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9)
불사왕의 파편 (2)
입구를 지키고 있던 흑마법사와 눈이 마주쳤다.
제라프와 함께 정보수집에 큰 도움을 줬던 친구였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죠?]반가운 마음에 인사말을 건네 봤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외면이었다.
말을 꺼내기 무섭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그렇게 무시하면 상처받잖아.]차가운 반응에 괜스레 섭섭해진 마음을 달래고자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믿음직스러운 친구들을 한번 둘러봤다.
[끄흐흐으···]덜그럭— 덜그럭—
언데드들이 뿜어내는 죽음의 기운으로 칠흑같이 어두워진 통로 안에서 울려 퍼지는 귀곡성과 발광하는 수백 개의 안광.
언뜻언뜻 비치는 실루엣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고, 그 강인해 보이는 위용은 듬직하기 그지없었다.
‘음··· 얘네들이 좀 무섭게 생기긴 했네.’
하지만 내 친구들이 아무리 위협적으로 생겼어도 그렇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외면보다는 내면이 더욱 중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면에 자신이 있었다.
‘암, 내 해골 정도면 충분히 잘생긴 두상이지. 뼈도 미끈하게 잘 빠졌고.’
[끄히히히힉—]“으억—! 언제 여기까지?! 저리 꺼져!”
펑—!
도망가던 흑마법사는 건물 출입문 바닥에서 튀어나온 유령들에게 둘러싸여 더는 도망치지 못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부터 보내줄 생각도 없었다.
이 마을에 있는 흑마법사와 하수인들은 모두 없애버릴 생각이었으니까.
나는 곧바로 휘하의 모든 언데드들에게 명령했다.
[이 마을의 모든 인간들을 죽여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혹시 무고한 사람이 붙잡혀 있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데미리치로 진화한 나의 ‘생기 감지’는 마을 전체를 범위로 두고 있었고, 그 안에 있는 존재들의 흑마력까지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이 마을에 살아있는 이들 중 무고한 자는 없다.
[키에엑—!]달그닥, 딸깍!
내 뒤에 있던 수백의 언데드들이 입구의 흑마법사를 지나쳐 마을로 풀려나갔다.
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외곽부터 둘러서 안쪽으로 공격해 들어갈 것이다.
화르륵— 쾅!
“크헉, 내··· 내가 이런 곳에서···! 이런 놈들에게!”
언데드들의 한복판에 갇힌 흑마법사는 온갖 마법을 동원해 가며 죽기 살기로 발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놈이 모든 능력을 꺼낼 수 있도록 적당히 조절하며 언데드들로 몰아붙였다.
딱히 배려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화르륵—
[음··· 이렇게 인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군.]나는 손 위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악한 지혜」는 흑마법에 대한 절대적인 이해와 재능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지식’을 직접 전수해 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따로 학습할 필요가 있었다.
비밀통로 입구의 결계는 직접 접촉해서 이해한 후에 파훼할 수 있었지만, 다른 흑마법들은 경우가 다른 것이다.
[끄어어어—]촤좌좍—!
그리고 여기엔 훌륭한 교보재가 있었다.
나는 흑마법에 의해 언데드들이 토막 나는 것을 지켜보며, 그 모든 실전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그리고 「사악한 지혜」는 단순히 따라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 발전된 개선 방향과 응용 방법, 파생 능력까지 깨닫게 해 주었다.
“크억···. 쿨럭!”
충분히 여유를 줘 가면서 압박했다고 생각했는데, 흑마법사는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하다 한계가 왔는지 피를 토하다 쓰러졌다.
‘뭐, 빨아먹을 만큼 다 빨아먹은 것 같고, 이젠 상관없겠지.’
나는 달려드는 언데드들에게 파묻히는 흑마법사를 일별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기습으로 제라프를 죽인 건 정말로 운이 좋았던 거구나.’
엘리트 스켈레톤으로 저 정도 수준의 상대와 대적한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제라프도 저 흑마법사와 동급이었을 테니, 정말 여차하면 아무것도 못 하고 박살 났으리라.
‘자, 이제 어느 정도 준비는 끝났고. 손님을··· 아니, 집을 빼앗은 강도를 맞이해 볼까?’
콰아아앙—!
건물 전체를 감싼 결계가 부서지며 무언가가 내 앞으로 날아와 산산이 조각났다.
아까 내보냈던 언데드들 중에 하나, 그중에서도 최강이었던 데스나이트였다.
“네놈··· 네놈이 감히···!”
일그러지며 부들거리는 얼굴을 한 노인, 말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챙겼는지 검은 로브를 입고 손에는 해골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나는 말콤의 뒤쪽을 보았다.
가진 데스나이트 셋을 전부 붙여서 시간을 끌도록 했는데, 모두 당했는지 파편밖에 보이지 않았다.
연결이 끊겼을 때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비록 상태가 좋지 않긴 했지만 데스나이트는 구하기도 힘든 최상위 언데드였으니까.
겨우 시간을 버는 것에 소모하기에는 아까운 패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마을 전체를 탐지했을 때 이 노인네의 힘을 파악할 수 있었고, 내가 가진 언데드들은 시간 벌이밖에 안 된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직접 상대하기 전에 흑마법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안녕하세요. 촌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뭣?! 네놈은 누구냐?!”
[네? 저예요. 저. 저 모르시겠어요?]섭섭하게 벌써 내 얼굴과 목소리를 잊은 건가.
나는 한 손으로 해골을 긁적이며 마력을 공명시킨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음, 기억 못 하신다면 어쩔 수 없는데···. 제가 원래 이틀만 머물며 마을 일을 돕고 떠나기로 했었지 않습니까?]“이틀···? 넌, 한스로구나! 분명 엘리트 스켈레톤이 되었을 텐데, 어떻게?!”
[그건 알아서 생각하시고. 아무튼 생각 외로 오래 머물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만큼 마을 일을 좀 더 도우려고 해서 말이지요.]“도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말콤이 이를 갈며 외쳤지만, 나는 당당했다.
[쓰레기 청소 말입니다. 분리수거도 안 되는 폐기물들이 가득한 이 마을 전체를 대청소해 드리겠습니다. 아,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핫.]말을 하다 보니 뿌듯해져서 넉살 좋게 웃었다.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일 줄이야.
지구에서도 봉사활동을 시작해 봐야겠다. 물론 아바타로.
“···네놈, 그 ‘불사왕의 파편’은 대체 어떻게 한 거냐?”
‘아, 여기까진가? 좀 더 도발하고 싶었는데.’
나는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 흑마력을 끌어올리는 말콤을 따라 마법을 준비하며 끝까지 속을 긁었다.
[이거 말입니까? 촌장님 덕분에 제가 심장이 없어졌잖습니까. 그래서 창고에 있던 걸로 새로 하나 달았습니다.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일단 아쉬운 대로 이걸로 참아야지 뭐 어쩌겠습니까?]콰과과광—!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서 검은 가시들이 덮쳐들었다.
나는 곧바로 반응하며 주변에 그림자 장벽을 세워 가시들을 막았다.
그리고 방금 배운 검은 불꽃들을 난사하며 반격하는 순간.
“[죽음의 손가락]”
피잉—
한순간에 뻗어온 검은 섬광.
말콤의 목소리가 들린 찰나의 순간, 그림자 장벽과 함께 몸 주변에 전개해 두었던 마력 방벽까지 단번에 꿰뚫리며 오른쪽 팔이 통째로 날아갔다.
[칫··· 노인장, 마법 쓰는데 일일이 기술명 외치면 안 쪽팔리쇼?]“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군. [지옥의 부름]”
‘겉멋만 든 노인네 같으니.’
내가 파악한 이곳의 마법 체계는 마력의 구축이 중요하지, 저렇게 일일이 주문을 읊을 필요가 없었다.
집중을 편하게 하기 위한 루틴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달그락, 덜그럭—
[그어어···]말콤의 발밑에서 기어 나오는 악귀들과 내 휘하의 언데드들이 뒤엉켰다.
대충 뭉친 찰흙같은 이형의 존재들과 뼈다귀들이 서로를 파괴하기 위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우리는 공방을 이어가면서도 끊임없이 말싸움을 계속했다.
“‘불사왕의 파편’을 취하고도 겨우 그 정도냐? 네놈, 그게 어떤 건지 알고는 있는 거냐! 겨우 엘리트 스켈레톤 하나를 반쪽짜리 데미리치로 만들고 끝날 물건이 아니었다. [사령의 인도!]”
[아 뭐! 불완전했는데 어쩌라는 거요. 이거 나니까 이렇게라도 써먹었지, 당신이었으면 어림도 없었어!]“숙성되지도 않은 불완전한 파편을 강제로 저급한 몸뚱이에 융합시키다니, 그동안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었구나.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데···! [연쇄 뼈 폭발!]”
귀곡성이 전장을 울리고, 곳곳에서 검은 불꽃과 뼛조각이 터져나갔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언쟁.
‘음··· 종결급 인챈트를 초보자용 목검에 바른 셈인가 보네. 조금 미안한데?’
거짓말이지만. 사실 하나도 안 미안했다.
“대체 어떻게 그것의 침식을 이겨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몸뚱이를 하나하나 분해해서 실험체로 써 주마! [브로큰 엑토플라즘]”
터져 나오는 파괴적인 기운에 서둘러 검은 장벽을 펼쳐 공격을 막아냈다.
그런데 계속해서 폭언을 듣자니 기분이 나빠졌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사실 누가 봐도 피해자는 이쪽이 아닌가.
그리고 말끝마다 기술명 붙이는 것도 거슬렸다!
또 마지막 주문만 이름의 양식이 다른 것도 묘하게 신경 쓰이고! 일관성을 가져라!
그래도 이제 슬슬 말콤이 사용하는 고위 흑마법에도 익숙해졌다.
덕분에 첫 공격에 팔이 날아간 후로 몇 번이나 공방을 거듭했지만 추가로 입은 피해는 없었다.
말콤에게도 배울 만큼 배웠으니 이제 슬슬 끝내자.
콰아앙!
바닥에서 검은 가시가 솟구쳐 말콤에게 쇄도했다.
동시에 그에게서 뻗어 나온 검은 섬광이 방어막을 뒤흔들었지만, 이젠 눈에 익은 공격에는 더 이상 당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번의 마법을 더 주고받은 후, 나는 짜증과 원한을 담아 말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당신을 죽이고 알프레드의 원수를 갚겠다.]***
한스의 갑작스러운 말에 마르코스는 순간 당황했다.
‘알프레드? 원수를 갚아? 이 마을에 아는 사람이 있었나?’
1년 전에 희생당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 리 없었다.
아니, 애초에 알지도 못했다.
숙성하기 적합한 지역을 찾기 위해 처음 이 마을에 파견되어 정보를 모았던 부하라면 모를까.
‘놈이 이 마을 주민과 이미 아는 사이였다면, 처음부터 눈치채고서도 안으로 잠입했다는 말인데···. 아까 마을에 왔던 하인즈라는 놈과도 연관이 있나?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생각이 많아져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푸화악— 쾅!
‘놈이 점점 내가 사용하는 흑마법에 익숙해지고 있다!’
자신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은 물론, 역공에 사용되는 흑마법의 수준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이젠 이쪽이 버티는 데 버거워질 지경이었다.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무지렁이가 어쩌다 운 좋게 힘을 얻었을 뿐인데!’
보통 사람이 흑마력만 넘치는 데미리치가 되었다고 그 잠깐 사이에 저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명백히 비정상적인 학습 속도다. 놈이 품고 있는 파편의 힘인가?’
「사악한 지혜」의 효과를 모르는 마르코스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그것도 ‘불사왕의 파편’ 덕분에 얻은 스킬이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할 순 없다! 다른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모든 걸 쏟아붓는다!’
“[파멸의 맹약!]”
***
말콤을 몰아붙이던 나는 곧바로 변화를 감지했다.
이곳과는 별개로 마을에서 박 터지게 벌어지던 싸움이 한쪽으로 확 기울었다.
내가 보낸 언데드들에게 저항하던 흑마법사들이 그 자리에서 모조리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제 마을에서 저항 중인 이들은 흑마력을 사용하는 하수인들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쪽과는 반대로 흑마법사들의 영혼을 빨아들인 말콤의 흑마력이 순간적으로 크게 증폭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정한 자의 왕관], [망자의 안식처]”
말콤의 머리에 검은 왕관이 씌워지고, 발밑의 대지가 검게 물들며 언데드들이 기어 나왔다.
‘아··· 2페이즈냐고. 새로운 마법을 보는 건 좋긴 한데, 이제 슬슬 끝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나는 그걸 시큰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개체가 지식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흑마법」을 획득합니다.》
말콤은 아직 역전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으니까.
***
예상대로 말콤의 발악은 오래가지 못했다.
“쿨럭··· 커헉!”
나는 말콤의 흑마법을 모두 흡수했고, 내 오른팔을 날려버렸던 마법을 그대로 돌려줘 말콤의 가슴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크헉··· 이렇게, 허무하게···. 내, 내게 언데드들만 남아 있었다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른 흑마법도 수준이 높긴 했지만, 말콤의 전공은 어디까지나 언데드를 앞세운 네크로맨서였으니까.
‘불사왕의 파편’을 빨리 완성하고 싶은 욕심에, 막대한 수의 상위 언데드들을 제물로 갖다 바치지 않았다면 힘든 싸움이 되었으리라.
나는 격전의 끝에 만신창이가 된 주변의 언데드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말콤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영감, 댁 언데드 쩔더라?]“크허헉— 크학!”
말콤은 이내 입에서 피를 토하며 숨을 거뒀다.
얼마나 원통했는지 부릅뜬 두 눈에서 피가 나올 정도였다.
[쯧, 그야말로 인과응보로군. 심보를 좋게 가졌어야지.]때마침 마을에서의 전투도 모두 끝나, 한순간 마을에 정적이 찾아왔다.
이제 이 마을에 살아있는 이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격렬한 전투로 천장이 통째로 날아가, 별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밤하늘이 훤히 보였다.
[알프레드···. 보고 있니?]너의 복수는 내가 확실하게 끝냈으니, 이제 안심하고 편히 잠들렴.
그 순간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떨어지는 별똥별은 마치 알프레드가 내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 같았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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