다.
‘아, 이건 뭔지 알 것 같군.’
이전 도전자들의 기록에서 상당히 많이 나왔던 유형이었다.
하인리히는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거침없이 단상 앞으로 향해, 자연스러운 자세로 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맞잡았다.
‘믿음의 시련.’
단골 기출문제로써 거의 매번 나오는 이 시련의 과정은 매우 단순했다.
그저 신앙심을 증명하면 될 뿐이었으니까.
그가 기도를 시작하자, 교단의 성표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점점 짙어졌다.
화아아—
그리고 그 빛은 마치 창밖에서 내리쬐는 햇살처럼 하인리히를 비추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신성력을 버티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 시련에서 신앙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성검의 시련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대충 알고 있었다.
잠재력과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고 난이도를 결정하는 듯, 시련에 응하는 이마다 약간의 편차가 있기는 했지만···.
평균적으로 주교급과 대주교급 사이 정도면 그 기준을 만족할 수 있었다.
이미 주교급 신성력을 가진 데다, 원하면 언제든 더 그 한계를 늘릴 수 있는 하인리히에게는 간단한 문제였다.
‘그래서 이 시련은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끝도 없이 신성력이 밀려들었다.
거기다 벌써 상당한 수준까지 도달했는데도 그 기세가 꺾일 줄 몰랐다.
살짝 당황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밀려드는 신성력은 벌써 하인리히가 평소에 쓸 수 있던 한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어, 어··· 이거 위험한데?’
황급히 다른 아바타들의 정신력 리소스를 끌어와, 「마인드 허브」와 「페르소나」를 이용해 믿음으로 전환시켰다.
주변의 흑마법사들을 수집하며 정보 조직을 키우는 데 한 손 거들던 한스.
클랜 전체를 손에 넣는 작업을 마치고 세력 확장에 열중하던 하인즈 2세.
북부 산맥의 몬스터들을 사냥하기 위해 강철의 성채에 머물던 할리.
타라크의 상계에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슬슬 규모를 키우는 중인 휴버트.
축제 이후 엘븐 킹덤에서 여러 엘프의 주목을 받게 된 해리스까지.
하지만.
‘아니, 이건 언제까지 늘어나는 거야?’
모든 아바타의 정신력을 끌어왔는데도 신성력의 주입은 끝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안에 들어찬 신성력의 양은 대주교급에 필적할 정도였다.
‘억지로 잠시 몸에 담아둔 것뿐이니 오래 가진 못하겠지만···. 아, 안 되겠다.’
더는 딴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지구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성현 또한 서둘러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가 여태까지 성장해 오면서 얻은 모든 능력과 정신력을 오직 하인리히 하나에 쏟아 부었다.
급박한 상황 속, 조금의 여유도 없이 무념무상에 빠진 그의 몸에는 평소 다루던 신성력의 몇 배나 되는 양이 꿈틀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를 비추던 성표의 광량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몸에서 터져 나오기 직전의 신성력을 간신히 부여잡느라, 바깥의 변화를 눈치챌 겨를이 없었다.
스으으—
점점 약해져 가던 성표의 빛이 마침내 완전히 꺼지고, 예배당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묵에 잠겼다.
오직, 전신에서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는 하인리히만이 처음과 달랐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그의 몸에서 이전과는 다른 성질의 신성력이 감돌았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특수스킬「축복 : 증량」을 획득합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찾아온 한 줄기 서광.
몸에서 터질 듯 말 듯 하던 신성력이 점차 진정되고, 그의 통제에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머릿속을 울리는 의지와 함께, 깊게 몰입하던 그의 정신도 서서히 깨어났다.
‘아··· 상당히 아슬아슬했다.’
정말 한계의 끝까지 도달했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하인리히에게 집중되었던 아바타의 정신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곧 자신의 변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수용할 수 있는 신성력이 증가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얻게 된 새로운 스킬 덕분이었다.
「축복 : 증량」은 체내에 보유할 수 있는 신성력의 최대치를 늘려주는 능력으로, 주로 사제 계열의 성직자들이 얻는 축복이었다.
승급한 것이 아닌지라 그 격까지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양만큼은 대주교급에 어느 정도 비빌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닌가.’
지금 당장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신성력이 줄줄 새어나가며 주변을 밝게 물들이는 중이었으니까.
아직 새로운 능력에 익숙하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시련 때 신성력을 통제했던 것은 다른 아바타들의 도움을 통해 이룬 일시적인 성과에 불과했다.
‘시련은 이미 끝났으니 상관없겠지만.’
「축복 : 증량」 덕분에 하인리히 혼자서 통제할 수 있는 양도 두 배 이상으로 크게 증가했으니,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근데 난이도가 너무 어려운 것 같은데.’
처음부터 강한 자에게는 좀 더 어려운 시련을, 아직은 부족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이에게는 비교적 쉬운 시련을 준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바타를 이용한 꼼수로 시련을 통과하기는 했지만, 최종적으로 그에게 쏟아 부어졌던 신성력은 어지간한 대주교도 버거워할 수준이었다.
평균적으로 그들보다 신성력이 적은 팔라딘들은 대부분 여기서 우수수 떨어져 나가리라.
첫 번째 인내의 시련도 그의 여러 가지 특성이 아니었으면 상당히 힘든 시련이 되었을 것이다.
팔라딘급이나 되어야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하인리히는 아직 첫 번째 도전인데다 그만큼 강한 것도 아닌데,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것 아니야?’
무력이 팔라딘급인 것도 아니고, 신성력이 대주교급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나온 시련이 그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고 있었으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섣불리 단정하긴 일러. 다음 시련은 어떨지 아직 모르니까. 전체적인 밸런스를 위해 다음은 좀 쉬운 시련일지도.’
하인리히는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며 다음 관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예배당의 출구 쪽에 처음엔 없던 갈색 나무 문이 생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거지?’
사람마다 내려지는 시련의 횟수도 전부 달랐기에 자신에게는 얼마나 주어질지 알 수 없었다.
기록상으로 그간 성검의 앞까지 도달했던 이는 단 두 명.
그들은 각기 3번과 4번의 시련을 거치고 그 앞에 설 수 있었다.
‘물론 성검을 뽑고 그것의 인정을 받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부디 자신도 이번이 마지막 시련이기를 바라면서,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
그리고 빛이 사라지고 시력이 회복되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광경은···.
황폐한 폐허였다.
한 톨의 생명력조차 느껴지지 않는, 시커멓게 썩어가는 죽음의 대지.
‘조졌네.’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쉬운 시련은 개뿔 어림도 없고, 이번에도 굉장히 까다로운 과업이 주어질 거란 것을.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의지.
그것이 말하는 ‘적’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공중에 떠 있는 누군가가, 대놓고 흉흉한 기운을 줄기줄기 내뿜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뭔가 인상착의가 굉장히 익숙한데···.’
그에게 굉장히 친숙한 분위기였다.
누더기가 된 시커먼 로브, 끄트머리에 다수의 두개골이 엮인 검은 나무 지팡이.
그리고 전신에서 타오르듯 일렁이는 죽음의 기운과, 붉은 안광을 흩뿌리는 해골까지.
‘···한스랑 비슷하네.’
물론 그 위압감은 불사왕인 그와 감히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럼, 리치인가?’
그때, 언데드의 종주 불사왕 한스 선생이 놈의 기운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낱낱이 분석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바로.
“아크리치···.”
한스가 불사왕이 되기 직전에 머물렀던, 바로 그 언데드였다.
그리고 완숙한 아크리치는 팔라딘도 일대일을 꺼리는 존재였다.
[교단의 사냥개인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쇠를 긁는 것 같은 소리가 그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아니, 이제 와선 아무래도 상관없겠지.]잠시 말을 거는 듯했던 아크리치는 곧바로 대화할 생각을 접고 흑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해골 지팡이에 시커먼 기운을 담아 허공을 한번 휘저었다.
‘아니, 왜 저리 성격이 급해!’
하지만 그런 하인리히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개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기운은 곧바로 대지로 스며들어···.
드드드득—
[케헤에엑!]달그락—! 덜크럭—!
[끼익— 끽!]온갖 종류의 언데드들이 바닥에서 끝도 없이 튀어나왔다.
백 단위를 넘어 천 단위까지···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와··· 시련이 여기까지 구현하는 거야? 실제로 보니 더하네.’
사전 정보를 통해 이 모든 게 자격 증명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 기운부터 시작해 언데드 하나하나가 뿜어내는 기세가 마치 진짜 같았다.
‘그런데 아크리치랑 일대일로 맞붙는 것도 까다로운데, 이 언데드들까지 상대하라고?’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딴생각에 빠져있을 여유는 없었다.
[죽어라. 교단의 개!]수천이 넘는 언데드와 그들을 통솔하는 아크리치가 그 하나만을 노리고 죽이려 드는 상황이었으니까.
***
“이제 조금 있으면 시작이군.”
“···아, 그런가.”
이온 대륙 남부, 역천의 서약의 비밀 은신처.
로브를 뒤집어쓴 덩치가 먼저 말을 걸었지만, 언제나 음울하고 광기에 차 있던 노인의 반응이 오늘따라 밋밋했다.
‘설마 이제 와서 겁을 먹은 건 아니겠지?’
이번 일은 그가 빠진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계를 위해 십 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한 덩치의 입장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
그가 찌푸린 얼굴을 노인에게 향하며 그의 상태를 다시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겁먹은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로켓 펜던트의 뚜껑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안에 있는 건, 인화 마법을 통해 그려진 한 가족의 초상화였다.
“일을 진행하는 데에는, 문제없겠지?”
하지만 그런 감상적인 모습을 이해해 줄 생각이 없는 덩치는 노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처음부터 그는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도 못했으니까.
“설마 이제 와서 발을 뺀다고 하면···.”
“아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이 로켓의 뚜껑을 닫으며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킬킬거렸다.
“킥, 내가 이 대업을 준비한 게 자그마치 30년이다. 그런 내가, 이 순간에 이걸 포기한다고? 크흐흣···.”
초상화를 볼 때와는 달리, 그의 눈빛은 어느새 다시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오히려 마음이 더 확고해졌다. 역시, 이 대륙은 이렇게 평화로워선 안 돼. 암, 그렇고말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한 노인의 모습에, 덩치는 흡족한 표정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일을 진행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 30년 만의 결실이다. 결코 실패할 수는 없어.”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은 다시 대법의 준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흐음··· 그럼 나도 내 일이나 하러 가 봐야겠군.”
앞으로 더 바빠질 테니, 미리 준비를 갖춰 둘 필요가 있었다.
그 준비는 대륙의 모든 이들에게 필요할 테지만···.
지금 대비가 된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그가 알 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